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81화 (281/300)

< 한일전 -(6) >

***

경기도 양평, 약 20만 평의 산을 울타리가 두르고 있다.

이곳 전체가 윤 회장의 묘역이다.

앞으로 가족묘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탐욕스럽게 넓은 공간이다.

들어가는 입구에 관리인이 사는 작은 집과 주차장이 보였다.

그 주차장에 성윤의 차가 멈춰 섰다.

그러자 관리인이 다가와 허리를 굽힌다.

성윤이 물었다.

“정기화 실장님 오셨죠?”

“올라간 지 1시간쯤 되었습니다.”

“묘지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30분쯤 걸립니다.”

성윤은 차에서 소주병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묘지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 한 걸음…….

‘정기화 실장…….’

그는 윤 회장의 전성기부터 마지막을 함께했다.

특히 윤 회장이 병석에 누운 후로는 거의 모든 시간을 병원에서 지내며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윤 회장의 장래식장에 정기화 실장은 없었다.

관리인의 말대로 30분 정도 산을 올랐다.

묘지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정기화 실장이 보였다.

성윤이 그 뒤에 섰다.

그러자 정기화 실장의 목소리가 흐른다.

“고맙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앞에 서지 않고 뒤에 선 성윤의 배려가 고마웠다.

성윤이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멀리 두물머리도 보이고 주변이 확 트인 것이…… 풍수를 모르는 제가 봐도 명당인 것 같습니다.”

“이 자리 찾는데 5년 걸렸습니다. 회장님 좋은 곳에 모시고 싶어서 땅끝 마을부터 철원까지 다 찾았거든요. 대한민국 풍수 전문가는 다 갈아 넣은 것 같습니다.”

“장례식장은 왜 안 오셨습니까?”

정기화 실장이 껄껄 웃는다.

“윤범성이 그러더군요. 장례식장에 아버지의 유품은 필요 없다고……. 태워 버리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알라고…….”

“……!”

“다른 집안은 그래도 머슴이나 개 취급은 해 주는데, 윤범성에게 저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의 장례식은 어땠습니까?”

“화려했습니다.”

“아뇨. 윤범성, 윤재호, 윤미나…… 그 형제들, 회장님 영정을 앞에 두고 시끄럽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영정 앞에서는 조용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앞으로는 시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정기화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그가 더 잘 알고 있다.

윤 회장의 지시를 받아 지분 작업을 하던 사람이 바로 정기화 실장이다.

그는 윤 회장의 사망으로 모든 준비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윤지예도 그 싸움에 낄 것 같아요.”

정기화 실장의 눈이 커졌다.

윤지예는 지금껏 탐욕을 드러낸 적이 없다.

배다른 자식으로 던져 주는 빵 한 조각에 만족해하던 사람이다.

“그, 그런데 왜?”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게 아니라 통째로 먹을 기회가 왔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멍청한 거죠. 그건 정기화 실장님도 마찬가지잖아요?”

정기화 실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인의 묘소 앞이다.

최선을 다해 예의를 다하는 중이다.

그런 정기화 실장을 성윤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앞으로의 싸움에 이런 약한 마음은 필요없다.

덜미를 잡히는 요소일 뿐이니까.

성윤이 들고 왔던 소주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묘소의 주변을 돌며 소주를 부었다.

“오늘까지만 눈물 흘리세요. 다음부터는 묘소에 찾아오지 마시고요.”

정기화 실장의 얼굴이 콱 일그러졌다.

“대표님!”

“실장님은 윤 씨 일가의 재산을 빼앗는 악당입니다. 회장님도 반기지 않을 겁니다.”

“여기는 회장님의 묘소입니다!”

그때 성윤이 들고 있던 병에 남아 있던 소주가 쪼르르……. 마지막 방울을 떨어뜨렸다.

성윤이 처음으로 정기화 실장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심하게 울어 충혈된 눈…….

순간, ‘내가 죽으면 정우가 저렇게 울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마세요. 미안하면 모든 것을 빼앗은 후 개평이나 나눠 주시고요.”

정기화 실장이 한숨을 내뱉는다.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된 거다.

악당, 도둑…….

그게 지금부터 그의 역할이다.

정기화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결심한 눈빛으로 묘지를 바라보지만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다.

그가 울면서 큰절을 한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회장님의 자식들…… 부족함 없이 나눠 주겠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윤범성 부회장과 그 형제들의 눈물은 메말라 있었는데, 정기화 실장은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나 보다.

묘역의 주차장.

성윤과 정기화 실장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틀어 묘지가 있는 곳을 바라본다.

“앞으로 찾아올 수 없겠네요.”

나름대로 다짐한 거다.

윤 씨 일가의 모든 것을 빼앗겠다고…….

성윤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한 번은 찾아올 수도 있을 겁니다.”

