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68화 (268/300)

< 세 개에서 다시 두 개. - (5) >

268화

***

라디오 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여당이 차지한 국회 의석이 백 석을 넘겼습니다. 대한당의 이탈에 의한 효과입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한당의 이탈이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채널을 돌려도…….

-검찰은 곧 전재익 대표를 소환 조사하겠다며…….

여기저기 대한당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차에 앉아 있던 성윤은 휴대폰으로 휠체어를 검색하고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장한수 실장의 말에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송파구에 있는 커피숍에 도착했다.

3층에 있는 곳으로 평일에는 손님이 없다.

위로 올라가니 정기화 실장이 앉아 있다.

“오셨습니까?

정기화 실장은 정중히 허리를 굽힌다.

그리고 마주 앉자마자 정기화 실장이 입을 연다.

“당의 기세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반짝 거품입니다.”

성윤의 표정은 무심하다.

조금 기뻐해도 좋으련만 그 어떤 티도 나지 않는다.

정기화 실장은 물끄러미 성윤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까…….’

이번 사건에서 성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대한당은 박살 났고 성종과 언론의 손이 더러워졌다.

하지만 이득을 본 것은 성윤이다.

‘이것도 정치력인가? 아니면 협잡?’

잠시 생각하던 정기화 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의 미래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니까.

성윤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좋은 거다.

차를 입에 댔던 성윤이 물었다.

“회장님 건강은 어떤가요? 그때 보니까 많이 힘들어 보이시던데.”

정기화 실장은 씁쓸히 웃는다.

윤 회장의 건강이 극히 나빠지고 있었다.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자식들에게는 해외 업무를 자제하라 했고요.”

“혹시…… 저 때문에 병세가 악화되신 것은…….”

정기화 실장이 손을 저었다.

“아뇨. 그런 것 없습니다. 오히려 일이 생기면서 활기가 넘치셨습니다.”

성윤의 눈빛이 찌푸려졌다.

‘뭐지?’

뭔가 이상하다.

찝찝한 느낌이 가시지를 않는다.

꿈속에서의 윤 회장은 비록 병석이었지만 몇 년은 더 세상을 호령했다.

그런데 지금의 병세를 보면…….

‘이상해…….’

지금껏 역사는 바뀌었지만 사람의 수명이 바뀐 것은 보지 못했다.

성윤은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병실에 드나드는 사람이 의료진을 제외하면 또 누가 있죠?”

“가족과 제가 전부죠.”

정기화 실장은 미래를 모른다.

그러니까 성윤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오늘 뵙자고 한 이유가…….”

그는 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펼쳐서 확인했다.

윤범성 부회장의 비서실장 이력서가 보인다.

“이 사람은 왜요?”

“……회장님께서 직접 오더를 내리셨습니다. 저는 한참 고민했고요.”

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윤 회장은 자신의 아들 윤범성 부회장을 끔찍이 아낀다.

오죽했으면 윤 회장이 성윤을 직접 찾아와 윤범성 부회장과 가까이 지내 달라고 했을까…….

아직도 품 안의 자식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아들의 치부를 일개 비서실장이 알고 있다면?

정기화 실장이 말을 잇는다.

“고민했습니다, 이 대표님께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저는 아직까지 회장님을 모시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지금 윤 회장보다 성윤을 더 두려워한다.

그래서 말하는 거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리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도움이 될 사람이네요.”

윤 회장의 사후, 윤범성 부회장의 비리를 폭로할 핵폭탄이 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최악의 상대가 되는 법이니까.

정기화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뒤에…… 지금 숨어 있는 장소가 적혀 있습니다.”

잠시 후, 사무실로 돌아온 성윤은 정우와 장한수 실장을 불렀다.

“정우야. 성종 병원 의료진 만나서 윤 회장의 상태를 알아 봐.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으니까 최대한 은밀하게.”

윤 회장의 상태가 꿈속과 다르다.

확실히 알아봐야겠다.

“네.”

정우의 대답을 들은 후 성윤의 시선은 장한수 실장에게 향했다.

“지금, 그 깡패들 훈련시키는 중이죠?”

“아, 네.”

경기도 양주에서 한 폐공장.

장한수 실장은 그곳에 깡패들을 모아 놓고 경호를 가르치고 있다.

이번 밀수에 가담했던 경홍 건설의 깡패들…….

“꽤 괜찮은 수행원이 될 것 같습니다.”

정치와 폭력은 가깝다.

권력을 향한 탐욕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게 만들기도 한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가장 간단히 만드는 것은 원인이 된 사람을 살해하는 거니까.

그때를 대비하는 거다.

“연습을 했으면 시험을 봐야죠? 몇 명 추려서 이 사람을 찾아 주세요. 재개발 지역에 숨어 있다고 하니까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서둘러야 해요.”

정기화 실장에게 받은 이력서를 건넸다.

그리고 성윤의 시선은 다시 정우에게 향했다.

“우리 돈이 얼마나 있지?”

