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이트. - (6) >
하지만 거기까지다.
경찰들이 양팔을 잡았지만 반항하지 않는다.
레이첼의 피가 묻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쥐어뜯으며 허망하게 웃을 뿐이다.
그러다가 이준대의 시선이 성윤에게서 멎었다.
낮은 목소리가 흘렀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저 돈, 의원님이 준 겁니까?”
5천만 달러에 대한 것, 성윤이 수긍하면 많은 퍼즐이 맞춰진다.
갑작스러운 레이첼의 배신과 브라운의 도주 등등…….
하지만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할 필요 없으니까.
그런데 이준대는 답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흔든다.
“처음부터 이상했어요. 대표님이 훼방 놓고 있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의 말이 이어지려 했지만 성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시끄럽네요.”
당장 끌어내라는 소리다.
범죄자의 개소리를 듣고 있을 필요는 없다.
경찰들이 그를 질질질 끌어낸다.
담대한 척하던 이준대의 눈동자에 동요와 초조함이 확 들어섰다.
“폭행죄! 법은 잘 모르지만 이 나라는 죄인에게 관대합니다! 기껏해야 몇 년 살고 나오겠죠. 민국당에서 도와준다면 집행유예 정도로 끝날 테고요. 그러니까 날 방해하지 마세요! 난 반드시 돌아……!”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성윤이 그의 말을 끊어 버렸으니까.
“집행유예? 몇 년 후 출소? 그런 생각 하지 마. 희망이 있으면 너만 괴로울 거야. 약속할게. 네 미래와 꿈은 모두 감옥에 있을 거야. 네 무덤까지도.”
“그, 그게 무슨……?”
이준대는 마른침을 삼켰다.
성윤의 소름 끼치는 눈.
정말 그렇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무덤이 감옥에 있다는 것은, 죽어야 나올 수 있다는 것인데…….
멍하니 있던 그가 갑자기 간절하게 외친다.
“이, 이성윤 대표님!”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사과하고 싶었다.
교도소에서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짧은 시간 최학인 대표의 옆에 있으며 권력자의 잔혹함을 많이 봤으니까!
하지만 더 말하지 못한다.
“데려가세요.”
성윤은 그 말과 함께 몸을 틀었다.
이준대는 비참할 정도로 질질질 끌려간다.
아동바동 발을 뒹굴지만 무리다.
“이성윤 대표님! 제발!”
이준대는 호텔 밖으로 끌려 나갔다.
이어서 곧 구급대원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정신을 잃은 레이첼을 들것에 싣는다.
그리고 방에는 성윤과 박중석 검사만 남았다.
박중석 검사는 성윤과 손을 잡은 비주류 검사다.
그가 방을 휘 둘러본다.
“압수 수색하라고요?”
“네. 노트북, 옷, 메모지 한 장까지 전부.”
박중석 검사가 끌끌끌 웃는다.
“이게 시작이죠? 이준대 게이트.”
“네.”
박중석 검사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렸다.
성윤에게 대략적인 계획을 들었다.
그래서 알고 있다.
자칫하면 당하는 것은 이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남은 인생이 꽤 비참할 거다.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까지도.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목을 치죠.”
그가 통유리로 된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마지막으로 옷 벗을 각오도 해야겠죠?”
보통은 한 명이 총대를 매고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번은 더 큰 각오를 해야 한다.
한 명을 잡는 게 아니라 정치인에서부터 재벌, 고위 공무원과 언론, 학자, 법조인 등 기득권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일이니까.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여하는 검사님들은 전부 쫓겨나겠죠.”
성윤이 막아 주기는 어렵다.
권력에 대항한 검사는 피 맛을 본 칼이다.
또 다른 권력자들이 그 칼을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지방으로 유배되거나 옷을 벗고 떠나거나.
성윤이 그들의 편을 들어 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부숴 버릴 거다.
검찰을 보며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고 말하지만 권력자들의 시선에 검사는 말 그대로 일개 검사일 뿐이니까.
박중석 검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평소였다면 떠나야 하는 게 불안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엔 든든하다.
성윤이 뒤를 봐준다고 하니까.
옷을 벗어도 먹고살 걱정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잘살 거다.