“네?”

“윤지예가 윤 회장님의 병실을 찾아왔을 때, 혹시 그때의 CCTV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정기화 실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갑자기 윤지예라니…….

어쨌든 성윤의 질문에 대답한다.

“병실에는 CCTV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몰라요.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저도 밖에 나와 있었으니까요.”

“그럼 병실은 제외하고. 복도, 엘리베이터, 지하주차장도 좋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 윤지예가 드나든 모든 흔적을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정기화 실장의 눈이 찌푸려진다.

“설마……?”

정기화 실장의 눈치는 빠르다.

그는 성윤이 윤지예를 의심한다는 것을 알았다.

성윤이 손을 저었다.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직은 모든 것을 열어 둔 가설입니다. 그리고 다음…….”

성윤은 정기화 실장에게 윤범성 부회장에 대한 일을 알렸다.

경영권 확보를 위해 일본의 자본에 손을 대려 한다는 이야기…….

“일본 자본가들이 자원봉사자는 아니에요. 100억, 1,000억 던져 주다가 지분을 목표로 하겠죠, 야비할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윤범성 부회장이 공돈에 길들여진 순간 경영권을 씹어 삼키겠죠.”

정기화 실장의 표정이 굳어진다.

윤범성 부회장이 일본의 자본을 날름 받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문제다.

잘 이용해서 지배권이 공고해지는 것도 큰일…….

일본에 넘어갈 수 있는 경영권은 끔찍한 일…….

그런데 성윤은 여유롭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방법이 있으십니까?”

***

-중앙 지검 박중석 부장은 살인적 고금리 대부업 일당을 무더기 검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만들어 활동하며 카페 회원을 대상으로 불법 대부를…….

-이들의 대출 규모는 327억 7,248만 원으로 피해자가 13,447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은 500만 원 이하의 소액 대출을 하면서 연이자율 3,650%에 달하는 고금리를 챙긴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50만 원의 대출을 받으면 5일 후 연이자율 3,650% 75만 원을 갚아야 했습니다.

-원리금 상환이 지연될 경우 자녀의 학교를 찾아가겠다는 등의 협박으로 불법 추심 행위를 해 오던 이들은…….

CL 머니 한국 법인…….

모니터에 보이는 모든 기사가 불법 대부 업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그 기사를 보던 곽부관은 주먹을 꽉 쥔 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지금 걸린 대부 조직…….

그들에게 돈을 대주는 곳이 CL 머니다.

“씨발…….”

현재 합법적인 이자율이 24%다.

남들이야 죽든 말든 고작 그 이자를 받아서 탐욕을 채울 수는 없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 점조직을 깔았고 포털 사이트에 카페를 만들었다.

그 고객은 대출이 어려운 신용 불량자, 아내 몰래 룸살롱에 간 남편, 남편 몰래 돈이 필요한 아내, 대출받아 해외여행을 가거나 명품 가방을 지른 철없는 대학생…….

그들을 대상으로 소액 대출을 쏘아 댔다.

비록 한 사람당 500만 원 이하이지만.

하지만 열 명 이면 오만 원, 백 명이면 오 억이다.

높은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의 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런데 지금 검찰이 CL 머니와 관련된 점조직을 콱콱 찍어 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곽부관이 있다.

“젠장.”

그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구겨진 인상과 달리 밝은 목소리가 흐른다.

“장 검사님? 곽부관입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죠? 다름이 아니고 요즘 신문에서 박중석 부장이라는 분의 이름이 자주 나와서요. 하하하.”

-그 친구가 요즘 대부업 털고 있지? 왜? 자네 회사도 털까 봐?

“아이고, 저희야 합법적으로 움직이는 회사잖아요. 저도 저런 불법 업체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응원을 하고 싶은 마음에 박중석 부장 한번 만났으면 하는데요.”

-그래? 오늘 저녁 어때?

“저야 검사님들이 시간만 내주신다면 영광이죠. 혹시 드시고 싶은 것 있습니까?”

-우리 같은 먹물들이 뭘 아나? 자네가 준비해야지. 흐흐.

목소리가 음흉하다.

여자를 부르라는 거다.

***

그날 밤, 강남의 한 룸살롱.

한 병에 수백만 원이 넘는 양주가 테이블 위를 굴러다니는 곳.

그곳에 박중석 검사와 곽부관 그리고 김영일이라는 이름의 검사가 앉아 있다.

그들의 옆에는 이미 상반신을 드러낸 여자들이 깔깔대는 중이고.

김영일 검사가 술잔을 들며 입을 연다.

“난 이거 마시고 잠깐 화장실 좀.”

화장실은 룸 안에도 있다.

하지만 김영일 검사는 일부러 자리를 피해 준다.

곽부관이 박중석 검사를 섭외할 수 있도록…….

