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59화 (259/300)

< 금덩이. - (1) >

“와인 한잔하겠어요?”

윤범성 부회장의 말에 성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 와인이 들어온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와인인데 맛은 텁텁하기만 하다.

윤범성 부회장이 와인 잔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전재익 대표가 왔다 갔어요. 박영훈이 구속된 후로 정치권은 우리가 호구로 보이나 봐요. 다 무너진 정당의 대표가 협박까지 하다니…….”

전재익 대표는 윤범성 부회장을 상대로 협박을 했다.

고래 싸움에 낀 새우 취급을 하면서…….

윤범성 부회장이 낄낄낄 웃는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윤범성 부회장은 재벌로 태어나 재벌로 살아왔다.

아버지 윤 회장의 앞에서 굽실대는 정치인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데…….

“민국당도 아니고 대한당에서 으름장을 놓다니…….”

벌레는 짓밟아야 제 맛이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거다.

하지만 꾹 참는다.

지금 신경 써야 할 대상은 대한당이 아니라 앞에 앉은 성윤이니까.

“그래,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그런데,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내가 전재익 대표와 약속 잡은 것을 어떻게 알았죠?”

윤범성 부회장이 전재익 대표와 미팅 약속을 하고 곧 성윤에게 연락이 왔다.

전재익 대표와 만나 후 얼굴 한번 보자고…….

윤범성 부회장의 눈빛이 성윤을 훑는다.

“우리 정보가 새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인데요.”

정보는 윤 회장의 비서실장 정기화에게 들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빙긋이 웃으며 변명했다.

“아시다시피 정치권도 꽤 복잡합니다. 우리 당사를 청소하는 분의 월급이 민국당 주머니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고……. 언젠가는 민국당 의원의 딸이 과외를 받는데, 그 과외 선생이 대한당의 장학생이었던 적도 있죠.”

“대한당에 사람을 심어 뒀다는 겁니까?”

“그 대답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윤범성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히 믿는 눈치다.

정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윤범성 부회장이 다시 묻는다.

“그럼, 전재익 대표를 만난 후에 약속을 잡자고 한 이유는 뭐죠?”

“전재익 대표의 의도는 뻔하죠. 그래서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그쪽과 손잡을 것인지 말 것인지.”

윤범성 부회장이 미소를 그린다.

성윤의 의도를 파악했다고 판단해서다.

‘우리가 대한당과 손잡으면 신당에 난처한 일이 벌어지려나?’

그렇지 않으면 신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올 이유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속마음을 들은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 제가 성종과 대한당이 한배를 타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만둬 주셨으면 합니다.”

윤범성 부회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꺼리고 있어!’

끝없는 부정은 긍정의 신호다.

하지만 윤범성 부회장은 표정 관리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대한당과 손잡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교도소로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겁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이성윤 대표님이 반대한다면 잡지 않겠습니다. 난 전재익 대표보다는 이성윤 대표님과 친해지고 싶으니까요.”

성윤이 조용히 웃었다.

윤범성 부회장이 저울질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손바닥 위야.’

모든 것은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다.

성윤이 고개를 살짝 숙인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윤범성 부회장이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건배할까요?”

밖은 대낮인데 두 사람은 잔을 부딪친다.

텁텁한 와인을 입에 대고 내려놓는다.

그리고 서로는 가식적인 미소를 주고받았다.

윤범성 부회장이 다시 입을 연다.

“아, 하나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까 전재익 의원이 말한 게 있는데…….”

“말씀하세요.”

“청와대의 오픈발이 끝나면 무혁이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할 거라고 했습니다. 물론, 무혁이가 으르렁댈 것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궁금한 것은 그 공격에 여당도 올라탈 겁니까?”

성윤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최대한 막아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하겠다는 말은 참 아름답다.

성공에도 실패에도, 어디에 붙여도 잘 어울리니까.

그리고 윤범성 부회장은 더 묻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이성윤 대표님과 더 친해져야겠네요. 하하하하!”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두 사람은 크게 웃었다.

잠시 후…….

와인 한 병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해야 할 말은 모두 끝났고 성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후 나가려는데 윤범성 부회장이 입을 연다.

“대표님의 차 트렁크에 제철 과일 좀 넣어 뒀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돈을 넣었다는 뜻이다.

성윤의 걸음이 멈칫거렸다.

“제철 과일요?”

“네.”

“먹으면 탈 날 것 같은데요?”

“예민하신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애들이 밤새도록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껍질째 드셔도 탈은 없을 겁니다.”

느긋하게 웃고 있는 윤범성 부회장을 보며 성윤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장한수 실장님?”

-네.

“어디 계시죠?”

-문 앞에 있습니다. 들어갈까요?

무슨 일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 같은 목소리다.

