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88화 (288/300)

< 게이트. - (1) >

우경도 보좌관은 물러서지 않는다.

“텃밭은 꿈도 꾸지 않습니다! 낙선이 당연한 곳도 좋습니다! 재보궐 시의원도 괜찮으니까…… 나가서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간곡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최학인 대표의 냉랭한 눈빛이다.

“왜 그래? 보좌관 생활이 마음에 안 들어?”

“……!”

그 눈빛은 말한다.

하고 싶지 않으면 나가라고, 보좌관이 되고 싶은 사람은 해변의 모래알만큼 많다고…….

그 눈빛에 신뢰는 없다.

10년을 넘게 옆을 보좌했지만 머슴살이를 했을 뿐이다.

결국…… 우경도 보좌관은 고개를 숙인다.

쏘아보는 최학인 대표의 눈을 피한 거다.

그러니까, 겁을 집어 먹고 꼬리를 말아 버린 것이다.

비참하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최학인 대표는 더 이상 그를 쏘아보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류로 시선을 옮긴다.

강자는 약자의 마음을 신경 쓰지 않는 법…….

험악한 분위기가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지시를 내린다.

“언론사 사장단과 약속 잡아. 얼굴 본지 오래됐으니까 술이나 한잔하자고 해. 괜히 신인 배우나 연습생들은 부르지 말라 하고.”

“알겠습니다.”

“수도권 당협 위원장들, 각 지역 산악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해.”

“네.”

“다음으로 이성윤의 보좌관 박정우……. 됐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그리고…….”

한참 동안 업무적인 이야기가 흘렀다.

그리고…….

“나가 봐.”

“알겠습니다.”

우경도 보좌관은 몸을 돌렸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방을 나가려던 순간…….

“우 보좌관.”

우경도 보좌관의 걸음이 멎었다.

공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자네는 아직 배울 게 많아. 조금만 더 참고 견뎌. 그럼, 자네 이름으로 깃발을 꽂을 날이 올 거야. 약속하지.”

최학인 대표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우경도 보좌관을 위로했다.

하지만 우경도 보좌관은 더 속지 않는다.

그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배울 게 많아?’

우경도 보좌관은 10년을 넘게 굴러먹었지만 아직 배울 게 많다.

그럼 1년도 안 됐으면서 공천을 받는 이준대는?

‘씨발…….’

우경도 보좌관은 이를 씹어 물었다.

그날 밤, 서안시 사무실.

한창 업무를 보던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상대는 우경도 보좌관…….

발신 번호를 보던 성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상보다 빠른 연락이다.

그동안의 마음 정리, 이득에 대한 계산을 끝내려면 이틀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이성윤입니다.”

대답은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한참의 망설임 끝에 우경도 보좌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꽤 술에 취한 목소리다.

-……뵙고 싶습니다.

***

며칠 후, 경기도 하남의 한정식집.

검은색 승용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뒷문이 열리고 성윤이 내렸다.

옷매무새를 다듬는 그의 옆으로 정우가 선다.

“들어갈까요?”

“잠시만…….”

성윤은 담배를 입에 물며 주변을 살폈다.

눈으로만 살피는 게 아니다.

한정식집을 기준으로 주변에 있는 모든 이의 속마음을 듣는 중이다.

혹시라도 우경도 보좌관과 최학인 대표가 손잡고 함정을 파 뒀을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별다른 소리는 없었다.

안전이 확인된 후에야 성윤이 앞서 걷는다.

“들어가자.”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가장 구석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우경도 보좌관이 보인다.

며칠 전 만났을 때와 얼굴색은 물론 눈빛도 다르다.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초췌하고 눈빛이 퀭하다.

성윤이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네, 맨정신은 힘들겠네요.”

아무리 밉다 해도 10년 넘게 모셨던 최학인을 배신하는 순간이다.

결심을 하고 나왔지만 술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

소주 한 병이 들어왔다.

한 잔, 두 잔 채워졌고 비워졌다.

그리고 다시 한 병을 시켰고 그것마저 바닥을 보일 때 우경도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세력을 만들 수 있는 자금…… 지원해 주겠다고 하셨죠? 제가 그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죠?”

우경도 보좌관의 서슬 퍼런 눈동자가 성윤을 향했다.

정치판은 똥밭이다.

냄새나는 놈들끼리는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다.

게다가 최학인의 혓바닥에 놀아났던 전적이 있다.

