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74화 (274/300)

< 씨앗. - (1) >

먼저 입을 연 것은 정우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충격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머리카락이나…….”

다니엘이 고개를 저었다.

“뿌리를 찾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난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내 국가는 미국이니까요.”

말투에 짜증이 배어 있다.

자신을 찾아오는 동양인들이 모두 비슷한 말을 해서 그런가 보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그들은 왜 그렇게 같은 출신임을 원하는 것인지, 왜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하지만 정우는 포기하지 않고 그를 설득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연다.

“다니엘?”

다니엘은 손을 살짝 들어 정우의 목소리를 사전에 차단해 버린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말을 해도 내 대답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NO’입니다.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겁니다.”

다니엘은 설득의 틈도 주지 않는다.

시계를 보며 약속했던 10분이 흘러간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계속 말한다.

“하나 물어보죠. 오늘 밤에 찾아온다던 최학인이라는 정치인이 있어요. 그 사람도 두 분과 같은 이유입니까? 내 뿌리를 찾아 준다는?”

“그럴 겁니다.”

다니엘이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한국인들 참 친절하네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한참을 웃던 다니엘이 몸을 일으킨다.

“이야기는 끝난 것 같은데, 10분이나 같이 있을 필요는 없겠죠? 이만 가도 되겠습니까?”

“…….”

성윤과 정우의 입에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다니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옷의 매무새를 만진다.

“그럼, 즐거운 관광 되십시오. 좋은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그가 몸을 돌린다.

그 순간…….

“투자금 필요하지 않아요?”

“……!”

성윤의 목소리에 다니엘이 고개를 틀었다.

“뭐요?”

“투자금 필요하잖아요?”

“……난 변호사입니다. 괜찮은 로펌에서 만족스러운 돈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투자금이라니…….”

성윤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지금 사업 준비하고 있죠? 돈이 안 되는 복지사업. 입양된 아이들을 돕는 단체. 그런데,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다니엘의 대답은 없었다.

멍하니 성윤의 얼굴을 바라본다.

한참 동안 커피숍 내의 웅성거림만 들려왔다.

그리고 다니엘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 그걸 어떻게……?”

“난 대한민국 국회의원입니다. 여당의 대표죠. 알고자 하면 다 알 수 있어요.”

꿈속의 미래, 동양인 출신의 장관이란 점이 특이해서 그의 이력 몇 개를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시작하는 복지사업은 그가 정계에 입문했던 계기가 된다.

이 사업으로 유력 정치인들과 인맥을 쌓았고 세상에 얼굴을 알리게 되었으니까.

그는 이 과정을 책으로 냈고 그 덕에 투자를 못 받아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

“도와드릴게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돈이 많습니다.”

“……!”

“500만 달러 정도면 되겠습니까?”

500만 달러, 지금 환율로 약 60억이다.

그런데 다니엘보다 정우가 더 놀랐다.

“의원님!”

그리고 다니엘은 끌끌끌 웃기 시작한다.

“500만 달러요? 돈 참 많네요. 그 투자금이 내 머리카락을 뽑는 대가입니까?”

“당신 머리카락이 그렇게 비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머리카락을 받고 질문 하나 하죠.”

“내가 자존심도 없는 놈인 줄 알고 있습니까?”

성윤이 한숨을 내뱉었다.

“다니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업에 투자를 해 준다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것도 500만 달러. 그런데 그 앞에서 자존심 세우고 있을 겁니까? 아무리 비영리사업이라 해도 지금 당신 태도는 낙오입니다.”

성윤이 수첩을 꺼내 즉석에서 투자 계약서를 적어 내려갔다.

질문 하나에 500만 달러, 다니엘에게 무조건 남는 장사다.

그리고 다니엘은 모르겠지만 이 투자가 성사되면 성윤에게도 나쁘지 않다.

이 사업은 세계 유명인들에게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변한다.

‘돈이 많고 유명하면 이 정도 기부는 해야지!’라는 것…….

