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76화 (276/300)

< 한일전 -(1) >

***

다음 날, 호텔 1층의 커피숍.

성윤은 이주성 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주성 팀장이 커피를 내려 두며 말한다.

“다니엘과는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며칠 내로 한국에 갈 겁니다.”

친자 검사를 위해서다.

박무혁 대통령님의 모든 것은 기밀이며 유전자 검사를 미국에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고 수준의 보안을 요구하는 일에 외국의 병원을 믿을 수는 없었다.

“검사는 대정 병원에서 하나요?”

“네. 아무래도 대통령님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곳이니까요.”

이제 다니엘의 사건은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이주성 팀장이 성윤을 보며 묻는다.

“대표님은요? 계속 뉴욕에 계실 겁니까?”

“아뇨, 저희는 일정을 소화해야겠죠.”

잠시 후, 이주성 팀장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자리를 떠났다.

다니엘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일분일초가 아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윤의 옆으로 정우가 섰다.

캐리어 두 개를 질질 끌고.

“짐 챙겨 나왔어요.”

성윤이 캐리어 하나를 넘겨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우리도 출발해야지.”

성윤은 다시 워싱턴으로 가야 한다.

뉴욕에 온 것은 오직 다니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선 어떤 일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윤이 자동차 트렁크에 캐리어를 올리며 물었다.

“카밀라는 오늘 만나기로 했지?”

“네, 오후에 사무실에서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카밀라는 왜 만나려는 거예요? 그레이슨도 아니고.”

눈에 의문이 가득하다.

정우에게 그녀는 공화당 경선 승리가 유력했지만 건강 이상을 토로하며 레이스를 포기한 사람, 딱 거기까지였다.

“낙선하면 찌그러져 있는 게 이 바닥 관행이잖아요. 그런데, 대선도 아니고 경선에서 포기한 사람……. 어떤 영향력도 없다고 생각해요.”

성윤이 미국에 온 것은 놀러 온 게 아니다.

국민의 세금을 쓰며 성과를 얻으러 온 거다.

그런데 굳이 영향력이 없는 사람을 만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국내 여론도 안 좋아요.”

한국에서도 이번 방미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이번 방미의 표면적인 명분은 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는 자리.

하지만 그 말을 누가 믿을까?

이번 방미는 차기 정권과 어떤 친분을 쌓을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또 다른 자존심도 걸려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은 한일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박무혁 대통령은 공화당 그레이슨의 손을 잡았고 일본의 총리는 상대 후보를 선택했다.

그리고 양국의 언론은 노골적일 정도로 자신들이 선택한 후보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자국의 선거도 아니면서 이쪽이 유리하네, 저쪽이 유리하네, 유치할 정도로…….

그런데 대한민국의 여당과 야당이 또 갈렸다.

이성윤 대표 공화당 카밀라와 면담 약속!

최학인 대표는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 대표를 만나다

그러자 국내 여론이 또 갈린다.

특히 민국당의 손을 잡은 언론들이 강한 어조로 성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중립 외교가 필요한 순간!

이성윤 대표가 공화당 경선 후보였던 카밀라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카밀라는 지병으로 인해 후보를 사퇴했고……(중략)…….

정치권에서 멀어진 사람이다……(중략)…….

박무혁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를 만났으니 이성윤 대표는 중립적인 자세로 민주당 후보를 만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댓글도 난리다.

-왜 쓸데없는 짓을…….

-카밀라가 아픈 것은 안타깝지만 지금 반드시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왜 자꾸 공화당에 공을 들이는 거지? 극단적인 것은 안 좋아!

-지금 이성윤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데, 이번 미국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해.

-맞아, 일본의 정보력을 무시할 수는 없어. 그놈들은 벌써 민주당에 인맥을 뿌려 놓았어. 골프 외교 봤지? 이대로 미국 대선이 끝나면 우리는 찬밥이야.

-미국 민주당이 지금 우리 정부가 하는 걸 지켜보는 중이래. 지난번 SNS에서도 박무혁 대통령이 그레이슨만 만났다고 섭섭해했잖아.

-이러다가 경제 제재?

-젠장, 우리 대통령이 누굴 만나 햄버거 먹은 게 섭섭할 일이야? 햄버거도 마음대로 못 먹어?

-이래서 약한 나라란……. 박무혁 말대로 어서 강대국이 되었으면 좋겠어!

-강대국? 그건 공약이야. 공약 알지? 지킬 수 없는 것.

-자, 자…… 그래서 최학인이 민주당 만나고 왔잖아. 거기에 기대를 걸어야지.

-대통령은 최학인이었어야 해.