“아뇨. 지금 제 차 트렁크에 상자 하나가 실린 것 같습니다. 상자 빼서 돌려주세요. 돌려주는 과정 녹화해 두고요.”

-알겠습니다.

성윤이 휴대폰을 내려 두며 윤범성 부회장을 바라봤다.

윤범성 부회장의 표정은 굳어져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성윤이 입을 연다.

“과일을 안 좋아해서요.”

“아쉽네요.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돈이 오가는 관계가 아니라 가끔 술이나 한잔하는 편한 관계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더 이런 행동 하시면…….”

“안 하죠.”

윤범성 부회장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들어 항복 표시를 전했다.

방긋방긋 웃고 있는데 인상을 구길 수는 없다.

성윤은 가볍게 허리를 굽힌 후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윤범성 부회장은 다시 소파에 앉는다.

능글맞게 웃고 있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한 번만 더 이런 행동을 하면?”

눈이 살벌해진다.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박영훈 부회장의 구속 이후 정치권이 재벌가를 병신 취급하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나도 만만해 보이나?”

그때 문이 열리고 그의 비서실장이 들어왔다.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연다.

“과일 상자는 거절당했습니다.”

“들었어.”

윤범성 부회장이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로 향하며 말을 잇는다.

“그 과일 상자는 대한당 전재익 대표에게 보내.”

비서실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시키면 해야 하는 법이다.

“네. 그리고 또 지시하실 사항이 있습니까?”

“흔적 없이 대한당을 지원할 방법을 찾아봐. 추적당할 염려가 없는 것으로…….”

“거래 내역 공개 의무가 없는 예술품을 지원할까요?”

“아니, 그건 거추장스러워. 현금화가 빠른 것으로 찾아봐.”

“네.”

윤범성 부회장은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전재익 대표부터 성윤…….

정치인 둘이 찾아왔고 떠났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놈들의 목표는 하나야.’

윤범성 부회장이 생각하는 정치인의 목표는 단 하나.

‘권력.’

정치인들의 입술은 말한다.

자신들의 모든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가식이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권력…….

돈보다 더 뿅 간다는 더러운 마약.

그리고 그 권력을 향한 전쟁이 준비되고 있다.

‘총선…….’

소수 여당, 쭉정이가 된 대한당, 과반을 유지하려는 민국당.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려면 대한당의 숨통을 끊어야지.’

윤범성 부회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세상에 의미 없는 행동이란 없다.

상대의 목적을 알면 그 행동을 예상하는 것은 우습지도 않은 일이다.

‘이성윤…… 아직 애송이야. 그렇게 노골적으로 대한당을 싫어하면 어떻게 해? 그럼, 어쩔 수 없잖아? 대한당의 손에 총을 쥐여 줄 수밖에.’

윤범성 부회장이 낄낄낄낄 웃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은 참 단조로웠다.

평범한 인간들이 꾸는 장래 희망이나 꿈 따위 없었다.

오로지 재벌 총수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삶.

그 무료했던 시간에 즐거운 일이 던져졌다.

바로 대한민국 정치판이다.

그리고 그 시각…….

성윤은 차에 오르고 있었다.

장한수 실장이 성윤에게 휴대폰을 건넨다.

“찍어 뒀습니다.”

성윤은 휴대폰을 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두 가지 동영상이 보인다.

하나는 차 트렁크에 담긴 과일 상자가 다시 성종의 직원들 품으로 돌아가는 동영상.

그리고 또 하나는 성윤이 있는 방으로 윤범성 부회장이 들어가는 장면…….

날짜와 시간까지 또렷이 담겨 있다.

“고생하셨어요.”

성윤에게 윤범성 부회장은 장기짝일 뿐이다.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

일본의 총리 카이토가 미국으로 날아가 민주당 후보 앤서니를 만났다.

앤서니는 미국의 대통령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그리고 앤서니는 먼 곳에서 날아온 손님을 외면하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 함께 골프를 치고 부부 동반 식사까지 했다.

일본 언론은 난리가 났다.

카이토 총리, 민주당 후보 앤서니와 골프

‘나이스 버디’ 앤서니. 손뼉 치는 카이토 총리

앤서니의 아내 캐서린, “일본의 온천을 꼭 방문하고 싶다”

앤서니 일본은 동북아에서 가장 큰 친구

한국은 발칵 긴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총리가 앤서니와 골프도 치고 쎄쎄쎄도 하고 왔는데…….

박무혁 대통령, 공화당 후보 그레이슨과 햄버거 외교 약속

모든 정치 전문가가 앤서니라고 하는데 그레이슨이라니…….

햄버거 외교라니!

국내 포털 사이트의 기사는 난리가 났다.

-세상을 보는 눈이 이렇게 없어서야…….

-앤서니를 만났어야지!

-이래서 재벌 출신은 안 된다고 했잖아!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알아.

