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악. - (1) >
뉴스를 보던 박무혁 대통령이 시선을 들었다.
앞에는 굳은 표정의 검찰총장이 보인다.
박무혁 대통령이 느릿하니 입을 열었다.
“총장, 부탁해요.”
대통령의 부탁이다.
하지만 총장은 단번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저 테이블에 놓인 명부만 보고 있다.
정치권의 이름은 빠져 있지만 학계와 연예계 그리고 시민 단체와 기업의 연구원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너무 많다.
이런 수사는 부담스럽다.
대한민국에 핏물이 흐를 게 분명하고 그 안에 담긴 원한이 검찰총장을 집어삼킬지도 모르니까.
그가 간절한 눈으로 박무혁 대통령을 바라봤다.
“대, 대통령님…….”
순간, 부드러웠던 박무혁 대통령의 얼굴이 도깨비처럼 일그러졌다.
그리고 검찰총장을 죽일 듯이 쏘아보며 묻는다.
“못 하겠습니까?”
“위, 위험합니다.”
“위험?”
박무혁 대통령이 껄껄껄 웃기 시작했다.
입은 웃고 있지만 검찰총장을 한심하게 바라보면서…….
그리고 그 웃음소리가 불길하게 들릴 때, 칼날 같은 목소리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내가 죄 없는 사람 잡으라고 했습니까!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외치던 게 누구입니까! 그 말이 모두 거짓이었습니까!”
“……!”
“오늘이 지나기 전에 모두 잡아들이세요! 그러지 않으면 총장의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바뀔 겁니다.”
박무혁 대통령이 다시 한번 호통친다.
“대답하세요!”
“알겠습니다!”
검찰총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박무혁 대통령의 눈빛은 진심이다.
오늘 안에 해결해야 한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검찰총장이 다급히 집무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복도를 걸으며 휴대폰을 귀에 댄다.
“당장 모이라고 해. 술을 처먹고 있었든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든 다 나오라고 해. 그래, 지금!”
***
대한민국 곳곳에 경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어깨에 힘 좀 주던 사람들이 경찰차에 욱여넣어진다.
권위 있던 학자도 화려했던 연예인도 똑같다.
“여기 민주주의국가야! 씨발, 나 몰라? 서장이 내 친구야, 이 새끼야! 놔! 놓으라고!”
반항을 해 봤자 소용없다.
그대로 경찰과 검찰로 끌려간다.
집에 있다가 끌려간 사람은 양반이다.
술집, 모텔, 호텔, 술에 취하고 약에 취해 끌려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시각.
성윤은 국회로 향하고 있었다.
진동을 느끼고 휴대폰을 귀에 댄다.
박중석 검사다.
“네, 검사님.”
-한국 대학교 이유관 교수가 자택에서 체포됐습니다.
이유관 교수, 연구는 국가 세금으로 진행했으면서 그 결과는 타국의 기업에 팔아먹은 쓰레기다.
수십억의 뒷돈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모두 도박에 빠뜨렸다고 한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계속 연락드리겠습니다.
성윤은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대한민국의 암 덩어리가 제거되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 웃을 수 없다.
‘이제 시작이야.’
교수, 연구원, 연예인은 하루면 쓸어버릴 수 있다.
문제는…….
‘국회의원.’
그들은 불체포특권을 가진 괴물이다.
죄가 명백하지만 국회의 동의 없이 잡아넣을 수 없다.
그래서 1차 명단에 그들의 이름을 집어넣지 않았다.
단번에 쓸어버리기 위해 몰이만 하는 중이다.
잠시 후…….
성윤은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없다.
빈자리만 보인다.
그 적막한 곳에 성윤의 발소리가 저벅저벅 들려왔다.
성윤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본다.
머릿속은 체포 동의안이 상정되었을 경우를 상상하고 있다.
그 많은 경우의수…….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해서 문이 부서지고 깡패를 동원해 주먹 다툼을 벌이는 전쟁.
‘이번에 연루된 국회의원은 오십여 명.’
그중엔 야당 대표 최학인도 존재한다.
그는 어떻게든 투표를 막으려 할 거다.
폭력 그 이상의 행동은 물론이고 민국당 전체를 움직여 회의를 보이콧할 수도 있다.
‘그럼, 안 돼.’
이번 싸움은 시간이 관건이다.
최학인 대표에게 시간을 주는 것은 성윤의 목에 칼을 쑤셔 박는 것과 같다.
