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날의 검. - (3) >
주진만 의원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성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앞에 전재익 의원이 있죠? 대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딱히 대처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보답은…… 나중에 술이나 사 주십시오, 비싼 것으로.
“그러지.”
전화가 끊겼다.
주진만 의원은 휴대폰을 내려 뒀다.
그리고 물끄러미 휴대폰을 바라본다.
세력 싸움에서는 전재익 의원과 민국당이 유리하다.
‘하지만…….’
성윤이 이렇게 말할 때는 자신이 있다는 거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전재익 의원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한다.
“의원님이 다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제 계획을 밝히면서까지 이곳에 찾아온 겁니다. 부디 존경받는 의원님으로 남아 주십시오.”
“자네를 지지하라고?”
“그럼 모든 게 깔끔할 겁니다.”
주진만 의원이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자네는 참 대단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결과만을 위해 싸우니까.”
“……그게 나쁜 겁니까? 어차피 역사의 과정은 승리한 자가 쓰는 겁니다.”
주진만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나와는 맞지 않아. 천박해.”
“그 말씀은…….”
“자네도 각오해야 할 거야. 자네의 팔다리도 멀쩡하긴 힘들 테니까.”
“그깟 자존심 때문에 명예를 버릴 정도로 멍청한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자네는 그깟 권력 때문에 양심을 버리고 있지 않나?”
주진만 의원의 냉랭한 목소리…….
전재익 의원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의 목소리가 살벌하게 울린다.
“주진만 의원님…… 거수기로 시작해서 원내 대표까지. 의원님은 비주류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주류의 희망은 ‘그럼 그렇지.’라는 말로 바뀔 겁니다.”
“……!”
“그리고 사비를 털어 독거노인과 노숙자의 배를 채워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곧 더러운 돈으로 배를 채웠다며 토악질을 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반드시…….”
“…….”
“의원님이 했던 모든 일은 부끄러움의 상징이 될 겁니다.”
주진만 의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아 버린다.
전재익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진만 의원을 내려다 보며 입을 연다.
“혹시…… 제가 민국당과 손잡았다고 떠들 생각이라면, 그게 반격의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찾아와 입을 열 정도면 이미 대비는 다 되어 있으니까요.”
“나가.”
전재익 의원이 주진만 의원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굽힌다.
“그만 가 보겠습니다. 그런데 기회는 이제 없습니다, 의원님…….”
그 말을 끝으로 전재익 의원은 사무실을 벗어났다.
문이 탁 닫혔다.
주진만 의원이 허탈하게 웃기 시작한다.
“하하하하…….”
그가 원내 대표였던 시절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전재익 같은 놈들은 설설 기었다.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새 자라나서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욕망으로 가득한 눈빛을 번뜩이면서…….
게다가 주진만 의원은 지금껏 좋은 일도 많이 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돌보고, 그런데 그 모든 일을 부끄러움의 상징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니…….
“……이게 권력인가?”
허망하고 또 허망했다.
***
성윤은 휴대폰을 품에 넣은 후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으로 향한다.
스르륵 문이 열렸다.
호텔의 레스토랑이다.
직원이 허리를 굽히며 성윤을 안내한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직원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VIP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검찰총장 대행을 맡은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보인다.
그가 서둘러 일어나 허리를 굽힌다.
“오셨습니까?”
차장검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어색하게 서 있다.
그의 나이는 성윤보다 한참 많다.
하지만 잔뜩 눈치를 보는 중이다.
아무리 성윤이 여당의 당 대표라 하더라도 지나칠 정도의 저자세…….
“앉으세요.”
“아, 네.”
그는 다급히 자리에 앉았다.
성윤 역시 자리에 앉아 테이블을 바라봤다.
음식이 가득하다.
스프에서부터 스테이크 그리고 와인, 알 수 없는 이것저것의 음식.
분명 코스 요리인데 한 번에 올라와 있다.
지금부터 시작될 긴밀한 대화를 직원이 왔다 갔다 하며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성윤이 나이프를 손에 쥐며 입을 열었다.
“안색이 안 좋은데…… 혹시 스테이크 싫어하십니까? 아니면 와인이 마음에 안 드세요? 다른 것으로 시킬까요?”
“아, 아뇨. 좋아합니다.”
“그럼 드세요.”
“네.”
차장검사는 나이프를 움직이면서도 여전히 성윤의 눈치를 살핀다.
입이 타는지 계속 물을 마시면서…….
“왜요? 왜 그렇게 보시죠?”
“따로 부르신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성윤이 나이프를 내려 뒀다.
그리고 티슈로 입을 닦으며 말한다.
“여쭤볼 게 있어서요.”
차장검사는 마른침을 삼킨다.
