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97화 (297/300)

< 발악. - (4) >

***

늦은 밤…….

한민당 당사에 상주하고 있던 기자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들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를 바라보는 중이다.

쉬지 않고 몰려드는 검은색 고급 차량…….

내린 사람은 최고위와 고위직 당직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기자들의 인사도 받지 않는다.

평소 반갑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조차 냉랭하게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있다.

무거운 발소리…….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며 복도는 다시 적막해졌다.

기자들은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를 쓴다.

그 침묵 속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하지만 어떤 기자도 대답하지 못한다.

복도 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흉흉한 살기를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인데…….

“아무도 몰라?”

다시 물었지만 역시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다시 침묵, 그들은 입을 닫은 채 고개만 갸웃거린다.

머릿속에는 딱 한 문장만 기억하면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회의실.

문이 열리고 성윤이 들어섰다.

회의실에 앉아 있던 최고위와 고위 당직자들이 성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현재 상황을 살펴보면, 대한당과 민국당이 손잡고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언론은 매일 몇만 명이 거리를 채웠다며 기록을 써 내려가듯 그들의 시위를 비중 있게 다루는 중이고.

그 덕에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땅으로 처박히고 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성윤이었다.

난리를 칠법도 한데, 그동안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인터뷰 요청도 거절, 외부 행사도 거절, 그 외에는 어떤 일도 없는 것처럼 평소와 같은 일정…….

급기야 당원이나 지지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성윤은 호구야? 당하기만 하고 있어!”

“저쪽이 시위를 하면 우리도 맞불 시위해야 하잖아!”

“어리잖아. 이런 경험이 있겠어? 어버버 하고 있을걸.”

“아, 답답해. 총선을 포기하는 건가? 가만히 있어도 자기들을 찍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 대표가 불통이야, 불통!”

“총선을 생각하면 이제라도 비대위로 가서 다른 당 대표를 뽑아야 하는 거 아냐?”

강도 높은 비난이 있었다.

그래도 성윤은 모른 척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소집이다.

그것도 늦은 밤에…….

회의실에 모인 이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당원들은 모르지만 여기에 모인 최고위와 고위 당직자들은 성윤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성윤에게 당해 봤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 당하고 넘어갈 성격이 아니다.

어떻게든 뒤집어 놓을 거다.

지금까지는 때를 기다리는 호랑이처럼 느긋이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성윤의 입술이 움직였다.

“가져와.”

그 말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당직자들이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들어온다.

그리고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뒤에 트렁크를 세워 둔다.

모두 ‘이게 뭐지?’ 하고 있을 때 성윤이 말을 이었다.

“갈아입을 옷이랑 세면도구입니다. 사이즈에 맞게 그리고 넉넉하게 준비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게 무슨……?”

“집에 언제 들어가실지 모르거든요.”

“네?”

그제야 그들은 성윤의 눈을 봤다.

당장이라도 세상을 찢어 버릴 것 같은 살기가 가득하다.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어서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몇 주 전에 세상을 떠들썩했던 이준대 게이트. 일본, 중국, 동남아의 깡패, 양아치와 손잡고 용돈을 받은 사람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명단에는 국회의원도 존재했습니다.”

“……!”

회의실이 술렁인다.

“국회의원이 존재한다고요?”

“그게 무슨……?”

국회의원을 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하는 일 없이 월급이나 받아 가며 싸움이나 처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국회의원이다.

뇌물을 받고 더러운 짓을 하며 자신의 잇속을 챙겨도……. 중요한 순간에는 국민을 위해 움직여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윤이 테이블을 양손으로 짚으며 말을 이었다.

“약 오십여 명……. 우리 당에도 열 명이 넘게 있습니다.”

“……!”

“곧 체포 동의안이 올라올 것이고 그 오십여 명과, 그 오십여 명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국회를 장악하려 할 겁니다.”

“……!”

“전쟁입니다. 그런데, 정당과 정당의 싸움이 아닙니다.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자들과 막으려는 우리의 싸움입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거다.

이 싸움에서 패배하면 정치 음모에 휩싸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 있다.

