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62화 (262/300)

< 금덩이. - (4) >

천오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렀다.

그가 어렵게 입을 연다.

“……죄, 죄송하지만 먼저 안전을 약속받고 싶습니다.”

“안전?”

“불법적인 사업이잖아요. 그러니까 보좌관님께 말했다가 위험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우리 직원과 가족이 해코지당하지 않도록…….”

“노력하죠.”

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천오민이 입을 열었다.

“바다 건너에서 금괴가 배달될 겁니다.”

“금괴?”

예상했던 대로 밀수하는 물건이 금괴로 결정되는 순간이다.

그 뒤로 한참 설명이 이어졌지만 정우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묻죠. 김동만 의원과 지켜야 할 의리가 있습니까?”

“아뇨. 저희는 얼굴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그럼, 다음 질문. 그쪽에서 배달 수수료를 얼마 챙겨 준다고 합니까?”

“네?”

“공짜로 일하는 것 아니잖아요? 준다는 인건비가 있잖아요?”

천오민이 조심스레 입술을 핥았다.

배운 것은 없지만 예상할 수 있는 게 있다.

지금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

그깟 밀수 현장에 국회의원이 움직이는 중이니까.

‘한번 베팅해?’

앞에 보이는 보좌관의 성격이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법이다.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가 눈치를 보며 입을 연다.

“……일이 끝나면 2억 받기로 했습니다.”

“2억요?”

거짓말이다.

1억을 약속받았다.

이들이 하는 것은 물건을 받고 세탁하는 게 전부니까.

“그쪽 직원이 스무 명이라고 들었는데, 공평하게 나누면…… 천만 원?”

천오민은 조직원과 돈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실제는 2억이 아니라 1억.

공평하게 나누면 500만 원.

그거 벌자고 위험한 짓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조직원들에게는 용돈 조금 준 후 나머지는 혼자 꿀꺽할 생각이다.

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 정도 될 겁니다.”

천오민은 긴장된 표정으로 다시 입술을 핥는다.

이제 정우가 베팅할 상황.

‘3억을 준다고 해! 그럼, 그쪽이 시키는 일을 할 테니까! 3억이면 조직원과도 나눌 수 있어!’

그런데 기다렸던 말은 나오지 않는다.

“계속 깡패 생활을 할 겁니까?”

“네?”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천오민이 눈을 깜빡였다.

정우가 천오민의 술잔을 채우며 말한다.

“제가 여러분들을 고용하겠습니다.”

“고, 고용요?”

“월급은 적당히 챙겨 드리죠. 깡패보다는 경호원이 낫지 않나요?”

천오민이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거절하면 경찰이 움직여서 회사의 간판까지 없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정우의 말을 들으면 1억이란 돈이 허상처럼 흩어질 거다.

“그, 그게 무슨?”

“싫은가요?”

“하하.”

당연히 싫다.

1억은 큰돈이다.

적금을 넣어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천오민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정우가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배달이 끝나면 천오민 씨의 조직은 어떻게 될까요? 힌트를 주자면, 정치인은 깡패를 소모품으로 생각합니다. 소모품 알죠? 쓰고 버리는…….”

“……!”

“또 생각해 보세요. 대한당은 왜 김동만 의원을 통해 천오민 씨에게 접근했을까요? 찾은 겁니다. 쓰고 버려도 아쉽지 않은 사람들. 돈은 당연히 줄 생각이 없죠. 죽지 않으면 다행이고요.”

천오민의 표정이 박살 나고 있었다.

정치인과의 거래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그가 손끝을 떨며 말한다.

“호, 호락호락 당할 것 같나요? 언론에 대고 말할 수 있잖아요. 국회의원들이 금괴를 밀수…….”

“천오민 씨…… 언론은 당신 편이 아니에요. 우리 편이죠.”

“……!”

천오민은 눈을 꽉 감았다.

국회의원이라는 괴물들…….

잘못된 판에 발을 들였다고 후회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그 목숨…… 제가 살려 드리죠.”

정우가 엷게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

금이 들어오는 시기와 장소를 알았다.

그리고 금을 건네받는 사람도 영입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모든 것은 성윤의 손바닥 위에서 돌아가는 중이다.

물론 성윤이 가만히 앉아 기다릴 성격은 아니다.

이번 사건을 조금 더 키우기 위해 윤 회장의 비서실장 정기화를 만났다.

서초구의 한 프라이빗한 커피숍…….

“윤범성 부회장의 비자금이 홍콩에 모이는 중이라고요?”

“페이퍼 컴퍼니로 장난을 친 것 같은데, 외국환관리법 위반으로 엮을 수 없나 해서요.”

정기화 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선대부터 시작해서 수십 년을 해외에서 돌린 돈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씻어 낸 것만 해도 수백 번이죠. 그걸 또 홍콩에서 금괴로 바꾼다고요? 절대 알아낼 수 없습니다.”

