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혹은 달콤하다. - (1) >
곽부관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검사 한 명도 벅차다.
그런데 여당 당 대표의 등장이라니…….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몰린 기분이다.
“대, 대표님……?”
곽부관은 간절한 목소리로 성윤을 불렀다.
하지만 성윤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그게 강자의 특권이다.
“내일 중으로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을 통해서 공문을 하나 보낼 겁니다. 지금부터 말하는 것 모두 보고해 주세요. 대출 잔액부터 이용자 수, 대출 금리, 대출 유형, 연체율, 매입 채권 잔액…….”
여기까지는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성윤의 말은 점차 깊은 곳을 향해 찔러 간다.
“몇 년 전부터 닥치는 대로 소형 업체를 인수했죠? 그곳을 베이스로 만든 점조직 현황. 불법 채권 추심 스크립트와 현황.”
“대표님!”
CL 머니의 치부까지 까발리라는 것이다.
듣다 못한 곽부관이 성윤의 목소리를 막아섰다.
“저희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절차대로 진행하십시오!”
성윤이 담뱃재를 툭툭 털며 곽부관을 쏘아봤다.
그러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절차요? 좋습니다.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죠. 절차대로 국세청이 움직일 겁니다.”
“……!”
“그다음 절차는 검찰이 행동하겠죠.”
곽부관이 붉어진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대표님!”
“아직 당황하지 마세요. 끝이 아니니까요. CL 머니의 모든 것을 압수 수색할 겁니다. 일반 사원의 노트부터 데스크톱까지. 그리고 소환하겠죠. 그럼, 곽부관 대표님은 포토 라인에 서게 될 겁니다. 그때도 말하세요, 절차대로 조사 잘 받고 오겠다고……. 그게 싫으면 공문에 협조하세요. 피하거나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곽부관의 턱에 힘이 꽉 들어갔다.
치아가 부서질 듯 이를 갈며 대답했다.
“그러죠. 최대한 정성스럽게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곽부관의 말투는 아직 뻣뻣하다.
뒤에 있다는 백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저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국회의원과 술 몇 번 마셔 봤다고 성윤이 만만해 보이는 것인지…….
어쨌든,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줄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어렵지 않다.
성윤이 품에서 구깃구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내 곽부관의 앞으로 밀어 뒀다.
“읽어 보세요.”
곽부관이 종이를 손에 들고 불안한 눈빛으로 펼쳤다.
그의 얼굴이 박살 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눈동자는 흔들리고 손끝이 파르르르 떨린다.
“그쪽에서 사용하는 오토바이는 액셀이 왼쪽 핸들에 붙어 있다면서요?”
구겨진 종이에는 점조직에서 몇 대의 개조 오토바이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즉, 곽부관의 점조직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곽부관이 창백하게 굳어진 얼굴로 성윤을 향한다.
“이, 이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국정원과 검찰의 정보력을 동원해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까지 곽부관에게 설명해 줄 의무는 없다.
조용히 앉아 있던 박중석 검사가 입을 연다.
“지금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하냐? 머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해라. 여기까지 조사했다면 CL 머니는 물론 네 팬티 속까지 탈탈 털었다는 거야.”
곽부관이 무너지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눈동자는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어떤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박중석 검사가 계속 말한다.
“그동안 조사한 것 가볍게 흔들어 볼까? 떨어질 먼지가 태산처럼 쌓일걸? 그동안 저질렀던 불법적인 대출, 협박, 폭력……. 돈을 갚으라면서 매춘을 알선한 적도 있다며? 개 같은 새끼.”
박중석 검사의 입에서 욕설이 나왔지만 곽부관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전부다.
현실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러더니 하나의 의문을 찾았나 보다.
성윤을 향해 참담한 목소리로 묻는다.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성윤은 검찰이라는 칼을 휘두르는 중이다.
그럼, 죄를 찾아 짓밟으면 된다.
그런데 증거 자료를 던져 두며 협박을 하고 있다.
그 이유가 있을 거다.
“도대체 저한테 왜 ……?”
곽부관은 질문을 하면서도 잔머리를 굴렸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대부 업체에서 줄 수 있는 것은 돈이 전부…….
