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63화 (263/300)

< 금덩이. - (5) >

보좌관의 사고는 잠시 멈췄다.

최악의 상황…….

‘여당이 우리를 잡고 늘어지면, 그래서 전재익 대표가 밀수에 발을 담갔다는 게 세상에 밝혀지면…….’

국민은 패닉에 빠질 테고 민주당과 진보당은 축포를 터뜨리며 일어날 거다.

거리 곳곳이 욕설로 채워지고 과격 시위가 이어지는 미래는 뻔하다.

그럼, 사건의 결말이…….

‘내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대한민국 역사를 그려 온 대한당의 괴멸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 안 돼…….’

누구나 마지막을 여는 열쇠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연, 연예인 섹스 스캔들로 막을 수 있을까? 누구 없나?’

보좌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으로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한당을 노리는 하이에나는 이미 입맛을 다시고 있다.

그들이 피 냄새를 맡는 순간 뼈도 남지 않을 거다.

그때 성윤의 목소리가 무겁게 들렸다.

“내려오세요. 건너편 커피숍입니다.”

***

“오랜만입니다.”

대한당, 당사 건너편의 프라이빗한 커피숍.

성윤과 전재익 대표의 보좌관이 마주 앉았다.

보좌관의 얼굴은 처참하다.

성윤이 인사를 건넸지만 묵묵부답…….

찬물을 몇 번이나 마시고 나서야 입을 연다.

“어,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누른다.

잠시의 연결음…….

-천오민입니다.

“금괴는?”

-모두 수거했고 옮기는 중입니다.

“적당한 곳에 잘 숨겨 두세요.”

-네.

통화가 종료됐다.

이어서 다른 휴대폰을 꺼내더니 또 통화 버튼을 누른다.

들리는 목소리…….

-이우현 청장입니다.

해양경찰청장이다.

성윤이 조용히 묻는다.

“잡았나요?”

금괴를 내려 두고 다시 홍콩으로 떠나던 밀수 전문 조직.

성윤은 장소와 시간을 경찰청에 알렸고…….

-잡았습니다.

천오민 일당이 금괴를 빼돌려 사라진 순간 놈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성윤의 통화가 이어지는 동안 전재익 대표 보좌관의 표정은 무너지고 있었다.

천오민은 성윤과 손잡았고 밀수 조직은 검거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거다.

‘이, 이 새끼가…….’

성윤의 얼굴은 아직 앳되다.

하지만 가면을 벗겨 내면 수백 년을 살아온 징그러운 이무기가 혀를 날름대고 있을 것 같다.

결국 보좌관은 눈을 감아 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지만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이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꽉 쥔 주먹이 파들파들 떨리는 중이다.

성윤이 휴대폰을 내려 둔 후 보좌관을 바라봤다.

보좌관도 천천히 눈을 뜬다.

그는 이제 처분을 기다리는 초식 동물이다.

“뭘, 뭘 원하는 겁니까?”

성윤이 빙긋이 웃는다.

“이럴 때는 제 지갑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하는 것보다 보좌관님의 카드를 먼저 꺼내야 할 것 같은데요. 뭘 줄 수 있습니까?”

“제, 제 카드요?”

보좌관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다.

성윤이 입을 연다.

“먼저, 오해를 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전재익 대표가 검찰청에 타고 갈 휠체어는 제 손으로 직접 사 드릴 겁니다. 출시된 것 중에 제일 비싼 것으로…….”

“……!”

전재익 대표는 반드시 교도소에 보내겠다는 의지다.

“그런데 그때도 전재익 대표의 옆에 서 있을 생각입니까?”

일그러지는 보좌관의 표정을 보며 성윤이 느릿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함께 교도소에 가기 싫으면…… 자, 이제 카드를 꺼내세요.”

보좌관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같이 교도소에 간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보좌관은 처음부터 전재익 대표의 교도소행은 단 1%도 생각하지 않았다.

‘교도소에 가는 것은 나 혼자가 될 거야.’

전재익 대표는 검찰과 법원을 구경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게 분명하다.

검찰이 전재익 대표의 집을 털고 쇼를 해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더러운 냄새뿐…… 실체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더러운 것은 모두 보좌관이 만져 댔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이 잠잠해지면 그놈의 무혐의가 내려질 테고…….

한참 멍하니 있던 보좌관이 낄낄낄 웃기 시작한다.

“더럽게 됐네요.”

한참을 웃던 그가 시선을 들어 성윤을 향한다.

차분해진 목소리로…….

“보좌관 따위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잘 아시잖아요? 우리는 책임지는 자리죠. 좋게 말해 충신, 나쁘게 말하면 총알받이. 평생을 개, 돼지로 이용되며 살아왔는데, 카드가 어디에 있겠어요? 카드 발급은 인간만 받을 수 있는 겁니다.”

보좌관이 찻잔을 손에 든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하지만 목소리는 담담한척 애를 쓰고 있다.

그가 계속 말을 내뱉는다.

