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의 편이 아니니까. - (3) >
남자가 쓰게 웃더니 성윤의 말을 툭 끊으며 말한다.
“잠깐만요. 제가 먼저 묻겠습니다.”
상당히 예의 없는 행동…….
하지만 성윤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평생을 교도소에서 살아갈 사람에게 이 정도 참아 주는 것은 작은 배려니까.
“그러세요.”
“누굽니까?”
“누구라뇨?”
남자가 엷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쿡쿡 찍는다.
“……날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
그를 한국으로 잡아 온 사람은 정우와 장한수 실장이다.
지시한 것은 성윤이고.
하지만 남자가 궁금해하는 것은 그 뒤에 있는 사람, 자신을 잡아 와 감옥에 처넣은 존재…….
그러니까 박무혁 대통령이다.
그 이름을 범죄자의 앞에서 거론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고 있는데, 성윤의 표정을 관찰하던 그가 히죽 웃는다.
“다시 묻죠. 내가 죽였던 그 여자…… 누구의 여자였습니까?”
박무혁 대통령의 옛 연인이었던 이지현을 말하는 거다.
성윤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입가에 걸렸던 미소가 더욱 짙어지더니 이죽거리며 말을 잇는다.
“나이를 생각하면 대표님의 여자는 아닐 테고…… 대표님이나 되는 분이 여기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그 여자, 유명 정치인의 노리개였습니까?”
“노리개라니, 말이 좀 심함 것 같은데요?”
성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남자의 표정이 확 변했다.
마치 성윤의 약점을 잡은 것처럼 낄낄낄 웃으면서…….
“맞죠? 유명 정치인과 관계된 여자! 제가 멍청한 머리를 조금 더 굴려 볼까요? 그 정치인…… 대표님과 같은 당입니까? 아니면 민국당?”
“…….”
“어쨌든, 그 정치인은 대표님과 정적인 거죠? 그놈이 누가 되었든 내가 지껄이는 게 대표님께 도움이 된다는 거죠? 그럼, 나를 이렇게 홀대하면 안 되죠! 그 여자의 존재를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떠벌리는 방향에 따라 이 나라에 역사가 바뀔 겁니다. 아시죠? 이런 이야기라면 기자들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달려들 거예요!”
영화를 많이 본 건지, 아니면 망상이 많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구치소를 빠져나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사람의 정신을 망쳐 놓은 건지…….
그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성윤을 바라본다.
하지만 성윤은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머리 쓴 것 같은데, 정답은 없네요.”
“속, 속이지 마세요. 정답, 맞잖아요! 정적을 없애기 위해서 저를 이용할 거잖아요! 그럼, 이제 말씀해 주세요. 제가 어떻게 입을 열까요? 그 보상은 무엇입니까?”
“…….”
성윤은 이번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심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이쯤 되면 남자도 알 수 있다.
성윤이 원하는 것은 협상이나 거래가 아니다.
일방적인 질문과 대답이다.
성윤을 동아줄로 생각했던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다.
다시 구치소로 돌아가 재판을 기다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된 거다.
“용, 용건이나 말해 주세요.”
“미국에서 아이를 살해한 적 있죠? 정말 죽였습니까? 대답에 대한 보상은…… 미국에 있는 당신의 가족, 안전을 보장하겠습니다.”
“안전이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예상한 대로 살해했던 그 여자와 그 아이…… 꽤 강한 정치인과 연관이 있어요. 알려지면 복수를 할 겁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잔인하게…….”
남자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입에서는 한숨처럼 담배 연기를 흐른다.
한참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던 그가 힘없이 웃기 시작했다.
“죽였냐고요? 대표님…… 제가 미국에 넘어갔던 것은 새 삶을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의뢰라면서 일이 들어온 거죠.”
“…….”
“의뢰의 대가는 저와 제 가족의 목숨.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죽일 수는 없었어요. 그 나라에서는 어린애를 죽이면 큰일 나니까요. 우리나라 법은 우습지만…… 그 나라 법은 무섭습니다.”
“……!”
“……그래서 죽이는 척만 했습니다.”
성윤의 입안이 바짝 말랐다.
드디어 숨어 있던 또 하나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가슴은 콱콱 막히고 있다.
