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혹은 달콤하다. - (6) >
보좌관의 눈이 떨려 온다.
“이, 이성윤 대표님?”
성윤이 빙긋이 웃는다.
“앉아요.”
천오민도 이 상황은 몰랐다.
그는 안절부절못한다.
끝까지 모른 척해야 하나 아니면 또 다른 행동을 해야 하나.
그 결정을 도와준 것은 장한수 실장이었다.
“그쪽이 천오민 씨?”
“네?”
“대표님은 보좌관님과 독대하고 싶어 하시는데요.”
장한수 실장은 보좌관만 남겨 둔 채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자 성윤이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킨다.
“앉으라니까요.”
보좌관의 이름은 우경도.
그가 성윤의 맞은편에 앉는다.
생각에 빠졌던 그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연다.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든.”
“민국당에 첩자가 있습니까?”
“그건 예전에 최학인 대표님께 말했는데요, 요소요소에 숨겨 뒀다고.”
“그럼 이번에도……?”
우경도 보좌관의 입에서 다음 질문이 시작되려 했다.
하지만 성윤이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이번 질문은 내 차례. 그쪽이 우리 박정우 보좌관을 만나려는 이유는 뭐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이미 성윤에게 모두 들어가고 있었다.
성윤의 멘탈을 위협하기 위해 정우를 섭외하려 한다는 것.
정우의 아버지.
그리고 서두르는 최학인 대표.
성윤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건드렸다.
일정한 속도로 툭툭 소리가 불안하게 들릴 때 성윤이 입을 연다.
“우경도 보좌관님.”
우경도 보좌관이 시선을 들어 성윤을 본다.
그런데 소름 끼치도록 매서운 눈빛이 그를 쏘아보고 있다.
우경도 보좌관이 순간 움찔거릴 때, 성윤의 입에서 눈빛보다 악마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정우 보좌관을 건들면…… 민국당은 괴멸될 겁니다.”
그 말이 꼭 ‘너 죽어.’라는 말처럼 들려온다.
‘뭐, 뭐야…….’
우경도 보좌관은 성윤이 두려웠다.
하지만 민국당 당 대표의 보좌관이 쫄아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최대한 담담한 척 입을 연다.
“민국당이 괴멸된다니요. 지금 우리 당을 무시하는…….”
“무시하는 게 아니라 법은 지키자는 말입니다. 선 지키세요. 넘어가면 ‘죽일’ 겁니다.”
“……!”
순간, 우경도 보좌관의 귓가에 최학인 대표의 목소리가 스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했는데도 협상이 결렬된다면…… 죽여.”
성윤이 그 계획까지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우경도 보좌관은 마른침을 삼킨다.
‘도대체 우리 당의 내부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정치도 정보전이다.
내부가 뚫렸다면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가 상당히 줄어든다.
우경도 보좌관은 입을 닫았다.
그는 성윤이 아니라 정우를 만나러 왔다.
어차피 성윤과는 할 말도 없었고 계속 입을 벌려 봤자 코너로 몰리니까.
이럴 땐 침묵이 이득이다.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려 했는데 이어진 성윤의 말은 다시 그를 충격에 빠뜨렸다.
“우경도 보좌관님, 내년 총선에 나가 볼 생각 없습니까?”
“네?”
“보좌관의 미래라는 게 뻔하잖아요. 배지 한번 달고 싶어서 정치에 입문했는데, 공천을 받는 것은 얼굴이 알려진 아나운서, 갑자기 들어와 돈을 뿌려 대는 돈 많은 기업가, 착한 척하는 시민 단체장, 또는 운동권 선후배들이지 보좌관님이 아니에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최학인 대표가 공천을 줄 것 같아요? 당선되는 순간 하인이 아니라 똑같은 의원 나리가 되는 것인데?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신분 상승의 기쁨을 누려라? 최학인 대표가 그런 걸 시켜 줄 것 같아요?”
우경도 보좌관의 얼굴이 붉어진다.
할 말이 없는 거다.
그 스스로도 예상하고 있는 거니까.
그를 보며 성윤이 한마디 더 쐐기를 박았다.
“공천 한 번 받지 못하고 여의도나 기웃거리는 미래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집에 가셔도 좋아요.”
성윤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우경도 보좌관을 바라봤다.
인상을 쓰고 있지만 엉덩이를 떼지 않는다.
그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다가 오히려 입을 연다.
자존심을 꺾으며…….
“그, 그래서요? 여당에서 공천을 줄 겁니까?”
성윤이 조용히 웃었다.
거의 넘어왔다.
“아뇨. 입당해 봤자 이념이 안 맞는다며 몇 달 안에 떠날 사람에게 공천을 왜 줍니까?”
“지금 놀리시는 겁니까!”
