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95화 (295/300)

< 발악. - (2) >

***

어느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구치소 주차장에 검은색 자동차가 도착했다.

최학인 대표가 타고 있는 차다.

우경도 보좌관이 재빨리 내리더니 차의 뒷문을 열며 검은 우산을 펼친다.

그러자 최학인 대표가 거만하게 내린다.

“아무도 없지?”

“없습니다.”

경호원이 30분 전에 도착했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혹시 있을지 모를 기자를 찾기 위해…….

하지만 기자는커녕 면회객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지.”

최학인 대표가 앞서 걷는다.

우경도 보좌관 역시 우산을 받쳐 들고 그 옆을 쫓았다.

그러다가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뭐지?’

성윤은 이준대를 면회하러 갈 때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우경도 보좌관은 성윤이 기자를 심어 둘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아무도 없어?’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부릅뜬 눈으로 돌아다니는 게 보일 뿐이다.

그 외엔 빗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 거야?’

성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으니 불안하기만 하다.

그리고 변호사 접견실.

테이블에 담배와 라이터가 놓였다.

이준대가 담배를 쥐고 입에 댄다.

잘생겼던 얼굴은 초췌해졌고 눈빛에는 독기만 남아 있다.

그가 시선을 앞으로 향하며 입을 연다.

“이제야 오셨네요? 제가 보낸 변호사는 문전박대하시더니.”

이준대의 앞에는 최학인 대표가 앉아 있었다.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이 자네의 입에 집중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자네 변호사를 만날 수 있겠나?”

“그거…… 제 입에서 나온 말 아닙니다.”

최학인 대표의 눈이 찌푸려졌다.

“뭐라?”

“전 폭행죄로 잡혀 왔어요! 그런데 제가 동남아나 중국 자본을 나불대며 제 발등을 찍겠습니까? 형량을 더 키울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이성윤 그 새끼가…… 나를 감옥에서 죽게 하겠대요!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준대의 말은 횡설수설…….

앞뒤 없이 분노를 쏟아 내고 있다.

하지만 그 말에도 요점은 존재한다.

이준대는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

그 명단은 이성윤에게서 나왔다는 것!

순간 최학인 대표는 온몸에 소름이 쭉 돋는 것을 느꼈다.

‘이성윤이?’

이 모든 판을 성윤이 깔고 있다면 브레이크나 타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 총선, 성윤은 완벽한 승리를 원하고 있다.

대한당은 이미 짓밟았고 남은 것은 민국당!

승리를 위해서라면 앞에 낭떠러지가 있어도 무조건 액셀을 밟을 거다.

그럼, 최학인 대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

‘전쟁?’

그의 눈이 시퍼렇게 번뜩인다.

정당 간의 전쟁이 시작되면 국민은 피로를 느낄 테고 늦어지는 민생 법안에 삶은 피폐해질 거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최학인 대표의 생존은 목숨 걸고 싸우는 전쟁밖에 남지 않았다.

‘승리하면…… 좋은 법안으로 보답할 거야. 국민 친화적인 정당, 이성윤 같은 인기 위주의 정치인이 존재하지 않는 국회, 만들어 내는 길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뿐이야.’

최학인 대표가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준대가 보인다.

“이준대 대표, 또 면회 오지.”

이렇게 말했지만 다음 면회는 없을 거다.

최학인 대표에게 이준대의 이용가치는 끝났다.

그럼, 이준대의 남은 인생은 뻔하다.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옮겨진 후 쓸쓸히 죽어 갈 거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성윤이 하지 않으면 최학인 대표가 그렇게 만들 생각이다.

밖에 나와 나불대면 피곤해지니까.

최학인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돌려 접견실을 빠져나가는데…….

“또 오셔야 할 겁니다.”

이준대의 목소리가 최학인 대표의 발을 잡았다.

최학인 대표가 문고리를 잡으며 답한다.

“그래, 또 온다니까. 걱정하지 마. 영치금 좀 넣고 갈 테니 맛있는 것 사 먹고.”

“……제게 대표님의 동영상이 있습니다.”

최학인 대표가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이준대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씹어 뱉고 있다.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제가 낸 술값…… 치사하지만 돌려받아야겠습니다.”

“이준대 대표, 그게…… 무슨 말이야?”

“대표님은 룸살롱에 가면 항상 딸 같은 어린 여자애를 품었죠. 전 그 영상을 갖고 있습니다.”

