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84화 (284/300)

< 유혹은 달콤하다. - (3) >

적혀 있는 이름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한상국!’

망치로 뒤통수를 처맞은 느낌.

욕이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국민의 표를 받아 대통령에 오른 사람이 타국의 자본을 씹어 먹고 있었다니…….

당장 찢어 죽여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성윤은 화를 눌러 참으며 시선을 내렸다.

돈을 받은 날짜와 액수가 보인다.

액수는 천만 원에서 10억까지……. 모두 합치면 이백 억이 훌쩍 넘어간다.

그리고 돈을 받은 날짜는 레임덕에 빠진 후다.

그럼, 받은 이유가 뻔해진다.

퇴임 후에도 그동안의 권력을 유지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마귀처럼 돈을 긁어모았다.

한상국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국가의 안녕한 미래가 아니라 영원한 권력이었으니까.

성윤은 이를 갈며 한 장을 더 넘겼다.

정치인의 이름이 보인다.

대한당과 민국당은 물론 여당의 의원도 두 명이나 있다.

그리고 외교부 장관 등 고위직은 물론이고 국립대학 교수 같은 학자, 각 기업 CEO의 이름까지.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일본 자본의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게 한 종교 단체의 장이이었다.

성윤은 눈을 감았다.

입에서는 쓰린 웃음이 절로 흐른다.

성윤의 변하는 안색을 보던 곽부관이 조심스레 물었다.

“……계속 가실 겁니까?”

그 말에 성윤이 눈을 떴다.

눈에는 시퍼런 살기가 가득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곽부관의 등꼴이 오싹해질 정도로…….

하지만 그 눈빛과 달리 성윤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가야죠.”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을 외면하면 내일은 지옥이다.

성윤의 시선이 천천히 곽부관에게 향했다.

“곽부관 대표님, 제 대답은 들으셨고 이제 대표님의 대답을 듣고 싶은데요.”

“네?”

“노선을 정하세요. 저쪽에 붙을지 아니면 이쪽에 붙을지.”

곽부관은 눈동자를 굴렸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성윤의 상황이 편해질지 험해질지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본 자본을 뿌리 뽑기 위해선 조력자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잠시 생각에 빠졌던 곽부관이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베팅한다.

“제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제 치부를 덮어 주실 겁니까? 그리고 이 사업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이권을 주실 수 있습니까?”

하지만 성윤의 답변은 들려오지 않는다.

성윤은 조용히 흐르는 강을 보고 있다.

그러자 곽부관이 성윤을 재촉한다.

“협조하는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세 가지를 약속하죠.”

곽부관의 눈이 반짝였다.

성윤은 어마한 돈과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주는 보상의 스케일은 곽부관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나는 당연히 내 치부를 폐기하는 거지! 그럼, 나머지 둘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나, 얼굴 공개를 막아 줄게요.”

“네? 얼굴 공개요?”

“아들이 사춘기에 들어갔다고 들었어요. 아빠 얼굴을 뉴스에서 보면 창피하겠죠.”

“그게 무슨……?”

“둘,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죠.”

“공정한 재판이라니요!”

“셋, 그쪽 목숨은 지켜 주겠습니다.”

“대표님!”

곽부관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성윤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지금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성윤의 표정은 변함없다.

처음과 똑같이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곽부관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건넸다.

“보세요.”

곽부관이 휴대폰을 받아 화면을 확인한다.

기사가 보인다.

경제 사정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의 토막 기사…….

성윤이 입을 열었다.

“그분…… 당신이 운영하는 점조직에서 돈을 빌렸던 분이에요. 회사를 퇴직해서 가게를 차렸지만 잘 안 됐고. 사채에 손을 댔죠. 알아보니까 오백을 빌렸고 지금까지 천이백을 갚았네요. 그런데, 아직 원금도 못 갚았대요.”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이 사람이 누군지 몰라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에요!”

곽부관은 강하게 외쳤다.

하지만 성윤의 목소리는 사무적으로 이어진다.

“그분에게도 곽부관 대표와 똑같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아들이 있어요. 그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던 날, 학교 가는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뭔 줄 압니까? 밥솥에 밥 있으니까 학교 다녀와서 먹어.”