한국과 일본의 여론 전, 현재는 일본이 유리하다.

그래서 민국당의 지지율이 쭉쭉 치솟고 있다.

박무혁 대통령과 성윤은 정세 판단을 못한다며 욕을 먹는 중이고…….

벌서부터 차기 대통령 어쩌고 지지율이 나오며 최학인의 이름이 1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윤은 상관 않는다.

카밀라가 국무부 장관이 된다는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윤이 슬쩍 웃었다.

“반전이 있을 수도 있잖아?”

“반전요?”

“선거는 투표함을 뒤집을 때까지 모르는 거야. 건강 이상설에는 기적이라는 말이 따라 붙는 법이고.”

그때, 성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AI 회사 리제의 대표 제임스다.

성윤의 눈이 반짝인다.

통화 버튼을 누르며…….

“나온 것이 있나요?”

카밀라가 경선 포기 선언을 했을 때, 성윤은 리제의 제임스에게 전화했다.

진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 확인을 부탁한다고…….

그리고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

뉴욕에서 워싱턴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캐리어를 끌고 곧장 택시에 올라 카밀라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약 열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책상에 앉아 다급한 표정으로 전화를 하는 중이다.

성윤은 사무실을 둘러봤다.

책상은 물론 바닥에도 정책과 논문 등 인쇄물이 한가득이다.

앉을 자리도 없이 지저분하다.

정우가 가장 앞에 보이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책상을 톡톡 두들기자 그녀가 고개를 틀어 정우를 본다.

“카밀라 의원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녀가 안경을 고쳐 쓰며 정우의 위아래를 살펴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를 따라 안쪽으로 향했다.

가장 구석에 투명한 창으로 구분된 방이 보인다.

그 안에 청바지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카밀라가 서 있다.

그녀 역시 어딘가에 계속 전화를 하는 모습이다.

성윤과 정우가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눈동자를 움직여 성윤을 슬쩍 확인한 후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 간다.

성윤은 그녀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방을 둘러봤다.

이곳 역시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다.

책상에는 머그잔이 널브러져 있고 서류가 산더미다.

‘한국을 싫어하던 국무부 장관…….’

꿈속에서 봤던 그녀는 한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본을 수차례 방문하면서도 한국에 온 것은 한 번이 끝.

그것도 일본에 들른 후 하루 코스로 찍고 넘어간 정도였다.

여러 분쟁에서도 한국의 곁에 있던 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그녀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여당 대표를 앞에 두고도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 가다니…….

아무리 권력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정치인이 보여 줄 모습은 아니다.

한참 후, 그녀가 통화를 종료하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누구?”

“한국의 여당 대표 이성윤이라고 합니다.”

“……이성윤?”

그녀가 성윤의 위아래를 살피더니 활짝 웃는다.

“아, 죄송해요.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젊어서 못 알아봤네요. 그런데 어쩌죠? 제가 시간이 별로 없는데……. 이게 그쪽의 잘못도 있는 것 알죠? 원래 어제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미룬 거잖아요? 그래,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오신 거죠?”

거만한 눈빛…….

하지만 상관없다.

저 눈빛은 몇 초 후에 경악으로 물들 테니까…….

성윤의 시선이 정우에게 향했다.

그러자 정우가 방의 문을 살짝 닫는다.

그녀의 눈빛이 찌푸려졌다.

“문은 왜 닫죠?”

“밖에서 들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안 된다뇨?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오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경선까지 포기했는데…… 의사의 잘못된 판단이었다니…….”

지금껏 당당했던 그녀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떨려 온다.

“그, 그걸 어떻게?”

차트가 바뀌며 일어난 미친 해프닝…….

의사도 인간이다.

있어서는 안 될 오진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목숨이 아니라 정치 생명을 끝내 버렸다.

바뀐 차트는 어느 병원에 올라가도 똑같은 말을 하게 만들었으니까.

-가망이 없습니다. 당장 수술을 하고 재활하지 않으면…….

그런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사무실 내에서도 극소수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어떻게 알았긴……. 꿈속에서 본 미래를 최대한 기억한 거다.

그 기억을 토대로 ‘리제’의 도움을 받은 것이고…….

하지만 그대로 말할 수는 없다.

“포기 선언을 하셨을 때, 뭔가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아, 제가 이상한 것을 느낀 게 아니라 한국의 의료진이 발견한 겁니다. 아픈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고…….”

의학적 지식을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진다.

그래서 의료진이 발견한 것처럼 선을 그은 후 곧바로 다음 이야기로 이어갔다.