성윤의 말을 마냥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그 확신을 달라고 말한 것인데, 성윤은 조용히 웃고 있다.

“약속요? 보좌관님…… 제 말을 믿어서는 안 되죠.”

“네?”

우경도 보좌관의 눈빛이 험악해진다.

약속을 믿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믿어서 안 된다니…….

성윤이 그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국민 앞에서 내뱉은 공약도 나 몰라라 하는 게 정치인이에요. 그런데 보좌관님과 몰래 한 약속을 지킬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말을 믿지 마세요. 저도 보좌관님 안 믿습니다.”

우경도 보좌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는 이 일 못 합니다. 최학인 대표 밑에서 꼬리 흔들며 살아야죠.”

그가 씁쓸하게 웃으며 술을 마셨다.

이 일이 시작되면 우경도 보좌관의 가족은 집에서 굶어야 할 거다.

보좌관의 목숨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모시는 국회의원에 달려 있으니까.

국회의원이 꺼지라면 꺼져야 한다.

“세력을 만들다 실패하면 최학인 대표가 가만 놔둘 리 없죠.”

잘리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다.

민국당 대표에게 미움받은 보좌관을 받아 줄 용기 있는 곳은 없을 테니까.

“전 그런 리스크를 갖고 일을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게 해 주세요.”

성윤은 고개를 틀어 정우를 바라본다.

그러자 정우가 품에서 통장과 카드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성윤이 손가락으로 통장을 톡톡 두들겼다.

“확인해 보세요.”

우경도 보좌관의 눈빛이 반짝인다.

성윤은 부자다.

통장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다급히 통장을 열어 봤는데…….

‘어?’

잘못 봤나 싶었다.

그래서 다시 확인을 해 봤다.

“500만 원?”

“네.”

“이, 이게 뭐죠?”

“계약금입니다. 비밀번호는 아드님의 생일이죠.”

“그러니까 이게 뭡니까?”

500만 원……. 술 한잔 대접하면 바닥을 드러낼 돈이다.

이걸로 세력을 만들 수는 없다.

“대표님!”

우경도 보좌관은 성윤이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성윤의 눈빛은 진지하다.

“말씀드렸잖아요. 저도 보좌관님을 믿지 못합니다.”

“…….”

“통장 들고 은행 가세요. 카드 넣고 비밀번호 누르세요. 돈을 빼는 순간 우리는 해당 지점의 CCTV를 확보할 겁니다. 보좌관님의 얼굴이 명확히 찍혀 있으면 계약 성립이죠. 나머지 지원금은 확인 즉시 넣어 드리겠습니다.”

“…….”

우경도 보좌관이 통장을 꽉 쥔다.

500만 원은 떳떳한 정치 후원금으로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여당에서 후원받은 사실을 최정학 대표가 알면…… 우경도 보좌관은 참 난처해질 거다.

망설이는 그의 귓속에 성윤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저희가 확보한 은행 CCTV 영상은 보좌관님이 공천을 받는 순간 폐기하겠습니다.”

“그건 믿을 수 있습니까?”

“지금부터 믿고 말고는 보좌관님의 선택이고…….”

정우가 또 하나의 통장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성윤이 입을 연다.

“이건 1차 지원금입니다. 계약 즉시 보내 드리죠.”

이번엔 3억…….

우경도 보좌관의 눈동자가 떨려 온다.

이게 1차라면 2차, 3차도 있다는 거니까.

그럼, 세력을 만드는 것은 충분하다.

성윤이 그의 앞으로 통장을 밀어 두며 입을 열었다.

“선택하세요.”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독이 든 사과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가볍게 말씀드리면 저는 새로운 정치 지도를 원합니다, 기존의 고인물이 아니라…….”

“네?”

우경도 보좌관은 아직 초짜다.

하지만 꿈속에서 봤던 그는 꽤 괜찮은 국회의원이었다.

새로운 민국당을 맡길 만큼…….

성윤의 목표는 이준대와 같은 악귀들이 전면에 나설 수 없도록 청소하는 것.

그리고 조금 더 살 만한 세상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경도 보좌관 등 괜찮았던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민국당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진짜 괜찮은 정당이 되어 견제하기를 바라면서…….

영국의 정치인 액턴 남작이 말했던 것처럼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니까.

***

호텔의 VVIP 룸…….

레이첼이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벌써 수십 통이다.

하지만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물론 그 상대는 이준대…….