-잠깐! 다들 박무혁 욕하느라 바쁜데…… 지금 미국 대선이 한일전이 된 것 모름?

-어? 진짜? 한국 대통령 VS 일본 총리! 누구 눈이 똥 눈인가!

-안 봐도 뻔하다. 일본 승.

-젠장…… 나도 일본에 건다.

-그레이슨은 카밀라 포기 선언으로 덕 본 거지……. 경쟁력이 없어. 이걸 청와대 참모들이 모른다는 게 더 미치겠다.

-에휴…… 햄버거 같이 먹는 것도 감지덕지인가?

그 시각, 박무혁 대통령은 그레이슨을 만나 햄버거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흰티를 입고…….

그레이슨 역시 조깅을 하다가 도착한 복장이라 프리하다.

“햄버거 괜찮죠? 황금 같은 선거운동 기간이잖아요? 뺏고 싶지 않았습니다.”

햄버거 외교는 박무혁 대통령 측이 먼저 제안한 거다.

그리고 그레이슨도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한창 바쁜 시기라서요. 모든 지지율에서 지고 있는데 앤서니처럼 골프 치고 술 마실 수는 없잖아요?”

“술은 대선이 끝난 후 백악관에서 마셔야죠. 벌써부터 저렇게 설레발을 치고 다니면 패배하는 법입니다.”

그레이슨이 껄껄껄 웃는다.

“그건 그렇고 저를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다들 앤서니가 유리하다고 한다.

그레이슨을 찾는 타국의 지도자는 없었다.

하지만 박무혁 대통령은 단언하는 눈빛으로 그레이슨을 바라봤다.

“저는 도박사가 아닙니다. 이기는 싸움에 베팅하는 투자자죠. 후보님이 이길 겁니다.”

“네?”

“믿어 보세요.”

박무혁 대통령을 보던 그레이슨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대통령님의 눈을 보니까, 동양의 신비? 미래를 볼 수 있는 것 같은 눈…… 그런 게 떠올랐습니다. 힘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목표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친밀감이 드는 법.

그레이슨이 박무혁 대통령을 보는 눈빛은 상당히 편안해 보인다.

그리고 두 사람은 햄버거 가게의 야외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레이슨이 메뉴판을 보고 있을 때 박무혁 대통령이 입을 연다.

“선물도 하나 준비했어요.”

그 말과 동시에 비서실장이 운동화 상자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박무혁 대통령이 상자를 받아 그레이슨에게 건넨다.

“이건 우리나라 제품인데, 워킹화로는 훌륭합니다.”

선거 기간에는 운동화가 많이 닳는다.

운동화를 선물한 것은 더 많이 걷고 반드시 승리하라는 뜻이다.

선거는 걸어 다닌 만큼 표가 나오는 법.

“감사합니다.”

상자를 풀어 본 그레이슨이 감사를 표하자 박무혁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선거 자금은 공식적으로 건넸습니다. 제 이름은 아니고 대정 자동차의 이름으로 듬뿍.”

곧바로 그레이슨의 참모가 다가와 속삭였다.

후원금의 액수를 듣는 중이다.

재벌의 스케일은 다른 거다.

그레이슨의 입이 떡 벌어진다.

“그것도 선물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 어떻게…….”

박무혁 대통령이 슬쩍 웃으며 메뉴판을 흔들었다.

“햄버거는 후보님께서 계산하세요.”

“좋아요. 제가 계산하죠. 그리고 제가 당선된다면…… 그때는 정말 맛있는 것을 사 드리죠.”

“기대하겠습니다.”

그레이슨이 카드를 꺼냈고 그의 참모가 메뉴판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두 사람은 약 30분간 함께했다.

특별한 정책이나 미래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저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를 이어 갔을 뿐이다.

***

그리고 대한당 당사…….

“SNS를 통해 박무혁 대통령의 방미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올리도록 지시했습니다.”

대한당은 신당을 밟아야 지지율이 올라간다.

햄버거 외교는 정부와 신당을 찢어 버릴 황금 같은 기회…….

놓칠 리가 없다.

전재익 대표의 보좌관이 고위 당직자를 상대로 말을 이어 간다.

“그래서 저희가 준비한 것은…….”

그 말과 동시에 스크린에 악플이 주르륵 올라갔다.

-미국까지 가서 햄버거를 얻어먹은 재벌 총수

-미국에서도 서민 코프스레.

-박무혁, 햄버거 처음 먹어 봤을걸.

보좌관이 한발 앞서 나왔다.

“댓글로 여론을 움직이며 미국의 대선 결과를 기다릴 겁니다. 그리고 그레이슨의 패배가 확실해지는 순간 정부의 외교 실패를…….”

보좌관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지이이잉,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울려서다.

그리고 휴대폰의 주인은 전재익 대표…….

그가 휴대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잠, 잠깐만…….”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 금덩이.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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