최학인 대표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준대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 영상이 퍼지는 것을 원치 않으면 날 빼내세요. 단순한 협박이 아닙니다. 저도…… 목숨 걸고 있습니다.”

최학인 대표는 눈을 감았다.

기억해 보면, 이준대와 룸살롱에 가면 항상 먼저 취해 쓰러졌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호텔에 끌려갔다.

깨어나면 옆에는 기억에도 없는 여자가 있었고.

단순히 술이 독해 그런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저 뱀 같은 놈의 꿍꿍이었던 거다.

최학인 대표가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악독한 얼굴의 이준대를 보며 한숨을 내뱉는다.

“빼내 주지.”

이준대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더니 활짝 웃는다.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히기까지 한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대표님을 도와 이성윤을 찢어 죽이겠습니다!”

이준대의 눈에 흉흉한 살기가 맺힌다.

그가 가진 인생의 목적은 권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윤으로 바뀌어 있었다.

최학인 대표가 부드럽게 웃으며 이준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그렇게 해. 영상 지우고.”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최학인 대표는 다시 몸을 돌렸다.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턱에 힘을 꽉 주며 문고리를 돌린다.

“들어가십시오!”

이준대는 그의 무서운 얼굴을 모른 채 힘주어 인사했다.

최학인 대표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복도로 나왔다.

옆으로 우경도 보조관이 선다.

그러자 최학인 대표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이준대…… 저놈, 죽여. 찾을 사람 없는 고아 새끼야. 억울해서 죽었다고 하면 의혹을 제기할 사람은 없어. 구치소장이 원하는 것 적당히 던져 주고…… 적당히 자살로 위장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강남에 이준대와 내가 가던 룸살롱있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묻어 버린다.

그러면 해결은 깔끔하다.

그렇게 일련의 지시가 끝났다.

최학인 대표는 더 이상 이준대와 그 영상을 신경 쓰지 않는다.

파리를 죽이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니까.

그는 이제 전쟁을 고민하고 있다.

“한상국 대통령에게 연락해. 그쪽 라인으로 대한당에 지분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거야. 다 함께 보자고 해.”

“네? 한상국 대통령요?”

“한상국 대통령도 일본 자금을 받은 것 때문에 똥줄 타고 있을 거야. 내가 보자고 하면 당장 허락할 테니까, 당장 연락해 봐.”

대한당…… 비록 쭉정이가 되었지만 대한민국을 양분하는 권력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대한당의 상징이 한상국 대통령이다.

그를 전면에 내세우면 정치 탄압, 정치 복수 등의 음모론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번에 승리하면 이성윤의 여당은 물론이고 박무혁 대통령도 짓밟을 수 있어.”

최학인 대표의 얼굴이 살벌하다.

“박무혁 대통령에게 레임덕을 선물해 주지.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 될 거야. 남은 임기를 허수아비로 지낼 테니까.”

전쟁은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이겨 놓고 확인하는 과정이다.

최학인 대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최학인 대표가 구치소를 떠났다.

빗방울이 거세게 떨어질 때 주차장에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정우다.

전화를 귀에 대고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도착했어요. CCTV 영상을 확보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떤 일이 있어도 지우지 말라고 이야기해 뒀으니까요.”

***

“CCTV는?”

“껐습니다.”

그날 밤, 경기도 양평에 있는 한정식집.

우경도 보좌관이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이 경호원에게 향한다.

그들은 각 방을 확인하며 혹시 있을지 모를 몰래카메라와 도청 장치를 찾아다니고 있다.

“1번 방, 없습니다.”

우경도 보좌관의 시선이 다시 주인에게 향했다.

“종업원은 최소한으로 하시고요. 오늘 밤에 일반 손님은 받지 말고요.”

“그럼요. 알겠습니다.”

주인은 기쁘게 웃는다.

손에 쥔 두툼한 봉투가 만족스러웠다.

잠시 후, 빗속을 뚫고 검은색 차량이 한정식집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내리는 사람들이 모두 거물이다.

전 국토교통부 장관, 전 대법원장, 사채시장을 잡고 있는 명동의 큰손 등등등.

이들은 대한당의 지분을 가진 강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한정식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빗속에 서 있다.

한 사람을 기다리는 거다.

바로 한상국 전 대통령.

그리고 그의 차가 도착했다.

모든 사람들이 달려가 허리를 굽힌다.

이들 모두는 한 명, 한 명이 무게감 있지만 비를 맞는 것도 상관 않고…….

“오셨습니까!”