“아쉽네요.”

“그런데, 쉽게 가는 방법은 있어요.”

성윤의 눈이 반짝였다.

“뭐죠?”

“회장님께 이르는 것.”

“네?”

다 큰 어른들이, 그것도 병석에 누운 노인에게 이르다니…….

그런데 정기화 실장의 눈은 진지하다.

“윤범성 부회장이 정치판에 끼고 있다는 것을 알면 크게 노하실 겁니다. 충격으로 벌떡 일어나실 수도 있겠네요.”

정기화 실장은 한평생 윤 회장을 모셔 왔다.

그런데 이제 그 시간이 끝나 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윤 회장의 건강 상태가 더 악화되었으니까.

정기화 실장의 눈에 아쉬움이 묻어나고 있다.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이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다가 밀수까지 막히면 지금껏 제가 계획한 일이 틀어지거든요.”

정기화 실장이 한숨을 내뱉었다.

“정치에 관여하고 이제 밀수까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요. 윤 회장님이 평생에 걸쳐 만들어 낸 성종이에요. 그런데 윤 부회장이 한순간에 망가뜨리고 있다니……. 그것도 참 능력이네요.”

정기화 실장이 성종의 회장 자리를 노리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이 일평생 모신 윤 회장, 그가 만든 성종을 지키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인생이 성종에 담겨 있으니까.

하지만 성윤은 그런 감상적인 이야기를 들어 줄 생각이 없다.

“성종을 만든 것은 윤 회장님이 아니잖아요?”

“……!”

“실제로 만든 회사는 몇 개 안 되잖아요? 나머지는 뺏었죠. 원하는 회사가 있으면 자금난이란 소문을 내서 주가를 떨어뜨리고 부도 위기에 밀어 넣고. 그렇게 회사를 뺏고, 또 뺏고.”

“의원님!”

“실장님이 회장이 되면 그런 짓은 하지 마세요. 혹시나 윤 회장님의 탐욕적인 경영 방식을 따르겠다면, 전 성종을 찢어 버릴 겁니다.”

정기화 실장은 입을 꾹 닫았다.

지금 성윤의 힘으로 성종을 찢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모른다.

정기화 실장은 오랜 시간 성윤을 지켜봤고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입을 연다.

“탐욕적이고 문어발적인 경영 방식……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방법은 아니죠. 그리고,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부탁요? 뭐죠?”

정기화 실장은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한껏 부끄러운 목소리로…….

“자, 자금이 좀 필요합니다.”

“네?”

보통은 기업이 정치인에게 돈을 준다.

정치 후원금이라는 이름의 뇌물.

그런데 정치인에게 자금을 부탁하는 기업인이라니…….

“지분을 모으려고 성종 그룹의 주식을 매입하는 중인데, 최근 박무혁 대통령이 당선된 후로 값이 올라서…….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정기화 실장은 명동의 인맥을 동원해서 성종의 주식을 야금야금 매입하는 중이었다.

나중에 윤범성 부회장과 맞붙게 됐을 때 가장 든든한 것은 지분이니까.

성윤이 그의 앞에 정우의 명함을 내려 뒀다.

“전 딱히 돈 관리를 안 해서요. 제 보좌관에게 연락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밖으로 나왔다.

정기화 실장은 돌아갔고 성윤의 옆에는 장한수 실장만 서 있다.

“1시간 정도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장한수 실장이 물끄러미 성윤을 본다.

“자유요?”

장한수 실장 없이 혼자 다니고 싶다는 것인데…….

이유를 물어보는 눈빛에 성윤이 슬쩍 웃었다.

“앞에는 법원이 있고 옆에는 검찰청이 있네요. 그리고 이 주변은 죄다 로펌이 있죠. 그리고…….”

“아, 알겠습니다.”

정혜성이 에스 로펌에 입사했다.

이제는 인턴을 벗고 정식 변호사로 활동하는 중이다.

장한수 실장이 입을 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먼발치에서 지켜보겠습니다.”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네.”

성윤은 정혜성이 있는 에스 로펌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들고 정혜성의 번호를 찾는다.

통화 연결음이 지난 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혜성입니다.

“점심시간이 언제죠? 밥이나 같이 먹었으면 좋겠는데.”

-밥요?

“회사 앞으로 갈게요.”

-회사요?

그녀는 성윤이 서초구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

몇 번의 대화 끝에 알게 되었고…….

-잠,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나갈게요!

성윤이 통화를 종료한 후 다시 천천히 걷는다.

에스 로펌은 몇 개의 빌딩에 존재했고 성윤이 있는 곳과 멀지 않았다.

도착하는 데 한 5분?

기다리고 있던 정혜성이 성윤을 보자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대표님!”

꿈속에서는 참 다른 성격이다.

몸이 아파서 그랬는지 아니면 나이가 조금 들어 만나 그랬는지…….