“꽤 되죠.”

“빼서 쓸 수 있는 것.”

“리제에 집어 둔 것 제외하면…….”

성윤은 꿈속에서 본 미래를 활용해서 활발한 투자를 하는 중이다.

벤처 사업에 투자하고 상장하면 회수하고.

“뺄 수 있는 것은 빼서 준비해 둬.”

예측과 달리 윤 회장이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 윤범성 부회장은 준비되지 않은 상속세를 마주해야 할 거다.

그때가 성종의 주인을 갈아 버릴 수 있는 기회다.

성윤이 손뼉을 짝 쳤다.

“자, 움직입시다.”

***

“헉! 헉! 헉!”

서울의 한 재개발 지역.

건장한 남성이면 나란히 걷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골목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 한창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주민의 반발로 공사가 잠시 멈춘 곳이기도 하다.

밤 10시가 넘자 사람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깨진 창문에 붉은 페인트로 ‘FUCK’ 이라는 글씨가 을씨년스럽게 적혀 있다.

그곳에 한 남자가 담벼락에 붙어 숨어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남자는 얼마 전까지 윤범성 부회장의 비서실장이었던 강준호였다.

‘여, 여기는 어떻게 안 거야?’

홍콩에서 돌아온 후 곧바로 몸을 숨겼다.

놈들에게 잡히면 자살‘당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놈들이 이곳까지 찾아왔다.

살짝 고개를 내밀어 밖을 보면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손에 쇠붙이를 들고 그를 찾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벅, 저벅…… 놈들의 불안한 발소리가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강준호는 눈을 꽉 감았다.

‘내, 내가 뭘!’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성종의 윤범성 부회장을 향해 충성을 다한 게 죄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쑥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 숨었네?”

강준호의 심장이 쿵쾅쿵쾅 울린다.

“씨, 씨발!”

“욕하면 나쁜 사람이…….”

검은 양복은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분명 입꼬리를 뒤틀며 웃고 있었는데 몸이 허공에서 빙글 돌더니 ‘쾅!’ 하고 땅으로 꽂혔기 때문이다.

강준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을 바라보는데…….

낯선 사람이 손바닥을 툭툭 털며 그의 앞에 선다.

범상치 않을 정도로 큰 덩치를 가진 남자…….

장한수 실장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누, 누구시죠?”

“지금 통성명할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사방에서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리는 중이다.

그러더니 장한수 실장이 훈련시킨 수행원과 싸움이 붙었는지 폭력의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죽어!”

“이 새끼가!”

비서실장 강준호가 처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가, 가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장한수 실장이 앞서 걷기 시작했고 강준호 비서실장이 그 뒤를 쫓는다.

그렇게 골목골목을 숨어 이동하며 길가로 나왔다.

장한수 실장이 차를 가리킨다.

“타세요.”

강준호 비서실장의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쫓아 여기까지 왔는데…… 타야 하나?

인간의 상상력은 풍부하다.

강준호 비서실장의 머릿속에서 온갖 잔인한 일들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에게 선택지는 없다.

거부하면 성종에서 보낸 깡패들에게 목숨을 잃을 테니까.

눈을 질끈 감고 차량 안에 올랐는데…….

“고생 많았어요.”

“……!”

여당 대표 이성윤이 앉아 있다.

하지만 놀랄 시간도 없다.

차는 출발했고 조수석에 앉은 정우가 강준호 비서실장에게 비행기 표를 건넨다.

“여권 좀 훔쳐봤습니다. 3시간 후에 떠나는 비행기예요. 짐은 못 챙겼으니까 필요한 물품은 도착해서 사시고요.”

“어, 어디를 가라는 거죠?”

정우가 씩 웃는다.

“하와이로 갈 겁니다. 보안은 걱정하지 마세요. 극비로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 뒀으니까요. 그리고 심심할 것 같아서 동행할 사람도 구해 뒀고……. 아, 돈도 걱정하지 마세요. 동행할 사람 손에 한도 없는 카드가 있거든요.”

강준호 비서실장 혼자 하와이에 보낼 수는 없다.

언제든 다시 한국으로 끌고 와서 증언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장한수 실장이 가르치는 깡패 중 충성심이 가장 높은 사람을 동행자로 뽑아 뒀다.

그는 강준호 비서실장을 보호할 것이며 감시도 할 거다.

불안한 표정의 그를 보며 성윤이 입을 열었다.

“싫은 가요? 계속해서 성종에 충성할 생각이면 내리셔도 됩니다. 내 돈 써서 비행기에 호텔까지 잡았는데…… 강요는 하지 않아요.”

“아,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강준호 비서실장은 성종 윤 회장의 사후에 모습을 드러낼 거다.

그 전까지는 몸을 꽁꽁 숨긴 채 휴양이나 즐길 테고…….

어느새 차량은 공항에 도착했다.

강준호 비서실장이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동행자가 허리를 굽힌다.

“모시겠습니다.”

강준호 비서실장은 아직 얼떨떨하다.