우경도 보좌관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다.
협박에 이어 무시 그리고 희망과 절망…….
성윤이 그의 속마음을 들으며 적재적소에 들었다 놨다 하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공천은 민국당에서 받으세요, ‘직접’. 그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뭐, 뭐요?”
여당 대표가 야당의 공천에 관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도와준다니.
우경도 보좌관이 황당한 표정으로 성윤을 바라봤다.
“들어 본 적 있죠? 내가 타국에서 들어온 불법 자본을 쫓고 있다는 소문. 그거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민국당 의원이 대거 들어 있습니다.”
“……!”
“내가 그 이름을 퍼뜨렸을 때, 그래서 민국당이 혼란스러울 때, 한자리 떡하니 차지하세요. 세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도와드리죠.”
“……!”
“그리고 원한다면 그 뒤도 마찬가지. 새로운 민국당의 국회의원이 되어 당권을 잡는 것까지 돕겠습니다.”
우경도 보좌관의 머릿속에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혼란은 기회를 만드는 법이고 성윤이 건네준 돈은 동아줄이 될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최학인 대표와 지켜야 할 의리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 속마음도 성윤이 들었다.
“보좌관님, 정치를 왜 하는 겁니까? 최학인 대표를 모시려고? 그런데 웃기지 않아요? 최학인 대표는 도제성 의원을 모시고 있어요. 조선 시대도 아니고……. 착각하지 마세요!”
갑작스러운 호통에 우경도 보좌관이 움찔거렸다.
그를 보며 성윤이 나직이 말한다.
“보좌관님, 정치는 누구를 모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우경도 보좌관이 큰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찬물을 마신다.
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낀 거다.
“왜 제게 그런 제안을 하시는 거죠?”
“최학인 대표의 보좌관이니까요. 그동안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지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 손으로 칼을 쥐고 최학인 대표를 찌르라고요? 그건 사람으로 할 짓이 아니에요! 못 합니다.”
“찌르라는 것 아닙니다, 청출어람하라는 거지.”
성윤의 말을 따르면 민국당은 반드시 분열된다.
그리고 여당이 원하는 것이다.
우경도 보좌관은 더 들을 것 없다는 듯 몸을 일으킨다.
더 들어 봤자 궤변에 흔들릴 뿐이다.
어떻게 최학인 대표를 찍어 누를 수 있을까…….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시간 낭비였어.’
정우를 섭외하려 했는데 오히려 개런티를 듣고 앉아 있었다니…….
“그만 가 보겠습니다.”
성윤이 아쉬움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세요. 그런데 최학인 대표에게는 이렇게 변명하세요. ‘이번 약속에 이성윤이 같이 나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요. 그래야 보좌관님이 생각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생각요?”
“청출어람.”
“그런 생각 할 시간은 없습니다.”
우경도 보좌관이 몸을 돌려 미닫이문 앞에 선다.
그 뒤에서 성윤의 목소리가 흘렀다.
“하나 걱정되는 게 있어요. 최학인 대표는 뭘 그렇게 서두르는 겁니까?”
“……!”
“말리세요. 그러다 다쳐요. 최학인 대표만 다치는 게 아니라 민국당까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경도 보좌관이 방을 떠났다.
성윤은 고개를 틀어 창밖을 본다.
꿈속을 기억해 보면 우경도 보좌관은 10여 년 후 국회의원이 된다.
물론 그때는 최학인이 없던 시절이며 성윤 역시 민국당이었던 그날…….
우경도 보좌관은 나름 괜찮았던 국회의원이었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그려진 지도…….’
성윤은 정치 지도를 재구성하려 한다.
대한당과 민국당의 고인 물을 벗어난 다음 시대…….
‘그 지도에 어울릴까?’
***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정우가 들어왔다.
그가 성윤의 맞은편에 앉는다.
“뭐래요? 저를 왜 보자고 한 거예요?”
“너 섭외한다고.”
“저를요? 아쉽네요, 몸값이 얼마인지 알고 싶었는데.”
성윤은 물끄러미 정우를 바라봤다.
몸값은 정우의 복수…….
정우의 아버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놈의 흔적.
어떻게 이야기를 해 줘야 할지 고민했다.
“네 아버지.”
“아버지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잡아넣으라고 지시했던 안기부 요원. 모든 것을 지시했던 그 손가락. 그 자료를 모두 폐기하고 도망가서 잘 먹고 잘 사는 놈. 그놈의 정보.”
정우의 눈빛이 순간 서늘해졌다.
하지만 금방 평소대로 돌아온다.
“그걸 몸값으로 제시했다고요? 미련한 놈들이네요. 그건 의원님이 해결해 준다고 했잖아요. 에이, 더 큰 것을 딜했어야지, 흐흐.”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결해 줄게.”