“그럼, 여자는 왜 죽인 거죠? 그것도 한국까지 쫓아와서?”
“의뢰를 성공 못 해도 제 목숨이 위험해집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한국으로 도망을 갔어요. 그럼, 저는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제가 살기 위해 한국으로 쫓아왔습니다. 그리고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자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 착잡한 표정으로 성윤을 바라본다.
“그 아이…… 죽지 않았다면 살아 있을 겁니다. 고아원 앞에 던져 뒀어요. 그 뒤는 모르지만 추적해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남자가 성윤에게 메모지를 달라고 손을 흔든다.
메모지를 건네자 슥슥 주소를 적어 간다.
아이를 버렸던 고아원이다.
성윤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얻어야 할 정보는 얻었다.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남자가 한숨을 내뱉는다.
“대, 대표님…… 우리 가족은…….”
그는 돈 받고 사람을 죽였던 인간 백정이다.
그런데 자기 가족은 걱정되나 보다.
간절한 눈으로 성윤을 보고 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약속은 지킵니다. 대신 제가 이곳을 찾아온 것 그리고 지금 한 이야기와 그 아이에 대한 것은 모두 잊어버리세요.”
“잊겠습니다. 그러니까……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성윤을 향해 허리를 굽혔고 성윤은 몸을 돌려 접견실을 벗어났다.
기다리고 있던 정우가 성윤의 옆에 붙는다.
“여기 소장을 만나고 가셔야 해요.”
“소장?”
“세상에 공짜는 없고…… 다른 사람 모르게 놈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 대가, 치러야죠. 의원님 온다고 청소도 열심히 했대요.”
그 대가는 구치소장이 성윤 앞에서 얼굴도장 한번 찍는 거다.
고위 공무원의 승진은 아는 인맥이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말이 있고, 성윤과 찍은 사진 한 장은 대단한 스펙이 될 거니까…….
결국, 성윤은 구치소장을 만났다.
가볍게 차 한 잔을 마시려 했는데 구치소장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그는 성윤이 자리에 앉자마자 구치소의 시설이 어쩌고 수용자들이 저쩌고 하며 브리핑을 시작한다.
성윤은 최대한 관심 있게 그의 브리핑을 경청했다.
그리고…….
“소장님의 능력이 출중하셔서 그런지 구치소가 훌륭하게 유지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구치소장이 원하는 대답이었다.
그가 활짝 웃으며 허리를 굽힌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성윤도 마찬가지다.
다음 총선에서 받을 소중한 한 표, 구치소장은 여당에게 행사할 테니까.
잠시 후, 성윤은 구치소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
그리고 서안시로 이동하던 중 정우에게 휴대폰을 건넨다.
“이게 뭐예요? 고아원?”
“확인해 봐.”
방금 구치소에서 만난 남자에게 들었던 고아원이다.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성윤은 박무혁 대통령의 아들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했다.
정우의 입이 떡 벌어진다.
그리고 눈만 깜빡거리고 있던 정우가 정신을 차리더니 목소리를 쏟아 낸다.
“정말요? 진짜 살아 있을 수도 있다고요?”
“확인해 봐야지. 그러니까 그 시기에 들어온 동양인 남자가 있다면 모두 추적하도록 해.”
“대박…….”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움직여야 하는 것 잊지 말고. 아, 한정이 기자 미팅도 취소해. 이런 일은 냄새도 풍기지 말아야 하니까.”
다름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의 핏줄이다.
알려지는 순간 어떤 위험에 처할지 알 수 없다.
정치적인 정적, 외교적인 정적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게 분명하니까.
“대통령님께는요?”
“내가 조용히 보고드릴게.”
차 안의 공기가 서늘해졌다.
모두의 머릿속이 복잡해진 거다.
야당에서 이 일을 알게 되면 어떤 루머를 가지고 어떤 더러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 모른다.
갑작스레 ‘아들 등장!’이라는 타이틀은 막장 드라마만큼 성공할 거니까.
그러니까, 그들보다 먼저 찾아야 하고 먼저 대비해야 한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정우가 슬쩍 웃는다.
