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98화 (298/300)

< 발악. - (5) >

***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통로…….

의자와 책상이 바리케이드처럼 쌓여 있다.

그리고 바리케이드 뒤에는 국회의원의 보좌진들이 보인다.

편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그들은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쾅쾅쾅 뛰는 심장을 애써 누르며 마른침만 삼키는 중이다.

그리고 한 남자의 입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흘렀다.

“왔다.”

긴 헤드라이트가 보였다.

국회 앞으로 차량이 몰려들고 있었다.

내린 사람은 각 당의 의원들…….

이번 체포 동의안에 이름이 올라간 자들이다.

마지막으로 최학인 대표와 그 계파가 차에서 내렸다.

한곳에 모인 국회의원들이 최학인 대표의 앞으로 몰려든다.

이들의 당은 서로 다르다.

누구는 대한당, 저 사람은 한민당, 최학인 대표는 민국당이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지금의 목표는 같다.

“투표를 막아야 합니다.”

무거운 목소리에 한 의원이 최학인 대표를 바라본다.

그리고 조심스레 묻는다.

“민국당이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잖아요? 한 마음 한 뜻으로 반대를 던지면 이성윤이 무슨 짓을 해도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텐데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최학인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이성윤이에요. 뱀 같은 혓바닥으로 우리 당 일부를 섭외했겠죠. 배신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모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이성윤…….

어린 놈이 몇 년 만에 여당의 당 대표까지 해 먹고 있다.

절대 만만히 볼 수 있다.

게다가 결단을 앞두고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도 의심해야 하는 법이다.

다른 의원이 입을 연다.

“그럼, 남은 방법은…….”

“전쟁입니다.”

최학인 대표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그들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내뱉어졌고 시선은 새벽의 국회로 향했다.

“전쟁이라…….”

그러는 사이에도 이들의 규모는 점점 커지는 중이다.

지금까지 모인 의원만 해도 약 백 명.

그 보좌진까지 모두 합하면 천여 명.

최학인 대표가 담배를 땅에 툭 떨어뜨린다.

그리고 발로 비벼 끄며…….

“갑시다.”

그들이 저벅저벅 국회를 향해 간다.

***

삑.

텔레비전이 켜졌다.

화면 속 아나운서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연다.

-국회가 난장판으로 변했습니다. 심지어 전기톱도 등장했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일입니다.

화면에 국회의 모습이 드러났다.

-재킷을 벗어 던진 남성 의원들이 서로 멱살을 쥐었고 어디선가 여성 의원의 날카로운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어딜 손대! 이 변태 새끼야! 이거 성추행이야! 고소할 거야! 이 개새끼야!

-국회 경위가 말려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잡아!

-놔! 이건 불법이야!

-경위 따위가!

-민국당 의원들이 발길질을 하며 국회 경위 전원을 끌어냈습니다. 여성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외칩니다.

-민주주의! 민주주의! 이성윤은 국민에게 사죄하라!”

-한민당 의원들은 회의장 문을 걸어 잠근 채 농성을 벌였고 어디선가 나타난 모자를 쓴 남자가 전기톱을 사용해 회의장 문을 파괴합니다.

-카메라 찍지 마! 이 개새끼들아!

-죽여 버려! 어딜 봐, 씨발 놈아!

-봤지? 전기톱 쓰는 거 봤지? 찍어! 저거 찍어! 찍으라고 새끼야!

-이게 국회인지 모르겠습니다.

-더! 더!

-화이팅!

-열렸어!

-가지고 와!

-대한당 의원들이 열린 문틈으로 소방 호스를 넣어 물대포를 발사합니다.

-이 개새끼들아! 아오! 아오!

-나와! 나오란 말이야!

-누구야! 손 놔! 이 새끼야! 손대지 마! 손대면 죽여 버린다!

-막아!

-안 돼!

-개새끼들아! 부끄럽지도 않냐!

-한쪽에서는 여성 의원들끼리 몸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놔! 놔!

-머리를 왜 잡아! 반칙이야!

-씨발! 반칙이 어디 있어!

-새벽 4시부터 오전 7시까지, 벌어진 몸싸움…… 체포 동의안에 대한 투표 때문입니다. 민국당과 대한당 의원들이 일단 물러갔지만 언제 2차, 3차 싸움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화면은 부서진 유리문을 보여 주고 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씁쓸하게 들린다.

-단 한 번의 난동으로 국회의 시설물 피해액은 9,681만원. 국회 선진화법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당과 야당은 서로가 정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의를 따지기 전에 이것 하나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국민의 세금입니다.

***

민국당 의원들이 국회 회의실 하나를 휴게실로 이용하고 있었다.

회의를 열지도 못하고 막지도 못하는 팽팽한 싸움…….

