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70화 (270/300)

< 정의의 편이 아니니까. - (2) >

“우리나라의 정치인과 고위직 중에 타국의 지원을 받는 자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

친미, 친일, 친중 등으로 표현되는 자들…….

백번 양보해서 다른 국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좋다.

그런데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돈을 받고 다른 나라를 대변해?

그것은 안 될 일이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거다.

싸늘한 한기가 집무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무혁 대통령이 물끄러미 성윤을 바라봤다.

성윤은 무섭게 느껴질 만큼 눈빛에 살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안 놀라네?”

“놀랐습니다.”

조금은 놀랐다.

놀란 이유가 다를 뿐이다.

성윤은 꿈을 통해 미래를 봤고 그런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놈들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짜증 날 뿐이다.

놀란 것은…….

‘벌써 알고 있다고?’

꿈속에서 봤던 대한민국 정부는 은밀하게 들어오는 돈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알게 되는 것은 10여 년 후…….

하지만 그때는 이미 골든 타임이 지났다.

타국의 돈이 대한민국의 뇌세포까지 잠식한 상태, 뿌리를 뽑으면 대한민국 고위직 전체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정치인들은 비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을 닥쳤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며 쉬쉬하는 게 전부였다.

“아직 그 명단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습니다. 혐의만 있을 뿐입니다.”

성윤의 시선이 국정원장에게 향했다.

“명단이 나오기는 했는데, 증거가 없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명단 자체가 희미하다는 것인가요?”

“명단 자체가 희미합니다. 일본과 중국의 자금이 움직이는 것은 확실한데……. 마약 거래처럼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금괴, 미술품, 명품이나 5만 원권이 오가는 중이라서요. 그리고 그 시작점도 기업인지 정부인지 불확실합니다.”

아쉽게도 아직 돈을 받는 자들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성윤 역시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꿈속의 성윤이 이 사실이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돈을 받고 대변인이 된 사람이 너무 많았다.

돈을 줬던 놈들은 알아도 돈을 받은 놈들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국정원장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한다.

“우리 요원들을 대거 투입할 겁니다. 돈을 받았으면 이유 없는 재산 증식이 이뤄졌을 테고 그 꼬리를 찾다 보면 조만간 밝혀지겠죠.”

우리나라의 정보력은 나쁘지 않다.

이 악물고 달려들면 놈들을 찾아낼 수 있을 거다.

게다가 미국 정보기관이 도와주면 시간문제다.

“최악의 상황도 생각해야지?”

청사진만 바라볼 수는 없다.

놈들을 찾지 못했을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정원만 믿고 있을 게 아니라…….

박무혁 대통령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을 잇는다.

“이런 생각을 해 봤어. 중국과 일본을 압박해 볼까? 그럼 그 나라를 대변하기 위해 움직이는 놈이 있을 거잖아? 그놈이 돈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고.”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생각이다.

가능성은 증거나 명분이 되기 어렵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처럼 외교 문제만 극단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

지금 한, 중, 일의 외교는 외줄을 타듯 위태로우니까.

박무혁 대통령의 시선이 성윤을 향했다.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그러자 국정원장이 품에서 수첩을 꺼내 성윤의 앞에 내려 둔다.

수첩을 펼쳐 보자 국회의원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이게 뭐죠?”

“이런 생각을 해 봤어. 내가 타국의 정치인을 섭외하려면 어떻게 할까? 누구부터 섭외할까?”

당연히 친한파라 불리는 자들이다.

거부감이 덜할 테고 같은 이득을 꿈꿀 수도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의 성향을 분석해 봤어. 친미, 친중, 친일……. 거기에 적힌 놈들은 그중에도 성향이 짙은 자들이야.”

“……!”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하려는 게 사람이지. 그래야 다음에도 돈을 받아먹을 수 있으니까. 그놈들……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봐 봐. 어쩌면 지금도 타국의 대변인 노릇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을지 몰라.”

박무혁 대통령이 성윤을 부른 이유다.

자신이 직접 국회에 나가 의원들의 표정을 살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윤을 자신의 눈으로 사용하려 한다.

성윤은 조용히 수첩을 넘겼다.

수십 명의 명단, 그중에는…….

‘우리 당 의원들도 있어.’

박무혁 대통령은 여야 할 것 없이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법이고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은 세상의 진리다.

“자네 촉 좋잖아? 잘 관찰해 봐.”

