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85화 (285/300)

< 유혹은 달콤하다. - (4) >

정효순 주임의 뒤에서 여성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윤지예?’

성종 윤범성 부회장의 배다른 형제이자 꿈속에서 이준대의 아내였던 사람,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이준대를 만나는 중이다.

그런데 그녀가 성윤을 찾아왔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안녕하세요? 지난번 성종 윤 회장님의 장례식장에서 인사드렸었는데요. 기억하시나요?”

성윤과 윤지예는 윤 회장의 장례식장에서 만났었다.

그때 그녀가 했던 말이…….

-오늘은 보는 눈이 많아서 제가 누구인지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습니다. 나중에 따로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 말 이후로 뜬금없는 방문.

하지만 성윤은 당황하지 않는다.

빙긋이 웃으며 그녀를 소파로 안내했다.

“그럼요. 기억하죠. 성종 리조트 이사님이라고 하셨죠?”

그러자 그녀는 콧소리까지 내며 즐거워한다.

“기억하시네요?”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

잠시 후, 정우가 찻잔을 내려 둔 후 밖으로 나간다.

그러자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문을 들은 게 있어요.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소문?”

“대표님께서 불법적으로 들어온 일본 자본을 조사한다고 하던데…….”

성윤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그 소문은 곽부관을 통해 성윤이 퍼뜨린 것이다.

쓰레기들이 냄새를 맡고 찾아올 수 있도록…….

‘그런데, 윤지예가?’

그녀는 그쪽과 연관된 쓰레기가 아니다.

확신할 수 있다.

미안하지만 타국에서 돈까지 퍼 주며 관심을 가질 레벨이 안 되기 때문이다.

윤 회장의 핏줄이지만 드러낼 수 없고 손에 쥔 자산도 일반인에 비해 많을 뿐, 재계에서 거들먹거릴 수준은 절대 아니다.

외부에서 보면 돈 좀 있는 사람, 딱 그 정도 평가가 전부.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타국의 자본을 입에 올리다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성윤은 그녀의 속마음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속마음이 들려온다.

냉혹한 목소리로…….

-더 클 수 없는 사람……. 내 옆에 어울리지 않아. 미안하지만 이용 가치는 여기까지, 인연은 끝이야.

성윤이 눈동자만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가 생각하는 인연은 이준대다.

그러니까 이준대와의 인연을 끊겠다는 것.

‘뭐지?’

꿈속에서 그녀는 이준대의 아내였다.

현실에서도 만나는 중이다.

그래서 사람의 인연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끊겠다니.

두 사람의 사이가 사랑보다 이용 가치로 엮여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러운 놈들…….’

그녀의 속마음이 계속 들려왔다.

그녀는 중국, 동남아 자본과 권력자를 이어 주는 브로커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브로커를 통해 성윤과 뭔가 협상하려 한다.

그 브로커는…….

‘이준대?’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절로 욕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아 냈다.

이준대가 타국의 불법적인 자본을 연결하는 브로커라니…….

그는 막대한 자본을 손에 쥐고 있다.

그리고 성윤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역사상 최고라 손꼽힐 정도의 권력형 대통령이 되었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타국의 자본을 권력자와 연결시켜 주는 브로커 짓을 하고 있다.

‘미친 새끼.’

성윤은 한숨을 내뱉으며 시선을 들어 그녀를 향했다.

이준대에 대한 생각은 여기까지.

지금은 윤지예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고 있다.

그 얼굴이 마치…….

‘여우? 아니야, 구미호…….’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의 외모가 구미호 같다고는 생각했다.

구미호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인간의 간을 파먹는 요물…….

그리고 그녀 역시 이준대를 잡아먹어 목표를 이루려 한다.

‘마음에 드네.’

그녀는 구미호, 남자를 파멸시켜 성공하는 팜므파탈이다.

그 파멸의 대상은 현재 이준대…….

그녀가 정말 마음에 든다.

애국자처럼 보일 정도다.

성윤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속마음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모른 척 입을 열었다.

“일본 자본요?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그래요?”

그녀가 엷게 웃으며 다리를 외로 꼬았다.

속옷이 보일 정도로 아찔한 자세로…….

그리고 말을 잇는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불법 자본이 일본만 있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니죠?

그녀는 성윤이 알고 있는 정보가 일본까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대화는 정보를 가진 사람이 주도한다.

그녀는 자신이 흐름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기양양하게 다리까지 꼬며 말했는데…….

“알고 있어요. 중국과 동남아도 깊숙이 들어와 있죠.”

