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61화 (261/300)

< 금덩이. - (3) >

***

“대한당은 민국당과 싸우는 척하며 우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곧 손에 든 총구를 우리에게 돌리겠죠.”

신당의 당사.

성윤의 앞에는 신당의 고위 당직자들이 앉아 있었다.

대한당과 민국당의 갈등이 점점 극단적으로 치닫는 중이다.

하지만 성윤은 알고 있다.

대한당이 목표로 삼은 사냥감이 신당이라는 것을…….

전쟁은 화풀이의 목적이 아니라 먹을 게 많은 곳을 공격하는 것이다.

“대한당이 죽자고 덤벼들면 우리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고위직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 간다.

얼마 전까지 대한당에서 밥을 먹었던 사람이 꽤 된다.

그러니까 대한당은 그들의 정보를 아주 잘 알고 있다.

비리까지도…….

성윤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빨리 정리하세요. 알고 지내는 양아치, 용돈을 주는 지역 유지, 품에 안겨 조잘대는 스폰녀까지 모두. 내년 총선은 전쟁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고위 당직자와 최고위들은 마른침을 삼킨다.

“대, 대한당이 우리를 공격할 거라고요?”

“네.”

이들은 내년 총선을 대한당과 쎄쎄쎄 할 것으로 예상했다.

적당히 양보하며 민국당을 따돌리고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극대화하는 게임.

하지만 그 생각은 바꿔야 한다.

“정치에서 나눠 먹는 것은 없습니다. 한 놈이 독식하는 거죠.”

그리고 성윤은 대한당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쉴 생각이 없다.

오랜 시간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록한 대한당이지만 이제는 그만 지워 버리려 한다.

***

그날 밤.

성윤은 다시 박무혁 대통령이 구매한 건물에 있었다.

앞에는 며칠 전에 만난 국정원장이 보인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경홍 건설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경홍 건설요?”

잘 안다.

겉으로 볼 때는 건실한 건설 회사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저 깡패 집단.

지난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를 꿈꿨다가 성윤에게 박살 난 김동만 의원에게 뇌물을 건넸던 곳이기도 하다.

“지난번 말씀드린 밀수가 마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전재익 대표를 잠시 관찰해 봤습니다.”

경홍 건설과 김동만 의원을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전재익 대표의 이름이 나왔다.

‘김동만 의원과 전재익 대표?’

연관성이 없다.

김동만 의원이 대한당에 있을 때도 두 사람은 친분이 없었으니까.

국정원장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전재익 대표의 보좌관이 김동만 의원을 만나고 있습니다. 김동만 의원은 다시 경홍 건설을 드나들고 있고요.”

“……!”

경홍 건설의 대표는 구속됐다.

하지만 김동만 의원은 자유의 생활을 이어 가는 중이다.

방탄 국회를 등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다시 경홍 건설에 발을 들이는 중이다.

그 이유는…….

“경홍 건설이 물건을 받아 유통하는 작업까지 할 것 같습니다.”

물건이 항구에 도착하면 그걸 운반하고 현금화시킬 조직이 필요하다.

국회의원들이 나가 물건을 옮길 수는 없으니까.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대한당도 깡패 조직을 여럿 손에 쥐고 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김동만 의원에게 하청을 주는 것은…….”

국정원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김동만 의원을 통해 보험을 든 거죠.”

성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은 탈당했지만 김동만 의원은 신당 사람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국민들은 그가 신당에 있다고 알고 있다.

국정원장이 말을 이었다.

“만약에 밀수가 적발된다면, 그래서 대한당이 수면 위에 오르게 된다면…….”

“대한당은 김동만 의원을 카드로 쓰겠죠. 우리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면서 협박하겠죠. 시끄러워지기 전에 사건을 덮으라고. 그게 아니면 같이 죽자고. 김동만 의원이 관여된 순간 국민은 신당과 대한당이 손잡고 밀수를 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성윤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민국당만 축제 분위기겠네요.”

꽤 머리를 썼다.

국회의원이 포함된 밀수 사건…….

신당 역시 지옥으로 끌려갈 거다.

성윤은 씁쓸한 표정으로 컵을 들어 입에 댔다.

***

“뭐가 문제예요? 경홍 건설이라는 타깃도 정해졌는데 가서 쓸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날 밤, 서안시 사무실.

성윤은 정우와 마주 앉아 소주를 한잔 나누고 있었다.

정우가 인상을 찌푸린다.

“망가진 깡패 조직 하나 청소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뭘 걱정하시는 거예요?”

성윤이 손을 저었다.