“그래서 확인해 봤고 오진이란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죠? 오진을 내린 의사가 민주당과 손잡고 있었다니…….”

“……!”

“오진은 계획됐던 것이죠. 당신은 고소를 하고 민주당과 싸울까 했지만…… 그사이 민주당은 카밀라 의원님의 또 다른 스캔들을 찾아냈고요. 결국, 입 닥치고 정계 은퇴를 기다리는 중……. 맞나요?”

민주당은 그녀가 공화당의 후보가 되는 게 껄끄러웠다.

그래서 오진을 통해 그녀의 경선을 포기시켰다.

그리고 그녀의 스캔들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다.

“당신의 발목을 잡은 스캔들은…… 마약에 중독된 남편.”

“……!”

미국 대선도 온갖 네거티브의 잔치다.

성관계 비디오부터 적국과 주고받은 이메일까지.

카밀라에게는 남편의 마약 중독이 문제였다.

그녀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다.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었다.

성윤이 그녀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해결해 드릴까요?”

“해결?”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정치 음모판에서는 잔뼈가 굵습니다.”

성윤은 그녀와 약 1미터를 남겨 두고 걸음을 멈췄다.

이제 그녀가 다가와 손을 내밀고 도와 달라고 애원해야 한다.

그녀의 가족 문제가 걸려 있고 미국 정치판의 밥그릇 싸움이니까…….

외부자인 성윤이 다가서는 것은 여기까지.

하지만 그녀가 성윤을 찾아와 손을 내밀면 다음 외교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생각해 보고 연락 주세요. 이 옆 호텔에 묵고 있습니다.”

정우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 뒀다.

***

성윤은 바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스트레이트 잔에 담긴 독한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간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바에는 성윤 외에 두 명 정도만 더 앉아 있다.

그때, 작은 여성의 백이 성윤의 옆에 놓였다.

그리고 한 여성이 앉는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그녀는 카밀라였다.

그녀가 앞을 바라본 채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다.

“해결해 준다고 했죠?”

“네.”

“그럼, 난 뭘 해 줘야 하죠? 이성윤 대표가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공짜일 리는 없잖아요?”

“공짜입니다.”

그녀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믿지 못하는 눈치…….

그녀가 독한 술을 넘긴 후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나요? 내가 이번 스캔들을 넘기고 그레이슨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국무부 장관이 될 거라는 것. 이 사실, 알고 있었죠? 그래서 나와 가깝게 지내려 하는 거죠? 차기 정부에서 뭘 얻어 내려고?”

불신 가득한 목소리가 의문이 되어 토해지고 있다.

물론 성윤은 그녀가 국무부 장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을 엿보일 수는 없다.

외교는 여우같이 해야 하는 것…….

성윤이 낮게 웃었다.

“카밀라 의원님, 국무부 장관이 된다고요? 축하합니다.”

“몰, 몰랐어요?”

“난 당신의 팬입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한 드라마틱한 인생, 감동받았고 책도 여러 권 샀어요.”

“……!”

“국무부 장관이 된다고 돕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계속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대가 없이 도와주는 겁니다. 공짜가 싫다면 나중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독도는 한국 땅’ 이라는 말이나 한번 시원하게 해 주세요.”

농담처럼, 농담이 아닌 것처럼 이어진 성윤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처음 성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상당히 기분 나빴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호의적으로…….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묻는다.

“독도는 한국 땅요?”

정치도 외교도 사람이 하는 거다.

미국 대통령에 이어 국무부 장관까지 한국의 편에 선다면…….

동북아의 신경전이 또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 갈 게 분명하다.

물론 우리나라 위주로.

카밀라는 잔을 만지작거리며 힐끗 성윤의 표정을 살폈다.

성윤의 모습에서 가식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온 젊은 여당 대표 이성윤은 진실한 태도로 그녀를 대하고 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들었다.

“공짜는 믿을 수 없죠.”

“……!”

“대가는 내가 결정할게요. 한국에 대한 무한한 우호 관계. 물론 내가 국무부 장관이 되었을 경우 그리고 이성윤 대표가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경우에 한해서죠.”

성윤이 슬쩍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저도 카밀라 의원님께서 국무부 장관에 있는 동안만큼은 미국에 대한 무한한 우호 관계를 약속하죠.”

대등한 관계라는 것을 강조한 거다.

어차피 이 사건의 해결은 성윤의 손에 좌지우지될 것이다.

즉, 그녀의 미래가 성윤의 손에 있다는 것.

그녀는 기분 좋게 미소를 그린다.

“좋아요. 그럼, 어떻게 해결해 줄지 방법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 한일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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