“네?”

성윤은 그녀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이제 잠시 그녀에게 줬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올 시간이다.

“그리고 윤지예 씨의 남자 친구 이준대, 그 사람이 브로커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

“지금은 윤지예 씨가 그 일에 얼마나 관여되어 있는지 파악하는 중이죠.”

“……!”

“그래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윤지예 씨의 아버지, 윤 회장님과 친분이 있는데, 그분의 딸을 구속시켜야 하나…….”

윤지예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준대가 브로커였다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윤 회장의 딸이란 것까지 알고 있다니.

실오라기 한 장 남기지 않고 발가벗겨진 느낌이다.

하지만 그녀는 표정 관리를 한다.

그녀 역시 혼외 자식으로 태어나 산전수전 겪은 사람이니까.

“저를 구속 시킨다고요?”

“고민하는 중이죠.”

“제 도움 없이 그쪽 자본을 엮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성윤은 잠시 고민했다.

그녀의 기를 꺾어 버릴까, 아니면 놔둘까.

어떤 것이 앞으로의 일에 유리할까.

그리고 잠시 꿈속에서 봤던 그녀를 기억해 봤다.

그녀는 이준대의 옆에서 병풍이었다.

이준대가 윤범성 부회장과 손잡을 때 다리를 놔준 게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현실의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성윤은 짧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녀를 잠시 내버려 두기로…….

그녀라는 존재가 이준대는 물론이고 성종 그룹에도 큰 변수가 될 것 같아서다.

“그러네요. 윤지예 씨의 도움을 받아야겠네요. 좋아요. 알고 있는 것과 원하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해 보세요.”

성윤은 정확히 선을 그었다, 지금의 대화가 거래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편이 그녀에게도 편했으니까.

그녀가 말한다.

“일본이 사채시장을 노리고 있다면 중국과 동남아는 유흥 시장을 노리고 있어요. 연예계를 시작으로 클럽, 매춘, 마약. 그리고 일본이나 중국이나 최종 목표는 똑같죠. 우리나라 고위층을 엮는 것.”

“…….”

“그럼 법을 상관하지 않고 다양한 사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방산 비리, 중국산 통신 보안 제품, 부동산 거래. 대한민국인데 거리에 붙은 ‘중국인 전용’, ‘일본인 전용’, ‘한국사람 출입 금지’. 그곳에 관계된 사람들을 알아 올게요.”

여기까지 말한 그녀가 살짝 웃는다.

“이게 터지면 총선에서 유리하겠죠?”

“총선은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고. 윤지예 씨는 원하는 것이나 말씀하세요. 뭐죠? 무엇을 원해서 날 찾아왔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윤범성 부회장을 구속시켜 주세요.”

“……!”

“자료는 최대한 준비할게요. 흐지부지 끝나지 않게 검찰에 힘만 실어 주세요. 박무혁 대통령의 임기 내 목표도 능력 없는 오너의 퇴출이잖아요? 윤범성 부회장은 손대는 사업마다 다 망했으니까 능력 없기로 참 유명하죠. 그러니까…….”

“윤범성 부회장이 구속된다고 바뀌는 게 있나요?”

성윤의 질문은 냉정했다.

윤범성 부회장이 구속된다고 그녀의 인생이 바뀌지는 않으니까.

그녀는 여전히 혼외 자식이며 성종 그룹에서 본다면 구멍가게인 리조트 하나를 운영할 뿐이다.

즉, 후계 구도에서 철저히 밀려나 있는 사람.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다르다.

“검찰보다는 대표님의 힘을 믿고 싶어요. 그리고 바뀌는 것? 그건 지켜봐야 아는 거죠.”

그녀의 얼굴에 자신감이 보인다.

드라마틱하게 회장에 오를 수 있다는 믿음.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

‘조사해 봐야겠어.’

성윤은 정기화 실장이 회장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윤지예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사전에 치워야 한다.

생각을 이어 가고 있는데 그녀가 조심스레 묻는다.

“……가능할까요?”

“그것도 제가 알아서 할 일이고……. 윤지예 씨는 불법적인 자본을 받은 사람들, 그 명단을 가져오세요. 그럼 윤범성 부회장에게 독방을 선물해 줄 테니까.”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진실된 미소가 떠올랐다.

윤범성 부회장이 구속되는 게 그렇게 기쁜가 보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연신 숙인다.

잠시 후, 그녀가 떠났다.

사무실에는 성윤만 남았다.

블라인드를 내려 창밖을 바라보던 성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준대…….’

