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75화 (275/300)

< 씨앗. - (2) >

***

늑대의 가족 구성은 인간과 매우 유사하다.

수컷은 음식을 구하러 돌아다니고 암컷은 새끼와 함께 굴속에서 수컷을 기다린다.

“……그렇다고 합니다.”

한국은 이른 오전이었다.

그리고 청와대 집무실, 창밖을 보는 박무혁 대통령의 뒤로 국정원장이 서 있다.

국정원장은 미국에 간 요원에게 다니엘에 관한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중이다.

두 사람 모두 뜬눈으로 밤을 보냈지만 피곤해 보이지는 않는다.

박무혁 대통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늑대 그림 안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네.”

박무혁 대통령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창밖만 보고 있다.

국정원장은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뒤로 물러난다.

더 보고해야 할 것이 있었지만…….

“친자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이후의 일정 역시 그때 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안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요원들이 24시간 지켜 낼 것입니다.”

다른 보고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박무혁 대통령의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집무실을 벗어나 밖으로 나온 국정원장이 닫힌 문을 바라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뱉는다.

그가 박무혁 대통령의 과거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연인을 잃은 과거. 현재로 이어진 비극.

생각에 빠졌던 그가 고개를 가볍게 흔든다.

“돈이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닌가 봐.”

***

“돈이 많아서 좋은 게 뭔지 알아요?”

다니엘은 눈을 깜빡인다.

성윤은 다니엘의 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

요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불편하지 않으며 항시 입주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차도 바로 타고 다닐 수 있는 중고차를 구매했다.

안전을 위해 주소 등, 인적 사항을 한번 바꿀 필요가 있어서다.

요원들이 움직여 준 덕에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돈이 많아서 좋은 거요?”

“돈 계산하지 않고 집이나 차를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정우가 낄낄거린다.

“의원님, 그런 말씀 하시기 전에 원룸부터 탈출하시죠.”

다니엘이 황당한 시선으로 성윤을 본다.

지금껏 돈을 펑펑 쓰고 다닌 성윤이 원룸에 산다니…….

게다가 성윤은 나스닥 시가총액 10위권에 드는 리제의 최대 주주다.

마음만 먹으면 수십조를 주무를 수 있는 공룡.

그런데 원룸에 산다.

“그 원룸이 몇백 평인 건 아니죠? 아니면 정치적 의도 때문에?”

성윤이 손을 저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정치적 목적이나 돈 아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조용하고 편해서 사는 거예요. 어차피 잠만 자는 공간이라 지금도 넓다고 생각해요. 필요하면 넓은 집에서 살 겁니다. 아직 필요성을 못 느꼈을 뿐이죠.”

이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회사는 휴가를 내세요. 어차피 그럴 생각이셨죠?”

“아, 네.”

꿈속의 미래를 떠올리면 다니엘은 투자를 받은 후 곧장 로펌에 장기 휴가를 던진다.

그리고 사업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다니엘의 인생은 성윤의 꿈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투자금이 누구의 지갑에서 나왔는지가 다를 뿐이다.

성윤과 다니엘은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그의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바꿔 버렸다.

돈은 꽤 들었지만 친자검사에서 불일치가 나와도 꽤 괜찮은 투자라고 생각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다니엘은 미래에 미국의 장관이 될 사람이며 지금 시작할 사업은 성윤에게 막대한 인맥을 안겨 줄 테니까.

그렇게 계획을 세워 나가는 도중 다니엘의 휴대폰에는 계속해서 최학인 대표에게 연락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받지 않는다.

최학인 대표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만날 필요가 없어서다.

그리고 그가 시선을 들어 성윤을 본다.

“그런데 만약에 친자 결과가 사실이라 나온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머릿속이 복잡해 보인다.

가족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성윤의 말을 따라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말도 안 되는 쇼핑을 했지만 결국 끝에 나온 질문은 똑같다.

‘도대체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성윤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백 좋은 비영리 봉사 단체장이 되겠죠. 기뻐하세요. 대한민국 대통령이 백이 되는 거예요. 대정그룹의 최대 주주가 뒷배경이 되는 거고요.”

다니엘이 소리 없이 웃는다.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사실 내 아버지가 부자는 아닐까? 갑자기 나타나 마음껏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사주는 것은 아닐까.”