그런데 성윤의 주머니에 돈이라는 것은 이미 넘치도록 많다.
성윤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곽부관 대표님…… 지금 물어볼 말은 ‘왜 이러시는 겁니까?’가 아니에요.”
“네? 그, 그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는 말이지!”
“……앞으로요?”
곽부관의 눈동자가 떨려 왔다.
바보가 아닌 이상 성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밖에 없다.
첩자가 되라는 뜻…….
그런데,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는 상상 이상으로 거칠고 탐욕스러운 자들이다.
그들에게 돈이란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한 법이고 돈이 된다면 그 생명을 끊는 것은 일도 아니다.
만약 곽부관이 첩자가 되어 그들의 이득에 누를 끼친다면…….
‘난 죽을 거야.’
그의 눈동자가 성윤을 향했다.
‘어쩌지?’
그런데, 성윤의 제안을 거절하기도 어렵다.
성윤은 이 나라의 권력자다.
게다가 곽부관의 티끌을 태산만큼 갖고 있다.
성윤이 검찰을 압박하면 곽부관의 인생은 뻔해진다.
추징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감옥에서 평생 동안 살아가야 할 거다.
곽부관이 눈을 콱 감았다.
‘그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잔인한 폭력은 공권력일지도 모른다.
돈도 뺏고 자유도 뺏고, 원하는 대로 상대를 부숴 버릴 수 있으니까.
고민에 고민을 이어 가는데 성윤이 곽부관의 앞으로 담배를 밀었다.
“생각할 시간을 드리죠.”
“가, 감사합니다.”
곽부관은 힘없는 눈동자로 담배를 손에 쥐었다.
뿌연 연기가 룸을 가득 채울 때 멍하니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잠시 후, 곽부관이 결의에 찬 눈빛으로 담배를 비벼 껐다.
“생각은 끝났죠?”
“네.”
“그럼, 물어보세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라고.”
곽부관이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잔을 탁 내려 두며 말한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곽부관 대표님의 뒤에 있는 그림자, 그 사람이 일본 자본과 우리나라 정, 재계를 연결하는 브로커겠죠? 그 사람의 이력서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일본 자본이 우리나라 사채시장을 집어삼키는 중에 뇌물을 먹고 눈감은 사람들 있죠? 명단을 적어 오세요.”
“대, 대표님!”
뇌물 먹고 눈감아 준 사람들, 그들도 권력자다.
그들도 공권력을 휘둘러 곽부관을 감옥에 처넣을 수 있다.
“그 사람들의 명단을 적으면 제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성윤이 오토바이 현황이 적힌 종이를 손에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
“이미 위험한 것 같지 않나요? 그리고 그중에 내가 제일 위협적일 것 같은데, 아닌가요?”
사실이다.
곽부관은 다시 입을 꾹 닫는다.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럼 마지막으로…… 일본 자금과 관련된 모든 정치인들의 이름도 적어 오세요.”
“대표님…….”
거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간절한 목소리로 성윤을 불렀다.
하지만 성윤은 봐주지 않는다.
단호한 목소리로 그의 대답을 재촉했다.
“대답하세요.”
곽부관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는 일단 바짝 엎드려 발발 기는 척 행동하기로 했다.
이 상황만 빠져나가면 살아날 수 있으니까.
‘내일이 되면…….’
참모나 관련된 자를 불러 무너진 하늘에 솟아날 구멍을 낼 생각이다.
며칠만 시간을 벌면 불법적인 자료를 모두 소각할 수도 있고!
‘그 명단을 갖다 주면 난 정말 죽어! 살해당할 거야. 머리는 경기도에 몸은 강원도에 팔다리는 바다에 던져지겠지! 그런데 미쳤어, 그 이름을 적어서 바치게?’
그가 한숨을 내쉬며 거짓된 대답을 내뱉는다.
“알겠습니다.”
일단 당장의 고비만 넘길 생각이다.
그런데 그 말과 동시에 성윤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동시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날카롭게 생긴 남자 두 명이 룸으로 들어왔다.
곽부관이 멍한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누, 누구죠……?”
“곽부관 대표님이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경호원을 준비했습니다. 24시간 함께하면서 곽부관 대표님을 ‘밀착’ 가드할 겁니다.”