“그런데요, 정치적인 문제를 제외하고요. 아들을 만나면…… 정말 좋아하시겠죠?”
박무혁 대통령은 사망한 이지현과 아들에게 죄책감을 가진 채 살고 있었다.
자신이 재벌이란 이유로 그들의 삶의 결말이 비극으로 끝났으니까.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마음속으로 사죄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미안함을 갚을 수 있다면? 정말 좋아할 거다.
“그렇겠지?”
“아들을 찾아서, 보고하러 갈 때는 같이 가 주세요. 대통령님께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
다음 날, 성윤은 다시 청와대를 찾았다.
그리고 아들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전했다.
박무혁 대통령은 한동안 어떤 말도 없었다.
처음 봤다.
박무혁 대통령이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제가 미국에 가서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미국에? 자네가 직접?”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고아원 소재지를 얻었고 박 보좌관이 그 뒤를 추적하는 중이니까요. 그리고 대통령님의 아들 문제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일은 뭐지? 나에게 말해 줄 수 없는 것인가?”
“공화당 후보였던 카밀라에 대한 겁니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는 그레이슨이다.
그런데 그가 대선 후보가 된 것은 그전까지 1위였던 카밀라의 중도 포기 선언, 그녀의 건강 때문이었다.
그런데 성윤이 꿨던 꿈속에서 그녀는 국무부 장관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
“건강 이상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만약 건강 이상이 잘못된 시그널이었다면 지금이라도 우리 편으로 만들어 두는 게 든든할 것 같아서요.”
국무부 장관은 미국 부통령을 제치고 국정 활동의 2인자로 알려져 있다.
외교부 장관과 비슷한 의미지만 전 세계에서 미국이 가지는 외교의 영향력은 상당하니까.
대통령에 이어 국무부 장관까지 우리나라의 편을 만들어 두면 대단히 든든할 거다.
박무혁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해. 필요한 사람은 있나?”
“없습니다.”
“아니야, 요원 몇 명 붙여 주지. 같이 가도록 해.”
정우와 장한수 실장이면 충분하다.
다른 사람이 끼는 것은 사실 번거롭다.
하지만 박무혁 대통령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는 대통령이고 모르고 있던 자식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
마냥 기뻐하고 마음 편히 기다릴 수는 없을 거다.
그의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확인하고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또 필요한 것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제가 미국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불안한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민국당?”
“아뇨, 민국당의 발은 제가 잠시 묶어 둘 수 있습니다. 문제는 대한당의 한상국 대통령과 그 잔당입니다.”
“……!”
대한당의 실제적인 주인들.
그들은 대한당의 몰락을 막아 내고 다시 일어설 날을 기다리고 있다.
성윤의 부재는 그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될 거다.
“몇 명 남지 않았지만 무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일당백이지만 여당은 오합지졸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원수 때문에 단합이 되지 않는다.
아직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다.
단단해지기 전에 거인이 나타나 ‘후’ 하고 바람을 불면 와르르 무너지고 말 거다.
박무혁 대통령은 성윤이 어떤 것을 우려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놈들을 묶어 두지.”
“감사합니다.”
성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무혁 대통령을 향해 허리를 굽히는데…….
“잠깐만…….”
“말씀하십시오.”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 아들, 그 아들 때문에 우리나라의 외교나 국정운영에 불필요한 감정을 끼워 넣지는 마.”
“……!”
“난 박무혁이기 전에 대통령이야. 그런 각오 없이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안 돼.”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 정보원이 알고 있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알고 있을 수 있다.
박무혁 대통령은 그 순간에 자식이 아니라 나라를 선택하려 한다.
성윤이 엷게 웃었다.
“그건 그때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하는 일 없도록 진행하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박무혁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주면 고맙고.”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뜨겁다.
성윤은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하나 더.”
“네.”
“올 때 담배 사 와.”
“네?”
“면세가 싸잖아.”
물론 농담이라고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기사가 떴다.
이성윤 대표, 5박 8일 일정으로 방미
이성윤 대표를 비롯한 여야 지도부가 5박 8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이번 일정은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하고……(후략)…….
성윤과 정우 장한수 실장이 탄 차가 인천공항 주차장에 도착했다.
< 정의의 편이 아니니까.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