“그 꿈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아직은 부담스럽지만 천천히 고민해 보겠습니다.”

성윤은 다니엘과 헤어진 후 호텔로 돌아왔다.

재킷을 벗어 옷장에 걸어 두며 입을 연다.

“정우야, 이주성 팀장이랑 하루 세 번은 통화해야 해.”

이주성은 요원이다.

지금 그는 아홉 명의 다른 요원과 함께 다니엘을 가드하고 있다.

즉, 이주성과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다니엘의 안전을 보장하는 거다.

“그리고…….”

정우가 수첩을 꺼내 성윤의 지시 사항을 적고 있을 때…….

‘쾅! 쾅! 쾅!’ 하고 문을 부술 듯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구석에 앉아 책을 읽던 장한수 실장이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문을 열어젖혔다.

도깨비 얼굴을 한 최학인 대표가 서 있다.

평소 이성적인 사람인데 이글거리는 눈빛이 살벌하다.

그 눈빛은 정확히 성윤을 향하고 있다.

원인은 다니엘이다.

최학인 대표는 다니엘과 약속이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닭 쫓던 개가 되자 그 분노가 성윤에게 쏟아지는 중이었다.

“이야기 좀 할까?”

그와 달리 성윤의 눈빛은 건조했다.

뉴욕이 동네 시장도 아니고 최학인 대표가 성윤을 한 번에 찾아내기는 어렵다.

잡일을 도와주는 수행원 중 하나가 최학인 대표의 눈과 귀였나 보다.

“제 수행원 중 한 명이 대표님께 월급을 받나 봅니다. 고맙네요, 제 수행원의 통장 잔고를 걱정해 주셔서.”

“말장난은 그만.”

“나가겠습니다. 2층의 바에서 한잔할까요?”

“기다리지.”

잠시 후, 두 사람은 2층의 바에서 마주 앉았다.

최학인 대표가 성윤을 쏘아보며 묻는다.

“난데없이 뉴욕에 온 이유는?”

“대표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한발 빨랐을 뿐이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최학인 대표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는 타는 속을 진정 시키기 위해 맥주잔을 들어 입에 댔다.

화를 참고 있어서 그런지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대통령을 산산조각 내 버릴 핵폭탄을 발견했는데 눈앞에서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그 분노가 얼마나 클지 상상도 잘 안 된다.

그가 성윤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

“그런 생각한 적 없습니다.”

정말 없다.

게임은 끝나 봐야 아는 거다.

야구에서 9회 말 역전이 나오듯 정치 역시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연출되는 곳이니까.

단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하나만 묻지. 그놈, 정말 박무혁의 아들이냐?”

“글쎄요.”

“놈의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 숨길 것인가? 아니면 발표?”

“그것도 글쎄요.”

“이 대표!”

성윤은 모호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한국에는 이미 박무혁 대통령에게 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라시가 도는 중이다.

정부에서 틀어막고 있지만 터져 버린 수도꼭지를 막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시작이 어디였는지는 묻지 않아도 뻔하다.

바로 민국당이다.

그러니 최학인 대표에게 단 하나의 정보도 줄 수 없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이용할지 충분히 예상되니까.

최학인 대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웃기는군…….”

그는 빠르게 이성적으로 변했다.

성윤을 쏘아보는 눈빛 역시 차갑게 안정되고 있다.

그러더니 뜬금없는 말을 내뱉는다.

“찾아온 이유가 있어. 쓸데없이 징징거리기 위해 온 게 아니야.”

“말씀하세요.”

“거래를 했으면 좋겠어.”

“거래요? 제가 대표님과 거래할 게 있을까요? 지금 저는 필요한 게 없는데요.”

“우리는 정치를 하잖아. 정치란 필요한 것을 채워 주는 게 아니라 만들어 주는 거지. 그래야 사람들이 또 다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나를 뽑아 주는 것이고.”

무슨 말을 하려 할까.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시해 보세요.”

순간 최학인 대표는 입술을 살짝 깨문다.

제시하는 쪽은 약자다.

그리고 듣는 쪽은 강자다.

위대한 왕들은 신하가 머리를 조아리고 내는 의견을 들어 왔다.

그러니까 최학인 대표는 지금 그 스스로가 성윤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해 버린 거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숙여야 하는 것도 정치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첩자를 공유했으면 좋겠어.”