그가 발자국을 지우기 시작하면 그림자도 잡을 수 없다.
그리고 모든 발자국이 지워지면 공수가 교대된다.
그럼, 최학인 대표는 정부 여당이 정치적 탄압을 했다며 성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울 거다.
“문제는 보이콧만이 아니죠.”
낯선 목소리에 성윤이 시선을 틀었다.
성윤의 옆으로 우경도 보좌관이 앉고 있다.
그가 말을 잇는다.
“민국당은 국회의 과반을 먹고 있어요.”
대한당과 한민당 그리고 소수당이 몰표를 넣어도 민국당 전체가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들이 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으니까.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보좌관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우경도 보좌관이 중요하다.
그가 민국당에 세력을 만들고 여론을 분열시켜야 한다.
그래야 승산이 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챌 생각은 없다.
우경도 보좌관 역시 목숨 걸고 열심히 하는 중이니까.
성윤이 분위기를 돌리며 묻고 싶었던 것을 묻는다.
“민국당 분위기는 어때요?”
“놀라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다른 움직임은 없어요. 주시하는 중입니다. 불길이 번지나 안 번지나…….”
“아직은 경계만?”
“네, 어떤 입장도 표명할 계획이 없습니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다.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면…… 최학인 대표가 이준대를 만날 계획은 아직 없는 거죠?”
우경도 보좌관이 낄낄 웃는다.
“만나고 싶기는 하겠죠.”
이번 사건의 이름은 이준대 게이트…….
최학인 대표는 이준대가 자신의 이름을 불었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을 거다.
하지만 갈 수는 없다.
기자들이 이준대의 이름에 눈과 귀를 처박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검찰에 물어볼 수도 없다.
구성된 검찰의 특별 수사 팀은 외부와 연락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성윤이 슬쩍 웃었다.
“최학인 대표가 이준대를 면회할 수 있게 도와줘야겠네요.”
“……두 사람이 만나도록 도와준다고요?”
“지금은 말고요. 국민 여론이 분노로 들끓을 때요.”
우경도 보좌관은 성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묻지 않는다.
그 역시 정신없는 상태다.
최학인 대표의 눈을 피해 세력을 만들어야 하고 그 지시를 받들기도 해야 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건조한 질문과 대답이 끝났다.
우경도 보좌관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럼, 나중에 뵙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우경도 보좌관의 얼굴은 며칠 만에 초췌해졌다.
눈에는 다크서클이 끼었고 피부는 퍼석하고…….
마음고생이 심한 거다.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 잘될 겁니다.”
우경도 보좌관은 억지로 웃는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럼…….”
그 말을 남기고 우경도 보좌관은 국회를 빠져나갔다.
밖에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완연한 가을, 긴팔을 입어도 밤은 춥다.
옷깃을 여미지만 찬바람이 스며든다.
그런데 그 바람이 마치 불안감처럼 느껴진다.
성공하면 꿈에도 그리던 국회의원이 될 수 있지만 실패하면…….
‘미치겠네.’
우경도 보좌관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약한 생각 하지 말자. 잘될 거야. 그래, 잘될 거야.’
우경도 보좌관은 휴대폰을 들고 아들의 사진을 찾아본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찍어 누르기 위해.
‘조금 있으면 보좌관이 아니야. 나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어. 애엄마가 좋아하겠지?’
***
다시 국회 본회의장.
성윤의 옆에 정우가 앉았다.
“어떻게 할까요?”
“잠시만…….”
성윤이 휴대폰을 들어 기사를 찾아봤다.
언론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기사에 초점을 맞췄다.
당연하지만 타깃은 유명 연예인이다.
경찰은 배우이자 소속사 대표인 성 씨를 체포했으며 연예인 성 접대 일부를 사실로 확인했다. 성 씨는 지난 달 3일, 베트남에서 온……(후략)…….
국민은 충격에 빠졌고 댓글은 난리다.
-토할 것 같다.
-다음 주에 동남아 여행 가는데 쪽팔려서 고개를 못 들겠네.
-흐지부지될걸.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야. 어제 한국대 교수 잡혀간 거 몰라?
-연예인으로 사건 덮는 거지?
-교수가 동남아에서 돈 받고 연구 결과 넘겼다는데?
성윤이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시선을 정우에게 틀었다.
“1차 명단에 있는 사람은 다 잡힌 거 맞지?”
“방금 연락 왔어요. 다 잡았대요.”
