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90화 (290/300)

< 게이트. - (3) >

***

며칠 후.

대정 호텔, 성윤은 레이첼을 만나고 있었다.

“궁금한 게 세 가지 있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겠다는 눈빛이다.

“이준대의 개인 자산은 얼마나 되죠?”

“제가 알기로는 3억 달러 정도 될 거예요.”

약 3,500억.

깨끗하게 벌었다면 박수를 보내 줄 줄 만큼의 재능이다.

홀로 미국에 넘어가 자수성가를 이뤄 냈으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깨끗하게 돈을 벌지는 않았다.

매춘, 마약…… 그 돈으로 씨앗을 만들어 열매를 따 먹은 거다.

물론 지금은 직업을 세탁해서 번듯한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중이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좋아요. 그럼 다음 질문. 미국에 있는 이준대의 투자회사, 아직 활발한 투자를 하는 중이죠?”

이준대는 한국에 있다.

하지만 회사는 고객들의 돈을 굴리며 열심히 돌아가는 중이다.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회사에서 레이첼 씨의 영향력이 얼마나 되나요? 그러니까, 레이첼 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사람들이 있나요?”

그녀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요.”

“그 사람들을 통해 이준대의 개인 자산을 이 회사에 투자할 수 있을까요?”

“네?”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그녀의 앞으로 서류 한 장을 내려 뒀다.

그녀의 시선이 서류로 향한다.

“유나렛이라는 회사입니다. 대표는 크리스티나. 20세의 나이에 하버드를 중퇴하고 회사를 설립했죠. 머리카락 한 올로 수백 가지의 질병을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했고요. 곧 기술을 공개할 테고 실리콘밸리의 신화로 여겨질 겁니다. 예상하는 기업 가치는 100억 달러.”

레이첼이 황당한 표정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이준대를 부숴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투자라니.

거지 같은 회사를 추천해 준 것도 아니다.

서류를 확인해 보면 꽤 괜찮은 회사다.

미래 가치도 충분하고.

성윤이 손가락으로 툭툭 서류를 두들겼다.

“이 회사를 눈여겨보라고 전해 주세요.”

“그러니까 왜……?”

“망할 거니까요.”

“네? 망한다고요?”

그녀는 다시 서류를 들여다봤다.

어느 곳을 살펴봐도 망할 것 같은 느낌은 없다.

오히려 성공했으면 성공했지.

하지만 성윤은 확신했다.

성윤의 꿈속, 유나렛의 대표 크리스티나는 여성 스티브잡스 또는 실리콘밸리의 여왕이라 불렸던 사람이다.

기업을 상장하자마자 미국의 재력가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개미들 역시 마찬가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들었다.

주가는 폭등했다.

쭉쭉 치솟더니 기업 가치 1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0조를 넘어선 것은 순식간이었다.

난리였다. 주식에 관심 없던 사람도 도박장으로 변해 버린 유나렛에 투자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 평가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모든 것은 사기였으니까…….

그녀는 투자자들을 속인 혐의로 20년의 징역을 선고받았고 10조를 넘겼던 기업 가치는 휴지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정말 짧은 시간에 벌어진 희대의 돈놀이.

그 끝은 비극이었다.

전 재산을 잃었다며 목숨을 끊는 사람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날 정도였으니까.

“이준대의 돈을 이 회사에 담아 주세요. 처음에는 조금, 주가가 오르면 올인.”

한국에서 미국의 사정을 훤히 알기는 어렵다.

직원들이 이 악물고 이준대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 속을 수밖에 없다.

완벽한 사기인 만큼 투자 가치 역시 완벽할 테고.

“이준대는 믿을 겁니다. 유나렛의 주가는 단체로 마약을 한 것처럼 모두를 미쳐 버리게 만들 테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욕망을 쫓을 겁니다. 살얼음판을 뛰어 노는 거죠. 하지만 결국 얼음은 깨질 테고 이준대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질 겁니다.”

레이첼은 서류를 손에 쥔다.

다시 서류를 넘겨 본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의심으로 가득하다.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성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미국의 재력가들이?’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높은 수익률보다 안정적인 투자를 즐겨한다.

즉, 돌다리도 두들겨 본 후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투자한 회사가 사기꾼이었다니…….

성윤의 말처럼 단체로 미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됐다.

‘그게 가능해?’

