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65화 (265/300)

< 세 개에서 다시 두 개. - (2) >

전재익 대표가 정신을 차린 것은 한참 후였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분노한 눈으로 쏘아보는 게 전부였다.

성윤이 소파로 이동해 앉으며 입을 열었다.

“앉으세요.”

“……원하는 게 뭐지?”

“원하는 거요? 앉으시는 거요. 차 한 잔은 같이 마실 수 있잖아요?”

전재익 대표가 입술을 꽉 깨물며 성윤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떤 말도 없었다.

비서가 차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고 사라질 때까지…….

그런데……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 있던 전재익 대표의 표정이 돌연 확 변해 버렸다.

갑자기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빠져나갈 곳을 찾은 거다.

그가 시선을 들어 성윤을 노려본다.

“내 보좌관을 데리고 있다고? 그놈이 자네한테 쪼르르 달려갔나? 그래, 뭐라고 해? 내가 밀수를 저질렀다고 지껄였나?”

“……!”

전재익 대표가 담배를 입에 문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는지 입꼬리는 희미하게 웃고 있다.

참 재수 없게…….

역한 담배 냄새와 함께 버럭, 전재익 대표의 호통이 내려쳤다.

그는 가쁜 숨까지 몰아쉬며 성윤을 쏘아붙인다.

“설마 내 보좌관의 말만 듣고 나를 엮으려는 게야! 그건 억지고 이유 없는 망신 주기야! 못 믿겠으면 경찰에 연락해 봐! 난 그놈이 밀수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고 곧바로 신고했지! 그놈은 자네 품으로 도주했고! 그런데 날 잡고 늘어져?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고 하더니…… 딱 그 꼴이야!”

여기까지 말한 전재익 대표가 다리를 외로 꼬며 거만하게 성윤을 바라본다.

그리고 툭 말을 던졌다.

“내 변명은 끝났어. 이제는 자네가 변명할 시간이야. 자네는 밀수범을 숨겨 두고 보호하고 있지. 그놈의 말만 믿고 대한당 당 대표를 죄인 취급하고 있어. 뭐든 떠들어 봐, 내 화가 풀릴 때까지.”

성윤이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자 전재익 대표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그는 생각했다.

‘어차피 이성윤이 가진 증거와 증인은 보좌관이야. 그게 전부야! 하지만 내 손에는 어떤 오물도 묻어 있지 않아. 아주 깨끗해.’

전재익 대표가 주먹을 쥐었다 펴며 손바닥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다시 성윤을 보며 업신여기듯 말을 잇는다.

“변명해 보라고.”

“…….”

“없어? 그럼, ‘죄송합니다. 제가 보좌관의 말만 듣고 경솔하게 행동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무릎 꿇고 싹싹 빌어. 넓은 아량으로 봐줄 테니까. 정치 문제로 확대하고 싶지 않으면……. 뭐야? 너 표정이 왜 그래? 비웃어? 미쳤어, 이 새끼야!”

성윤은 크게 웃고 있었다.

손을 이마에 대고 어이없다는 듯이…….

전재익 대표의 목소리가 폭탄처럼 터져 나왔다.

“왜 웃어, 이 새끼야!”

“아, 웃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죄수복을 입고 살아야 할 사람이 당당한 척하는 게 너무 웃겨서요. 사람이 뻔뻔해도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나? 얼굴에 철 가면을 쓴 것도 아닌데.”

“뭐?”

“됐고요. 검찰에 출두할 때 타고 갈 최고급 휠체어 하나 사 드리죠. 그 휠체어에 타고 포토 라인에 서세요. 그리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연기를 하세요. 그게 당신들의 마지막 코스프레잖아요.”

“……!”

전재익 대표의 표정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무너지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전 대표님, 성종 호텔에서 윤범성 부회장을 만났죠? 보좌관이랑 같이 차에서 내리고 엘리베이터에 타던 것, 그리고 방에 들어가는 것까지…… 모두 CCTV에 찍혀 있습니다.”

“……!”

“그리고 보좌관이 혼자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나 봐요. 대표님이 밀수를 지시하던 목소리를 휴대폰에 녹음해 뒀네요.”

전재익 대표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어쩌죠? 증거가 확실한데…….”

“이익!”

전재익 대표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졌다.

망했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CCTV?’

윤범성 부회장을 만났던 날, 분명 성종 호텔의 모든 CCTV를 정지시켰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보안은 걱정 없다고 했었는데…….

그 속마음을 듣던 성윤이 크게 웃는다.