“그럼, 3일 후에 2차 명단 공개해.”
정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리를 외로 꼬며 국회를 둘러본다.
정우의 눈에도 곧 다가올 전쟁이 보이는 것 같다.
체포동의안이 올라왔을 때 벌어질 전쟁…….
“이번 겨울은 꽤 춥겠어요.”
***
3일 후…….
-한상국 전 대통령이 일본 사채시장의 자본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의혹이 들어왔습니다. CL 머니 곽부관 대표는…….
사건이 또 터졌다.
이번엔 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일본에서 돈을 받았다는 것.
더 충격은 돈을 받은 이유가 단지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였다.
언론이 집중했던 연예인 성 접대는 단 3일 만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끝이 아니다.
또 3일 후…….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성종 그룹 윤범성 회장의 비서실장이었던 강 모 씨가 오늘 낮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지난번 밀수 사건 때, 성윤의 도움으로 해외로 도피했던 강준호 비서실장, 그가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범성 회장은 100억 원에 이르는 금괴 밀수를 저지르고 제 입을 막기 위해 살인 청부를 지시했습니다! 이 금괴 밀수는 지난번 대한당 전재익 대표가…….
한상국 대통령에 이어 성종그룹의 회장이란 사람이 저지른 밀수.
사람들은 둘만 모여도 저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개판이네. 대통령이란 사람이 일본에서 돈 먹고 불법 사채 시장을 눈감아 준 거지?”
“윤범성쯤 되는 사람이 100억을 더 갖고 싶었을까?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야, 그게 100억 먹자고 한 거냐? 대한당에 몰아주려고 했던 거지.”
“그럼, 큰일 난 거 아냐? 대통령이 가만히 있겠어?”
성윤은 윤지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윤범성 회장의 구속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으니까.
-고마워요.
“아직 구속은 아닌데요.”
-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다.
-윤범성 부회장의 영장을 고민해야 할 판사가 제 친구거든요.
그 판사는 윤범성 회장을 구속하는 대가로 평생에 못 만져 볼 돈을 거머쥐게 될 거다.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조차도 돈이 엮여 있다니…….
더러운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와 손잡는 것은 여기까지다.
오는 길은 같았지만 두 사람의 목적은 다르다.
그녀의 목적은 성종의 왕좌…….
그런데 성윤은 그 자리를 정기화 실장에게 넘길 생각이다.
조금은 능력 있는 사람이 앉아야 할 자리다.
그녀가 욕심낼 곳이 아니다.
그녀는 닭 쫓던 개가 될 거다.
짧은 통화가 종료됐다.
성윤은 휴대폰을 테이블에 놓고 창밖을 본다.
그녀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다.
교수와 연예인으로 시작된 국민의 분노…….
지금은 한상국 전 대통령과 윤범성 회장의 일탈과 함께 극단적으로 몰아치는 중이다.
‘지금쯤…….’
동시에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우경도 보좌관에게 메시지가 왔다.
-최 대표가 이준대를 만나러 갑니다.
위험하지만 지체할 수 없었을 거다.
이준대 게이트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이 틈을 타서 이준대를 만나려 한다.
지금의 상황이 자신을 향하는 줄도 모르고.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이다.
성윤은 국민이 느끼는 모든 분노를 최학인 대표에게 던지려 한다.
그래야 여론이 움직이고 불체포특권을 박살 낼 수 있다.
성윤이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알겠습니다.”
***
최학인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이준대가 내 이름을 불었을까?’
물론 이준대 게이트는 이준대의 입에서 시작된 사건이 아니라 성윤이 가진 명단으로 시작된 거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최학인 대표는 이준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똥오줌을 가릴 줄 아는 놈이라면 입을 다물었을 거야.’
이준대는 꽤 오랜 시간 그의 옆에 붙어 있으며 충분히 그의 잔혹함을 지켜봤다.
섣불리 최학인 대표의 이름을 내뱉기는 두려웠을 거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준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은 최학인 대표다.
이준대는 투자에 실패하며 거지가 되었다.
권력의 인맥까지 버리면 말 그대로 빈털터리…….
그런 멍청한 선택은 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불안하다.
검은 머리 동물은 거두지 말라는 말이 계속해서 가슴을 두드린다.
게다가 하늘에서 빗방울이 투투툭 떨어지고 있다.
‘젠장...’
최학인 대표가 탄 차가 먹구름을 향해 달려간다.
< 발악.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