“……!”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다.

갑작스레 첩자라니…….

하지만 성윤은 놀란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첩자요?”

“자네의 호텔 방을 두들길 때까지 계속 생각했어. 자네가 어떻게 아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갑자기 일정을 바꾸면서까지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 누구에게 듣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야! 그래서 의심했어. 위스키 몇 잔을 마시고 실언을 했나? 하지만 아니야. 어젯밤, 내 이성은 또렷했으니까.”

최학인 대표의 말을 들으며 성윤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

속마음을 듣고 움직인 것인데, 최학인 대표는 첩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그 스파이가 내 최측근인가?”

최측근을 의심하고 있다.

“그게 아니면 아는 사람이 없었을 거야.”

다름 아닌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는 일이다.

민국당도 최대한 은밀하고 조용하게 움직여야 했다.

자칫 피바람이 불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아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보좌관부터 이준대까지…… 몇 명 되지 않았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독심술사거든요. 대표님의 속마음을 듣고…….”

최학인 대표의 눈이 부릅떠진다.

“지금 날 놀려!”

진실을 말해 줬는데 벼락같은 호통만 들었다.

하지만 성윤은 느긋한 태도로 가볍게 손을 저었다.

“첩자는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이번에도 진실을 말해 줬다.

그런데, 믿는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성윤이 첩자와 손을 잡고 자신을 농락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심이라는 게 그런 거다.

한 번 씨앗이 심겨 발아하면 걷잡을 수 없다.

그러다 뿌리까지 박히면 끝이다.

결국 자신의 존재마저도 의심하게 만든다.

성윤이 냉랭한 눈으로 최학인 대표를 향했다.

‘계속 의심해라. 더 불신해라. 그러면 그 끝에 지옥이 있을 거야.’

당 대표가 최측근을 믿지 못하면 그 당은 끝이다.

대표가 파멸되거나, 당의 생명을 끌어안고 불구덩이에 뛰어들거나.

어느 쪽이든 성윤은 환영할 입장이다.

성윤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하실 말씀이 다 끝난 것 같은데, 이만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이 대표, 거래라고 했어. 이 말의 뜻을 몰라? 나도 네놈의 주변에 첩자를 심어 뒀다는 거야!”

“그래서요?”

“궁금하지 않나? 우리 이제 첩자질은 그만하고 간첩 명단을 공개한 후 페어플레이 하는 게 어때?”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페어플레이는 좋아하지만 이번 거래는 거절하겠습니다. 거래란 것은 대등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손해잖아요.”

“뭐?”

“처음에 제가 독심술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끝까지!”

“뭐, 어쨌든…… 독심술로 보니까, 제 최측근에는 간첩이 없어요. 기껏해야 호텔방을 알려 준 수행원이 전부죠. 수행원이 알려 줄 수 있는 정보는 제 위치나 제가 먹은 반찬 정도고요. 그런데 이 거래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학인 대표는 입술을 꾹 깨문다.

‘젠장.’

독심술을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성윤이 지껄인 말은 사실이다.

그가 심은 첩자는 성윤의 최측근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당직자나 수행원 정도에서 빙빙 돌 뿐이다.

그런데, 성윤은 이미 자신의 최측근까지 손을 댔으니…….

말대로 대등한 거래가 아니다.

완벽히 당했다.

성윤이 말을 잇는다.

“그 수행원은 바로 잡아 보내 드리죠. 이왕 월급 주는 것, 옆에 두고 쓰세요.”

성윤은 끝까지 최학인 대표의 속을 긁었다.

씨앗을 심으려면 땅을 긁어 내는 게 시작이다.

성윤은 이제 자라난 ‘의심’을 수확할 날만 기다리면 된다.

최학인 대표가 힘없이 말한다.

“거래는 끝났군.”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성윤을 노려본다.

거래가 무산되며 그의 눈빛에 미소는 증발됐다.

지금은 성윤을 찢어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대표, 한마디 하지. 자네가 승자로서 웃을 수 있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야. 내 타깃이 대통령과 여당에서 자네 한 사람으로 좁혀졌거든.”

살벌한 협박이지만 성윤은 여전히 느긋하다.

“기대하죠.”

< 씨앗.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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