그 시작을 성윤이 함께하면 그들의 인맥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세계 유명인의 인맥을 얻는 데 500만 달러면 싸게 먹히는 거다.

성윤이 계약서를 건넸다.

“변호사니까 잘 보시고 추가할 것을 추가하세요.”

계약서를 훑어보던 다니엘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렀다.

그가 눈을 꾹 감더니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일단 질문이 뭔지 들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일단 마음은 흔들렸다.

질문을 듣고 결정하겠다는 것은 마지막 자존심이다.

성윤은 그의 속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혹시 알고 있습니까?”

그는 갓난아기 때 고아원 앞에 버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박무혁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고 그걸 또 이준대가 알고 있다. 그 소문의 이유가 궁금했다.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

“Yes.”

그가 오른손을 들었다.

와이셔츠를 걷어 내자 팔뚝에 손바닥만 한 늑대 얼굴 문신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 이 팔에는 어느 남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림으로 덮어 버렸죠, 다시는 그 이름을 볼 수 없도록.”

“그 남자의 이름은?”

다니엘이 고개를 저었다.

“질문은 하나라고 하지 않았나요? 끝났습니다.”

다니엘은 시종일관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감정을 긁어 댈 때도 마찬가지……. 그는 미소 지었다.

그래서 사람 좋아 보이던 미소가 기분 나쁘게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저 미소가 단단한 가면처럼 여겨진다.

마치 가식적인…….

그럼 지금부터 저 가면을 때려 부술 시간이다.

그래야 진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다니엘, 얼마 전까지 팔에 적혀 있던 남자의 이름,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습니까?”

“질문은 시간은 끝났다고 했어요.”

성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멍청한 인간은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른다.

대통령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평범한 세상에서 벗어났다는 뜻인데…….

“지금 극단적으로 위험한 상황이에요! 그걸 모릅니까? 세상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그걸 왜 몰라요?”

“뭐요?”

“생각해 보세요! 대한민국 여당 대표가 당신을 찾아냈고 찾아왔어요. 저녁에는 대한민국 야당 대표가 찾아온다고 해요. 우리가 평범한 사람처럼 보입니까? 다음엔 누가 찾아올지 몰라요!”

“……!”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돈을 노리고 오는 사람…….

“당신의 목을 손에 쥐면 받을 수 있는 돈이 얼마일까요? 모르긴 몰라도 500만 달러는 우스울 만큼의 큰돈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자본주의라는 사회,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사람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500만 달러를 훌쩍 넘어서는 돈이 걸려 있다면…….

그의 주먹이 파들파들 떨릴 때 성윤이 쐐기를 박는다.

“생각하세요. 이 세상엔 우리 같은 놈들의 지시 하나에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무수히 많아요.”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놈의 이념과 권력 다툼 때문에 쇼핑몰 한가운데서 살인을 저지르고 핏줄의 생명을 끊어 버리고…….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다니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한 거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향했다.

화면에 보이는 이제 막 100일이 넘은 딸…….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커피를 마셔야겠군요.”

그가 정했던 것은 10분의 만남.

하지만 커피를 주문한다는 것은 그 이상의 시간을 성윤과 함께한다는 거다.

***

그 시각, 최학인 대표는 민주당 하원 원내 대표와 기나긴 점심을 끝냈다.

그리고…….

“찍겠습니다.”

여느 때처럼 인증 사진을 찍었다.

최학인 대표도 하원 원내 대표도 기분 좋은 마무리다.

서로 뜨거운 악수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최학인 대표는 몸을 돌렸다.

이제 뉴욕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해야 한다.

“몇 시 비행기라고?”

“6시 출발이고 도착은 7시 30분입니다.”

“그놈과는 몇 시 약속이지?”

그놈은 다니엘이다.

“8시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녁 먹기는 늦은 시간이고…… 가볍게 술이나 한잔하면 되겠어.”

“네.”

두 사람은 차량에 올랐다.

최학인 대표가 묻는다.

“이성윤은? LA로 출발했지?”

최학인 대표는 계속해서 성윤을 신경 쓰고 있다.

