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89화 (289/300)

< 게이트. - (2) >

-한번 뵙고 싶습니다.

이준대의 목소리가 흘렀다.

하지만 정우의 눈동자에 흥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준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건조하게 물어본다.

“이유는요?”

-우경도 보좌관에게 들었을 겁니다. 박 보좌관님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언제든 얼굴을 마주할 수도 있죠.

정우의 입에서 한숨이 내뱉어졌다.

이준대가 내뱉는 설득의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좀 달랐으면 했는데, 예상했던 것과 같았다.

진실을 알고 싶으면 개인적으로 만나자는 등 이번에는 성윤 모르게 나오라는 등, 시답잖은 헛소리.

‘왜…….’

정우는 정말 알 수 없었다.

성윤이 왜 이런 놈을 신경 쓰고 있는지, 당장 짓밟아 죽여도 괜찮을 것 같은데…….

처음엔 ‘이준대’라는 이름에 흥미를 느끼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통화를 이어 가는 것조차 시간 낭비로 여겨진다.

그래서 적당히 거절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궁금하지도 않고 그 정도는 제 힘으로도 밝혀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로 전화하는 일이 더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런가요?

“네, 그러니까 나중에…….”

정우는 이제 그만 마무리를 짓고 통화를 종료하려 했다.

그때…….

-그럼 어머니는요?

“네?”

당황한 정우와 달리 이준대의 목소리는 즐거운 듯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 어머니는 정신병, 오로지 복수를 위해 정치에 뛰어든 사람. 여당 대표의 보좌관 박정우…….

“이준대 씨!”

-언론에 이 이야기가 퍼지면, 어머니께서 입원하신 병원이 꽤나 시끄러워질 것 같지 않나요? 기자도 많이 몰려올 테고…….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머니 병세 중 하나가 대인 기피라고 들었는데, 견디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무슨 짓을!”

-무슨 짓이냐고요? 보좌관님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중입니다. 아버님 보고 싶다고 또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지는 않겠죠?

정우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앞에 있었다면 뼈도 남기지 않은 채 씹어 먹었을 거다.

하지만 이준대의 목소리는 냉랭하게 이어진다.

-그게 싫으면 이곳으로 오세요. 어머니께서 계신 곳입니다. 커피는 제가 사죠.

뚝 전화가 끊겼다.

정우가 악마처럼 웃기 시작했다.

“크핫핫핫핫!”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 흐른다.

그러다가 그의 웃음이 뚝 그쳤다.

그리고 살벌한 목소리가 흐른다.

“아…… 이 새끼…….”

성윤이 왜 신경 썼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진짜 나쁜 새끼네…….”

가족은 건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놈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렸다.

죽여 버릴 거다.

정우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에 살기가 가득하다.

같은 시각…….

넘실거리는 파도가 보이는 방파제였다.

이준대는 최학인 대표와 통화하고 있었다.

“박정우 보좌관과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나오겠지?

“박정우 보좌관의 어머니, 흔한 스토리의 여자죠. 남편을 먼저 보내고 시장 바닥에서 나물을 팔며 아들을 키워 낸 어머니, 하지만 속병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정신병……. 박정우 보좌관의 역린이고 그걸 건드렸습니다. 혼자 나올 겁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낮은 웃음이 들렸다.

-처음부터 자네에게 맡길 것을 그랬어.

만족한 것 같은 목소리에 이준대가 조심스레 대가를 바란다.

“대표님, 성공하면…… 약속대로 텃밭을 공천해 주십시오.”

-그건 걱정하지 마. 박정우의 역린이 정신병 걸린 엄마라면, 이성윤의 역린은 박정우야. 이성윤의 기를 꺾어 버릴 일등 공신이 되는 거야. 텃밭을 주는 일에 불만을 가질 사람 없어.

텃밭, 당의 깃발만 들고 나타나면 덮어 놓고 찍어 주는 유권자들이 있는 곳으로 개를 앉혀 놔도 당선되는 지역이라 불리는 곳이다.

하지만 이준대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그 텃밭 중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곳을 원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당선을 위해서…….

그가 다시 한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표님, 출마 지역은 제가 정해도 되겠습니까?”

-원로들의 지역구는 안 돼.

그 외에는 괜찮다는 거다.