싸움이 시작되면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성윤이 그들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동안 나쁜 짓 많이 한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돈을 받고 이권을 넘겨주고 비리를 눈감아 주고!”

“……!”

“그럼, 그동안 했던 나쁜 짓을 반성하며 좋을 일도 한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들을 함께 막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윤의 간절한 목소리에 최고위와 고위 당직자의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그때 한 최고위원이 강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런 것을 왜 물어봅니까? 그딴 새끼들이 있으면 찢어 죽여야지! 돈을 받은 것은 나쁜 짓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게 이권을 주는 것과 외국 사람에게 이권을 주는 것은 다르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합시다.”

“오랜만에 몸 좀 풀겠네.”

속마음을 들어 봐도 똑같다.

모두 결연하다.

회의실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성윤이 더 세차게 입을 연다.

“그럼, 저를 믿어 주시겠습니까?”

한목소리로 대답이 들려왔다.

“네!”

“그럼, 김종혁 의원님은 지금 당장 국회로 이동해 주세요! 공대출 의원님은 젊은 당직자들을 격려해 주시고요! 청년 위원장은 맞불 시위를 준비해야 할 겁니다!”

CL 머니 대표 곽부관에게 명단을 받았을 때부터 고민하고 또 고민한 계획이다.

성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지시가 내려진다.

그리고 당사를 채웠던 검은색 승용차들이 일순간에 빠져나간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그렇게 회의실이 텅 비었다.

성윤은 고개를 틀어 옆을 바라본다.

정우가 보인다.

“우리는 어디로 갈까요?”

“서초구.”

서초구에는 정혜성의 집이 있다.

그리고 정혜성의 아버지 정덕진은 서울시장…….

전직 법원장 출신이다.

***

“당사에서 긴급회의가 있었다는 것은 들었어요.”

늦은 시간이었지만 정덕진 시장은 흔쾌히 만남에 응했다.

서초구에 있는 일식집…….

그가 성윤의 잔에 술을 채우며 어두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편히 말씀하세요. 대표님의 부탁이라면 난 뭐든 할 겁니다.”

그 눈빛은 진심이다.

성윤이 그의 딸 정혜성을 살렸기 때문이다.

만약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면 그녀의 몸속에서 자라나던 암을 찾아내지 못했을 테니까.

성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염치없이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중앙 지검에서 구속영장을 때릴 겁니다.”

“……구속영장? 누구죠? 혹시…… 한상국 대통령?”

성윤이 찾아와서 고민을 토로할 정도의 인물이면 한상국 전 대통령은 되어야 한다.

정덕진 시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들려온 성윤의 답은 그 예상을 벗어났다.

“오십여 명의 국회의원입니다.”

“국회의원? 그것도 오십여 명?”

“네.”

정덕진 시장의 얼굴에 웃음기가 증발했다.

그는 더욱 굳어진 얼굴로 성윤을 바라본다.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이 괴물이다.

그들 중 오십여 명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치는 것은 역사에 기록될 일…….

즉, 역사의 평가까지 걱정해야 할 일이라는 거다.

하지만 성윤은 거침이 없다.

“법원은 망설이지 말고 체포 동의 요구서를 제출했으면 합니다.”

정덕진 시장은 큰 숨을 내뱉는다.

“역사는 오늘의 우리를 악인으로 평가할 수도 있어요.”

“상관없습니다. 평가가 무섭다면 배지 반납하고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호한 목소리에 정덕진 시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백이석 대법원장님, 접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대법원장 백이석과의 통화, 오랜만의 전화였는지 가벼운 인사말이 오간다.

그리고…….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중앙 지검에서 구속영장이 올라갈 겁니다. 그래, 그거야 영장 전담 애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죠. 그런데, 제가 전화를 드린 이유는 이번 타깃이 정치 밥 먹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정덕진 시장이 한숨을 내뱉으며 계속 통화를 이어 간다.

“정치권의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체포 동의안을 제출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치권의 일이니까 상정되면 알아서 치고받고 하겠죠.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쁠 텐데, 법원에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화가 종료됐다.