“…….”

“그런데, 더 웃기는 게 뭔지 알아요? 그분의 장례식장에 당신네 점조직 조직원들이 가장 먼저 가서 대기하고 있었대요, 부조금 가져가려고.”

강바람이 불어왔다.

잠시 멍하니 있던 곽부관이 억울한 목소리를 토해 낸다.

“돈 빌려준 게 잘못입니까! 그 사람들, 형제도 친척도 친구도 외면했어요! 그때 우리가 빌려준 거예요! 그게 죄입니까!”

“말 똑바로 하세요. 빌려준 게 아니라 목에 족쇄를 채운 거죠. 수천 퍼센트의 이자…….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은 죄. 상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피 말려 죽인 죄! 그 동안 당신 때문에 고통당한 사람들, 그 책임은 져야죠.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 수는 없잖아요?”

“하!”

성윤의 눈빛에 협상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곽부관은 턱살이 흔들릴 정도로 어금니를 콱 다물었다.

그리고 말을 씹어 뱉는다.

“노선 정하라고 하셨죠? 네, 정했습니다. 감옥에 2~3년 다녀오죠. 그리고 제가 다시 나왔을 때 대표님…… 그때도 그 자리 꼭 지키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성윤이 손을 살짝 들었다.

정우가 다가와 고개를 숙인다.

“말씀하십시오.”

성윤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흘렀다.

“국세청에 연락해서 CL 머니 조사하라고 해. 십 원짜리 하나까지 모두.”

곽부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성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검찰과 경찰에 연락해. 한 달 안에 점조직 소탕하라고.”

“네.”

“지금 이 시간에도 터무니없는 이자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니까 내가 정한 한 달이라는 기간, 그 기간을 지키지 못하면 윗선은 책임을 지고 옷을 벗어야 할 거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천 대표 쪽 사람들이 일본 깡패와 연결되어 있지?”

“네.”

성윤이 손에 든 서류를 정우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이거 일본 깡패들에게 전달하라고 해. 명단을 작성한 사람이 곽 대표라는 것도 알리고.”

“네.”

일본 깡패들 사이에 곽부관의 이름이 소문나면 대한민국 사채시장에 돈을 집어넣고 있는 물주의 귀에도 그 이야기는 들어갈 거다.

그럼, 곽부관의 목숨은 정말 위험해진다.

곽부관의 얼굴이 순식간에 덜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성종 윤범성 부회장에게도 연락해. 사채 업자 새끼 하나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왜 접근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

“마지막으로 기자들에게 부탁해. CL 머니 곽부관 대표가 일본에서 받은 돈으로 명단에 적힌 사람들과 뭘 하고 놀았는지 자극적인 야설 하나 써 달라고.”

성윤이 벤치에서 일어나 곽부관을 향했다.

벌겋게 달아올랐던 곽부관의 얼굴은 허옇게 질릴 정도로 핏기가 빠지는 중이다.

성윤이 그의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방금 뭐라고 했죠? 감옥에 2~3년 다녀오는 동안 그때도 이 자리 꼭 지키고 있으라고요? 돈놀이하면서 국회의원 몇 명과 술 마셔 봤다고 내가 우습게 보이나?”

“대, 대표님…….”

“그리고 뭐? 치부를 덮어 달라고? 새로운 이권 사업을 넘겨 달라고?”

“죄, 죄송합니다.”

성윤이 손을 올려 그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곽 대표, 우리나라의 역사를 기억해 보세요. 권력자들의 단체 스캔들이 언론에 실리면 어떻게 됐죠?”

“……!”

“그럼, 저 명단에 적힌 이름이 언론에 실리면 곽 대표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곽부관의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성윤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계속 말한다.

“잘 아시죠? 최초 제보자는 사망해요.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면 ‘자살당했다’고 하죠. 그리고 이 사건의 최초 제보자는 곽 대표님이네요.”

“대, 대표님!”

“내가 약속한 세 가지 중 세 번째. 그쪽이 감옥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목숨은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곽부관은 울먹이고 있다.