이준대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짧은 통화가 종료됐다.

이준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드디어…….’

권력의 무대에 오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이준대의 눈동자에는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환상이 아니다.

그 순간이 머지않았다.

‘곧…….’

그의 독사 같은 눈이 세상을 쏘아보고 있다.

씹어 먹을 것처럼…….

***

“이준대?”

“네.”

레이첼이 떠난 호텔 방.

정우가 착잡한 표정으로 성윤의 앞에 앉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성윤이 미간을 찌푸린다.

“이준대가 어머니 문제를 걸고넘어져?”

“네.”

정우는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그리고 성윤을 바라봤다.

“……어떻게 할까요? 의원님이 원하는 대로 할게요.”

“네가 원하는 것은?”

“저요? 제가 원하는 거요?”

정우가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낄 웃는다.

멀리서 보면 시원하게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지켜보는 성윤은 그 모습이 슬퍼 보였다.

정우의 아버지는 시대의 비극에 의해 모함받았고 고문받았으며 결국 사망했다.

정우의 어머니는 그 비극을 지켜보다가 현실을 외면했고.

그런데 그 어머니마저 시대에 이용당하려 한다.

정우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뭘 물어보세요. 당연히 죽이고 싶죠. 그런데 그건 안 되는 일이잖아요. 룰은 따라야죠. 그러니까 의원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거예요. 저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게 분명하니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우의 말대로다.

흥분한 짐승은 정우로 충분하다.

이럴 때일수록 성윤은 이성을 찾아야 한다.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줘.”

“…….”

“내 목을 원하니까 나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도 괜찮겠네. 뭐가 좋을까? 은밀한 비밀이면서도 막상 까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성윤은 잠시 놈들에게 던져 줄 정보가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입을 연다.

“그거 괜찮겠네. 대통령님이 내게 건넨 우리 아지트.”

통째로 사 버린 빌딩을 말하는 거다.

완벽한 보안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하지만 막상 받고 보니 잘 사용하지 않는다.

“거기를 알려 줘, 내가 몰래 사람 만나는 곳이라고 하면서.”

“저도 첩자가 되는 것인가요?”

“첩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야.”

정우가 고개를 끄덕끄덕…….

그는 성윤의 지시에 담긴 뜻을 이해했다.

이준대의 뜻을 따르며 어머니를 보호하라는 것.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성윤은 이준대를 박살 내 버릴 거라는 것.

정우가 테이블에 놓인 차 키를 손에 쥔다.

성윤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알겠어요. 그럼, 다녀올게요.”

“혹시 모르니까 장한수 실장에게 연락할게. 뒤에서 가드할 거야.”

“네.”

이준대의 뒤에는 최학인 대표가 서 있다.

그 역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대한당과 민국당, 오랜 시간 대한민국을 양분하던 권력자들이 무너지는 중이니까.

먼저 대한당이 몰락했고 이제는 민국당의 차례.

대한당의 마지막을 지켜본 그들은 절대 호락호락 무너지지 않을 거다.

그리고 권력의 마지막을 지키려는 몸짓은 언제나 추하다.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래서 정우가 위험할 수도 있다.

장한수 실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잠시 후, 정우가 떠났다.

성윤은 여전히 호텔 방에 앉아 있다.

고개를 틀어 멍하니 창밖만 보는 중이다.

‘이준대…….’

성윤의 머릿속은 이준대로 옮겨졌다.

수백 번을 꿨던 같은 꿈, 그곳에서 이준대는 지독하고 소름이 끼칠 만큼 악독했던 인간.

그래서 역사는 뒤틀렸지만 이준대라는 이름은 꺼림칙하다.

그는 권력이 있다면 지옥에라도 뛰어들 것 같은 악귀…….

그와 첫 싸움이자 마지막 싸움이 다가오고 있다.

성윤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뿌연 연기가 흐를 때, 성윤의 머릿속은 다가올 싸움의 수만 가지의 가능성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가진 권력도 재력도 압도적, 승리는 당연하다.

게다가 이준대의 여자인 레이첼과 윤지예까지 성윤의 편에 서 있다.

이준대는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가루가 될 거다.

‘하지만…….’

싸움은 끝날 때까지 모르는 것이다.

