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96화 (296/300)

< 발악. - (3) >

***

지이잉.

새벽 2시였다.

이 시간에 울리는 휴대폰은 언제나 불안하다.

발신 번호는 박중석 검사…….

성윤은 다급히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검사님.”

-……이준대가 사망했습니다.

“……!”

성윤은 곧장 밖으로 나왔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곧장 박중석 검사에게 향한다.

그리고 중앙 지검에서 멀지 않은 곳…….

조수석 문이 열리고 박중석 검사가 들어왔다.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들고 있던 서류를 성윤에게 넘길 뿐이다.

성윤 역시 마찬가지다.

별다른 인사말은 전하지 않는다.

그저 받은 서류에 시선을 집중한다.

서류에는 이준대의 사망 경위가 자세히 적혀 있다.

셔츠를 잘라 끈으로 만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

“……사망했다고요? 그것도 자살?”

“네.”

믿을 수 없다.

이준대는 누구보다 자기애가 강하다.

남을 죽이면 죽였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왜?’

성윤은 빠르게 서류를 넘기다 멈칫거린다.

“CCTV가 점검 중이었다고요?”

“오늘 비도 많이 왔고 천둥 번개도 쳤잖아요? 무슨 이상이 있었나 봐요. 긴급 점검을 하는 중이었대요.”

교도소에 존재하는 CCTV가 800여대다.

그중 이준대의 방으로 향하는 CCTV만 5분간 먹통이었다.

‘이게 전부 우연이라고?’

찝찝함이 진해졌고 성윤의 머릿속은 진실을 찾기 위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이준대는 오늘 최학인을 만났어.’

이준대는 돈을 잃었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동아줄은 최학인이다.

놓치고 싶지 않았을 테고 살기 위해 바동거렸을 거다.

그리고 도가 지나쳐 협박의 말까지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평상시라면 그 협박이 먹혔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최학인 대표 역시 죽느냐 사느냐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 이준대의 협박은 조금도 박히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이준대가 무덤을 파고 누운 꼴이야.’

성윤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직은 모두 ‘예상’일 뿐이다.

사실로 드러난 것은 어떤 것도 없다.

‘만나 봐야겠어.’

우경도 보좌관은 뭔가 알고 있을 거다.

***

이준대…… 꿈속에서 그는 악마 같은 독재자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는 게이트라는 치욕적인 이름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게다가 죽음 또한 조용하다.

기사에 적힌 몇 글자만이 그의 사망을 알리고 있다.

그것도…….

최첨단 구치소에서 재소자 자살

이준대의 이름은 적혀 있지도 않다.

가만히 놔뒀으면 대한민국을 집어삼켰을 악마의 마지막은…… 참…….

성윤은 경기도 양주의 한 공터에서 기사를 읽고 있었다.

휴대폰을 품에 넣고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문다.

그리고 생각에 빠져 간다.

덧없는 죽음을 지켜봐서 그럴까?

문뜩 궁금해졌다.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꿨던 이유가 뭘까? 악착같이 권력을 손에 쥔 이유가 뭐였을까?’

그 이유는 이준대였다.

하지만 그는 사망했다.

이제 그 이유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민국당 대표 최학인.

꿈속에서 봤던 최학인 대표는 악랄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감도 뚜렷하지 않았다.

다음 총선에서 조용히 사라진 정치인 중 하나니까.

하지만 현실의 그는 권력이 주는 마약에 취해 미친 것처럼 폭주하는 중이다.

‘내가 만들어 낸 괴물…….’

도제성 의원이 대선에서 낙마하고 은퇴하며 최학인 대표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한당이 무너지고 민국당이 흔들리며 그는 괴물이 되어 갔다.

이 모든 것은 성윤이 역사에 개입하며 나타난 현상이다.

‘다시 제자리로 돌려놔야지.’

손에 피를 묻혀서라도 최학인 대표를 정리해야 한다.

그것은 괴물을 만들어 낸 책임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틀어 보니 우경도 보좌관이 다가오고 있다.

조금은 피곤한 얼굴…….

그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최학인 대표의 지시를 따르고 세력을 만들고 성윤과 밀회까지 하는 중이니까.

피곤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성윤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툭 던지듯 물었다.

“이준대가 사망했어요.”

“저도, 기사로 봤습니다.”

우경도 보좌관은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답했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속마음은 참 많은 것을 숨기고 있다.

최학인 대표가 살인 청부를 지시한 것.

우경도 보좌관이 깡패 새끼를 고용했고 멋대로 구치소를 드나든 것까지…….

