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60화 (260/300)

< 금덩이. - (2) >

전재익 대표는 진동하는 휴대폰을 들고 복도로 나갔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후 휴대폰을 귀에 댄다.

“전재익입니다.”

-윤범성입니다.

성종 그룹 윤범성 부회장이다.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과일은 입에 맞으시죠?

“생각해 주신 덕분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자금이 더 필요하다고 들었는데요.

“계속 손을 벌리는 게 민망합니다만…… 필요합니다.”

-술 한잔하시죠.

“술요? 좋습니다. 언제가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지……금이요?”

그의 눈동자가 꽉 닫힌 문으로 향했다.

한창 회의 중이다.

하지만 회의보다 중요한 것이 윤범성 부회장과의 만남이다.

돈이 필요하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같은 시각, 성종 호텔.

윤범성 부회장은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 뒀다.

그리고 시선을 텔레비전으로 향한다.

이곳의 텔레비전도 똑같다.

박무혁 대통령이 그레이슨 후보를 만났다는 소식이 시끄럽게 울리는 중이다.

“박무혁이 최악의 수를 둔 것 같아. 대통령이 외교 문제에 삐그덕거리면 국내 문제에 신경 쓸 시간이 없지. 그런데 그 상대가 미국이라면 더욱더…….”

윤범성 부회장이 빙긋이 웃는다.

“우리 무혁이…… 머리가 꽤 아프겠어.”

박무혁 대통령은 재벌을 개혁하려 한다.

그런데 개혁이라는 것도 정신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

“비서실장, 무혁이에게 시작부터 레임덕을 선물해 줘야겠어. 골치 아픈 일 없이 청와대에서 5년간 휴양이나 할 수 있도록……. 그러려면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박살 나야 해.”

비서실장이 허리를 굽힌다.

“지금도 미국의 대선은 민주당 후보 앤서니가 유리합니다. 하지만 쐐기를 박을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겠습니다. 돈으로 표를 살 수 있도록…….”

돈은 귀신도 부린다.

넘치도록 많은 돈은 권력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앤서니가 당선되면 박무혁 대통령은 정세를 보는 눈이 없다며 쌍욕을 처먹을 게 분명하다.

그때 앤서니가 전면에 나와 한국을 비판한다면?

윤범성 부회장이 껄껄껄 웃기 시작했다.

“가장 빠른 식물인간 대통령이 탄생하겠어. 으핫핫핫핫!”

그렇게 한참을 웃던 윤범성 부회장이 웃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몇 번을 당부하지만 보안에 신경 써. 박영훈이가 어떻게 잡혀 들어갔는지 알지?”

“어떤 경우에도 부회장님께는 화가 미치지 않도록 처리하겠습니다.”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움직여. 필요하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도록 하고. 이번 일은 위험해.”

정치판은 괴물들이 우굴대는 곳이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사냥감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윤범성 부회장이 계획하는 것은 여당의 총선 패배, 외교 실패, 정치 불안…….

윤범성 부회장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의 귓가에 아버지 윤 회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게 들리는 것 같았다.

-정치권과는 엮이려 하지 마. 어떤 일이 있어도 싸우려 들지 마. 적당히 거리를 두고 용돈이나 주는 게 이득인 거야.

하지만 윤범성 부회장은 지금 아버지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아버지는 병석에 있고 지금은 윤범성 부회장의 시대니까.

그리고…….

‘아버지…… 가만히 있으면 무혁이의 칼에 제 목이 베일 겁니다. 그 전에 찔러야 해요. 그래야 살 수 있어요. 그리고, 이번 일이 성공만 하면…… 대한민국은 성종의 세상이 될지도 몰라요.’

윤범성 부회장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죽고 죽이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죽이는 것.

비서실장이 다시 윤범성 부회장의 옆에 섰다.

“부회장님, 대한당 당 대표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윤범성 부회장이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시라 해.”

문이 열리고 전재익 대표가 들어왔다.

윤범성 부회장을 향해 굽실굽실 허리를 굽혀댄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늦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윤범성 부회장이 그를 보며 빙긋이 웃는다.

며칠 전만 해도 뻗대던 인간이다.

그런데 과일 상자를 받자마자 말랑말랑해졌다.

‘정치인을 다루는 것도…… 어렵지 않네.’

가볍게 악수를 나눈 후 전재익 대표가 소파에 앉는다.

그런데 윤범성 부회장은 앉지 않는다.

