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64화 (264/300)

< 세 개에서 다시 두 개. - (1) >

-듣기만 하세요. 그 깡패 새끼들과 연락이 안 됩니다. 자동차도 버리고 사라졌습니다.

전재익 대표의 표정이 굳어지기는 것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동만 의원이 ‘듣기만 하세요.’라고 말했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화를 꾹 참으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 애들이 깡패 놈들의 사무실 CCTV와 버리고 간 자동차의 블랙박스를 뒤져 봤습니다. 그런데 블랙박스에 대표님의 보좌관과 통화한 것으로 보이는 녹음 파일이 존재했습니다.

“……!”

-어제저녁 8시 50분 쯤에 대한당 당사 앞 커피숍에서 보자는 내용인데…….

“확인해 보겠습니다.”

전재익 대표는 통화를 종료했다.

눈동자가 벽에 걸린 시계로 향한다.

‘어젯밤 8시 50분?’

기억해 보면…….

보좌관과 함께 100억 원의 금덩이를 생각하며 청사진을 그리던 때다.

‘그다음에 저놈이 뭘 하고 있었지?’

보좌관이 사무실을 떠난 후 무엇을 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한동안 당사에 존재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설마?’

생각에 빠졌던 전재익 대표가 다시 보좌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떤 일도 없었던 것 같은 평온한 눈빛으로…….

“보좌관, 양아치들에게 연락해서 약속 시간을 잡아. 오전 중에 확인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네.”

“혹시 딴생각할 수 있으니까 믿을 만한 경호원을 뽑아서 놈들 옆에 붙여 두고.”

“알겠습니다.”

전재익 대표의 입에서 지시 사항이 떨어졌다.

보좌관은 넙죽넙죽 “네, 네.” 하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다.

‘김동만 의원에게 전화가 왔다면 금괴가 없어진 것을 이야기했을 텐데, 뭐지? 내 예상이 틀렸나? 그럼 왜 전화한 거지?’

결국, 보좌관이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김동만 의원이 왜 전화했습니까?”

“아…… 별일 아니야. 돈 들어오면 뽀찌 좀 달라고 징징대네. 신경 쓰지 말고 금괴 확인이나 잘해.”

“알,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가려 할 때, 전재익 대표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보좌관.”

“네, 대표님.”

“우리가 같이 있던 게 20년은 넘었지? 준이가 이제 고등학생인가?”

“지금 중 3입니다.”

“중 3?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거 보고 못 본 것 같은데, 신경 못 써 줘서 미안해.”

“아닙니다.”

“중 3이면 학원비 많이 들지? 영어에 수학, 논술 같은 것 몇 개 더 집어넣으면 100만 원은 후딱 넘는다는데. 맞아?”

보좌관은 전재익 대표가 갑자기 왜 이런 것을 묻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대답은 했다.

“영어 하나만 가르치고 있어서 생각보다 돈은 많이 안 듭니다.”

“그래? 대출은 다 갚았나? 아파트, 대출 끼고 들어갔던 것 아니야?”

전재익 대표는 보좌관의 금고를 열어 보려 하고 있다.

보좌관이 어색하게 웃었다.

“의원님? 갑자기 왜……?”

“아니야. 나가 봐.”

보좌관은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부드럽게 웃고 있던 전재익 대표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그가 수화기를 귀에 댄다.

“어젯밤 8시 40분에서 12시 사이. 당사 출입문 CCTV 영상. 그리고 그 시간에 보좌관 휴대폰 사용 내역 파악해서 튀어 와. 뭐? 휴대폰 사용 내역은 영장이 필요하다고? 이 새끼야! 내가 그딴 것에 신경 쓸 사람이야! 알아서 가져와!”

전재익 대표는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 뒀다.

그의 분노한 시선이 닫힌 문을 노려본다.

“보좌관 이 새끼가 감히 겁도 없이…….”

***

그 시각, 김동만 의원의 사무실.

김동만 의원의 앞에는 성윤이 앉아 있었다.

김동만 의원이 휴대폰을 내려 두며 입을 연다.

“전재익 대표에게 시킨 대로 전화는 했는데…….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네, 고생하셨습니다.”

“또 없고?”

“네.”

성윤은 할 말을 마쳤다.

몸을 일으키자 김동만 의원이 다급히 입을 연다.

“잠, 잠깐…….”

성윤이 김동만 의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김동만 의원이 간절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묻는다.

“재. 재판…… 힘써 줄 수 있겠는가?”

“재판요?”

“그래, 재판…… 하하.”

성윤이 물끄러미 김동만 의원을 바라봤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궁금한 거? 뭐든 물어봐.”

“돈 받으셨죠?”

“뭐?”

뜬금없는 질문에 김동만 의원의 표정이 흐려진다.

하지만 성윤은 그의 표정을 상관 않고 더 깊숙이 찌르고 들어갔다.