툭 치면 눈물을 흘릴 것처럼…….

그리고 그가 성윤이 원하는 말을 내뱉는다.

“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

청와대…….

박무혁 대통령은 성윤이 가져온 서류를 넘기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 새로운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얼굴색이 변한다.

돈을 향한 탐욕, 권력을 향한 간절함, 전 대통령까지 연결되어 있을지 몰랐으니까.

심지어 저명한 교수, 선한 미소를 짓는 종교인까지…….

절대 그럴 것 같지 않던 사람들의 이름이 한가득.

모두 위선이었다.

마지막 장을 읽고 서류를 덮은 박무혁 대통령이 손에 쥐었던 서류를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그리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다 쓸어.”

“알겠습니다.”

“발표는 언제할 거야?”

“당장 발표할 생각은 없습니다. 잠시 감춰 둘 생각입니다. 중국과 동남아 자본까지 확인한 후에 발표하겠습니다.”

박무혁 대통령이 손가락으로 서류를 툭툭 두들겼다.

“오래 묵히면 자네가 위험할 수도 있어.”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 댄다.

그런데, 저들은 쥐나 지렁이가 아니다.

권력자다.

저들이 손잡으면 성윤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

그래서 냄새를 맡기 전에 단번에 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냄새…… 풍길 겁니다.”

“뭐?”

“그래야 파리도 오고 모기도 오고…… 온갖 벌레가 다 꼬이겠죠.”

일본 자본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으면 중국과 동남아 자본도 관심을 갖게 될 거다.

그들의 목적도 일본 자본과 똑같이 대한민국을 자본 식민지화시키는 것.

같은 목적을 가진 일본의 흔들림은 그들에게 좋은 교과서가 될 테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움직임이 드러날 게 분명하다.

“그때, 한 번에 잡겠습니다.”

***

-이성윤이 냄새를 맡았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는데 명단을 파악한 모양이에요.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고요.

곽부관은 명단에 올라간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있었다.

물론 성윤의 지시다.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고 그들이 호들갑을 떨어야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돈을 받은 사람들도 화들짝 놀라 어떤 반응을 할 테니까.

그리고 그 시각, 성윤은 서안시 사무실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업무를 보고 있었다.

앞에 정우가 서 있지만 그 역시도 성윤에게 중국이나 해외 자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지금은 민물낚시를 하는 것처럼 미끼를 던져 놓고 기다리는 중이니까.

설레발을 쳐서 몰려온 물고기를 도망가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도둑이 제발 저리다는 말처럼 가장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범인일 거다.

“국민연금 공단 이사장이 한번 보재요.”

“국민연금 공단? 거기서 왜?”

“의원님께 자문을 받고 싶은가 봐요. 의원님이 벤처 기업 투자해서 엄청난 수익을 남기잖아요. 수익률로 따지면 대한민국 1등일걸요. 그리고 박무혁 대통령님이 적극 추천했다고 하던데요.”

국민연금의 투자 이율이 박살 나는 중이다.

신뢰를 땅바닥에 처박혔고 여기저기서 쌍욕을 처먹고 있다.

그래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성윤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것 같다.

솔직히 성윤은 투자에 대한 것은 잘 모른다.

오직 미래의 지식으로 투자를 하는 중이다.

AI 회사 리제가 그랬고 우리나라의 각 벤처기업 역시 미래에 성공하는 것을 알고 접근한 거다.

하지만…….

‘국민연금 공단과 미래 지식을 공유해야겠네…….’

국민연금 공단은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매번 나오는 기사는 ‘많이 내고 덜 받자’ 또는 ‘기금 고갈’ 등의 이야기다.

그렇게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윤이 달력을 확인했다.

“시간 잡아. 보자고 해. 밥은 그쪽에서 사라고 하고.”

“옙.”

“그리고…… 윤범성 부회장에게 연락 왔어요.”

“그쪽도 시간 잡아.”

정우가 다음 말을 이어 가려 할 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정효순 주임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조금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의원님, 손님 왔는데요.”

“손님요?”

< 유혹은 달콤하다.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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