4시간 가까이 벌어진 몸싸움에 모두 지친 표정이다.

담배를 물고 있지만 눈동자는 멍하다.

그래도 이들은 다행인 거다.

보좌진들은 복도에서 대기해야 한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최학인 대표가 담배를 입에 물며 묻는다.

“본회의가 끝날 때까지 우리를 막을 거라고?”

민국당 사무총장이 답했다.

“네, 우리가 필리버스터를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필리버스터, 합법적이며 고의적으로 회의를 방해하는 수단으로 장시간 연설과 신상발언 남발 등의 방법이 포함된다.

최학인 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어떻게든 뚫고 들어가서 훼방을 놓아야 하는데…….”

이 싸움에 민국당의 모든 의원이 참여한 게 아니다.

한눈에 봐도 빠질 놈은 빠졌다.

그들 중에 이성윤에게 붙은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회의에 들어가면 투표가 과반을 넘길 수도 있다.

그럼, 구속이다.

최학인 대표는 턱에 힘을 꽉 줬다.

대규모 시위로 승기를 잡았다고 방심한 게 타격이 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구속이 되면 끝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속은 피해야 해.’

최학인 대표는 모든 의원과 보좌진 들을 갈아 넣어서라도 자신의 목숨은 건지려 하고 있다.

일단 자신이 살아야 다른 사람들의 목숨도 건져 줄 수 있으니까.

머릿속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악독한 일들이 떠오르는 중이다.

그때 한 의원이 다가와 앞에 섰다.

“대표님,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모든 통로를 확인했습니다. 좌측 통로가 구멍인 것 같습니다. 의자나 책상이 부족했는지 바리케이드가 부실해 보입니다.”

“그래?”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뭐?”

“소식을 듣고 출입증을 가진 유튜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놈들이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면…….”

예전에는 공중파 카메라만 막아 내면 됐다.

그런데, 이제는 개나 소나 기자라고…….

유튜버에 대한 말을 들은 다른 의원들이 끄음, 소리를 낸다.

그만큼 답답한 거다.

가뜩이나 명분 없는 싸움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것은 이들이니까.

“젠장, 유튜버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짜증이 확 몰려왔다.

그런데…….

“그건 문제가 아니야.”

최학인 대표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며 빙긋이 웃는다.

“국회에 들어와 있는 유튜버들, 모두 이리 끌고 와.”

“네?”

“놈들이 명분을 만들어 줄 거야. 우리는 정치적 탄압에 맞서는 사람들이니까.”

“정치적 탄압?”

“유튜버들이 오기 전에 밖에 보좌진들 더 불쌍하게 만들어. 옷도 좀 찢고 복도에 널브러져서 쉬고 있으라고 해! 우리는 야당이고 놈들은 여당이야! 우리가 약자고 놈들이 강자야!”

이미지를 만들어 내면 여론이 이들을 불쌍하게 바라볼 거다.

최학인 대표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미지가 명분이야. 시위대를 여의도로 불러들여! 이 앞에서 목청이 터질 때까지 ‘박무혁, 이성윤 구속’을 외치라고 해!”

주객이 전도되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텔레비전을 켠 사람은 성윤이 구속을 피하기 위해 국회를 점거한다고 생각할 거다.

“그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의원들의 눈이 반짝였다.

승리의 순간이 보이고 있어서다.

잠시 후, 유튜버와 최학인 대표가 만났다.

최학인 대표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는다.

물론 이 웃음조차 의도된 것이다.

“먼저 국민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지만 이 몸뚱이 하나로 견뎌 내기는 정말 힘이 듭니다.”

“……!”

“그래서 박무혁 대통령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독재 정치, 정치 탄압! 날치기 처리! 국민이 이룩한 민주주의를 죽이려면 우리 민국당의 시체를 짓밟고 가야 할 겁니다. 나 최학인의 주검을 밟지 않고는 독재를 저지를 수 없을 겁니다.”

그 눈빛이 빛났다.

동시에 포털 사이트에 최학인의 이름이 실검 1위로 떠오른다.

2위는 박무혁 독재, 3위는 이성윤 구속이다.

최학인 대표가 원하는 대로 판이 깔리고 있었다.

그렇게 유튜버들이 떠났다.

지갑에 현금을 두둑이 넣고…….

이곳에는 다시 민국당 의원들만 남았다.

그러자 최학인 대표가 손을 든다.

주변으로 그의 참모들이 몰려든다.

우경도 보좌관을 비롯해서 민국당 사무총장과 최고위 등…….

“우 보좌관, 깡패 새끼들을 불러.”

“네?”

우경도 보좌관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국회에 깡패를 부르라니…….