하지만 성윤에게 툭 터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이번 일이 끝나면 두 사람은 적이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을 위해 자신의 치부는 숨기려 한다.

성윤도 더 묻지 않았다.

이미 필요한 정보는 들었고 이 이후의 일은 성윤이 직접 알아봐야 할 일이다.

“한상국 대통령하고 합동 시위한다고 했죠? 언제부터죠?”

“이번 주에 광고를 띄우고 준비 기간을 거친 후에 다음 주 주말부터 시작할 것 같습니다.”

한참 동안 시위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상대의 세력을 파악하는 것은 전쟁의 기본이다.

그리고…….

“세력은요?”

우경도 보좌관은 민국당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고 있다.

최학인 대표과 반대 계파에 있는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용돈을 찔러주고 간절히 부탁하는 중이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민국당이 가진 과반만 깨면 되잖아요? 조금만 더 모으면 됩니다.”

우경도 보좌관은 자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와 손잡은 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최학인 대표의 명령을 거부할 거다.

그때가 최학인의 목에 칼을 찔러 넣을 순간이다.

성윤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모든 대화가 끝났고 우경도 보좌관이 떠났다.

성윤 역시 자신의 차로 걸어가며 정우와 장한수 실장을 부른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가와 섰다.

성윤의 시선이 먼저 장한수 실장에게 향한다.

“경홍 건설 사람들 있잖아요?”

금괴 밀수를 도왔던 경홍 건설.

그들은 지금 장한수 실장에게 요원으로서 훈련을 받는 중이다.

“쓰실 데가 있습니까?”

권력이 실체화되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어떤 지시든 이행할 수 있는 행동력이다.

그들은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거다.

“주먹 패거리 티 안 나게 옷 좀 맞춰 주세요.”

“옷이요?”

“네, 양복으로……. 그리고 맛있는 것, 먹고 싶은 것도 사 주세요. 술도 마음껏 먹도록 신경 써 주시고요.”

장한수 실장은 눈을 깜빡인다.

성윤의 말이 꼭 사형수에게 전해 주는 만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피를 봐야 할 일이 가까워졌다는 것이며 우리 편도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한수 실장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성윤의 시선이 정우에게 향했다.

“천오민 만나봐. 이준대를 살해한 사람을 찾아내라고 해. 그리고 최학인이 데리고 있는 깡패 집단 정보도 알아 오라 하고.”

“네.”

성윤은 짧은 지시를 끝내고 차로 걸어갔다.

‘최학인 대표…….’

그는 이준대를 죽였다.

파리를 잡는 것보다 쉬웠을 거다.

게다가 완벽한 살인으로 증거조차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무리수였어.’

***

“역시 대통령님입니다. 사람들이 꽤 많이 모였어요.”

“나야 이제 저무는 태양이지만 자네는 한창 뜨는 태양 아닌가? 저 사람들은 나를 따르는 게 아니야. 모두 최 대표를 보고 온 사람들이야.”

최학인 대표와 한상국 전 대통령은 높은 곳에 있는 일식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한다.

그러자 거리를 가득 채운 시위대가 보인다.

-박무혁은 그만하라! 정치 탄압! 정치 박해! 독재 정치!

“그만하라! 그만하라!”

-이성윤은 대통령의 개를 그만두고 당장 국민에게 사과하라! 사퇴하라!

“사퇴하라! 사퇴하라!”

-권력의 노비가 된 검찰총장은 물러나라!

가을이라는 게 그렇다.

한순간에 사라지며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

찬 바람이 불었고 기온은 뚝 떨어졌다.

눈이 와서 땅을 얼려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다.

시위대는 언 손을 녹이며 분노를 토해 내고 있다.

창을 통해 그들을 보던 최학인 대표가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따끈하게 데워진 사케를 기울여 한상국 전 대통령의 잔을 채운다.

“박무혁이라면 치를 떠는 반재벌 시민 단체에 연락을 돌렸습니다. 다음 주에는 그들도 합류할 겁니다. 그 사람들의 시위가 꽤 폭력적이라 경찰이 애를 먹을 겁니다.”

한상국 전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경찰에는 언질을 줬어, 이번 시위에 체포되는 사람들, 적당히 조사하고 뒷문으로 내보내라고. 민주주의를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인데, 억압하면 안 되는 거야.”

“…….”

“그리고 언론에도 힘을 써 뒀네. 가벼운 시위도 비중 있게 다루겠다고 약속받았으니까 얼굴 되는 애들이 노출 잘될 수 있도록 배치해.”

최학인 대표가 빙긋이 웃으며 잔을 손에 쥔다.

