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69화 (269/300)

< 정의의 편이 아니니까. - (1) >

성윤은 서용우 전 총리의 속마음을 듣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지금껏 당하기만 했으니 덥석 손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머뭇거리는 서용우 전 총리를 향해 성윤이 입을 열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다음 대선에 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당의 후보로 나를 지지하겠다고?”

“저는 선거에 나가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총리님께 든든한 우군이 될 것입니다.”

서용우 전 총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성윤을 보며 말한다.

“헛소리는 그만. 난 네놈의 말을 믿지 않아. 네놈이 날 필요로 하는 이유를 믿지. 그러니까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해. 날 어디에 쓰려는 거지?”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서용우 전 총리가 끌끌끌 웃으며 말을 잇는다.

“대한당에서 넘어간 난민들이 자네 말을 안 듣나? 자기들끼리 계파를 만들어 당을 시끄럽게 하고 있나? 아니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예상되니까, 내가 나서서 그놈들을 막아 달라는 것인가? 자라날 싹은 미리 밟아 버리게?”

서용우 전 총리의 말을 조용히 듣던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이지 않겠습니다. 그런 생각도 없지는 않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가 어이없다는 듯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뚝 웃음을 멈춘 후 성윤을 쏘아본다.

그 눈빛에 호의는 없다.

이글거리는 분노만 가득하다.

분위기가 서늘해질 때, 서용우 전 총리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말했어, 다음 총선에 대거 물갈이될 거라고. 맞지?”

“네.”

“그럼 내 말을 따라 입 다물고 있던 대한당 출신들은?”

“대거 물갈이가 될 겁니다.”

“조용히 머릿수만 채우고 있다가 사라져라?”

“네.”

서용우 전 총리의 입술이 뒤틀린다.

정치는 사람 싸움이다.

그런데 자신을 믿고 조용히 지내던 의원들이 뒤통수를 처맞으며 대거 물갈이가 되면?

그것은 서용우 전 총리의 팔다리가 모두 잘려 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놈이…….”

“총리님, 정치를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뜬금없고 건방진 말이다.

서용우 전 총리의 눈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성윤은 상관 않고 계속 말한다.

“믿고 따르는 의원들의 보신을 위한 겁니까? 아니면 국가나 국민을 위한 것? 그것도 아니면 끝없는 권력을 위해?”

“건방진 말은 거기까지만 해.”

“저는 총리님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드릴 수 있습니다. 무엇을 목표로 하든지 손발을 아까워하지 마세요.”

“뭐라?”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 손은 이미 더럽습니다. 총리님 모르게 오물도 만지고 피도 만졌어요. 그 손과 함께 있다가 같이 기자들 앞에 설 겁니다. 그리고 말하겠죠. ‘난 아무것도 모른다.’라고요.”

서용우 전 총리의 얼굴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기자들 앞에 선다고?”

“네, 장소는 검찰이 되겠죠.”

서용우 전 총리가 성윤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이제 협박을 해?”

“협박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끝까지!”

“그 의원들과 잡은 손 놓으세요! 제가 총리님의 손과 발이 되겠습니다!”

“그 말을 믿으라고?”

“5년 후에 청와대에 갔다가 5년 후에 나오세요. 그 자리, 제게 물려주시고요. 그럼, 명예도 권력도 모두 총리님의 손에 있을 겁니다.”

“내가 네놈의 손발이 되는 거겠지! 허수아비를 찾으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어!”

술에 취해서 그럴까? 아니면 그동안 성윤에게 쌓인 감정이 폭발하는 중일까?

서용우 전 총리는 자신의 처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불만을 쏟아 내고 있다.

지금 대한당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렇게 나오기 힘들다.

이대로 두면 말이 길어질 것 같다.

그래서 성윤은 그의 입장을 깔끔하게 정리해 버렸다.

“그럼, 대한당에 남아 계실 겁니까? 무너진 성벽에서 공을 세울 겁니까? 그게 총리님의 목표라면 더 설득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제가 제안한 조건을 수락하십시오.”

“뭐? 무, 무너진 성벽?”

서용우 전 총리의 행동이 멎었다.

지금껏 성윤을 앞에 두고 다다다다 말을 쏟아 냈지만 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대한당에 남아 있어서는 어떤 가망도 없다는 것을…….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성윤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제 표현이 건방졌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입당해 주십시오. 그게 최선입니다. 전 총리님과 같은 꿈을 꾸고 싶습니다. 그리고 공천이 시작되면 총리님과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공천을 함께 고민하겠다고?”