확률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 싸움의 끝이 이준대의 승리로 끝난다면…….

이준대가 권력의 왕좌에 오르는 첫 게이트가 될지도 모른다.

성윤은 이준대가 정상에 서기 전에 마주한 악마로 기록될 테고.

‘설마…….’

성윤은 픽 웃으며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런데 그 순간 성윤의 행동이 뚝 멎는다.

머릿속을 스치는 아찔함.

‘어?’

그러고 보니 꿈속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도 이준대는 한 인물을 찍어 누르며 화려하게 등장했었다.

놈은 타인을 집어삼키며 큰 괴물이니까.

어쨌든 그 인물은…….

‘안재열 대통령님의 아들!’

이번에는 잡아먹을 대상이 성윤인지 아니면 또다시 안재열 대통령의 아들일지…… 아직은 모른다.

‘확인해 봐야겠어.’

가능성이 있는 것은 모두 틀어막는다.

이준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거다.

그게 이준대를 사냥하는 방법이다.

***

“고아, 가난, 내세울 것 없는 학력. 다가올 미래가 무서웠습니다. 제 미래는 뻔했으니까요. 이 나라에서 나같이 없이 사는 놈은 소모품이잖아요. 죽다가 일만 하다가 갈려 나가 죽어도 상관없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고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방파제였다.

이준대의 옆에는 정우가 서 있다.

이준대가 정우에게 커피가 담긴 테이크아웃 잔을 건네며 계속 말한다.

“낮에는 막노동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열심히 살아도 옥탑방이나 지하방을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10만 원을 적금 넣기도 빠듯한 데 아파트 값은 수십억이니까요. 전 그곳에 사는 사람을 욕하고 시기했을 겁니다.”

“…….”

“나같이 쓸모없는 놈이 왜 태어났는지, 부모님을 욕하다가 울며 잠들었겠죠.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인생.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 지독한 가난. 그게 저였으니까요.”

정우는 굳은 표정으로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담배 연기만 내뱉고 있다.

이준대가 씁쓸하게 웃는다.

“전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겁니다. 당선도 걱정 없습니다. 당의 깃발을 들고 나가면 덮어 놓고 뽑아 주는 어르신들이 계시니까요.”

“…….”

“단지 권력을 갖고 싶어서 정치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세상을 바꿔 보고 싶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꿈을 꿀 수 있는 세상. 배고픔에 지쳐 잠들어도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상.”

“…….”

“어디선가 봤어요, 이름 없는 들꽃은 없다고…….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 만들고 싶습니다. 그때까지는 죄송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힘이 있어야 정책이고 뜻이고 펼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도와주십시오.”

그때까지 정우는 이준대의 말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바다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시선을 틀었다.

“왜 저를 선택했죠? 이성윤 대표님의 보좌관이니까?”

정우에게 궁금한 것은 뱉어 내는 이상향이나 개소리가 아니었다.

왜 자신을 협박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준대가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그 이유가 가장 큽니다.”

“그럼, 다른 이유도 있다는 뜻입니까?”

“영원한 권력은 없고 시대는 이성윤 대표를 원하지 않아요. 즉, 대세가 변하고 있죠. 그리고 제가 파악한 박정우 보좌관님은 대세를 알면서도 이성윤 대표의 옆에 있을 멍청한 사람이 아니죠.”

“대세?”

정우는 이준대가 뭘 보고 그런 판단을 했는지 궁금했다.

각 여론조사를 봐도 차세대 리더 1위에 오르는 인물은 성윤이니까.

그런데 이준대는 그에 대한 답을 지금 내뱉지 않았다.

“그리고…….”

이준대는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킨다.

가리키는 곳은 산에 있는 병원…….

그러니까 정우의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곳.

“어머니를 나 몰라라 하며 패륜을 저지를 정도로 악독한 사람도 아니잖아요?”

이준대는 어머니의 존재를 자신이 아는 한 정우가 배신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준대에게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개, 그게 정우였다.

이준대가 정우를 향해 보조개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다.

정우는 순간 이준대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이 새끼가…….’

하지만 꾹 참았다.

성윤이 시킨 대로 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족은 건들지 맙시다. 죽여 버릴 수도 있으니까.”

이준대가 원하는 대로 발길을 옮겨 준다.

< 게이트.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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