“깡패 조직이 무서운 게 아니야.”

“그럼요?”

“두 가지를 고민하고 있어. 하나는 어떻게 역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는…… 대한당에 이런 보험을 생각할 만큼 똘똘한 의원이 있나?”

지금 대한당에 존재하는 국회의원은 대부분 정통의 강자들이다.

강자는 꼼수를 생각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고도 언제나 이겨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과거의 영광에 취해있다.

“보좌진 중 하나일까요?”

“알잖아? 그 사람들은 보좌진을 사람 취급하지 않아. 좋은 의견을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할 거야.”

“그럼요?”

성윤이 입술을 쓸었다.

“전재익이 민국당의 최학인 대표와 정말 갈라섰을까?”

“……!”

“대한당 내부의 불만은 터뜨려야 하니까 입씨름은 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전히 손잡고 있는 게 아닐까?”

정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가능성은 존재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콜로세움의 검투사가 되어 멱살 잡고 싸우지만 무대 뒤에서는 술잔을 나누는 죽마고우니까.

“그럼 최학인 대표가 내놓은 계획일까요?”

“최학인이 쓸 만한 방법은 아니야. 그 사람은 안전한 보험을 좋아하지 않아. 홈런 한 방의 역전 드라마에 짜릿함을 느끼지.”

정우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성윤은 분명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모호하게 답을 피해 가고 있다.

“그럼, 보험을 만든 게 도대체 누구예요?”

“글쎄.”

성윤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은 채 술잔을 들어 올렸다.

“마셔.”

“의원님!”

성윤은 빙긋이 웃으며 술잔을 입에 댄다.

머릿속에 딱 한 명이 떠오른다.

최학인의 아래에서 살살거리며 입을 나불대고 있을 놈.

두꺼운 가면을 쓰고 애완견인 척 꼬리를 살랑살랑.

하지만 가면을 벗기면 소름 끼치는 악마의 모습이 드러나는 이준대…….

‘이준대가 뿌려 대는 돈에 민국당돠 대한당이 얽히고설키는 중인가?’

이준대는 미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한국 정치판에 쏟아붓고 있을 거다.

그는 돈의 힘을 잘 이용하는 사람 중 하나.

돈에 길들여진 노예는 주인 곁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신당으로 뻗어 오는 중인가?’

이준대가 노린 신당의 첫 물고기는 김동만 의원이다.

그를 앞에 두고 세 치 혓바닥을 움직였을 거다.

“마지막까지 가면 구속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소수 여당인 신당이 의원님을 살려 줄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법정에 서기 전에 가족을 생각하세요.”

그런 말과 함께 수십억을 던졌을 테고 김동만 의원은 당연히 덥석…….

여기까지 생각한 성윤은 빙긋이 웃었다.

‘곧…….’

이준대의 데뷔는 내년 총선일 거다.

성윤의 방해로 꿈속의 미래보다 시기가 늦춰졌지만 방법은 다르지 않다.

최학인 대표는 놈의 화려한 데뷔를 위해 레드 카펫을 준비해 둘 테고 그 장소는 험로처럼 꾸며진 텃밭일 거다.

‘나도 그 시기를 기다리고 있어.’

그때가 되면 이준대와 함께 얽히고설킨 똥 덩어리들을 모조리 치워 버릴 생각이다.

물론 그 과정은 어렵고 힘들 게 분명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하면 못 할 것도 없다.

그 시기를 기다리며…….

성윤이 술잔을 내려 두며 정우를 향했다.

“경홍 건설의 새로운 책임자를 찾아봐. 얼굴이나 한번 볼 수 있게 자리를 만들고.”

“알겠어요. 그런데 제가 만나 볼게요. 의원님이 그런 양아치까지 만날 필요는 없잖아요.”

성윤이 슬쩍 정우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그런데, 장 실장님이랑 같이 가도록 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정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날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정우는 더 발전할 거다.

***

정우와 장한수 실장이 탄 차가 멈춰 섰다.

5층 상가 건물, ‘경홍 건설’이라는 간판이 보이는 곳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허름해 보인다.

20년은 되어 보이는데 관리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건물이다.

장한수 실장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한다.

“공포 영화를 찍어도 되겠네요.”

“그렇죠?”

“약속 장소가 어디예요?”

“저쪽 건물 2층 고깃집요. 방으로 예약해 뒀어요.”

“저는 밖에 있으면 될까요?”

정우는 약속된 가게로 향하며 가져온 서류를 손에 들었다.

경홍 건설의 재정 상태가 빼곡히 적힌 서류다.

