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55화 (255/300)

< 물과 기름. - (1) >

성윤이 뚜벅뚜벅 다가가 섰다.

그리고 최학인 대표와 얼굴을 마주보고 섰다.

“이렇게 얼굴 맞대는 것은 처음이죠? 처음 뵙겠습니다. 이성윤입니다.”

“최학인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두 사람이 마주친 것은 대선 기간 때 서용우 전 총리가 뒤통수를 치던 순간이다.

성윤은 건물 위에 있었고 최학인 대표는 건물 밖에 있었고…….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성윤이 주변을 둘러봤다.

“당 대표 상견례…… 하긴 해야 하는데, 기자들 앞에 두고 가식적으로 웃으면서 대화하기는 불편하잖아요? 그래서 그 전에 친분도 쌓을 겸, 차 한잔 마시려고 찾아왔습니다.”

최학인 대표는 성윤의 의도를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진으로 찾아와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놈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예사롭지 않은 소식을 들고 왔을 수도 있으니까…….

어떤 의도가 있는지 들어야 한다.

“그것도 괜찮겠네요. 들어와요.”

두 사람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창 일하던 보좌진들이 고개를 돌린다.

“대표님 오셨…….”

인사를 하려다가 그들은 성윤을 봤다.

동시에 똑같은 표정으로 변해 간다.

흡사 바퀴벌레를 본 것 같은 눈빛으로…….

그들에게 성윤은 나쁜 놈 끝판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최학인 대표가 재킷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나가 있어.”

그 말에 보좌진들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성윤을 쏘아보는 것은 잊지 않고.

그렇게 사무실에는 최학인 대표와 성윤만 남았다.

최학인 대표가 컵에 봉지 커피를 타며 입을 연다.

“우리 애들이 째려본 것, 사과하죠. 야당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헐벗고 살았더니 투쟁심만 남았어요. 이해해 줘요.”

“괜찮습니다. 제 사무실에 오셔도 똑같았을 텐데요.”

아니, 더 심했을 수 있다.

정우가 째려보면 정말 기분이 나쁘니까.

최학인 대표가 성윤의 앞에 커피를 내려 뒀다.

“그래, 친분을 어떻게 쌓아야 할까요? 우리가 하하호호 웃으면서 대화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대화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을 때 쉽게 이어지죠. 그래서, 이번 판을 복기해 보면 어떨까요?”

최학인 대표의 행동이 뚝 멎는다.

“이번 판?”

“네, 이번 판. 대표님께서 주진만 의원님을 타깃으로 잡은 계획.”

“……!”

성윤이 그의 아픈 곳을 찔러 들어갔다.

“이번 판, 대표님이 전재익 의원을 돕기 위해 참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표님만 손해를 봤죠? 아까운 시민 단체장만 잃었잖아요? 그런데, 주진만 의원님은 흠집 하나 나지 않았고 세상은 평안하네요. 창문을 열어도 확성기 소리가 아니라 자동차 소리만 들립니다.”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최학인 대표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그가 조용히 찻잔을 입에 대며 말한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정치를 잘 모르네요. 그게 손해라고 생각했습니까? 시민 단체 몇 명, 구속된 것…… 아쉽지 않습니다. 비례의 높은 순번을 주겠다고 하면 배를 까뒤집고 전투적으로 나올 놈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시민 단체장 쯤은 원하는 만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대표…… 오히려 난 이득을 봤어요. 시민 단체장 몇을 잃고 대한당 전재익 의원과 혈맹을 맺게 되었죠.”

“……!”

“내가 잃은 손해만큼 전재익 의원은 감사하고 있겠죠. 도의적으로 미안해하고 있고요. 우리는 한배를 탈 겁니다. 짧게는 내년 총선, 길게는 다음 대선까지. 목적은 신당의 괴멸……. 신당의 모든 것이 파괴되고 멸망할 때까지.”

살벌한 목소리다.

그런데 성윤은 픽 웃어 버렸다.

“괴멸이라니…… 무섭네요. 너무 무서워서 오늘 밤에는 이불 덮고 자야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그거 아세요? 저도 이번 판에 이득을 봤습니다.”

“이득?”

신당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은 없었다.

알 수 없는 말에 최학인 대표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러자 성윤이 테이블에 놓인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가 보인다.

-대한당의 전당대회를 며칠 앞두고 주진만 의원 외 열 네 명의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습니다.

성윤이 입을 연다.

“저분들은 곧바로 신당에 입당할 겁니다. 그럼 신당의 국회의원 숫자는 예순 명이 넘겠네요.”

“……!”

“그런데 아직 열 명 정도 더 탈당하고 들어올 예정입니다.”

주진만 의원의 계파 외에도 추가로 입당할 의원들이 있다.