드디어 본론이다.
‘혹시……?’
검찰총장 후보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내가 총장 후보?’
가능성은 충분하다.
대행 임무를 훌륭히 해내는 중이며 총장에 앉을 기수니까.
그게 아니면 성윤이 자신을 따로 보자고 할 이유가 없다.
이게 차장검사가 저자세로 나오는 이유였다.
그가 마른 입술을 핥는다.
‘어쩌지? 민국당의 공천을 받아? 아니면 총장을 해?’
어떤 선택을 해도 그에게는 이득이다.
그리고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정말 궁금한 게 있거든요.”
“말씀하십시오.”
“부담부증여로 대학생 아들에게 20억짜리 아파트를 선물해 주셨네요?”
뭔가 예상과 다른 말이 흘러나온다.
차장검사는 눈을 깜빡였다.
“네? 부담부증여요?”
“시집간 딸 이름으로는 미국에 펜트 하우스 하나를 사 주셨고요.”
“의, 의원님?”
“마지막으로…… 이게 제일 궁금했는데요. 아내분의 국적이 도미니카공화국인데, 맞나요?”
차장검사의 표정이 썩어 들어간다.
‘씨, 씨발…….’
검찰총장의 단꿈은 사라졌다.
악몽 같은 현실이 다가오는 중이다.
차장검사가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며 답한다.
“세금…… 제대로 내겠습니다.”
“세금요?”
“네.”
성윤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세금이라니, 크핫핫핫핫!”
그 웃음소리가 이어질수록 차장검사의 얼굴은 박살 나는 중이다.
성윤이 웃음을 뚝 멈추고 차장검사를 노려봤다.
“세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20억짜리 아파트와 미국의 펜트하우스! 돈이 어디서 났습니까? 검찰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 샀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
“그리고 도미니카공화국은 뭡니까?”
도미니카공화국, 세계에서 가장 싼 값으로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다.
자녀의 외국인 학교 또는 병역 기피로 이용된다.
“아드님을 군대에서 빼내려고 준비하는 겁니까!”
성윤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차장검사의 표정은 이제 관리되지 않는다.
팬티 한 장 남기지 않고 벌거벗겨진 기분이다.
더 큰 문제는…….
‘왜 이러는 거야!’
성윤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거다.
이럴 때는 납작 숙여야 한다.
차장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혔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뭐든 하겠습니다!”
성윤은 국회의원이라는 괴물이다.
그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권력자.
여당의 당 대표다.
성윤이 입을 연다.
“최학인 대표에게 사주받았죠?”
“……!”
“주진만 의원을 때리라고.”
허리를 굽히고 있어서 성윤은 볼 수 없었지만 차장검사의 완벽할 정도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내가 고래 싸움에 끼었구나!’
민국당 최학인과 신당의 이성윤.
정치판의 거물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차장검사는 그 사이에 낀 새우다.
‘젠장!’
뒤늦게 깨달았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그는 이미 이 판에 들어왔고 이제 선택만 남아 있다.
공천권을 약속하며 천국을 보여 줬던 최학인과 비리를 알리며 지옥을 보여 주는 이성윤…….
‘천국과 지옥…….’
누구의 곁에 서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성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학인 대표는 떨어져 나간 도마뱀 꼬리를 신경 쓰지 않죠. 차장검사님이 짓밟혀 죽는다 해도 외면할 겁니다.”
차장검사가 한숨을 내뱉었다.
천국에 가는 것보다 지옥에 가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제,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총대 한번 매 주십시오.”
성윤은 그 말을 마치고 테이블의 벨을 눌렀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정우가 들어온다.
들고 있던 서류를 탁탁탁 테이블에 올린다.
“읽어 보세요.”
차장검사가 서류를 들어 확인했다.
정치판에 깊숙이 연관된 시민단체, 그중에서 횡령과 같은 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명단이다.
성윤이 말한다.
“이 단체의 대표님들…… 정치에 신경 쓰느라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잠시 구치소에서 휴식을 좀 취하셨으면 좋겠어요. 책도 많이 읽고요.”
구속하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차장검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들을 잡지 않으면 자신이 잡혀 들어갈지도 모르니까.
그가 고개를 숙인다.
“이틀 안으로 처리하겠습니다.”
“길어요. 내일까지.”
차장검사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허둥지둥 레스토랑을 벗어났다.
물론 집으로 간 것은 아니다.
목적지는 서초동 대검찰청…….
성윤의 앞에서는 얌전했지만 검찰청에서는 여포였다.
그가 전화기를 붙잡고 소리를 지른다.
“당장 튀어 와!”
***
-시민 단체 대표 김 모 씨가 구속되었습니다. 지난 6년간 기부금 중 6억 원을 빼돌린 혐의입니다.