꿈속에서 봤던 이준대는 이렇게까지 찌질하지 않았다.

그런데 권력을 얻기 위해 브로커 역할까지 하다니…….

이준대를 경계하고 있던 자신이 멍청하게 여겨질 정도다.

이제 그만 짓밟아야겠다.

***

“천오민이라고 합니다.”

강남의 한 한정식집.

최학인 대표의 앞에 천오민이 납작 엎드려 있었다.

천오민은 금괴를 밀수했던 경홍 건설의 새로운 대표.

지금은 성윤의 지시를 받아 최학인 대표의 아래에 들어와 있다.

최학인 대표가 술잔을 입에 대며 천오민을 바라봤다.

“김동만 의원의 아래에 있었다고?”

“네.”

천오민은 마른침을 삼켰다.

호랑이 굴에 들어와 호랑이와 눈을 마주치게 된 거다.

깡패 조직의 장을 맡고 있던 사람이지만 최학인 대표의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고 있다.

성윤의 앞에서와는 전혀 다른 위압감.

“술 한잔하게.”

그 말과 동시에 천오민의 앞에 냉면 그릇이 놓였다.

그릇에 술이 콸콸콸 담긴다.

그리고 어느새 주르륵 넘친다.

“마셔.”

“네.”

알코올은 사람의 본모습을 보여 줄 때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취하게 만드는 거다.

그러니까 최학인 대표 옆에 설 수 있는 마지막 테스트.

천오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냉면 그릇을 손에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탁!’ 하고 그릇을 내려 두며 최학인 대표를 바라봤다.

“마셨습니다.”

“한 잔 더 하겠나?”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시 술이 따라졌다.

천오민은 이번에도 술을 마신다.

취기가 확 올랐다.

하지만 꾹 참으며 냉면 그릇을 내려 뒀다.

그를 보며 최학인 대표가 묻는다.

“한 잔 더 하겠나?”

“가능합니다.”

다시 술이 따라졌다.

천오민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어려울 것 같은데…….’

하지만 다시 냉면 그릇을 쥔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 순간, 주변에 있던 경호원들이 천오민의 손목을 꽉 쥐었다.

더 술을 마시지 못하게…….

황당한 표정으로 최학인 대표를 바라본다.

그러자 최학인 대표가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연다.

“자네…… 내가 자네를 믿어도 되겠는가?”

“……!”

술에 취해서였을까? 아니면 최학인 대표의 목소리가 애절해서일까?

천오민은 울컥거림을 느꼈다.

그때 최학인 대표가 말을 잇는다.

“김동만 의원의 아래에 있었다면 이성윤을 만난 적이 있는가?”

“네?”

최학인 대표의 눈을 보고 있으면 거짓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천오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있습니다.”

최학인 대표는 조용히 천오민을 쏘아본다.

천오민은 심장이 쿵쿵쿵 울리는 것을 느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고 바닷가에 던져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다.

이곳은 적진, 그리고 최학인 대표는 적들의 왕…….

최학인 대표가 천오민의 눈을 쏘아보며 입을 연다.

“이성윤은 자네와 의리를 지킬 생각이 없어.”

“……!”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투.

천오민은 울리던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최학인 대표의 말이 이어진다.

“놈은 사람을 도구로 생각해. 이용 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리지.”

다행이다.

성윤과 천오민의 사이를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야당으로서 여당의 대표를 지적하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 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한 인물이라면 끝까지 보듬어야 한다고 생각해.”

“…….”

“자네,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겠는가? 죽더라도 그 넋은 우리가 안고 갈 게야.”

천오민이 못 배운 사람이라도 알 수 있다.

최학인 대표의 말은 진심이다.

그를 깡패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인간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천오민의 귓가에 성윤의 목소리가 스쳤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학인에게 신뢰를 얻으세요. 선택은 그다음에 하세요, 민국당에 계속 붙어 있을지 아니면 제 손을 잡을지.”

현 대한민국을 양분하는 권력자를 꼽으라면 성윤과 최학인이다.

천오민의 눈이 반짝인다.

‘난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있어.’

계산기는 나중에 두들기면 된다.

천오민이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를 보며 최학인 대표가 빙긋이 웃는다.

“그럼, 해 줘야 할 게 있어.”

그 말에 조용히 서 있던 이준대가 천오민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앞에 사진 한 장을 내려 뒀다.

“이 사람을 만나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준대의 말에 천오민의 시선이 사진으로 향했다.

‘어?’

정우의 얼굴이 보인다.

< 유혹은 달콤하다.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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