“그럼 말씀 나누세요.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네?”

전재익 대표는 눈을 깜빡인다.

오자마자 떠난다니…….

그때 비서실장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사업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전재익 대표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졌다.

‘윤범성, 이 새끼가…….’

돈 이야기가 나올 타이밍이다.

그런데 자리를 뜬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

윤범성 부회장이 말한다.

“비서실장에게 결정권까지 위임했습니다. 그러니까…….”

“아,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이번엔 전재익 대표도 빠진단다.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전재익 대표는 아무렇지도 않게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며 일어선다.

그리고 전재익 대표는 자신의 보좌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도 보좌관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거든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요.”

윤범성 부회장이 활짝 웃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요?”

“네,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럼 이 자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나 할까요?”

“그러죠.”

윤범성 부회장과 전재익 대표는 밖으로 나갔다.

VIP 룸에는 윤범성 부회장의 비서실장과 전재익 대표의 보좌관만 남았을 뿐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

그것은 총알받이다.

문제가 터지면 모시는 분을 대신해 법정에 설 사람들.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잠깐의 한숨을 나눈 후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앉으시죠.”

소파에 마주 앉았다.

비서실장은 바로 본론을 꺼낸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보좌관 역시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글쎄요. 100억 정도를 손에 쥐었으면 하는데요. 시위대를 움직이려 하는데, 최근에 과격 단체의 단가가 올라서…….”

비서실장은 얼굴을 콱 일그러뜨렸다.

지난번에 과일 박스에 들어간 돈이 12억이다.

그런데 이번엔 100억.

그걸 또 맡겨 놓은 것처럼 말하고 있다.

땀 흘려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으니, 평생 정치판에서 굴러먹었으니 돈의 가치를 모르는 거다.

하지만 참는다.

앞에 앉은 보좌관 역시 지시에 따르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윤범성 부회장이 돈은 얼마든지 가져다주라고 했으니까…….

“100억……. 현금이 아니라 1킬로그램 골드바로 대체하겠습니다. 물건은 홍콩에서 가지고 올 것이고…….”

“골드바요?”

금괴를 말하는 거다.

홍콩의 경우 완전 면세 지역으로 세금이 붙지 않는다.

그래서 밀수에 성공하면 1킬로그램에 약 600만 원의 이득을 볼 수 있다.

이를 악물고 밀수를 하는 이유다.

물론 이들의 경우는 이득이 목표가 아니다.

자금의 출처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빙빙 돌리기 위함이다.

“말씀드렸잖아요? 박영훈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몸조심하는 중이라고요.”

돈세탁은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다.

차명 계좌를 만들어 카지노, 환치기, 암호 화폐 등으로 돈을 해외로 빼돌린다.

이어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세탁 또 세탁…….

그렇게 세계 여행을 하던 돈이 홍콩으로 옮겨져 금으로 변하는 거다.

그리고 밀수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국에 들어온다.

비서실장이 휴대폰으로 금 시세를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금괴는 1킬로그램 200개 정도면 되겠네요. 처리할 능력은 되시죠?”

썩어도 대한당이다.

금의 처리야 어렵지 않다.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습니다.”

비서실장이 또 묻는다.

“밀수에 성공하려면 공무원의 눈을 가려야 해요. 그것도 가능하시죠?”

공무원을 움직이는 것은 갓난애 팔을 꺾는 것보다 쉽다.

“네, 가능하죠.”

비서실장은 몇 가지 질문을 이어 가며 계속해서 확답을 받았다.

최대한 위험을 회피하려는 행동이다.

그리고 가방에서 낯선 휴대폰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대포폰입니다. 밀수 조직의 총책과 연결되는 거죠. 물건을 받은 후 바다에 버리시면 됩니다.”

보좌관은 휴대폰을 품에 넣었다.

이제 주고받을 것은 끝났다.

남은 것은…….

“조심하세요.”

“실장님도.”

총알받이의 평안을 기원하는 거다.

괴물들의 도구로 이용되는 삶,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

며칠 후, 신당 당사.

당 대표실에서 업무를 보던 성윤은 국정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조용히 만나야 하나요?”

-네.

“보안이 철저하면서 차 한잔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쪽에서 뵐까요?”

-그러죠.

잠시 후.

성윤은 박무혁 대통령이 통째로 산 빌딩에 서 있었다.

옆에는 국정원장이 멍하니 공간을 둘러본다.