“네.”

성윤은 공천권을 준다고 하지 않았다.

함께 고민하겠다고만 했지…….

적당히 체면치레를 받고 들어오라는 거다.

서용우 전 총리가 껄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대며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넌 참 나쁜 놈이야.”

서용우 전 총리는 한참 동안 담배만 피웠다.

재떨이에 담배가 쌓여 간다.

그리고 마지막 담배를 비벼 끈 후 그가 술병을 든다.

그러자 성윤이 두 손을 내밀어 술을 공손히 받았고 서용우 전 총리가 말했다.

“그래, 자네 말을 따르지. 그럼, 내 수족은 사라지고 나는 네놈의 꼭두각시가 되겠지. 때로는 얼굴마담으로 때로는 욕받이로 이용될 거야. 네놈은 그럴 놈이니까. 나도 알아. 그런데 이성윤…… 다른 것은 몰라도 대통령 후보, 그 약속은 지켜. 그것은 내가 해야겠다.”

성윤이 술병을 건네받아 서용우 전 총리의 잔을 채웠다.

“약속드리겠습니다.”

***

-지난 대선에서 대한당 후보로 출마했던 서용우 전 총리가 한민당의 문을 두들겼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는 세상을 꿈꾼다면서…….

-서용우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노선 변경에 대한당 지지자들이 거리로 나와 반대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서용우 전 총리의 입당에 이성윤 대표가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성윤 대표는 세계 많은 나라에 자국 우선주의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치권이 통합과 단합을 해야 한다. 큰 결심을 한 서용우 전 총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며…….

서용우 전 총리의 입당…….

대한당은 충격을 받은 것처럼 흔들렸다.

아니, 대한민국 호사가들이 모두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용우 전 총리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극히 일부다.

전문가는 물론이고 직장인들의 술자리, 포털 사이트의 댓글에서도 공공연히 성윤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지난번에 안재열 대통령 데리고 온 것도 이성윤이지?

-진짜 그러네?

-그런데, 이번엔 서용우까지 끌고 온 거야? 대박이네.

-스카우터 능력 짱.

-이러다가 도제성도 끌고 오는 거 아냐?

-이념이 안 맞는데 도제성이 어떻게 와?

-안재열은? 박무혁이랑 이념이 맞아? 아니잖아.

-뭐야? 그럼, 여당이 어벤저스당이 되는 거야?

-이성윤 대단하네. 그 나이에 당 대표 하는 게 얼굴마담인 줄 알았는데. 능력이 있나 봐?

-미친, 이성윤한테 능력을 말하냐? 이성윤은 20대에 전무후무한 재선 의원이었어. 거기에 투자 대박. 그리고 이성윤이 리제를 끌고 와서 서안시는 지금 고용 100%야.

-서안시는 불법체류자도 없어. 경찰이 주기적으로 쑤시고 다니거든. 그래서 합법적인 외국인만 있지.

-일하고 싶은 사람은 서안시로 와. 청년을 위한 임대 아파트도 있어. 결혼하고 애기 낳으면 계속 연장할 수 있고.

-서안시 주민들 다 등장임? 집값 올리려고?

성윤의 지지율이 쭉쭉 오르는 중이다.

여기저기 각종 여론조사에서 성윤의 이름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성윤은 정작 자신의 지지율에 큰 관심이 없다.

인기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세상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지율이란 잘하면 오르는 거니까.

박무혁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청와대로 가는 길…….

성윤이 조수석에 앉은 정우에게 입을 열었다.

“두 가지 부탁할 게 있어.”

“말씀하세요.”

“전재익 대표에게 휠체어를 사 준다고 약속했거든?”

“네?”

“검찰에 소환될 거잖아. 타고 갈 게 필요하니까. 최고급으로 사 준다고 했으니까, 이거 좀 주문해서 대한당으로 보내 줘.”

성윤이 휴대폰을 건넸다.

정우가 화면에 뜬 휠체어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사요?”

“약속은 지켜야지.”

“의원님은 정말 악마 같아요. 전재익 대표가 이걸 배송받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고맙다고 하지 않을까?”

욕할 게 분명하다.

정우가 한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알겠어요. 그럼, 다음은요?”

성윤은 두 가지를 부탁한다고 했다.

하나가 휠체어 주문이면, 다음은…….