“저들은 매주 이 광장을 채울 겁니다. 규모는 점점 커지겠죠. 만 명, 십만 명……. 얌전했던 시위는 과격해질 겁니다. 거리 곳곳이 기능을 못 하게 될 겁니다. 저는 그 광경을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분노로 포장할 겁니다. 그럼, 검찰은 부담스러워하겠죠. 아무리 박무혁 대통령의 지시가 있다고 해도 민심이 곧 천명이니까요.”

한상국 전 대통령의 눈이 반짝인다.

“그래서, 나에 대한 수사가 흐지부지된다? 자네에 대한 수사는 거론도 못 하고?”

“네, 그럼, 여당은 특검을 하자고 난리를 치겠죠. 하지만 그것도 걱정 없습니다. 우리 민국당이 반대할 거니까요.”

국회는 민국당이 장악하고 있다.

그들의 숫자가 과반이 넘는다.

그래서 민국당이 반대하면 특검이 통과될 일은 절대 없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계속해서 이 국가를 위해 일해 주십시오.”

한상국 전 대통령이 껄껄껄 웃는다.

“내가 대통령을 할 때, 총선에서 민국당이 이겼어. 그때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알고 있나? 그런데 인생은 정말 새옹지마야. 자네들의 압도적인 숫자가 이제 나를 지켜 주고 있잖아?”

“끝가지 지켜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기분 좋게 술을 마신다.

따듯한 자리에서 마시는 따듯한 일본 술.

창밖의 거리에는 시위대가 오들오들 떨며 외치고 있다.

-이성윤은 사퇴하라!

***

최학인 대표의 예상처럼 시위대는 점점 불어났다.

대한당과 민국당의 당원만 해도 숫자는 어마하다.

이유 없는 분노는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치고 심심치 않게 방화를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네, 이성윤입니다.”

박중석 검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총장이 꼬리를 말았습니다.

“……!”

검찰총장은 난처하다.

이준대 게이트라고 멋지게 타이틀을 걸었지만 흐지부지.

갑자기 한상국 대통령이 튀어나오더니 이어서 윤범성 부회장…….

이어서 한상국 대통령과 민국당이 손잡고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시위대의 칼끝이 검찰총장을 향해 겨눠졌다.

“이 새끼야! 사퇴하라고!”

자칫 끌려 나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검찰총장은 박무혁 대통령의 명령을 외면하는 중이다.

박중석 검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상국 대통령에 대한 수사 진행…… 청와대와 시위대의 눈치를 보다가 적당히 덮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예상하던 거다.

성윤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연다.

“모른 척하세요.”

-네? 모른 척하라고요?

박중석 검사의 목소리가 묘하다.

성윤도 대규모 시위대에 겁먹은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성윤이 슬쩍 미소 지었다.

“바람이 바뀔 겁니다. 그때를 기다리세요. 그땐 조용히 있고 싶어도 조용할 수 없을 테니까요.”

박중석 검사는 성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지금 믿을 수 있는 것은 성윤이 전부다.

여당의 대표이며 정권의 실세니까.

-알겠습니다. 기다리죠.

성윤은 휴대폰을 내려 둔 후 리모컨을 손에 들었다.

텔레비전이 켜지고 아나운서가 나온다.

시위에 대한 뉴스…….

화면에 보이는 시위대의 깃발과 플래카드에는 박무혁 대통령과 성윤 그리고 검찰총장에 대한 욕설로 가득하다.

나라가 시끄러워지며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민국당 의원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박무혁 대통령과 이성윤 대표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다음 인터뷰는 대한당 의원이다.

-오죽하면 대한당과 민국당이 손잡고 거리로 나왔겠습니까? 박무혁 대통령은 정신을 차려야 해요.

모든 상황은 여당에 불리해지고 있다.

그들은 SNS를 장악했고 언론은 쉬지 않고 시위대를 집중한다.

하지만 성윤의 눈빛은 평온하다.

이 모든 것도 계획 속에 있었으니까.

그때 성윤의 휴대폰이 또 진동했다.

우경도 보좌관에게 온 메시지.

-과반은 넘은 것 같습니다.

성윤의 눈이 반짝였다.

과반을 넘었다는 것은 우경도 보좌관이 세력을 규합했다는 뜻이다.

이번 싸움의 끝은 최학인 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오십 여 명에 대한 체포 동의안 통과.

과반이 넘었다면 지체할 필요가 없다.

성윤의 시선이 옆으로 틀어진다.

정우가 보인다.

“최고위 소집해.”

< 발악.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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