몇 번이나 당했기 때문에 방심하지 않는 거다.

“알아볼까요?”

“어.”

보좌관이 휴대폰을 꺼냈다.

사실 알아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성윤의 공식 일정이 LA에 있으니 비행기를 타고 잘 가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최학인 대표가 불안해한다.

그래서 알아보려 하는 거다.

보좌관은 LA에 심어 둔 최학인 대표의 눈과 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성윤 호텔 확인하고 일정 다시 한번 체크해 봐.

5분 정도 지났을 때, 보좌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말해.”

보좌관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는 예상과 다른 답변이 흐른다.

-예약한 호텔을 알아봤는데 어젯밤에 취소했다고…….

“뭐?”

-일정도 모두 취소됐거나 미뤄졌습니다.

그 소리는 최학인 대표의 귀에도 들어갔다.

최학인 대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보좌관이 허겁지겁 통화를 종료한 후 최학인 대표를 바라본다.

최학인 대표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LA가 아니라고? 이 새끼가 또 무슨 꿍꿍이야!”

상대는 이성윤이다.

최학인 대표는 뒤통수를 맞을 것 같은 예감을 받고 있었다.

보좌관이 휴대폰 버튼을 눌러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그리고…….

“대, 대표님…… 카밀라와의 미팅도 며칠 후로 연기했다고 합니다.”

“뭐라?”

그럼 오전 일정이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떠났다는 거다.

아무도 모르게…….

최학인 대표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보좌관이 빠르게 말한다.

“당장 행적을 쫓겠습니다.”

“찾아봐.”

보좌관은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고 최학인 대표는 딱딱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학인 대표의 몸에 소름이 쭉 돋아 올랐다.

‘설마?’

어젯밤, 최학인 대표는 성윤과 술을 한잔 마셨다.

그때 성윤은 최학인 대표의 스케줄을 꼬치꼬치 물었다.

최학인 대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앞으로의 일정을 이야기해 줬고…….

최학인 대표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보좌관, 뉴욕! 뉴욕을 확인해 봐.”

“네? 뉴욕요?”

LA에 간다는 인간이 뜬금없이 뉴욕에 있을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성윤 그 새끼…… 거기에 있을 수도 있어.”

“네?”

보좌관이 우물쭈물하고 있자 최학인 대표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어서!”

“알, 알겠습니다!”

보좌관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최학인 대표는 쑤시는 머리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닐 거야.’

최학인 대표는 어젯밤 성윤과의 대화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맥주에서 위스키로 바꾼 후 실언한 것은 없는지…….

하지만 어디서도 박무혁 대통령의 아들에 관한 힌트를 내뱉은 적이 없다.

‘그런데 눈치를 챘다고?’

최학인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무당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다.

‘그럼 뉴욕에는 왜 간 거지?’

그때 보좌관의 입에서 최악의 답이 흐른다.

“대, 대표님…… 이성윤이 다니엘을 만난 것 같습니다.”

최학인의 입에서 ‘까득!’ 하고 치아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목구멍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른다.

“이성윤!”

***

성윤은 다니엘과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경호원을 배치해 드리죠. 총 열 명.”

그가 가장 강렬히 원하는 것은 안전이었다.

무엇보다 아내와 딸 그리고 자신의 양부모.

그리고 성윤은 그 안전을 해결해 줄 능력이 있었다.

요원으로 따라나선 사람들, 그들을 경호원으로 배치하면 되니까.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가는 머리카락인 거죠?”

“네.”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뽑으면 될까요?”

“아뇨, 검사를 하는 병원으로 가실 겁니다.”

다니엘은 커피를 입에 댄다.

따듯한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서늘한 가슴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겁이 나니까…….

지금껏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다.

성윤이 앞에 놓인 서류를 탁탁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하나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고 성윤이 말을 이었다.

“확인 과정 같은 것인데…… 이제야 물어보네요. 그 늑대 그림 안에 감춰진 이름, 어떻게 됩니까?”

다니엘이 자신의 팔을 바라본다.

“이름요?”

< 씨앗.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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