성윤이 수첩을 건넸다.

“이거.”

정우가 주섬주섬 수첩을 펼쳐 본다.

처음 보는 이름 그리고 간단한 신상 정보가 가득하다.

학교 선생님부터 은퇴한 스포츠 스타까지…….

한 장, 두 장 넘겨 보던 정우가 고개를 틀어 성윤을 바라봤다.

“이 사람들 누구예요?”

꿈속에서 봤던 정치인들이다.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계파 싸움에 패배하며 사라진 자들.

또는 눈에 띄지 않아 조용히 묻힌 사람들이다.

지금 나이를 계산해 보면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일 거다.

꿈속에서는 예순이 넘은 나이게 당선됐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이른 데뷔를 꿈꿔 본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들의 능력을 제대로 펼쳤으면 한다.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찾아봐.”

“영입할 사람들인가요?”

“어.”

성윤은 정치권의 대거 물갈이를 계획하고 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거다.

고인 물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려 할 테니까.

그 계획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정우가 수첩을 덮으며 묻는다.

“경선에 넣으려고요?”

“그건, 아직 모르겠어. 보고 생각할 거야.”

성윤이 기억하는 그들의 모습은 예순이 넘은 나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만큼의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을 테고 아직 여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 섣불리 경선에 참여시키는 게 아니라 잠시 기다리면 된다.

묵혀 둔 채 여물기를…….

그리고 제대로 익었을 때 꺼낼 거다.

“찾아볼게요.”

“땡큐.”

잠시 후, 성윤은 청와대에 도착했다.

집무실에 들어가자 박무혁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다가온다.

박무혁 대통령이 미국을 다녀온 후 처음 보는 자리다.

서로가 이런저런 활동으로 바쁘기 때문에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어렵다.

반갑게 악수를 한 후 소파에 앉았다.

“오랜만이야.”

“그레이슨과 이야기는 잘 됐습니까?”

박무혁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 시간 동안 잠시 만난 공화당의 그레이슨 후보.

두 사람의 햄버거 외교는 뉴스를 통해 잘 봤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물었는데, 미국에 방문했던 일을 생각하던 박무혁 대통령이 슬쩍 웃는다.

“그레이슨이 약속 하나를 해 줬어.”

“약속요?”

성윤의 꿈속에서 미국의 대통령은 그레이슨이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아직 대통령급이 아니다.

민주당 앤서니의 지지율이 워낙 압도적이니까.

성윤은 그레이슨의 지지율이 기적처럼 치고 올라갈 것을 알지만 미래를 모르는 각 국의 정상들은 민주당 후보 앤서니와 미팅을 잡는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 박무혁이 아무도 찾지 않는 그레이슨을 만났다.

선물까지 잔뜩 안겨 주고 왔다.

그가 대한민국과 박무혁 대통령을 특별하게 생각할 것은 분명하다.

‘약속을 했다고?’

성윤이 기대로 가득한 표정으로 박무혁 대통령을 바라봤다.

혹시 무역에 대한 어떤 약속을 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대통령에 취임하면, 외계인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려 주겠대.”

“네? 외계인요?”

박무혁 대통령이 쿡쿡쿡 웃기 시작했다.

“뭘 기대한 거야?”

놀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성윤이 한숨을 내뱉는데 똑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비서가 들어와 허리를 굽힌다.

“대통령님, 국정원장이 도착했습니다.”

“아, 들어오라고 해.”

국정원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성윤과 눈이 마주쳤지만 두 사람은 눈인사만 한다.

박무혁 대통령 앞에서 내통하는 것을 떠벌리면 예의가 아니니까.

국정원장이 소파에 앉으며 힐끗 성윤을 본다.

그러자 박무혁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이 대표는 내가 불렀어. 아무래도 같이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박무혁 대통령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사라졌다.

껄껄 웃었던 모습 역시 한참 전에 없어져 버렸다.

성윤도 진지한 얼굴로 박무혁 대통령과 국정원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국정원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의 방미로 미국 정보기관에서 몇 가지 정보를 보내왔습니다.”

박무혁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 그레이슨만 만나고 온 것은 아니다.

현 대통령을 만났고 짧은 시간에 상당한 친분을 쌓았다.

미국 정보기관에서 받은 정보는 그 친분의 대가다.

그런데 내용이 심상치 않나 보다.

두 사람의 표정이 어둡다.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 국정원장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연다.

< 정의의 편이 아니니까.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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