레이첼에게도 5천만 달러를 쏴 주는 스케일이니까.
***
밤이 어둑했다.
뉴스는 연신 실리콘밸리의 신화 유나렛의 몰락으로 시끄럽다.
-전 재산을 투자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 피해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
미국 증권이었고 직접 투자한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다만 유나렛의 대표 크리스티나의 발언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해지고 있었다.
그녀가 한 말은…….
-속은 놈이 병신이지!
그녀는 분명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죽은 사람도 존재한다.
그런데, 고개 뻣뻣이 들고 뒤틀린 비웃음을 날리다니…….
정말 가관이다.
성윤은 한숨을 내뱉으며 다른 뉴스를 살폈다.
하지만 어디를 확인해도 이준대에 대한 소식은 단 한 건도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정치권에 들어오고 싶어 여의도를 맴돌던 사람, 딱 거기까지였다.
꿈속에서는 전무후무한 독재자였는데, 이번엔 참 쓸쓸하게 사라지고 있다.
“도착했습니다.”
청와대였다.
오늘 일어난 일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보고하기 위해 온 거다.
성윤이 안전벨트를 풀며 장한수 실장에게 무거운 한마디를 전했다.
“아무도 못 오게 해 주세요. 비서들도요.”
“네.”
장한수 실장은 결의에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잠시 후, 성윤은 박무혁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박무혁 대통령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성윤을 바라본다.
“그동안 뭐 하고 있던 거야? 집에 틀어박혀서 한 번을 나오지 않았다면서?”
“죄송합니다.”
박무혁 대통령은 더 말하지 않는다.
이제 성윤이 왜 처박혀 있었는지 들어야 할 시간이다.
성윤이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테이블에 올린다.
“뭐지?”
“이완용이죠.”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박무혁 대통령은 똑똑히 알아들었다.
타국의 돈을 받아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자들.
박무혁 대통령이 종이 뭉치를 펼쳐 보기 시작한다.
첫 장에 적힌 이름…….
‘국토부장관!’
박무혁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치아를 꽉 물었다.
터무니없는 집값 상승과 청년들의 ‘내 집’ 걱정을 떨어뜨리라고 임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돈을 먹었다.
분노를 참으며 한 장을 더 넘겼다.
이번엔…….
‘문화부장관!’
또 넘긴다.
‘최학인!’
이어서 군 장성, 연예 기획사 사장, 각 기업의 연구원!
다양한 사람들이 불법적인 돈을 받았다.
‘젠장!’
박무혁 대통령은 더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 버린다.
종이를 찢어 버리고 테이블을 뒤집고 싶었다.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것 같다.
한참 후, 박무혁 대통령이 분노를 참아 내며 입을 연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게이트를 준비했습니다.”
“게이트?”
성윤은 이준대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전했다.
중국과 동남아의 브로커 역할을 했고 지금은 폭행죄로 잡혀 있다는 말.
“검찰이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사건을 터뜨리기 시작할 겁니다. 주변을 치면서 팔다리를 자른 후, 단번에 목을 치겠습니다.”
한 번에 몇백 명의 권력자를 잡아넣는 일이다.
그 뒤에 정부와 여당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안 된다.
이들은 소수 여당이고 상대에 비해 세력이 약하다.
자칫 목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박무혁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해. 내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담담한 목소리에 성윤은 물끄러미 박무혁 대통령을 바라봤다.
“왜?”
“두렵지 않으십니까?”
“두려워? 뭐가?”
어떤 일이든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계획이 새어 나가고 저들이 힘을 합치면 대한민국은 진흙탕이며 개판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럼 성윤은 감옥에 가고 박무혁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진 허수아비가 될 수 있다.
완벽하게 승리한다 해도 문제가 있다.
박무혁 대통령에게는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명단에 존재하는 이름 중 하나가 야당 대표 최학인.
그의 머리채를 잡아 감옥에 처넣는 것은 자칫 정치 탄압으로 보일 수 있다.
민국당 지지자들이 일어나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며 갖은 욕을 다 할 거다.
그럼 박무혁 대통령은 시대의 죄인으로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박무혁 대통령의 눈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껄껄껄 웃는다.
“이 대표, 그게 뭐가 두려운가?”
“…….”