“대한당을 쑤셔도 결국 제 개인적인 일탈로 끝이 날 겁니다. 그러니까…… 번거롭게 하지 말고 신고하세요. 밀수, 그거…… 개인적으로 알아봤는데, 관세법을 적용하네요. 70억의 금괴를 밀수한 사람이 징역 2년을 받은 적이 있어요. 잘못을 뉘우치는 척 반성문도 쓰고, 어쩔 수 없었다며 눈물을 흘리면, 그리고 전재익 대표님이 힘을 써 주시면 징역은 줄어들겠죠. 어쩌면 집행유예도 가능할 테고요.”

“집행유예? 그거 제가 막겠습니다. 제가 그 정도 힘은 있을 것 같지 않나요?”

“……!”

성윤은 여당의 당 대표다.

그 정도 힘은 차고 넘친다.

보좌관의 얼굴은 딱딱히 굳어 갔다.

사방이 막혔고 남은 길은 벼랑 끝이란 것을 확실히 느끼는 중이다.

성윤이 말을 잇는다.

“모시는 국회의원을 위해 감옥에 가고, 대신 생명을 잃고……. 그게 뭡니까? 보좌관님의 아들이 언젠가 말할 겁니다. 우리 아버지는 밀수하다가 감옥에 갔다고, 난 우리 아버지가 부끄럽다고…….”

“의원님!”

보좌관의 표정이 박살 났다.

하지만 성윤은 상관 않고 계속 말한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대한민국이 제대로 되려면 사람들 마음에 딱 한 가지 있으면 된다고요.”

“…….”

“자식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마음.”

보좌관의 눈빛이 분노로 물들어 간다.

그런데 그 분노는 성윤을 향한 게 아니다.

자신의 병신 같음이 싫어서다.

정치인에게 빨간 줄은 하나의 이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치 문제일 때나 훈장이지 밀수는 그냥 쓰레기다.

평생을 정치판에 구르며 나름대로 명예를 쌓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치 인생의 마지막이 쓰레기가 되어야 한다니…….’

초조한 그의 얼굴을 보며 성윤이 입을 열었다.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두 가지를 할 수 없죠. 밀수에 손을 댄 대한당 당 대표의 보좌관과 좋은 아버지.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선택하고 말고도 없는 문제다.

할 수만 있다면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게 이 시대 남자들이니까.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를 보며 성윤이 말을 잇는다.

“태국에 괜찮은 국제 학교가 있어요. 거기서 자식 교육하며 노후를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돈과 안전은 보장해 드리죠.”

보좌관은 식어 버린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잔을 탁 내려 두며 성윤을 바라본다.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이 싸움의 목표가 전재익 대표입니까?”

“아뇨.”

“그럼?”

“대한당이죠.”

“……!”

처음 예상했던 것이 맞다.

이 싸움의 끝에는 대한당의 괴멸이 기다리고 있다.

입술을 꽉 깨문 보좌관이 다시 더듬더듬 묻는다.

“왜, 왜? 대표님도 대한당에서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민국당도 아니고 대한당을 없애려 하다니…….”

“대한당만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시기의 문제일 뿐, 민국당도 곧 없어질 겁니다.”

“……!”

보좌관은 눈만 껌뻑거린다.

도대체 성윤의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양 당이 없어져도 또 다른 당이 나올 겁니다. 그건 흐름이고 반대할 생각은 없죠. 훈구, 사림, 남인, 서인, 노론, 소론…… 이제는 대한당과 민국당, 그 지겨운 당파 싸움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계속되어 왔으니까요.”

각 당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며 멱살 잡고 싸워 대면 언제나 환영이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옥신각신하는 게 아니다.

자신들의 탐욕, 제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하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썩어 가는 중이다.

“지금쯤 환부를 도려내고 가는 게 올바른 처방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보좌관은 황당한 표정으로 성윤을 보고 있다.

성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시나리오는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보좌관님의 역할은 정의로운 내부 고발자. 다음에 만날 때는 캐스팅 계약서에 사인하고 곧장 촬영에 들어갔으면 좋겠네요.”

지금 당장 결정을 바랄 수는 없다.

보좌관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할 테니까.

하지만 선택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시기가 문제지…….

성윤이 떠났다.

혼자 남은 보좌관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대한당과 민국당을 없애겠다고?’

선거에서 지껄이는 ‘대한당 심판’, ‘민국당 심판’ 같은 것이 아니다.

상대를 죽일 때까지 끝내지 않을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제정신이 아니잖아?’

마른침을 삼키던 보좌관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에서 한숨만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는 대한당과 한평생을 함께했다.

그런데 그 대한당이 역사에서 지워지는 순간을 도와야 한다.

아니면 밀수로 교도소에 가거나…….

‘아오!’

그 선택을 빨리 해야 한다.

조만간 전재익 대표도 금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될 거다.

그 전에…….

***

“금괴 밀수?”

같은 시각, 서초동의 전통 주막이었다.

늦은 새벽이었지만 성윤의 앞에는 주진만, 채정학 의원이 보인다.