“멍청하게, 그걸 믿었어요?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야죠! 작년에 검찰총장이 어떻게 박살 났는지 기억 안 나세요?”

전재익 대표의 눈동자는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작년에 검찰총장?’

대정 호텔의 CCTV에 검찰총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혔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차량의 트렁크에 과일 박스가 실리는 것까지…….

“성종이고 대정이고 똑같은 장사꾼이에요! 이득이 되는 것이면 뭐든 손에 쥐고 있죠! 그런데 대한당 대표의 치부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잖아요? 그걸 놓치겠어요?”

지금 성윤의 말은 모두 거짓이다.

성종의 CCTV 같은 것은 없다.

그런데 전재익 대표는 어떤 의심도 없이 성윤의 말을 믿고 있다.

대정 호텔 CCTV에 얼굴이 찍혀 몰락한 검찰총장의 선례가 있으니까…….

전재익 대표는 ‘성종 호텔도 그럴 수 있어…….’라는 생각에 지배당하는 중이다.

그리고…….

전재익 대표가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들었다.

방금과는 다른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 대표…… 원하는 게 뭐지? 원하는 게 있으니까 들렀지? 그게 아니면 언론에 흘렸을 거잖아…….”

“찾아온 이유요?”

“그래, 말해 봐.”

이 사건이 전재익 대표의 개인적 일탈로 끝나서는 안 된다.

대한당 전체를 집어삼키고 대한당의 역사에 마지막 온점을 찍어야 한다.

그래야 끝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웅크린 채 기회를 보다가 언제든 다시 부활할 거다.

이들은 기나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대한당이니까…….

마지막은 가루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온 거다.

“원하는 것이라……. 제가 원하는 게 뭘까요?”

“뭐?”

“저는 지금 당장 대한당을 벼랑 끝으로 던져 버리고 싶어 미치겠어요. 어려운 일은 아니죠. 휴대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른 후 ‘터뜨려.’라는 한마디를 하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궁금하네요. 대표님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줄, 줄 수 있는 것?”

“네.”

전재익 대표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잡아 입에 댔다.

재떨이에는 벌써 담배꽁초가 네까치나 보인다.

뿌연 연기가 흐르며 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돈을 원하나?”

“돈은 많습니다, 넘치도록.”

“그럼……?”

“제시해 주세요, 제가 뭘 원하는지…….”

“그냥 말해, 이 새끼야! 무릎이라도 꿇을까!”

전재익 대표가 분노를 터뜨린다.

하지만 위협적인 음성은 아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할퀴려고 어설픈 이빨을 드러낸 꼴이다.

이제 거의 끝났다.

퇴로를 살짝 열어 주면 그곳에 호랑이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신나게 달려갈 거다.

성윤이 전재익 대표를 향해 바짝 몸을 당겨 앉았다.

“대표님…… 정당은 싸우고 지지고 볶으며 살아갑니다. 이념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며 원하는 유토피아가 다르니까요. 그런데 서로의 생각은 다르지만 우리에게는 공통된 마음이 있습니다.”

“……!”

“우리나라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 배고프고 굶주리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 그러기 위해서 싸우는 거고요. 맞죠?”

전재익 대표가 또 담배를 입에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뭘 원하는 거지?”

“성종 그룹을 치죠.”

전재익 대표의 행동이 그대로 멈췄다.

라이타의 불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면 정지 화면처럼 보였을 거다.

“성, 성종 그룹?”

“아시겠지만 박무혁 대통령의 임기 중 목적 하나가 능력 없는 재벌 후계를 퇴출하는 겁니다.”

성윤은 성종의 힘을 빌려 대한당의 생명을 끊으려 한다.

물론 직접 칼을 들고 마침표를 찍어 낼 수도 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당 대표가 밀수에 관여된 상황이기 때문에 가볍게 건드는 것만으로 휘철거리게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한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은 성윤을 원수처럼 생각할 거다.

자신들의 당을 박살 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그럼 낙오된 사람을 흡수해 덩치를 키우려던 계획은 물 건너가게 되는 거다.

그렇게 되면 원치 않는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도 있다.

침몰하는 대한당에 남아 ‘같이 죽겠다!’라며 투쟁하거나 뿔뿔이 흩어진 그들이 새로운 당을 만들어 ‘타도 이성윤’을 외치는 것.

머릿수만 많은 오합지졸 대한당보다 ‘복수’ 정신으로 똘똘 뭉친 소수의 게릴라전이 두려운 법이다.