다시 통화 버튼.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던져진 휴대폰은 화장대 거울에 박혔고 ‘쾅!’ 소리와 함께 쩍 금이 갔다.

하지만 그녀는 소리 내지 않는다.

생기 없는 눈빛으로 화장대에 앉아 깨진 거울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의 힘없는 눈동자가 스르륵 아래로 향한다.

화장대에 놓인 사진, 이준대와 윤지예가 호텔에 들어가는 모습.

레이첼의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다음 날 아침, 대정 호텔…….

성윤은 VIP 룸을 찾았다.

“몇 시에 전화가 왔다고요?”

정우가 피곤한 눈으로 소파에 앉은 성윤에게 물었다.

“4시.”

“새벽 4시요?”

레이첼에게서 전화 온 시간이다.

연인에게도 전화하기 미안한 시간…….

그런데 레이첼은 그 시간에 성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출근하자마자 정우를 끌고 이 호텔로 찾아온 거다.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일이기에…….”

“글쎄, 조금 있으면 알겠지.”

성윤이 찻잔을 입에 댔다.

머릿속에 다급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새벽에 죄송해요. 제가 여기에 아는 사람도 없고…… 도움을 받고 싶은데, 그래서……. 뵙고 싶어요.

설움에 가득찬 목소리, 아직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꼭 이준대의 마지막을 체크할 카운트 다운처럼 들려왔다.

찻잔을 내려 둘 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정우가 문으로 다가가 열어 젖히자 레이첼이 서 있다.

잠을 못 잤는지 초췌한 눈빛, 그녀의 첫마디는…….

“죄송해요.”

정우가 그녀를 소파로 안내했다.

걸음걸이도 위태롭다.

비틀비틀, 하지만 결국 성윤의 맞은편에 앉았다.

성윤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

이준대를 쫓아 미국에서 한국까지 따라온 그녀…….

사랑받고 행복할 인생을 꿈꿨지만 지금은 낙동강 오리 알 신세다.

그래서 그런지 화려했던 외모와 반짝였던 금발은 빛을 잃고 초라해졌다.

‘꿈속에서…….’

성윤은 레이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준대가 데려왔지만 버림받은 비극적인 여성.

아쉽게도 그녀의 결말은 기억하지 못한다.

뭔가 찝찝했던 것 같은데, 미국으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다른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성윤은 이준대에게 관심이 없었고 박대철의 아래에서 박박 기고 있을 때였으니까.

한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레이첼이 입술을 움직였다.

“……어제도 안 들어왔어요.”

벌써 한 달째……. 그녀는 이준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한국에 버려진 채 홀로 생활하고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일어나면 밥을 먹고 멍하니 있다가 잠을 자는 게 일과의 전부다.

그녀의 눈동자가 성윤을 향한다.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죠. 어제도 그 여자와 함께 뒹굴고 있었어요. 아니, 그제도…… 지난주에도, 매일…….”

“…….”

“그래서 생각했어요. 이 나라에 이런 말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가질 수 없다면 부숴 버려라.”

“……!”

그녀의 소름 끼치는 눈동자가 성윤을 향했다.

“도와주세요. 부숴 버리고 싶어요.”

그녀의 속마음도 마찬가지다.

서늘하다 못해 오싹할 정도다.

앞에 이준대가 있다면 찢어 버렸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성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드리죠.”

그녀가 협조해 준다면 이준대의 파멸은 훨씬 수월해진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참한 결말을 선물해 줄 수 있다.

성윤의 머릿속에 앞으로의 계획이 톱니바퀴처럼 짜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준대를 지옥으로 보낼 시간이다.

그에게 이용당한 레이첼도, 그를 이용하고 싶은 윤지예도 성윤의 손을 잡았으니까.

성윤이 레이첼과 대화하는 동안 정우는 창가에 기대고 서 있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진동한다.

발신 번호는…….

정우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이준대?’

정우가 성윤에게 전화 좀 받고 오겠다고 눈짓했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우는 복도로 나간다.

“박정우입니다.”

-이준대라고 합니다.

최학인 대표는 우경도 보좌관에게 정우를 섭외할 것을 지시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이준대다.

이준대가 곧 지옥으로 끌려갈 것도 모른 채 포기를 모르고 질척대고 있다.

총선에 대비해 성윤을 꺾는 것이 첫 번째 단추라고 생각하니까.

정우는 어떤 일도 없던 것처럼, 평안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네, 그래서요?”

< 게이트.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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