예전 김대성 의원의 계파였던 의원들…….

성윤은 당시 박무혁 의원의 눈치를 보느라 그들 중 일부를 대한당에 남겨 뒀었다.

이제 데리고 올 때다.

성윤이 커피 잔을 손에 들며 방긋 웃었다.

“그럼 일흔 명이 넘네요.”

최학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일흔 명?”

사십여 명에서 순식간에 칠십…….

지역구가 삼십 여개 늘어났다는 것은 손 안 대고 코를 풀어 버린 것.

말 그대로 완벽한 이득이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꺼내는 거지?’

재산은 조용히 불리는 게 정석이다.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파리 새끼만 꼬인다.

그런데 성윤은 적진까지 찾아와 자신의 창고를 알려 주고 있다.

곡식이 이만큼 불어났다고.

최학인 대표는 성윤이 이런 말을 왜 꺼내는지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다.

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다.

‘왜? 왜? 왜?’라는 의문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럼 협박으로 몰아세운 후 계획을 토해 내게 만드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일흔 명? 그걸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죠?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제1당이고 과반이에요. 지금도 그리고 내일도…… 신당이 국회에서 힘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느 순간 민심도 등을 돌리겠죠. 그때가 되면…… 이 대표는 사냥감이 될 겁니다.”

들판에 던져진 사냥감.

굶주린 늑대가 달려올 거다.

과반이 넘는 정당은 충분히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낼 힘이 있다.

역사란 어떻게 적느냐의 차이니까.

하지만 성윤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연다.

“사냥감요? 이번 것도 살벌하게 무섭습니다. 그리고 기대됩니다, 누가 사냥감이 될지…….”

비아냥거리는 말에 최학인 대표의 미간이 또 일그러졌다.

입씨름만 계속될 것 같다.

최학인 대표가 찻잔을 내려 두며 말한다.

“차는 다 마신 것 같고 친목 더 쌓다가는 싸우면서 클 것 같은데, 계속 있을 겁니까?”

이제 말을 그만 빙빙 돌리고 찾아 온 본심을 꺼내라는 뜻인데…….

“아뇨, 가겠습니다. 할 말도 더 없고요.”

“……!”

성윤은 가차 없이 일어섰다.

최학인 대표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정말 창고 자랑을 하려고 온 거냐? 도대체 뭐야? 어린놈의 치기였던 거냐?’

성윤이 그의 속마음을 들으며 입을 연다.

“대표님이 걱정하는 게 하나 있죠?”

“제가 걱정을 한다고요?”

“대한당이 신당에 붙으면 어떻게 하나…… 민심이 떠나지 않으면 어째야 하나?”

“……!”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허리를 굽혔다.

“그럼.”

성윤이 떠났다.

최학인 대표는 멍하니 앉아 있다.

‘협박? 아니면 경고? 대한당이 신당에 붙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만 섬뜩한 이야기다.

어쨌든 대한당과 신당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당이니까.

물론 신당에는 민국당 출신도 있지만.

어쨌든, 대한당의 전통성에 신당의 민심이 합쳐지면…….

민국당은 계속해서 야당으로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시각, 성윤은 복도로 나와 있었다.

방을 나올 때 최학인 대표가 얼마나 무섭게 노려봤는지 아직도 뒤통수가 찌릿찌릿하다.

고개를 틀어 보니 복도의 끝에서 정우가 걸어오고 있다.

“찍었어?”

“네.”

정우가 휴대폰 화면을 보인다.

성윤과 최학인 대표가 만나는 장면.

누가 보면 그럴싸한 비공식 회담처럼 보인다.

“이걸 전재익 의원이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대한당의 국회의원이 줄줄줄 새는 중이다.

그 시작은 주진만 의원이었고 또 그 작전은 최학인 대표가 실행했다.

전재익은 대한당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민국당과 신당이 짰다고 생각할 거다.

손끝이 떨리고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분노에 휩싸일 테고.

양 당은 전쟁을 치르게 될 거다.

“대한당과 민국당이 동맹이라니……. 말도 안 되잖아? 기자에게 보내.”

“네.”

대한당과 민국당은 역사적으로 숙적이다.

목적이 같다고 해도 육식동물이 같은 길을 걷는 것은 무리…….

그런 동맹은 가벼운 돌멩이가 던져져도 와장창 깨지고 만다.

정우가 한정이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

성윤은 시선을 틀어 최학인 대표의 방을 바라봤다.

대한당이 민국당을 공격할 때, 신당은 서포트를 할 거다.

‘벼랑 끝에 서면 베팅을 시작하겠지?’

최학인 대표는 도박을 좋아한다.

포커나 고스톱이 아니라 정치판의 도박.

대역전승에 짜릿함을 느끼는 변태다.