촉이라 말했지만 눈빛은 성윤을 믿고 있다.

성윤도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짧은 회의가 끝났다.

박무혁 대통령이 한숨을 내뱉으며 소파에 등을 파묻는다.

많이 피곤해 보인다.

국회의원을 할 때마다 더…….

성윤이 정당 싸움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을 때 박무혁 대통령은 외교부터 경제까지,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하니까.

“그럼, 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떠나려 할 때, 박무혁 대통령이 살짝 손을 든다.

“잠깐.”

성윤이 걸음을 멈췄다.

박무혁 대통령이 물끄러미 성윤을 본다.

“서 총리를 영입했다고”

“네.”

“조심해. 서 총리는 전재익과 달라. 뿌리가 흔들리는 거야.”

서용우 전 총리는 한상국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다.

즉, 대한당에서 꽤 큰 지분을 보유했던 사람…….

대한당은 상징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상국 대통령과 그 떨거지들이 움직일지도 몰라.”

대한당을 만들었던 사람들.

그들은 대한당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모든 일생을 대한당을 위해 바쳤으니까……. 자신의 인생이 무너지는 기분일 거다.

“반등을 위한 타깃을 잡으면 우리 당일 거야. 원치 않지만 겹치는 게 많으니까. 그리고 적장의 머리만 베면 된다고 생각하겠지. 그 적장은 자네일 테고.”

“조심하겠습니다.”

“싸우다 힘들면 말해. 내가 혼내 줄게.”

가벼운 농담에 성윤이 빙긋이 웃었다.

대통령이 혼내 준다니, 듣기만 해도 든든하다.

박무혁 대통령이 물끄러미 성윤의 손목을 본다.

“시계…… 바꿀 때 되지 않았어?”

박무혁 대통령은 틈만 나면 성윤의 시계를 걸고넘어진다.

성윤이 차고 있는 것은 2~3만 원대의 수능 시계라 불리는 것인데, 자신의 손목에 감긴 비싼 시계를 선물로 주겠다는 둥…….

성윤은 이번에도 똑같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아니야, 여당 대표가 그런 시계 차고 다니면 안 되지.”

그 말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비서가 들어왔다.

비서가 손에 든 쟁반에는 손목시계가 놓여 있고…….

그 시계의 브랜드는 ‘대통령 박무혁’.

“이건…….”

성윤은 난처했다.

안 받을 수도 없고…….

그 표정을 본 박무혁 대통령이 껄껄 웃는다.

“잘 차고 다녀.”

***

복도로 나왔다.

성윤은 앞서 걷는 국정원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원장님, 잠시만요?”

국정원장이 걸음을 멈췄다.

그가 시선을 틀어 성윤을 향한다.

난처한 얼굴이다.

이곳은 청와대, 두 사람이 내통하는 것을 알려서 좋을 것은 없다.

그걸 성윤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무슨 일로?”

“차 한잔할까요?”

“차요?”

“네.”

성윤은 시답잖은 소리나 하는 사람이 아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그것도 청와대에서 하는 말이라면 더욱 더…….

국정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규모가 큰 곳인데, 평일 낮이라 그런지 손님은 많지 않다.

국정원장이 주변을 살폈다.

당연하지만 성윤과 국정원장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경복궁을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 몇 명이 자신들의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다.

국정원장의 시선이 성윤에게 옮겨졌다.

“어떤 일로?”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어떤……?”

“우리나라 고위직을 섭외하는 다른 국가의 사람들, 그들의 정체가 정부인지 아니면 기업인지 모르신다면서요?”

“아, 네.”

국정원장의 눈빛이 반짝인다.

어쩌면 이번에도 성윤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기대감은 틀리지 않았다.

“중국은 모르겠는데…… 일본은 기업이에요.”

“……!”

“천 퍼센트가 넘어가는 고금리 불법 대부 업체를 중심으로 찾아보세요. 그곳에 돈을 지원하는 놈들, 점조직처럼 흩어져 있어서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그쪽이 시작점입니다. 한번 쑤셔 보세요.”

국정원장이 어색하게 웃는다.

“……알고 계셨습니까?”

“조금은요.”

“도대체…… 어떤 정보원을 굴리고 계시기에…….”

국정원장은 성윤의 정보통을 궁금해한다.

국정원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판단되니까.

물론 그런 정보통은 존재하지 않지만…….

성윤이 단호히 말했다.