김영일 검사가 떠나자 곽부관이 여자들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자 여자들이 몸을 일으켜 방을 빠져나간다.

룸에는 박중석 검사와 곽부관만 남았다.

곽부관이 박중석 검사의 잔을 채우며 실실 웃는다.

“요즘 대단히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바쁜 것을 네가 어떻게 알아?”

박중석 검사는 지금껏 곽부관에게 존댓말을 썼다.

그런데 둘만 되자 느닷없이 반말이다.

하지만 곽부관은 상관하지 않고 웃는다.

원래 고위 공직자라는 놈들은 항상 이러니까…….

“기사에 이름이 나온 것을 봤습니다. 하하.”

“아…… 너 잡으러 가는 거?”

“네?”

곽부관의 표정이 처참해졌다.

박중석 검사가 슬쩍 웃는다.

“쫄지 말고…… 하나만 묻자. 내 타깃이 너라는 것은 너도 알지?”

“네?”

“이미 시나리오는 만들어졌어.”

곽부관이 슬쩍 박중석 검사의 눈치를 살핀다.

평온한 목소리를 들어 보면 여지가 있는 것 같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시나리오요?”

“그래.”

“대본이 나오기 전이면 바꿀 수 있지 않나요? 배우 섭외나 제작비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 것 같던데요.”

“제작비? 그래, 말 나온 김에 툭 까놓고 물어보자. 봐주면 얼마나 줄 거냐?”

“네?”

“얼마 줄 거냐고. 검사 월급으로 한강 보는 생활 할 수 없잖아? 나도 한강 한번 보면서 살고 싶은데, 그런 아파트 사줄 수 있냐?”

곽부관의 눈이 반짝였다.

박중석 검사의 의도를 안 거다.

그는 돈이 필요하다.

점조직을 건드는 것은 협박…….

적당히 돈을 주면 꼬리를 자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

“제가 대부 업체 대표 아닙니까? 무이자로 100년 정도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하하.”

“무이자?”

“네!”

“100년? 그거 괜찮네.”

한참을 웃던 박중석 검사가 갑자기 뚝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야, 대출은 됐고. 네 뒤에 누가 있냐?”

“네?”

곽부관은 지금까지 분위기가 좋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알코올이 일으킨 착각이다.

박중석 검사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냉랭했다.

곽부관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다.

“어떤 새끼가 우리나라 검경! 고위 공직자를 처먹으려 하는 거야!”

“내 뒤요?”

곽부관이 히죽 웃는다.

그러더니 낄낄낄 웃기 시작한다.

“이제 알겠네요. 난 또 내 개인적인 일탈인 줄 알았네……. 검사님, 제 뒷주머니가 궁금했던 겁니까? 그런데, 이건 정말 검사님을 위해 하는 말인데요. 궁금해하지 마세요. 그러다 죽어요!”

“이죽거리지 말고 대답해. 정말 일본 자본이야?”

“아, 그것도 알고 계셨어요? 그럼, 이야기가 쉽죠. 내 뒷배를 건들면 일본과의 관계도 흔들릴 거란 것 아시죠? 합법적으로 들어온 기업을 탄압하는 거니까요! 가뜩이나 한일 관계가 악화되어 있는데 똥 뿌리지 마세요!”

“……!”

“그러니까 제 개인 일탈로 끝내세요. 그림자 궁금해하지 마시고! 그리고 솔직히 생각해 보세요. 제 개인 일탈도 길어야 2~3년이에요.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까? 아뇨, 난 사람을 살렸어요! 당장 돈 없어 배고파 뒈지는 새끼들에게 밥 사 먹으라고 돈을 줬으니까요!”

지금껏 시끄럽게 커졌던 곽부관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이어졌다.

“검사님, 전 어차피 2, 3년이에요. 감옥 간다고 반성 안 해요. 그러니까, 눈감아 주세요. 그럼, 검사님은 한강 아파트에 등기칠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곽부관의 태도가 돌변했다.

박중석 검사가 자신의 뒷배를 노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뒤는 일개 검사가 건들 수 없다.

곽부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최종 타깃이 내가 아니었어. 그럼, 적당히 꼬리를 끊을 수 있어.’

그런데…….

문이 벌컥 열렸다.

“아파트는 제가 사 드리죠.”

곽부관의 눈이 커진다.

“이, 이성윤 대표님?”

이곳에 오면 안 될 사람이 찾아왔다.

성윤이 곽부관의 맞은편에 자연스레 앉더니 담배를 입에 물며 말한다.

“장례식장에서 말했죠, 생각보다 일찍 만날 것 같다고?”

“……!”

“궁금한 게 있어요. 내가 셀까, 아니면 당신 뒤에 있는 그림자가 셀까. 그쪽이…… 끝까지 이죽거릴 수 있을까.”

< 한일전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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