-서울 중앙 지검은 오늘 오전 10시 20분, 장애인 단체를 운영하며 주기적으로 장애인들을 폭행한 박 모 씨를 구속했습니다. 박 모 씨는 장애인 폭행 외에도 업무상 횡령, 기부금품법 위반의 혐의를…….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주진만 의원의 퇴진을 요구하던 시민 단체의 장이 우르르 구속되는 것이…….
그리고 성윤은 다시 주진만 의원을 찾았다.
“왔나?”
전통 술집이었다.
찌그러진 주전자에 막걸리가 찰랑이고 있었다.
성윤이 맞은편에 앉자 주진만 의원이 주전자를 들어 잔을 채운다.
“마셔.”
“비싼 술을 사 달라고 그랬는데요. 비싼 술이 막걸리인가요?”
“노인네에게는 비싼 술이야.”
주진만 의원이 잔을 들어 막걸리를 쭉 들이켠 후 성윤을 본다.
그리고 입을 연다.
“원하는 게 뭐지?”
“네?”
“자네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잖나? 벼랑 끝으로 날 밀어 넣고 어떤 계산을 하고 있었지?”
주진만 의원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성윤은 다급히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정치판에 미안한 게 어디 있나? 됐고 말이나 해. 계산한 결과가 뭐야?”
“먼저…… 오해는 풀고 싶습니다. 의원님이 벼랑 끝에 서신 것을 보고 계산기를 두들긴 것은 맞지만…… 밀어 넣은 적은 없습니다.”
“썩을 놈…… 그게 그거지. 답이나 말해.”
성윤은 잠시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신당에 들어와 주십시오.”
주진만 의원은 대답 없이 막걸리를 입에 댄다.
그는 대한당에서 은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재익 의원의 행동으로 대한당에 대한 불신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성윤이 그 마음을 흔든다.
“전재익 의원의 당 대표 당선은 기정사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 의원님의 계파는 모두 낙동강 오리 알이 될 겁니다. 주요 자리에 자기 사람을 채우는 것은 당연한 거니까요.”
“그렇겠지.”
“그런데 거기서 끝날 것 같습니까? 반발하는 사람을 찾아 찍어 낼 겁니다. 아니, 반발하기 전에 본보기를 보일 수도 있겠네요. 이번에 의원님을 공격했던 것처럼…….”
혼자 죽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따라왔던 계파까지 지옥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성윤이 계속 말한다.
“그 꼴을 보고 계실 겁니까?”
“그래서…… 신당으로 가라?”
“네.”
“패잔병일세…….”
주진만 의원은 다시 술을 채운다.
그리고 입에 댄다.
그런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
“마지막에 고향을 버리고 타향살이를 하게 생겼어.”
“신당이 제2의 고향이 될 겁니다.”
“대우는 확실하게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나 말고, 함께 가는 다른 의원들.”
“네.”
주진만 의원이 물끄러미 성윤을 바라본다.
표정이 변했다.
방금까지는 고향을 떠나는 아쉬움이었다면 지금은 성윤을 걱정하고 있다.
“이 의원…… 자네 참 무서운 사람이야.”
“……!”
“그런데 전재익이나 최학인은 자네보다 더한 악당이야. 이길 수 있겠나?”
“……!”
“내 계파가 이동한다고 해도 신당은 과반을 넘지 못해. 정치는 머리 좋고 정의로운 놈이 이기는 게 아니야. 쪽수 많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싸움이지.”
성윤이 빙긋이 웃는다.
“정치는 민심 싸움이죠. 국민이 밀어주는 놈이 이기는 겁니다.”
눈을 깜빡이던 주진만 의원이 크게 웃기 시작한다.
“그렇지! 민심 싸움이지! 내가 잠시 잊고 있었어! 잘하면 소수 여당으로 거대 야당을 밀어 낼 수도 있겠어! 으핫핫핫!”
주진만 의원이 성윤의 잔에 막걸리를 채웠다.
***
며칠 후, 최학인 의원은 의원 회관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몇 명?”
“지금까지 일곱 명입니다.”
구속된 시민 단체장의 숫자가 벌써 일곱이다.
그의 미간이 콱 일그러진다.
옆에 섰던 보좌관이 말을 잇는다.
“확실한 것은 아닌데, 며칠 전 이성윤 대표가 차장검사를 만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최학인 의원의 걸음이 뚝 멈췄다.
“누구? 이성윤?”
“네.”
그런데…… 최학인 대표의 말투가 이상하다.
보좌관이 최학인 대표의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봤다.
창가에 등을 기대선 성윤이 보인다.
성윤이 슬쩍 웃는다.
“기다렸습니다.”
< 양날의 검.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