“남의 안테나를 궁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국정원장이 한숨을 내뱉는다.

“대표님과 대화하다 보면 국가정보원이라는 이름이 참 무색하네요. 부끄럽습니다.”

국정원이 세상의 모든 일을 알 수는 없다.

그런데 모든 정보가 성윤보다 뒤처지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다.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국정원장이 고개를 들어 성윤을 본다.

“어쩌죠? 저는 드릴 정보가 없는데…….”

“괜찮습니다. 나중에 고급 정보가 나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예를 들면…… 돈 받은 의원들의 명단 같은 거요.”

이번 정보를 말해 준 것은 대가를 바란 게 아니다.

종이장도 맞들면 낫기 때문이다.

조상들이 피로써 지킨 나라다.

그런데 썩어 빠진 몇몇 때문에 우리나라가 통째로 집어삼켜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고개를 끄덕끄덕 잠시 생각에 빠졌던 국정원장이 입을 연다.

“그래도 공짜는 싫어서요. 이런 것은 어떨까요? 대통령님께 보고를 드릴 때, 미국 정보기관에서 보낸 것 중에 얼토당토않은 것은 제외했었습니다.”

“얼토당토않은 거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 정보원들도 엄청난 지라시 속에 파묻혀 살더라고요. 예를 들면 성종 윤 회장이 냉동 인간을 꿈꾼다는 등의 웃기지도 않는 도시 전설……. 그런 이야기가 미국에서 들어왔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세상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개연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어쩌면 국정원장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가 끔찍한 사실일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대가를 원하고 공유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 보자는 생각도 있고.

“재밌겠네요. 말씀해 주세요.”

“대통령님께 아들이 있을지도 모른답니다. 그런데 그게 꽤 자세하게 적혀 있었어요. 20대 중후반쯤 됐는데,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다나?”

“……!”

“어? 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안 웃으시네요?”

“아, 웃기지도 않는 삼류 지라시라서요.”

성윤은 빠르게 표정 관리를 했지만 심장이 뛰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건 또 뭐야……?’

***

“한정이 기자, 요즘 뭐 해? 많이 바쁘나?”

차량에 오르며 성윤이 처음 한 말이다.

정우가 눈을 깜빡인다.

“한정이 기자요?”

“어.”

성윤과 정우가 한정이 기자와 만났던 게 박무혁 대통령에 대한 지라시 때문이었다.

당시 한정이 기자가 있던 작은 언론사는 박무혁 대통령에게 자식이 존재한다는 소문을 쫓고 있었고…….

“한번 만나고 싶은데, 약속 좀 잡아 줘.”

국정원장이 들고 온 도시 전설, 가볍게 넘길 수도 있지만…….

‘확인은 해 봐야 할 것 같아.’

성윤의 심각한 표정을 본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또 있나요?”

“구치소에 연락 좀 넣어 봐.”

박무혁 대통령의 아들을 살해한 놈이 구치소에 있다.

그런데 그의 죄는 무수히 저지른 청부 살인.

박무혁 대통령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힌다.

슬프지만 대선을 위해 입을 닫았고 막았으니까.

국정원도 모를 정도다.

“다른 사람들 모르게 만나 봐야겠어.”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성윤이 뜬금없이 한정이 기자와 청부업자를 만나려는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꾹 참고 지시를 따른다.

“알겠어요.”

차는 출발했고 성윤의 시선은 창밖으로 향했다.

‘도시 전설일까? 아니면…….’

머릿속이 복잡하게 움직인다.

그때 구치소에 전화를 넣었던 정우가 성윤을 바라본다.

“의원님, 구치소 면회는 지금도 가능하다는데요? 어차피 독방 쓰고 있어서 몰래 빼낼 수 있나 봐요.”

“그래?”

“갈까요?”

“어.”

그 말과 동시에 장한수 실장이 핸들을 틀었다.

차가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방향을 바꾼다.

잠시 후.

성윤은 구치소 접견실에 앉아 있었다.

앞을 바라보자 중년의 남성이 보인다.

인상은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좋게 말해 청부업자, 돈 받고 사람을 죽인 살인마다.

성윤이 그의 앞에 담배를 내려 뒀다.

남자는 담배를 손에 쥔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묻는다.

“높으신 분이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성윤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죠. 당신이 미국에서 저질렀던 살인…….”

< 정의의 편이 아니니까.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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