성윤이 술병을 들어 정중히 정덕진 시장의 잔을 채웠다.

“어려운 일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정덕진 시장이 슬쩍 웃는다.

“미안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어요. 백이석 원장, 그 사람이 워낙 깐깐해서……. 충분히 검토해 본 후에 죄가 명확하면 제출하겠대요.”

그 정도면 만족스러운 대답이다.

자칫 정치권의 싸움이 사법부까지 번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부담감을 느끼고 모른 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대법원장은 죄만 보겠다고 선언했다.

“더 필요한 게 있습니까?”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충분하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이만 일어납시다. 바쁜 사람 앉혀 두고 술이나 마시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식집을 벗어나 주차장으로 향하다가 정덕진 시장이 느닷없이 묻는다.

“혜성이하고는 어때요?”

“네?”

“가끔 만나고 연락도 주고받는다고 들었는데요. 하하하.”

성윤과 정덕진 시장은 당 대표와 서울시장의 관계다.

그런데 순식간에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

그 시각…….

민국당 당사에도 불이 훤히 켜져 있다.

퇴근을 못 한 당직자들이 복도를 오가는 게 보인다.

이들 역시 매일같이 살얼음판을 걷는 중이다.

분명 정국은 압도하고 있다.

여당은 납작 엎드려 입도 못 열고 있으니까.

하지만 불안하다.

언제 여당의 반격이 시작될지 알 수 없어서다.

그리고 회의실, 최학인 대표의 강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바닥까지 털어! 가십거리 쫓기 좋아하는 연예부 기자들을 모아 놓고 돈 좀 찔러줘! 그리고 여당 의원들 좀 탈탈 털어 보라고 해! 누구 마누라가 젊은 남자와 뒹굴었는지! 어떤 의원이 동남아에서 성매매를 했는지! 자식새끼 입시 비리! 취업 청탁! 모두 다!”

알면서도 쉬쉬했고 관례라고 생각하며 눈감아 줬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까발리라는 결정이 떨어졌다.

대규모 시위를 통해 여당의 지지율을 박살 내는 것은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개개인의 비리를 통해 ‘저 새끼들도 똑같아!’라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 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올해가 지나면 여당은 군소 정당으로 몰락할 거야! 극단적인 여소 야대의 세상! 오늘 지은 죄는 내일의 국민에게 갚아야 하는 거야! 내일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만들 거야!”

“예!”

대선은 빼앗겼지만 총선까지 빼앗길 수는 없다.

이번 싸움에서 이기고 분위기를 가져 오면 권력마저 손에 쥘 수 있다.

의원들의 눈에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당을 박살 내기 위해 의기투합하고 있을 때…….

회의실의 문이 ‘쾅!’ 소리와 함께 다급히 열렸다.

최학인 대표는 물론이고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당직자가 보인다.

얼마나 다급히 달려왔는지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영혼 없는 눈으로 최학인 대표를 바라보고 있다.

저렇게 선 당직자의 표정은 언제나 불안한 법이다.

“왜! 뭔데! 어서 말해!”

눈치를 보던 당직자가 조심스레 답한다.

“……법원에서 체포 동의안을 검토 중이랍니다.”

“체포 동의안? 이 시간에? 누구?”

“대표님하고…….”

최학인 대표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 갔다.

당직자의 입에서 내뱉어진 수십여 명의 이름…….

방금까지 회의실의 분위기는 불구덩이처럼 뜨거웠다.

하지만 지금은 찬물이 던져진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다시 ‘쾅!’ 회의실의 문이 또 열렸다.

또 당직자…….

이번 당직자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또 뭐야!”

최학인 대표의 호통에 당직자가 다급히 답했다.

“여당이 국회를 점거하고 있답니다.”

“뭐?”

법원은 체포 동의안을 검토 중이고 여당은 국회를 점거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으며 씹어 먹겠다는 뜻…….

물론 그 씹어 먹힐 대상은 최학인 대표와 체포 동의안에 이름이 적힌 의원들이다.

최학인 대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가 어금니를 씹으며 입을 연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 발악.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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