어떤 인테리어도 하지 않았다.

회색의 시멘트 벽과 전선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을씨년스러운데, 정말 끔찍한 것은…….

국정원장이 한쪽을 가리키며 더듬더듬 묻는다.

“저…… 저 침대는 뭐죠?”

분홍색 캐노피가 하늘거리는 공주 침대가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다.

박무혁 대통령이 여자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며 사놓고 간 것.

당장 갖다 버려야 한다.

성윤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대통령님의 취향이라고 하죠.”

“네? 대통령님의 취향?”

“그런 게 있습니다. 커피하고 콜라가 있는데, 어떤 게 좋으세요?”

“커피로 하죠.”

성윤이 냉장고에서 편의점 커피를 꺼내 국정원장 앞에 내려 뒀다.

국정원장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전재익 의원의 지갑 상황이 궁금하다고 하셨잖아요?”

전재익 대표는 전쟁을 준비한다.

여기저기 돈을 끌어당기고 있을 게 분명하다.

국정원장이 말을 잇는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전재익 의원의 자산은 변동이 없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전재익 의원과 성종 윤범성 부회장이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했죠.”

“윤범성 부회장이요?”

“네, 그 이후 윤범성 부회장의 비서실장이 홍콩으로 날아갔습니다.”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홍콩?’

비서실장은 부회장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비서실장이 홍콩으로 날아갔다면, 직접 진두지휘를 해야 할 만큼의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장이 말을 잇는다.

“홍콩에 돈이 모이고 있습니다. 아마 금이나 명품, 그림을 구입해서 가지고 올 것이란 추측입니다. 물론 밀수죠. 그리고 그 물건은 한국에서 돈으로 바뀔 겁니다.”

“그 돈은 전재익 대표의 품에 꽂히겠네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번거롭게 물건으로 들여오는 것은 자금 세탁이 목적인 거고요. 성종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네.”

군 자금이 들어온다.

그런데 성윤은 그 정보를 사전에 알았다.

그 자금을 중간에 빼돌리면 전재익 대표와 윤범성 부회장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성윤이 물었다.

“밀수범을 검거할 수는 없나요?”

“확률이 떨어집니다. 상대는 성종입니다. 하늘과 바다, 어디서 올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공무원이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그럼, 한국에 들어온 후 잡아내는 것은요?”

“역시 어렵습니다. 만원만 깎아 줘도 사겠다고 줄을 서는 중고 시장이 있으니까요.”

뭔가 구멍이 있을 것 같은데…….

성윤이 한참 생각에 빠져 있는데 국정원장이 묻는다.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든 말씀하세요.”

“만약에 밀수꾼을 잡아서 그리고 그 고객이 대한당이란 것까지 밝혔다면…… 세상에 터뜨릴 겁니까?”

대한당, 비록 지금은 몰락하는 당이지만 대한민국 역사의 한 축을 세운 곳이다.

그런 곳의 당 대표가 밀수에 손댔다는 게 세상에 알려진다면…….

“대한민국은 정치 불신의 사회로 들어설 겁니다. 갖가지 음모론이 돌겠죠.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기관이 흔들리고…….”

국정원장은 조용히 해결하자며 성윤을 설득했다.

그런데…….

“그래서요?”

“네?”

“그게 왜요?”

“대표님!”

“알아요. 아프겠죠. 대한민국 전체가 신음할 겁니다. 그런데, 그거 아프다고 수술 안 받으면…… 나중에는 수술받을 시간도 없을 거예요.”

“……!”

국정원장은 입을 열지 못했다.

대한당과 민국당, 오랜 역사 동안 쌓아 왔던 부정부패가 터지기 직전이다.

못 본 채 고개를 돌리면 성윤의 말대로 골든 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메스를 들어 올리면…….

부풀어 오른 풍선은 ‘뻥!’ 하고 터지고 말 거다.

***

잠시 후, 국정원장이 떠난 자리에 정우가 앉아 있었다.

천천히 이야기를 들은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밀수를 한다면 골드바가 아닐까요?”

“이유는?”

정우가 휴대폰에서 1킬로그램 금괴를 검색한 후 성윤에게 보였다.

“크기가 손바닥만 해요. 숨기는 것도 어렵지 않고 현금화하는 것도 쉽죠.”

“금을 전문으로 밀수하는 놈들을 찾아봐.”

< 금덩이.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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