정신없이 일어난 상황이라 그런지 멍한 표정이다.

그를 향해 성윤이 손을 흔든다.

“그럼, 알로하.”

그를 인천공항에 남겨 둔 채 성윤이 탄 차는 다시 이동했다.

그리고인천을 지나 서울로 진입하며 성윤이 입을 열었다.

“장한수 실장님, 부탁할 게 하나 더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정기화 실장을 가드해 주세요.”

장한수 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정기화 실장을요?”

정기화 실장은 윤 회장의 최측근이다.

성종의 권력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누가 감히 그를 건들 수 있을까…….

성윤이 입을 열었다.

“윤 회장은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어요. 윤범성 부회장에게 해가 되는 것은 모두 지우는 중이죠.”

“……!”

“윤범성 부회장에게 정기화 실장은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어요.”

정기화 실장은 성종의 지분을 상당수 쥐고 있다.

게다가 윤 회장의 옆에서 실세로 지내 왔기 때문에 임원들이 그를 따른다.

마지막으로 정기화 실장은 성종의 급소를 모조리 알고 있다.

성윤이 말을 이었다.

“윤 회장은 정기화 실장의 능력을 진심으로 인정하죠. 그래서 가만히 내버려 둔 채 떠나지 않을 거예요. 교도소에 넣거나 아니면…….”

장한수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가드하겠습니다.”

옆에 앉은 정우도 대답한다.

“그럼, 교도소에 갈 일은 제가 확인해 봐야겠네요. 검찰의 움직임을 알아볼게요.”

***

며칠 후…….

성윤은 성종의 싸움을 기다리며 당의 안정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갑작스레 몸집이 커지며 불협화음이 날 수 밖에 없고 오합지졸로는 최학인 이준대와 싸워 이길 수 없다.

그 중심을 잡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도착한 곳은 강남의 뒷골목을 비집고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조용한 바였다.

턱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난 주인이 성윤의 얼굴을 보고 눈을 크게 뜬다.

“이성윤 대표님?”

“계신가요?”

주어를 말하지도 않았는데 주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계십니다.”

정치인이 만날 사람은 뻔하다.

주인은 성윤을 가장 구석의 룸으로 안내했다.

커튼을 열어젖히자 조용히 앉아 술을 즐기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가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이, 이성윤?”

“오랜만입니다. 서용우 총리님. 주진만 의원님이 말해 주셨습니다, 여기 계실 거라고.”

서용우 전 총리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 영감이…….”

“앉아도 되겠습니까?”

“앉으려고 온 거잖아. 앉아.”

성윤이 자리에 앉았다.

술집 주인은 재빨리 잔과 숟가락을 세팅한다.

그리고 두 사람만 남게 되었을 때 성윤은 물끄러미 서용우 전 총리를 바라봤다.

패배한 정치인의 모습은 비슷하다.

변호사나 사업가 등 원천 기술이 있는 사람은 나름의 인생을 살지만…….

그게 아닌 사람들은 무대 뒤의 쓸쓸함으로 사라져야 한다.

서용우 전 총리도 마찬가지, 하지만 눈빛은 살아 있다.

“어떤 일인가?”

“일단 한잔 주십시오.”

서용우 전 총리가 술잔을 들어 성윤의 잔을 채웠다.

두 사람은 잔을 들어 입에 댄다.

“용건부터 말해. 빙빙 돌리면 답답하니까.”

“입당해 주십시오.”

예상했던 말이었나 보다.

서용우 전 총리는 놀라는 기색 없이 다시 술잔을 채우고 입에 댄다.

“내가 입당할 필요가 있나? 자네는 이미 강한 힘을 갖고 있잖아? 뒤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서 있고.”

“다음 대통령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

서용우 전 총리는 자신도 모르게 잔을 콱 움켜잡았다.

그가 화로 가득한 눈으로 성윤을 쏘아본다.

“……대통령?”

“네.”

“또…… 또 속으라고?”

“속이는 것 없습니다.”

“박무혁 정권이 이제 시작됐어. 그런데 벌써 차기를 생각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우리 당의 가장 큰 약점이 다음을 이어받을 인물이 없다는 겁니다.”

성윤은 다음, 다음 대선이나 되어야 겨우 가능한 나이가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주진만은?”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했습니다.”

“공대출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건 총리님께만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다음 총선에서 우리 당의 국회의원은 대거 물갈이될 것입니다.”

탐욕을 위해 배지를 달았던 사람은 모두 물러나게 될 거다.

그런데,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권력의 마약은 놓을 수 없는 거니까.

그들과 싸울 때 서용우 전 총리가 필요하다.

성윤이 술병을 기울였다.

그리고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서용우 전 총리의 잔을 채운다.

“우리 당의 어른이 되어 주십시오.”

“……!”

서용우 전 총리에게는 그 말이 꼭 ‘한 번만 더 속아 주십시오.’로 들린다.

< 세 개에서 다시 두 개. -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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