그들은 기를 쓰고 성윤의 파멸을 위해 노력할 테니까.

그래서 이이제이, 성종으로 대한당을 부숴 버릴 생각이다.

그 싸움에서 대한당이 성종 윤범성 부회장의 몸에 타격을 주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일이고.

“전재익 대표님, 성종과의 전쟁에서 대한당이 선봉에 섰으면 합니다.”

“……!”

“윤범성 부회장은 성종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본시장을 교묘히 이용했어요. 주가를 관리하면서 합병 비율을 높였다가 낮췄다가……. 그 과정에서 성종 호텔은 분식 회계를 하고. 합병 비율을 정당화하려 했죠.”

전재익 대표의 두뇌는 상당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성종은 밀수를 통해 정치자금을 전해 주려 했다.

즉, 전재익 대표의 밀수 사건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다는 거다.

게다가 CCTV까지 갖고 있다 하니…….

‘성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물론 그 생각은 성윤의 귀에 확실히 들리는 중이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검찰을 움직여서 압수 수색하세요. CCTV 영상을 제일 먼저 확보하셔서 없애 버리세요. 그럼 대표님은 자유의 몸입니다.”

“……!”

“그때 대표님의 보좌관이 녹음한 밀수 지시 음성 파일도 선물로 드리죠.”

전재익 대표는 조용히 성윤을 바라봤다.

성종을 치기 위해 선봉에 선다는 것…….

어쩌면 이 위기가 기회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한당이 앞장서서 윤범성 부회장의 손에 수갑을 채우면 부자 위주의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으니까.

거기에 밀수에 대한 흔적도 없애 버릴 수 있다면?

그동안 밀수에 손을 대며 찝찝한 마음이 가득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정말 깨끗이 씻을 수 있게 됐다.

전재익 대표는 이 일이 꿩 먹고 알 먹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재익 대표는 윤범성 부회장의 몰락으로 벌어질 사회현상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발전만 생각할 뿐이다.

빌어먹을 보신 정치…….

“검찰을 움직이려면 여당의 힘이 필요해. 힘써 줄 거지?”

“물론이죠.”

성윤은 환하게 웃어 줬다.

자리에서 일어난 성윤이 전재익 대표와 악수했다.

“그럼, 나중에 뵙죠.”

“그러지.”

성윤은 당 대표실을 벗어나기 위해 문을 연다.

그 앞에 복도의 끝까지 대한당의 당직자들이 복도를 채우고 서 있다.

무서운 눈으로 성윤을 노려보면서…….

갑자기 나타난 여당의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전재익 대표가 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뭣들 하는 거야! 예의 갖춰!”

잠시 손잡게 됐다고 챙겨 주는 거다.

어쨌든 전재익 대표의 목소리에 당직자들이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그리고 성윤은 그들의 사이를 여유롭게 지나쳤다.

***

성윤이 도착한 곳은 성종 병원 로비였다.

다급히 내려온 정기화 실장이 성윤을 보고 눈을 깜빡인다.

“어, 어쩐 일이십니까?”

“그때 말씀하셨잖아요?”

“네? 어떤 거?”

“윤 회장님께 이르는 게 제일 확실하다고요. 그래서 이르러 왔어요.”

엘리베이터는 곧장 최상층을 향해 올라갔다.

정기화 실장이 조심스레 묻는다.

“이르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전재익 대표가 성종의 후계 과정을 파헤치려 한대요.”

“후, 후계 과정요?”

“그런데, 아시죠? 윤 회장님이 살아 계시는 이상 전재익 대표는 성종을 못 이겨요.”

윤 회장은 오랜 시간 세상에 머물러 온 강자다.

그와 싸우려면 대통령급이 나서야 한다.

전재익 대표는 아직까지 체급이 안 된다.

“윤범성 부회장과 대한당, 둘이 싸워서 누가 이기든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죠. 그런데 윤 회장님께 정보를 주고 예쁨이나 받으려고요. 그게 이득 같아서요. 그리고 윤 회장님이 수십 년간 정계에 뿌려 댄 돈…… 이럴 때 써야 하지 않을까요?”

엘리베이터가 정상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며 VVIP실의 복도가 드러났다.

정기화 실장은 앞서 걷는 성윤의 뒷모습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정계에 뿌려 댄 돈을 이럴 때 써야 한다고?’

그 말이 꼭…… 이 기회에 윤 회장의 뇌물 장부를 훔쳐보고 싶다는 뜻으로 들린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 세 개에서 다시 두 개.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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