“내가 무서운 것은 하나야. 똥밭에서 구르다가 똑같은 놈이 되는 것. 내 이름 하나 죄인으로 기록된다 해서 뭐 어때? 이 나라가 좋아진다면 그걸로 된 거지.”
***
영원할 것처럼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나고 있었다.
낙엽이 떨어지고 밤은 제법 쌀쌀하다.
기후변화 때문일까? 미디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이 다가올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떠는 중이다.
그리고 민국당 당사.
최학인 대표는 인상을 찌푸린 채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이준대’라는 이름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이준대가 그의 곁을 지키며 손바닥을 비벼 댔지만 돈 없는 이준대는 필요 없으니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우경도 보좌관이 들어온다.
“박정우 보좌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 뭐래?”
“별다른 이슈는 없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되기 전에 독거노인이나 취약 계층을 살피라고 지시한 모양입니다. 바닥 민심을 잡으려는 것 같습니다.”
“그래?”
최학인 대표는 정우를 통해 여당의 정보를 얻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잘못된 정보가 없다.
계속해서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점점 더 신뢰하게 된다.
“아무 일 없다는 거지?”
“네.”
최학인 대표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성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거지?”
“네.”
그는 총선을 위해 칼을 가는 중이다.
중국 통신 장비 업체와 성종 테크놀로지의 커넥션을 눈감아 주며 막대한 돈을 챙겼다.
그리고 그 돈으로 깡패를 준비했다.
이어서 또 다른 불법적인 일을 눈감아 주며 돈을 불리는 중이다.
이 모든 것은 권력을 이어 가기 위한 준비 과정, 세상을 시끄럽게 해서 민심을 떨어뜨릴 계획이다.
모든 것을 대통령 탓, 어리고 경험 없는 여당 대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언제나 효과적이니까.
“계획이 성공하면 이성윤은 끌려 나올 거야. 국민 앞에 서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겠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른 채 일단 사과할 거야. 죄는 짓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니까.”
최학인 대표가 책상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찰총장에게 연락해. 밥이나 한번 같이 먹자고.”
검찰총장은 박무혁 대통령의 사람이다.
게다가 박무혁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한참 남았다.
검찰총장이 배신할 리 없는데…….
최학인 대표가 자신만만하게 웃는다.
“공무원은 가축이야. 먹이 주는 사람이 주인인 법이지.”
그 소식은 우경도 보좌관의 입을 통해 정우의 귀에 들어왔다.
정우가 성윤의 앞에 선다.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지 않아요? 놔두면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요.”
“지금 그쪽 전력이 깡패하고 과격 시위 단체 정도지?”
“네.”
전혀 두렵지 않다.
노출된 전력은 그 한계가 뻔하니까.
두려운 것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그리고 최학인 대표는 성윤에게 대국민 사과를 시키려 한다.
여기서부터 승패는 갈린 것이나 다름없다.
성윤이 원하는 것은 최학인 대표의 박살이니까.
서류를 넘겼다.
기사가 빽빽하게 보인다.
산업스파이, 연예인 마약, 매춘, 땅 투기, 횡령 등등등.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기사.
하지만 성윤은 알고 있다.
여기에 적힌 모든 사람들은 나라를 팔아먹으려던 자들.
모든 기사를 꼼꼼히 살핀 성윤이 고개를 들어 정우를 바라봤다.
“외곽은 어느 정도 정리된 건가?”
“네.”
검찰은 이준대의 호텔을 압수 수색했고 극비리에 해외 자본의 흔적을 알아냈다.
여기까지가 성윤이 세운 시나리오였고 현재까지는 완벽하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우리 당과 대통령님은 드러나지 않았지?”
“네, 냄새조차 안 나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나리오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간이다.
“최학인이 시끄럽다고?”
“네.”
“검찰에 연락해, 이제 그만 조용히 만들라고.”
성윤의 허락이 떨어졌다.
정우가 빙긋이 웃으며 허리를 굽힌다.
“알겠습니다!”
***
-성공한 투자자로 알려진 이준대 씨가 중국과 동남아 등 각지의 폭력 조직과 손잡고 우리나라의 고위직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가 드러났습니다.
조용한 대한민국에 돌이 던져졌다.
< 게이트. -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