줄어드는 숫자를 보면 악화된 재정 상태를 숨길 수가 없다.

‘조직원은 20명, 대표는 구치소에 처박혔고 회사에 돈은 없고…….’

쫄쫄쫄 굶고 있던 그들에게 밀수는 뿌리치기 어려운 조건이었을 거다.

게다가 밀수의 경우 형량도 적다.

‘즉, 리스크는 적고 수익은 높은 사업.’

정우의 머릿속에 경홍 건설의 새로운 대표를 구워삶을 방법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천오민이라고 합니다.”

40대 중반의 남자, 천오민이 정우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는 현재 경홍 건설을 대표하는 사람…….

꽤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다.

정우도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있게 인사했다.

“삼겹살 시켰는데, 괜찮죠?”

“괜찮습니다. 그런데…….”

천오민에게 삼겹살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뜬금없이 만나자고 연락 온 상대가 신당 당 대표의 보좌관이라니…….

그 의도가 궁금했다.

“부르신 이유가…….”

“제게서 연락 왔다고 김동만 의원님께 보고했나요?”

“아뇨. 하지 않았습니다.”

천오민의 머릿속은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곧 구속될 김동만 의원과 당 대표의 보좌관, 어느 쪽의 손을 잡아야 이득이 될지…….

물론 결론이 뻔한 고민이다.

구속될 김동만보다는 당 대표의 보좌관이 더 든든하다.

아니, 당 대표의 보좌관이 대행으로 왔을 뿐, 그 뒤에는 당 대표가 있을 거다.

‘신당의 당 대표, 이성윤…….’

손바닥을 잘만 비벼 대면 천오민도 거물이 될 수 있다.

정치 깡패에게는 경찰도 무섭지 않으니까.

정우가 입을 열었다.

“최근에 사업 하나 받았죠?”

“네?”

“여기에 검찰, 경찰은 없으니까 편하게 대답하셔도 좋습니다.”

천오민이 억지로 웃는다.

“사, 사업이라뇨.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지 잘…….”

“줄은 우리 대표님에게 서고 싶은데 사업은 다른 쪽이랑 하고 싶은 겁니까? 다 알고 왔으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천오민은 당황하고 있다.

하지만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니까…… 저는 잘…….”

“경홍 건설, 간판 이름만 보면 공사판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먼지 묻은 돈을 닦아 주는 곳이라면서요?”

“무슨 말씀이신지…….”

끝까지 오리발, 그것도 살살 웃으면서…….

천오민의 앞에 검찰, 경찰이 있었다면 바들바들 떨었을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검찰, 경찰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멍청하게도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김동만 의원을 상대했던, 그러니까 지금 구속된 사장이 앞에 앉았다면 달랐을 거다.

하지만 천오민은 정치인을 직접 마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국회의원 무서운 줄을 모른다.

그런데 국회의원도 아니고 보좌관이 앉아 있으니…….

그렇다면 알려 줘야 한다.

여당 당 대표의 보좌관이면 어지간한 공무원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을…….

그래야 앞으로의 대화가 편하니까.

“저기…… 천오민 씨? 내가 존댓말하니까 우스워 보이나요?”

“네? 제가 언제요?”

갑자기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천오민의 얼굴에 긴장감은 없다.

순간, 정우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끝까지!”

정우가 그를 노려보며 휴대폰을 꺼낸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찾아 누른 후 이어서 스피커폰 버튼도 꾹 누른다.

“박인성 서장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이 지역의 경찰서장이다.

천오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가기 시작한다.

“이성윤 당 대표의 보좌관 박정우라고 합니다.”

화들짝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 이성윤 당 대표의 보좌관님요?

“네.”

-아이고…… 어쩐 일로 연락을 다 주시고.

경찰서장의 살살대는 목소리, 천오민의 표정이 굳어 가는 것을 넘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정우가 ‘나중에 인사 한번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통화를 종료하며 천오민을 노려봤다.

천오민은 마른침을 삼킨다.

정우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간판 빼고 싹 치워 줄까? 아니면 당신뿐만 아니라 사돈에 팔촌까지 검찰에 끌려가 참고인 조사받게 준비해 줄까?”

“보, 보좌관님?”

“예의 있게 물어볼 때, 예의 있게 대답하세요.”

천오민의 자세가 예의 바르게 바뀌었다.

그가 공손히 입을 연다.

“사, 사업 하나가 들어온 게 있습니다.”

정우가 빙긋이 웃었다.

“이제야 말이 통할 것 같네요. 그 사업에 대해 상세히 들어 보고 싶은데…….”

< 금덩이. - (3)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