두 사람은 성윤의 말을 듣고 눈을 깜빡이는 중이다.

대한당이라는 거대 정당의 대표가 밀수에 관여했다니…….

듣고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성윤이 거짓말할 이유도 없고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는 법.

착잡한 표정으로 혀만 끌끌 차고 있다.

성윤이 말을 이었다.

“……금괴는 지금 제가 보관하고 있고요.”

여기까지 들었을 때 주진만 대표는 끌끌 차던 혀를 내둘렀다.

“그걸 또 빼돌렸어?”

“네, 전재익 대표는 아직 모르고요.”

“하이고…… 우리 당 대표 정말 무서운 사람이네. 100억짜리 금괴를 빼돌려서 대한당에 쏟을 핵폭탄을 제조 중이야?”

“대한당은 문을 닫을 수 있을까요?”

주진만 의원이 웃음을 멈추고 채정학 의원을 향했다.

“닫을 것 같아?”

채정학 의원은 한때 대한당의 대표였던 사람이다.

원내 대표를 했던 주진만 의원보다 내부의 속사정을 더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채정학 의원이 어깨를 으쓱한다.

“주주들이 들고일어나겠죠.”

성윤이 궁금했던 자들이다.

대한당의 주주들…….

실제 기업과 같이 돈을 투자한 사람이 아니라 그 뒤에 선 자들, 대표적으로 한상국 전 대통령과 원로들이 있다.

그리고 군자금 등을 대주는 사람, 인맥을 이용해 도움을 주는 사람 등등의 누군가…….

성윤이 가장 꺼리는 게 그 누군가, 뒤에 숨은 그림자들이다.

언제나 드러나지 않은 칼이 무서운 법이니까.

채정학 대표가 성윤을 보며 말한다.

“밀수로 시끄럽게 만들 수는 있겠지. 대한당의 지지율은 땅에 처박힐 테고 사람들은 외면할 거야. 그런데 재판이 몇 년이 걸릴까? 대법원까지 가는 데 적어도 3년에서 4년. 박무혁 대통령이 아무리 기를 써도 언젠가는 레임덕이 올 거야. 그때 대한당의 남은 사람들이 민국당과 손잡고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채정학 대표가 설명을 이어 갔지만 성윤이 궁금한 것은 최악의 상황이 아니었다.

“혹시 아십니까?”

“뭘?”

“대한당 주주 명단요. 특히 꽁꽁 숨어서 군자금이나 인맥을 챙겨 주는 사람요.”

“어?”

채정학 의원은 순간 당황했다.

인물에 대한 정보는 대한당 기밀 중에 기밀이니까.

“명, 명단?”

말을 더듬자 조용히 막걸리를 마시던 주진만 의원이 껄껄껄 웃기 시작했다.

“뿌리까지 뽑아 버리려고? 아이고, 이 대표를 보고 있으면 여당으로 옮겨 온 게 천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나마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겠어. 하하하.”

긴 밤이 끝나 갔다.

성윤이 뒷목을 꾹꾹 누르며 차에 올랐다.

서류를 확확 넘기던 정우가 성윤을 향한다.

“전재익 의원의 보좌관요.”

“어.”

“고민이 많겠어요.”

“왜? 안쓰러워?”

“안쓰럽죠. 같은 처진데.”

그러고 보니 정우가 보던 서류는 그 보좌관에 대한 거다.

가족 구성부터 시작해서…….

정우가 말을 잇는다.

“그래서 더 고민하지 않도록 도움 좀 줘야겠어요.”

“어떻게?”

정우가 슬쩍 웃는다.

“손에 쥘 뻔했던 금덩이가 빠져나갔을 때, 그 사람은 정말 분노하겠죠?”

정우의 설명을 들은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

다음 날.

대한당 당사 당 대표실.

창밖을 보던 전재익 대표가 보좌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금괴 도착했다고 했지? 확인하러 언제 갈 거야?”

“네?”

전재익 대표는 금괴가 다른 곳으로 빠졌다는 것을 모른다.

여전히 자신의 수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왜? 확인 안 할 거야? 어제 새벽 2시부터 확인 가능하다고 했잖아?”

보좌관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금방 확인하겠습니다.”

“오늘 시간을 줄 테니까 다녀와. 양아치들은 믿을 수 없고 보안에 신경 써야 하니까, 애들 시키지 말고 직접 움직이고.”

“아, 네.”

전재익 대표는 부드럽게 웃으며 보좌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긴다.

“보좌관이 번거로운 일 한다고 기분 나쁜 것은 아니지? 이건 귀찮은 게 아니야. 내가 너를 신뢰한다는 의미야.”

“감사합니다.”

그때 책상에 놓인 전재익 대표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가 김동만 의원이다.

보좌관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 양아치들은 김동만 의원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연락이 왔다는 것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싸하다.

금괴가 없어진 것을 이야기할 것 같다.

보좌관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질 때, 전재익 대표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그가 밝은 목소리로…….

“아, 김 의원님?”

< 금덩이. -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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