하지만 성윤의 확신에 찬 눈빛을 보고 있으면 가능할 것도 같다.

무엇보다 그녀가 손해 볼 일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이준대의 돈을 판돈으로 쓰는 도박이니까.

잠시 생각에 빠졌던 그녀가 빠른 결정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요. 이 자료, 미국에 보낼게요.”

그녀가 떠났다.

방에는 성윤과 정우만 남았다.

그동안 조용히 서 있던 정우가 묻는다.

“이준대를 거지로 만들려고요?”

“어. 감옥에 갔다 왔는데 돈 많으면 짜증 나잖아. 쫄딱 망해야지. 1달러도 남기지 않고 태워 버릴 거야.”

“악마…….”

이번엔 성윤이 물었다.

“그건 됐고. 이준대 만났잖아? 뭐래?”

“중요한 이야기는 없었고요.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놨어요. 아, 정보를 줄 때마다 중요도에 따라 천만 원에서 1억을 주겠대요.”

“그래서, 우리 아지트는 가르쳐 줬어?”

“네.”

“얼마 받았어?”

정우가 어깨를 으쓱한다.

“아직요.”

“그럼 받을 돈의 가치가 올라갈 수도 있다는 거네?”

“아마요.”

“오늘 밤에 김재형 검사님 불러서 술 한잔할까, 중요도를 높이게?”

정우는 민국당의 신뢰를 얻기 위해 아지트를 알렸다.

놈들은 정우가 아지트를 알려 준 이유가 ‘돈’ 그리고 ‘어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김재형 검사와 술을 마시고 집에 가면, 최학인 대표와 이준대에게 우리 아지트를 구경시켜 줘. 믿는 것을 넘어서 확신할 수 있게.”

정우가 완벽하게 배신했다고 생각하면 놈들은 방심할 거다.

성윤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생각하며 정우의 정보에 의존할 게 분명하다.

성윤은 그 틈에 민국당에 던질 핵폭탄을 준비할 거다.

정우가 끌끌끌 웃는다.

“왜 웃어?”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아지트에 방문한 최학인 대표가 분홍색 캐노피 침대를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요? 의원님의 취향?”

성윤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구경시켜 주기 전에 그 침대부터 치워.”

“예, 예.”

정우가 능글맞게 대답한다.

그날 밤.

성윤은 김재형 검사와 아지트에서 만났다.

냉장고와 테이블 그리고 분홍색 캐노피 침대가 이곳에 있는 전부다.

테이블에 소주 두 병이 비워졌을 때 성윤이 침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치우라니까.”

정우가 일부러 치우지 않은 게 분명하다.

김재형 검사가 낄낄 웃는다.

“저 침대 한 번은 사용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대통령님의 배려가 녹아 있잖아요.”

“아뇨. 내일 당장 치울 겁니다.”

사용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리고 생각한 김에 당장 치울 거다.

김재형 검사가 성윤의 잔을 채웠다.

“민국당에 얼굴을 팔기 위해 만난 거죠?”

“네.”

“그럼 해야 할 중요한 말은 없고 시간 때우다 가야 하는 것인데, 그동안 시답잖은 질문 좀 해도 되겠습니까?”

성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재형 검사가 곧장 묻는다.

“결혼은 언제 하실 거예요?”

“네?”

“그렇잖아요. 대표님은 돈도 많고 권력도 있고. 대한민국 1등 신랑감이라고 불리는데, 혼자 있으니까……. 정말 부럽잖아요.”

“네?”

성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김재형 검사는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인생 선배로서 말씀드리는데요, 결혼이 무덤이라고 하잖아요? 그거 틀렸어요. 무덤이 아니라 감옥이에요.”

이어서 나온 말은 절대 결혼을 서두르지 말라, 최대한 늦게 해라,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등등…….

그렇게 술자리를 마쳤을 때는 밤 12시였다.

테이블에 굴러다니는 소주는 다섯 병, 김재형 검사는 조금 휘청거렸다.

성윤은 아지트를 빠져나가기 전에 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하나는 유나렛에 대한 정보지였고 다른 하나는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시 의원의 정보다.

그 종이를 테이블에 올린다.

성윤과 김재형 검사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보이게…….

***

이준대의 개인 자산이 유나렛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첫 투자금은 1천만 달러, 약 117억.