하지만 최학인 대표의 목소리는 담담하게 이어진다.

“입구를 지키는 국회 경위에게 적당히 용돈 좀 쥐여 주면 통과는 어렵지 않을 거야. 평범한 옷에 모자를 씌워서 얼굴을 가리고 대한당 보좌진인 척 위장해.”

명백한 불법이다.

하지만 최학인 대표는 거침없다.

“망설이지 마. 어떻게든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야 해. 그래야 회의가 종료될 때까지 장기간 연설이든 똥을 뿌리든 할 수 있는 거야!”

지금은 전쟁이다.

이기고 봐야 하는 거다.

역사는 이긴 사람이 쓰는 거니까.

“그리고 국회를 점거하면서 국회 선진화법을 어긴 것은 여당이 먼저 했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 대부분은 체포 동의안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들이다.

최학인의 궤변이 없더라도 구속이 되면 끝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들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개똥이라도 찾아서 국회에 뿌려야 한다.

최학인 대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2차 실행은 오후 2시. 보좌관들은 우측 통로로 보내. 그리고 약하다는 좌측으로는 깡패 새끼들을 기습적으로 보내서 길을 뚫도록 해.”

“…….”

“그럼 우리가 본회의장을 지배하게 될 거야. 사무총장은 곧바로 연설할 내용을 준비해. 5시간 정도 버티면 될 거야.”

깡패의 물리력과 여의도에서 울리는 시위대의 함성, 마지막으로 국회의원들의 필리버스터까지.

완벽한 계획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우경도 보좌관의 표정이 이상하다.

몸을 떨고 있다.

“도, 도대체 또 뭐야!”

최학인 대표의 다급한 목소리에 우경도 보좌관이 더듬더듬 입을 연다.

“깡패들이…… 어젯밤부터 모두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뭐?”

“그래서 국회에 올 수 있는 것은 고작 스무 명도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막대한 돈을 주고 깡패를 손에 얻었다.

그런데 필요할 때 쓸 수 없다니.

그것도 습격을 받았다는 말에 최학인 대표는 아찔함을 느낀다.

될 일은 된다.

어떤 방해가 있어도 흘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안 될 일은 안 된다.

아무리 완벽하게 계획을 세워도 막히고 또 막혀 버린다.

이번 일이 그렇다.

최학인 대표의 눈앞은 막막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남은 새끼들이라도 불러!”

***

오후 1시, 국회에 깡패들이 들어왔다.

모자를 쓰고 대한당의 보좌관인 척 행동하며 복도를 오고가고 있다.

작전을 시작할 시간은 오후 2시.

그때까지 주변의 분위기를 눈으로 익히는 중이다.

그리고…….

최학인 대표는 계단에 서서 초조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창밖의 하늘은 평소와 같지만 느낌은 다르다.

시대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대한민국을 양분하던 대한당과 민국당의 몰락…….

새로운 이념의 시대.

그런데 이 시대가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젠장.’

한숨을 뱉을 때, 심상치 않은 발소리가 들렸다.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우경도 보좌관이 나타난다.

위아래를 살피며 뭔가 눈치를 보더니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든다.

‘뭐지?’

최학인 대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이어진 목소리는 충격이다.

“2시에 시작할 겁니다. 좌측 통로에…….”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최학인 대표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며 그 목소리가 비상계단을 쩌렁쩌렁 울렸기 때문이다.

“우경도 이 개새끼야!”

난데없는 최학인 대표의 호통에 우경도 보좌관의 가슴은 철렁거렸다.

흡사 귀신을 본 것처럼 최학인 대표를 바라본다.

“대, 대표님?”

최학인 대표가 우경도 보좌관을 죽일 듯 노려보며 주먹을 꽈악 쥔다.

흘러나온 목소리엔 감정이 없다.

“죽어.”

최학인 대표가 우경도 보좌관의 목을 쥐었다.

“대, 대표님…….”

우경도 보좌관이 손에 쥔 휴대폰을 떨어뜨린다.

발신 번호는 이성윤.

곧 통화가 종료되더니 배경 화면이 보인다.

우경도 보좌관의 아내와 아들…….

“널 이대로 깡패 새끼들에게 보내지. 바다에서 시신이 발견될 거란 희망은 버려. 네 몸은 영원히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할 거야. 그냥 죽어, 이 새끼야.”

우경도 보좌관의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

파들파들 떨며…… 살려 달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목이 죄여서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최학인 대표가 휴대폰을 귀에 댄다.

깡패를 부르려는 거다.

그때…….

“그만하죠.”

최학인 대표의 시선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성윤이 보인다.

최학인 대표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의 목소리가 어금니에서부터 씹어 뱉어진다.

“이성윤!”

< 발악. -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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