상대가 한상국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깡패 두목의 행사라 해도 믿었을 광경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한상국 대통령의 앞으로 최학인 대표가 다가왔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한상국 대통령이 물끄러미 최학인 대표를 바라본다.

“대한당과 민국당이 이렇게 화합하게 되다니, 정치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성윤이 큰일을 했어요. 양 당이 손잡다니, 대한민국 정치 역사가 뒤집히는 일이니까요, 하하하.”

그들은 껄껄껄 웃으며 한정식집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에는 음식이 가득하다.

한꺼번에 준비해서다.

오가는 대화를 종업원이 들어서는 안 되니까.

한상국 대통령이 상석에 앉으며 입을 연다.

“밥 먹고 나서 일 이야기하면 체할 것 같아. 먹기 전에 이야기하지. 그래, 내게 어떤 도움을 원하는 가?”

우경도 보좌관은 복도에 서 있었다.

그가 안에 들어가 이야기를 들을 급은 아니니까.

안에서 새어 나오는 이야기에 집중하던 우경도 보좌관이 경호원에게 입을 연다.

“난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 테니까 아무도 이 주변에 못 오게 해.”

경호원은 고개를 숙였고 우경도 보좌관은 몸을 돌렸다.

그가 복도를 따라 걸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성윤의 이름을 찾는다.

한민당 당사.

성윤은 태블릿 PC를 보고 있었다.

“얼굴 잘 나왔네?”

화면에는 구치소에서 가져온 CCTV 영상이 보인다.

최학인 대표와 이준대가 변호사 접견실에 들어가는 장면이다.

비록 변호사 접견실 내부의 감시용 CCTV는 수건으로 가려져 있어서 볼 수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최학인 대표가 이준대를 만났다는 정황은 확실하니까.

“언제 터뜨릴 거예요?”

정우의 질문에 성윤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기사가 보인다.

온통 한상국 대통령과 윤범성 부회장의 일이다.

“글쎄…… 언제 터뜨려야 할까?”

이미 머릿속으로 폭탄을 터뜨릴 시기는 정해 뒀다.

하지만 계속되는 검토는 필수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으니까.

그때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우경도 보좌관이다.

“네, 보좌관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 숨어서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최학인 대표와 한상국 대통령이 만나고 있습니다.

“한상국 대통령이요?”

-대대적인 시위를 준비 중이에요. 두 사람이 가진 단체를 광화문에 쏟아 넣을 겁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있다.

그 점에서 보면 한상국 대통령과 최학인 대표는 최고의 짝꿍이다.

두 사람은 성윤이라는 여당의 대표를 상대해야 하니까.

게다가 최학인 대표에게 이념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다.

벼랑 끝에 몰린 한상국 대통령에게 손을 내민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성윤의 계획 속에 들어 있었다.

통화를 종료하자 정우가 입을 연다.

“결국 손잡았네요? 어떤 짓을 할까요?”

“욕하겠지. 헛소문을 내고 선동하겠지. 정치 음모다. 정치 보복이다. 이것이 독재다.”

그래서 우경도 보좌관이 중요하다.

민국당이 분열되면 선동의 힘은 반의반으로 쪼개질 테니까.

“그때까지는 참아야 해.”

성윤은 CCTV 영상이 담긴 태블릿 PC를 뒤집었다.

그때까지 공개하지 않겠다는 거다.

최학인 대표나 한상국 대통령급을 상대하는 일이다.

절대 쉽지 않다.

민국당이 분열될 때까지는 살을 베여도 꾹 참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의 뼈를 끊어 버릴 수 있는 거다.

“대규모의 시위라……. 스스로 무덤에 들어가는 일이야. 시끄러우면 시끄러울수록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그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을 거니까.”

정치는 정치인이 만드는 게 아니다.

국민의 관심만큼 성장하는 법이다.

성윤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낮부터 몰아치던 비는 어느새 천둥과 번개를 몰고 왔다.

창문이 번쩍이더니 세상을 부숴 버릴 듯 천둥소리가 울렸다.

***

그 시각, 구치소.

뚜벅뚜벅, 음침한 발소리가 들린다.

한 사람이 이준대가 수감 중인 독방으로 향하고 있다.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러닝셔츠를 찢어 만든 끈…….

독방 앞에 도착한 남자가 철창 너머 안을 살핀다.

이준대가 약에 취한 것처럼 쓰러져 잠들어 있는 게 보인다.

남자가 빙긋이 웃으며 문을 열었다.

‘덜컹!’ 하고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뿐이다.

뒤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발악.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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