하지만 금세 두 번째 투자가 이어졌다.

성윤이 꿈속에서 본 것처럼 미국의 재력가들이 1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유나렛에 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고를 받은 이준대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 역시 1억 달러에 대한 투자를 허락했다.

자산가들의 투자를 보며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금의 시간이 지났다.

유나렛이 상장했다.

꿈속에서 봤던 것처럼 20달러, 30달러…… 주가가 무섭게 치고 올라간다.

“대표님도 투자했나요?”

대정 호텔의 VIP 룸이다.

성윤은 윤범성 부회장의 배다른 동생 윤지예를 만나고 있었다.

“조금요.”

“얼마를 투자했는지 궁금한데요?”

윤지예는 여우 같은 눈을 반짝거린다.

리제부터 아이워치 그리고 각 벤처까지…… 성윤의 투자 수익이 꽤 유명하기 때문이다.

손대는 것마다 성공한 황금의 손.

그래서 성윤의 투자를 보고 뒤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윤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곧 망할 회사 때문에 괜한 원망을 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글쎄요.”

애매하게 답할 뿐이다.

성윤이 말해 줄 생각을 하지 않자 윤지예는 더 묻지 않았다.

그녀가 성윤의 앞에 USB를 내려 둔다.

“이준대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자본, 그리고 그 연결고리. 의원님이 알고 싶은 정보예요. 어렵게 얻었어요. 이준대, 그 사람은 의심이 심하니까요.”

성윤이 USB를 손에 쥐자 그녀가 말을 잇는다.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요.”

“…….”

“그건 윤범성이 구속되는 걸 확인 후 알려 드릴게요. 죄송하지만 제가 의원님을 마냥 믿을 수는 없잖아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범성 부회장, 곧 구속될 겁니다. 그건 약속하죠.”

그녀가 살짝 웃는다.

“고마워요.”

하지만 윤범성 부회장의 구속 전에 USB에 있는 명단이 공개될 거다.

비밀번호는 그녀의 속마음을 통해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날 밤, 성윤의 집.

성윤은 노트북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아 윤지에게 받은 USB를 연결했다.

문서, 그림 파일이 보인다.

클릭하자 명단이 떴다.

성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

“네, 오늘도 출근 안 했습니다.”

정우는 박무혁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

걱정으로 가득한 목소리.

하지만 정우 역시 똑 부러지는 답을 줄 수 없었다.

“……생각할 게 있다고만 들었습니다.”

박무혁 대통령의 한숨이 흐른다.

-연락되면 바로 전화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정우가 통화를 종료하며 시선을 들었다.

그는 성윤의 원룸 앞에 서 있었다.

불꺼진 창문이 보인다.

‘벌써 일주일…….’

성윤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시간이다.

그는 집에 박혀 나오지 않고 있다.

하루에 한 번, 배달 음식이 집 앞에 놓이지 않았다면 죽었다고 의심될 정도로…….

‘도대체…….’

정우의 입에서도 걱정 어린 한숨이 내뱉어졌다.

그 시각, 성윤은 싸늘한 눈빛으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적혀 있는 이름, 돈을 받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사진.

일본의 명단을 확인했을 때도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중국과 동남아까지 합치니 정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타국의 돈을 받는지 몰라도 야당 대표 최학인을 시작으로 여당과 야당에서 꽤 많은 국회의원들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그리고 고위직 공무원부터 한류 스타로 이름난 연예인과 기획사, 마지막으로 각 기업의 연구원까지.

고위직 공무원은 그들의 불법 행각에 눈을 감는다.

연예인은 그들을 언급하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씌워 준다.

연구원들은 돈을 받고 산업스파이 짓을 하는 중이다.

정말 개판.

이게 공개되면 대한민국의 경제마저 휘청거릴 수 있다.

그만큼 큰 스캔들…….

‘어떻게 해야 하나…….’

성윤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재떨이에는 이미 많은 담배꽁초가 쌓여 있다.

몇 날 며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

이 명단을 보기 전에는 썩은 것은 무조건 도려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미래를 피하기 위해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하지만 눈앞에 다가온 것은 그 이상이었다.

대한민국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순간 성윤의 눈빛이 번뜩였다.

몇 날 며칠 동안 고민하던 그의 눈빛에 처음으로 결단이 서렸다.

‘쓸어버린다.’

< 게이트.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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