정우는 확실히 연기가 안 되는 놈이다.
성윤을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로 웃는 게 티난다.
***
우경도 보좌관은 민국당 당사에 도착했다.
이제 있었던 일을 보고할 시간이다.
최상층으로 올라가자 대표실 앞을 지키고 있는 비서가 허리를 굽힌다.
“대표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경도 보좌관은 한숨을 내뱉으며 문 앞에 섰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계속 고민했다.
‘솔직히 말해?’
성윤이 제안했던 것.
타국의 불법 자본을 조사한다는 소문은 진실이었다.
그것을 통해 민국당을 흔들어 주겠다.
자본도 밀어줄 테니 세력을 만들어 공천을 받아라.
이 모든 것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비서가 입을 연다.
“들어가십시오.”
우경도 보좌관이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확 열지 못한다.
아직도 고민이다.
‘보고하지 마?’
성윤이 말했다.
우경도 보좌관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 목소리를 기억하던 우경도 보좌관이 픽 웃었다.
‘미친놈.’
최학인 대표와 십수 년을 함께했다.
인간의 삶은 이득만 쫓는 게 아니다.
의리라는 것도 존재한다.
그런데, 성윤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고민하고 있다니.
‘인간이 덜 됐네.’
성윤은 말했다.
최학인 대표의 아래에서는 공천을 받을 수 없다고.
우경도 보좌관 역시 그 말에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학인 대표는 항상 말했었다.
-자네의 고생은 잊지 않아. 반드시 보답할 거야.
보답할 거다.
항상 주변 사람을 먼저 챙기겠다던 최학인 대표다.
지금은 때가 아닐 뿐이다.
묵묵히 기다리면, 언젠가 보좌관 생활을 청산하고 당당히 의원이 될 수 있을 거다.
우경도 보좌관은 상념을 떨친 후 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
이준대가 보인다.
최학인 대표와 뭔가 이야기를 하던 중이다.
인사를 꾸벅하는데 최학인 대표가 우경도 보좌관을 향해 손을 든다.
“잠깐만.”
최학인 대표는 우경도 보좌관의 보고는 잠시 뒤로 미룬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준대와 대화를 나눈다.
“자네는 신인이야. 처음부터 텃밭을 주는 것은 어려워. 특혜를 줬다며 시비 거는 사람이 나올 거야.”
공천에 대한 이야기.
우경도 보좌관은 멍한 눈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봤다.
“가능성이 큰 곳으로 만족해.”
이준대는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매만진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 지역을 관리하는 게 좋겠죠?”
“그래, 산악회와 각 향우회부터 찾아봐. 후원 넣는 것 잊지 말고.”
이준대에게는 꽃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의 꽃길을 지켜보던 보좌관의 머릿속에 성윤의 목소리가 스쳤다.
-공천을 받는 것은 얼굴이 알려진 아나운서, 갑자기 들어와 돈을 뿌려 대는 돈 많은 기업가, 착한 척하는 시민 단체장, 또는 운동권 선후배들이지 보좌관님이 아니에요!
이준대는 돈을 뿌려 대는 돈 많은 기업가다.
민국당에 입당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그리고 자신은 최학인 대표의 옆에서 10여 년을 보좌한 보좌관이다.
그런데 그는 공천에 기역자도 들어 본 적이 없고 정치를 해 본 적도 없는 이준대에게는 공천 소리가 오가고 있다.
‘뭐지?’
그의 눈동자가 흔들릴 때, 이준대와 최학인 대표의 대화가 끝났다.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이준대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린다.
멀뚱히 선 보좌관을 보며 생긋 웃어 준 후…….
“고생하세요.”
이준대가 방을 떠났다.
그제야 최학인 대표의 시선이 우경도 보좌관에게 옮겨졌다.
최학인 대표가 우경도 보좌관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래, 박정우는 만났어?”
“……죄송합니다. 이성윤이 눈치를 채고 박정우와 함께 같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경도 보좌관은 성윤이 말해 준 변명을 입에 담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인상을 구기고 있는 최학인 대표를 바라보며 우경도 보좌관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대표님?”
“왜?”
“죄, 죄송하지만…… 저도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고 싶습니다.”
“뭐? 공천?”
“텃밭이 아니라 험로여도 괜찮습니다. 지정만 해 주신다면 지금부터라도 지역 관리…….”
최학인 대표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최대한 가식적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우 보좌관…… 지금은 당의 위기야. 미안한데, 공천은 경쟁력이 있는 놈, 얼굴이 알려진 놈으로 결정해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다음에 생각해 줄 테니까. 내가 다 계획해 놓고 있어. 알지, 내가 자네 아끼는 거?”
< 유혹은 달콤하다. -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