“경홍 건설요. 대한당에 깡패들을 소개시켜 주는 대가로 돈 받으셨잖아요?”

“그, 그게 무슨……?”

김동만 의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돌린 채 창문 밖 먼 산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성윤의 귀에 적나라하게 들려오는 중이다.

-받, 받기는 했지.

성윤이 메마른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다시 물어볼게요. 돈을 준 곳이 대한당이 아니라 혹시 민국당인가요? 그럼 돈을 들고 온 사람은 누구죠?”

“이 대표! 내가 재판을 앞두고도 정신 못 차리고 돈이나 받을 사람으로 보여!”

김동만 의원의 눈동자는 분노로 가득하다.

하지만 분노의 눈동자는 진실을 가리는 거짓이다.

그 안에는…….

-이성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민국당과 이준대까지 알고 있는 거야?

그 속마음을 들으며 성윤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이준대…….’

고맙게도 이준대는 성윤의 계획을 도와주는 중이다.

차근차근 이준대 게이트를 완성해 가면서…….

‘그 끝에는 단두대가 걸려 있을 거야.’

해야 할 일도 끝냈고 알아야 할 것도 알았다.

김동만 의원의 사무실에 더 있을 필요는 없다.

성윤은 김동만 의원에게 살짝 허리를 굽힌 후 몸을 돌렸다.

“그럼.”

그러자 김동만 의원이 서둘러 비굴하게 웃으며 성윤의 다리를 잡는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재, 재판은?”

“힘써 드릴게요.”

김동만 의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이어진 목소리는…….

“평등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국회의원이었다는 이유로 가중처벌을 받지 않도록 힘써 드리죠.”

“뭐?”

김동만 의원은 잠시 현실을 부정하며 눈을 깜빡였다.

“평등한 재판?”

“그럼…….”

성윤은 다시 고개를 숙인 후 그대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한수 실장이 성윤의 옆으로 붙는다.

“다음은 어디죠?”

“잠시만요.”

성윤은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전재익 대표의 보좌관에게 메시지 하나를 전송했다.

내용은 방금 김동만 의원과 전재익 대표가 통화한 것을 녹음한 파일이다.

전송 완료 글자를 보며 성윤이 입을 연다.

“전재익 대표와 그 보좌관, 20년 넘게 함께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동안 쌓아 둔 신뢰에 금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정우가 생각한 계획이다.

보좌관이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장한수 실장이 어깨를 으쓱한다.

“어디로 갈까요?”

“대한당 당사요.”

“네?”

“가죠.”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앞서 걸었다.

***

대한당 당사, 옥상 흡연장…….

보좌관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도착한 음성 파일…….

‘블랙박스에 나와 양아치가 통화한 게 존재한다고? 저녁 8시 50분에 당사 앞 커피숍?’

아래턱에 힘이 콱 들어갔다.

‘당했어.’

그는 양아치와 약속을 잡은 적이 없다.

그 시간에 성윤을 만났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믿어 주지 않을 거다.

보좌관이 커피숍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당사 정문 CCTV에 찍혔을 테니까.

물론, 커피숍 내에서 성윤과 만난 증거를 찾으면 오해를 풀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상대는 여당 대표 이성윤.

커피숍은 물론이고 주변 CCTV를 내버려 뒀을 리 없다.

성윤이 연락한 전화번호도 대포폰일 게 분명하고.

‘하, 씨발…….’

그러고 보니, 전재익 대표가 이상한 질문을 했었다.

사교육비나 대출…….

‘돈이 쪼들려서 금괴를 슈킹했다고 생각했나?’

그럼 지금 전재익 대표가 할 일은 뻔하다.

당사 출입문 CCTV를 확보해서 보좌관이 드나든 흔적을 찾을 거다.

휴대폰 사용 내역을 확인해서 신원 미상의 누군가와 통화한 시각을 대조할 테고.

‘그다음은?’

보좌관이 다급히 휴대폰을 귀에 댔다.

“여, 여보…… 피해 있어. 준이 데리고 당장! 나중에 말할 테니까 일단 처갓집 말고…… 그래, 강원도에 호텔 하나 잡고 들어가 있어. 돈은 현금만 사용하고! 그래, 연락할 테니까.”

전재익 대표는 무서운 사람이다.

게다가 지금은 손에 쥐었던 금덩이가 거품처럼 사라진 상황.

전재익 대표는 보좌관이 금덩이를 먹었다고 의심할 거다.

‘잠깐은 피해 있어야 해!’

오해를 푸는 것도 분노가 누그러진 후다.

지금 전재익 대표는 금덩이를 삼키지도 않은 멀쩡한 거위의 배를 갈라…….

그때 지이이잉, 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비서관…….

“왜?”

다급히 받았는데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비서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화장실 같은 곳에 숨어서 몰래 통화하는 것 같다.

-보좌관님, 무슨 일 있으세요?

“어? 왜?”

-지금 대표님이 보좌관님을 경찰에 묶어 둔다고…….