장한수 실장이 훈련시킨 사람들이다.
곽부관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진다.
‘경호원은 개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거다.
딴짓을 하는지 안 하는지…….
즉, 개목걸이가 채워진 채로 성윤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곽부관이 어색하게 웃는다.
“제 개인 경호원도 있어서요. 하하.”
“훨씬 실력 있는 사람들이니까 이참에 바꾸세요.”
성윤은 단호했다.
곽부관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에 없는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뿐이었다.
곽부관은 성윤이 붙여 준 경호원 두 명과 함께 떠났다.
그리고 룸에는 성윤과 박중석 검사만 남았다.
문이 달칵 열리고 정우가 들어왔다.
“여기 마담이랑 웨이터들도 다 이야기 끝냈어요. 이제 가야죠?”
박중석 검사가 양주를 손에 쥔다.
“이거 수십만 원이라고 하던데. 남기고 가면 아깝지 않나요? 한잔 어떠세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인다.
잠시 앉았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성윤이 정우를 바라봤다.
“어때?”
“좋죠.”
각자의 잔에 술이 채워졌다.
술잔이 비워지는 것은 순간이다.
성윤이 다시 잔을 들었고 박중석 검사가 술병을 기울이며 입을 연다.
“대표님이 어떤 계획을 세우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 계획요?”
“곽부관에게 명단을 받아 터뜨리려는 거죠?”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터뜨릴 생각이 없다면 굳이 받을 필요도 없으니까.
그런데 박중석 검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성윤을 바라본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한 명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다.
다수의 권력자, 그들의 집단을 건드는 일이다.
“이런 게 성공한 적이 있었나요?”
곽부관에게 받아 낼 명단에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그리고 기업인, 언론인 등 다양한 분야의 권력자가 가득할 게 분명하다.
“다수의 권력자가 얽히고설킨 사건에 진실이 드러난 적이 있었나요?”
“…….”
“언론이 움직일 겁니다. 진실을 음모론으로 바꾸겠죠. 지금껏 그랬잖아요.”
박중석 검사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지금껏 권력자와의 싸움에서 진실을 폭로한 사람의 마무리는 비슷했으니까…….
언론은 오히려 고발자의 치부에 집중했다.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라 관심종자 또는 정신병자로 만들기 위해.
그럼, 고발자는 악당이 된다.
그렇게 진실은 흐지부지 사라졌다.
그것은 성윤도 알고 있었다.
성윤이 잔을 입에 댔다.
독한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간다.
그리고 가볍게 잔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돈을 받아 타국의 노비가 된 사람들, 우리나라가 아니라 그쪽의 편에 선 사람들. 그런데 그 사람이 애국자인 척 가식적으로 웃고 있어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면서요.”
“…….”
“차라리 몰랐다면 모를까, 위험하다고 안 하면 여당 대표로서 창피한 일이죠.”
“대표님…….”
“여기서 모른 척하면 국회의원 배지를 반납해야죠.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방법은 머릿속에 세워 뒀으니까요. 그리고 즐기세요. 그 명단이 발표될 때, 그 사람들이 짓는 표정을 기대하면서요.”
옆에서 술을 홀짝이던 정우가 가볍게 웃는다.
“의원님은 그 사람들 표정을 보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아요.”
“취미 생활이야.”
두 사람의 태도가 느긋하다.
그 모습에 박중석 검사도 한시름 놓은 것 같다.
그가 다시 술병을 든다.
그리고 성윤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그런데 곽부관은 봐줄 겁니까? 협조한 대가로?”
“봐주다니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박중석 검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네? 안 봐줘요?”
정우가 다시 웃는다.
“의원님은 악마예요. 악마들의 악마.”
“악마들의 악마는 뭐야?”
“그런 거 있잖아요. 도둑의 집을 훔치는 도둑. 뭐, 그런 거.”
***
집에 들어온 것은 새벽 2시가 넘어서였다.
몸은 피곤했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정신은 잘 벼려진 칼처럼 예리했으니까.
성윤은 창가에 몸을 기대고 밖을 향했다.
눈은 어두운 밤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은 내일의 대한민국을 보고 있다.
‘뒤집어지겠네.’
< 유혹은 달콤하다. -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