‘그 게임에는 이준대가 포함될 테고.’

이준대는 최학인 대표의 곁에 서 있을 거다.

정상으로 향할 동아줄이 최학인 대표라고 생각하니까.

‘조만간 다 같이 테이블에 앉을 거야.’

권력을 향한 베팅.

물어뜯고 싸우고 찌르고 씹어 먹고…….

그 전에 판돈을 잔뜩 불려 놔야 한다.

성윤이 몸을 돌렸다.

‘그때가 되면, 둘 다…… 죽어라.’

***

“학교는요? 수업할 시간 아닌가?”

“졸업했어요, 며칠 전에……. 오실 줄 알았는데 안 오셨고요.”

“아, 그럼, 시험 봐야 하지 않아요? 변호사 시험.”

“이미 봤는데요. 합격도 할 것 같고요.”

서안시 사무실에 정혜성이 찾아왔다.

그녀가 손에 든 작은 케이크를 성윤의 책상에 내려놓는다.

“당 대표 취임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졸업 축하해요.”

그녀가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연다.

“다음 주부터 에스 로펌에 출근하기로 했어요.”

“로펌요? 꿈이 검사라고 하지 않았어요?”

뜬금없이 변호사라니.

에스 로펌이라는 변호사 집단은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곳이다.

연봉도 상당할 테고.

하지만 그녀가 연봉에 목멜 사람은 아니다.

아버지가 서울 시장이니 순수하게 꿈을 좇아도 되는데…….

“아버지가 저는 검사에 안 어울린데요. 상처만 받고 그만 둘 게 분명하다고 변호사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며칠 동안 고민했고…….”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했다.

그녀의 성격에 범죄자를 앞에 놓고 취조하기는 좀 어려울 거다.

누군가를 감옥에 보낸다는 것, 상대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 일이니까.

“뭐, 그것도 축하해요.”

그런데 그녀가 우물쭈물한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눈치를 보기도 하고…….

“말씀하세요.”

멍석을 깔아 주자 용기내어 입을 연다.

“국, 국회의원도 고소장 많이 받는다면서요? 제가 의원님 변호 맡을게요. 의정 활동만 열심히 하실 수 있도록…….”

“로펌에 입사하고 첫 번째 영업인가요?”

“네? 영……업요? 아뇨! 돈 안 받을 거예요. 그러니까, 의원님께서 많이 도와주기도 하셨고 그래서…….”

횡설수설, 당황하는 그녀를 보며 성윤이 크게 웃었다.

“좋아요. 박정우 보좌관에게 말해 둘 테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러면 이제 제가 구치소에 갈 일은 없는 거죠?”

“구, 구치소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저는 정치인이고…… 패배한 정치인의 끝은 그쪽이잖아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나 보다.

그리고 순간 자신의 아버지도 떠올린 것 같다.

표정이 조금 씁쓸해진다.

“아, 네. 노력할게요.”

잠시 후, 정혜성이 떠났다.

문에서 인사하고 몸을 트는데 사무실에 앉아 있던 정우가 한심한 눈으로 성윤을 본다.

“의원님, 신은 참 공평한 것 같아요.”

“뭐가?”

“그 나이에 여당의 당 대표까지 했지만 연애를 책으로 배웠는지 아니면 동급생으로 배웠는지. 참…….”

“그게 무슨 말이야?”

정우가 혀를 끌끌 차며 정효순 주임에게 시선을 옮겼다.

“주임님, 제가 의원님보다 나이가 어려서 뭐라 말하기가 좀 그런데, 대신 말씀해 주세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죠?”

“우리 막둥이도 요즘 연애한다고 바빠요. 그런데 의원님 같지는 않아요.”

“네?”

“저 아가씨…… 오늘 차 안가지고 온 것 같던데, 적어도 역까지는 데려다줘야 하지 않겠어요? 가는 길에 커피숍도 좀 들르고요.”

“아.”

정우가 성윤의 등을 힘차게 밀었다.

“배웠으면, 어서 가세요. 의원님이 장가를 가야 이 동생도 가정을 꾸리죠!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고민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10분 후에 누구나 웃을 수 있는 개그 메시지를 보내 드릴 테니까요.”

“그건 거절할게.”

성윤은 쫓겨나듯 사무실에서 나왔다.

일단 거리로 나와 두리번거렸다.

시장 건너편이라 오가는 사람이 많은데 멀리 정혜성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녀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혜성 씨!”

정혜성이 고개를 튼다.

활짝 웃는다.

정치판이라는 똥밭에서 뒹굴다가 정혜성이 웃는 것을 보니까 왠지 긴장감이 스르륵 풀린다.

계속해서 밀어냈던 그녀인데 어느새 곁에 와서 재잘거리고 있다.

< 물과 기름.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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