“뭐? 경찰?”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이 낮이 아니라 밤이었다면, 당사가 아니라 밖이었다면 전재익 대표는 깡패를 움직였을 수도 있다.

경찰은 말이라도 통하지…….

-일, 일단 피하세요. 온 것 같아요.

뚝!

전화가 끊겼다.

보좌관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떨려 온다.

‘벌써?’

옥상 난간에 손을 대고 아래를 보니 경찰차가 세 대, 봉고가 한 대 와 있다.

‘씨발!’

그는 평생 뒤처리를 하며 살아왔다.

손에는 많은 피와 오물이 묻어 있다.

옷깃만 털어도 징역 5년은 충분할 거다.

전재익 대표는 그걸 카드로 거래하려 할 테고.

‘제기랄!’

보좌관은 몸을 틀어 비상계단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경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용의자가 옥상에 있다는 제보가 있어. 너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너희는 계단으로 움직여!”

“네!”

지시를 내렸던 사내가 무전기를 입에 댄다.

“입구 막아.”

***

보좌관은 11층 건물의 옥상에서 1층을 향해 다급히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헉! 헉!’

입에서 단내가 흐를 정도다.

그렇게 4층까지 내려왔는데, 뜬금없이 정우가 서 있다.

정우가 비상구를 열며 말한다.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면 경찰을 만날 거고요. 이쪽 복도로 나가면 외벽 계단이 있어요.”

지금 믿을 수 있는 것은 대한당이 아니라 여당 대표의 보좌관 정우다.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상구를 통과했다.

곧 경찰들이 달려 올라왔다.

그들은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정우를 슥 본 후 다시 위를 향해 달려갔다.

같은 시각, 보좌관은 외벽 계단을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1층에 다다랐을 때…… ‘빵!’ 하고 클랙슨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검은 차량의 창문이 스르륵 열리고 있다.

“타세요.”

성윤이 손을 흔든다.

보좌관은 인상을 구기며 성윤의 차량 조수석에 올랐다.

장한수 실장에 액셀을 힘껏 밟는다.

동시에 외벽 계단 비상구의 문이 열리며 경찰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보좌관이 넥타이를 풀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었다.

그런데 휴식을 취하는 것도 잠시다.

그가 성윤을 향해 인상을 확 쓴다.

“어디까지 가지고 놀 생각입니까!”

보좌관은 성윤의 손바닥에서 뛰고 달렸다.

이용되는 인생이지만 놀아났다는 생각은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성윤이 조용히 입을 연다.

“내가 보좌관님을 배려할 필요는 없잖아요?”

“……!”

“그런데 정작 보좌관님을 배려를 했어야 할 전재익 대표는 금덩이 하나에 20년 의리를 무너뜨리네요. 그저 앞뒤 사정을 알아보지 않은 채 보좌관님을 잡아 두려고만 하죠. 그런데 보좌관님이 의리를 지킬 필요 있습니까?”

“……!”

“이제 그만 정치판에서 물러나세요. 그리고 좋은 아버지가 되세요.”

보좌관은 인상을 찌푸린 채 창밖을 본다.

그런데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그는 이 상황을 꿈꾸고 있었다.

대한당 몰락에 관여하면서 스스로가 납득하고 변명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내뱉을 수 있는 한마디.

“전재익 대표가 먼저 시작한 거야.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

정치판을 벗어나면서도 명분을 생각하고 있다.

***

“놓쳤다고?”

전재익 대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 하는 거야! 평생 운동 한 번 안 한 놈을 눈앞에서 놓치고!”

-죄송합니다.

경찰서장의 죽어 들어가는 목소리에 전재익 대표는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뒀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데…….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비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이, 이성윤 대표가 찾아왔습니다.”

“이성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성윤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라는 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전재익 대표의 얼굴은 일그러진다.

“여기가 어디라고…….”

전재익 대표에게 성윤은 당을 떠난 박쥐이며 당을 박살 내고 있는 철천지원수다.

마음대로 대한당을 왔다 갔다 하며 오갈 수 있는 놈이 아니다.

“그 나이에 당 대표 하니까 세상이 다 네 것 같지? 공식적으로 약속 잡고 와.”

“…….”

“나가!”

성윤이 시선을 들어 전재익 대표를 향했다.

“보좌관, 내가 데리고 있어요.”

“……!”

“100억 금괴, 그것도 내가 갖고 있고요.”

전재익 대표가 헛숨을 삼켰다.

흔들리는 눈동자에 힘을 줬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얼굴은 핏기가 증발한 것처럼 창백해졌다.

성윤이 그의 표정을 보며 말을 잇는다.

“정치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무관심인데…… 최근 언론이 대한당은 거론도 안 했죠? 그런데 이제 이 나라의 모든 눈과 귀가 대한당의 이름으로 시끄러워지겠어요. 축하드려요, 원하는 대로 이뤄져서.”

< 세 개에서 다시 두 개.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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