지금은 그때와 달리 밝다.

성윤이 인사를 받지 않자 그녀가 다시 손을 흔든다.

“대표님!”

그런데 예상 못 한 게 있다.

지금은 점심시간, 각 건물에서 사람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정혜성이 외친 ‘대표’라는 말에 고개를 돌렸는데…….

“어?”

“이성윤 대표 맞지?”

“이성윤?”

“그래, 신당 대표.”

뜬금없는 여당 대표의 등장,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장한수 실장 없이 편하게 식사하려 했는데 글렀다.

이럴 때는 차라리…….

성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당 대표 이성윤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와!” 하고 함성이 터졌다.

사람들이 몰려든다.

“사진 한번 찍어도 될까요?”

“지지하고 있어요!”

“전 팬 카페에 가입했어요!”

“이성윤! 이성윤!”

“박무혁 대통령 파이팅!”

이런 환호는 성윤도 예상 못 했다.

당 대표가 되며 확 올라간 인지도.

그리고 박무혁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

인터넷에서는 박무혁 대통령이 햄버거 외교를 했다며 비웃기도 하지만 역시 현실은 인터넷 밖에 있었다.

그건 그렇고…….

식사는 물 건너간 것 같다.

***

“데이트하러 가서 선거 유세를 하고 왔다고요?”

그날 밤, 신당 당사.

정우가 배를 잡고 웃는다.

장한수 실장이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한테 자유를 달라고 하시더니 사람들한테 잡혀서, 전 <연예가 중계> 보는 줄 알았어요. 그거 있잖아요? 스타가 길 거리 돌아다니는 것. 하하하.”

성윤은 한숨을 내뱉었다.

“내 사주를 확인해 보면 연애 운은 없을 거야.”

“사주 한번 확인해 볼까요? 요즘 그런 앱 많이 나왔는데요.”

“하지 마.”

정말 최악의 연애 운이 나오면 절망할 것 같다.

투덜투덜대고 있는데, 정우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를 본 정우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네.”

천오민의 목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습니다. 오늘입니다.

놈들의 일정이 바뀔 것은 예상했다.

안전을 위해 몇 번이고 시간과 장소를 바꾸는 게 특기니까.

정우가 통화를 종료하며 성윤에게 향했다.

성윤은 이미 나갈 준비를 하며 재킷을 걸치고 있다.

그를 보며 정우가 묻는다.

“어디로 갈까요?”

“오랜만에 고향에 들러야지.”

***

대한당 당사.

전재익 대표는 심각한 표정으로 당 대표실에 서 있었다.

방금 들어온 메시지…….

‘오늘.’

이제 곧 100억이라는 돈이 들어올 거다.

그 돈으로 과격 단체를 움직인다.

그럼, 그들은 부르짖을 거다.

“시작부터 외교 실패! 정부와 신당은 반성하라!”

“물가를 잡는다며! 약속은 언제 지키는 거야!”

“더러운 새끼들! 이성윤은 당장 사퇴하라!”

솔직히 따지고 들어가면 시위에 명분도 의미도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시위가 이어질수록 현 정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 거다.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이유는 모르지만 정부가 뭔가 잘못하는 중이라고 생각할 테고.

일반 국민은 시위에 피로를 느끼게 될 거다.

‘그 시점이 총선.’

전재익 대표가 몸을 돌렸다.

앞에 보좌관이 보인다.

“금덩이 확인은 언제 할 수 있지?”

“경홍 건설에서 연락이 왔는데, 새벽 2시 정도에 서울에 들어올 것 같답니다.”

전재익 대표는 양아치를 만나지 않는다.

손에 피와 먼지를 묻히는 것은 모두 보좌관의 책임이니까.

“100억 원의 금덩이라…….”

잠시 흐뭇하게 웃던 전재익 대표가 말한다.

“신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우리가 그 이득을 보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 우리 의원들에게 전해. 내일부터 부지런히 지역 향우회와 등산 동호회에 참여하라고. 가서 착한 척 미소 짓고, 호탕한 척 악수하고, 후원금 듬뿍 내고, 밥이나 막걸리도 팍팍 사라고 해! 밥 얻어먹고 고개 돌리는 놈은 못 봤으니까.”

전재익 대표의 입에서 청사진이 그려졌다.

선거란 자신에게 득이 되는 정치인을 뽑는 과정, 멍청한 국민은 막걸리에 취해 대한당을 지지하게 될 거다.

보좌관이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때 그의 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복도로 나가며 휴대폰을 귀에 대는데…….

-이성윤입니다.

“이, 이성윤 대표?”

보좌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휴대폰은 양아치들과 연결되는 대포폰이다.

아무도 모르고 알아서도 안 된다.

그런데 성윤이 알고 있다는 것은…….

그의 손이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한다.

‘씨, 씨발…….’

< 금덩이.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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