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53화 (253/300)

< 양날의 검. - (2) (소 제목 수정했습니다.) >.

“……!”

“골치 아픈 생활은 그만하고 싶어.”

성윤은 주진만 의원의 거절을 예상했다.

그래서 설득의 논리를 준비했지만 그 보따리를 풀지 않는다.

‘지금은…….’

주진만 의원의 주변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국당 최학인 대표와 대한당 전재익 의원이 만들어 내는 거친 물결…….

분명 위험할 거다.

하지만 높은 위험성은 언제나 최대의 이득을 안겨 주는 법.

물고를 틀기만 하면, 그래서 성윤이 원하는 대로 물이 흐르기만 하면…….

논과 밭은 비옥한 토지가 될 거다.

그래서 지금은 한발 물러선다.

“……그래도 생각 있으면 연락 주세요. 의원님이라면 좋은 장관이 될 것 같거든요.”

주진만 의원이 손을 저었다.

“이놈아…… 내가 이 나이에 청문회를 받으라고? 민국당 애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있는 죄, 없는 죄…… 무단횡단 한 것까지 깡그리 끌고 올걸. 그러다가 화병으로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안 해. 다른 사람 알아봐.”

성윤이 슬쩍 웃었다.

“고민이라도 한번 해 주세요.”

“됐어.”

주진만 의원은 찻잔을 입에 댄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성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또 인사드릴게요.”

여기까지다.

더 설득할 마음은 없다.

지금은 물고를 트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주진만 의원의 안전은 보장해야 한다.

최학인 대표가 만들어 낸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폭우가 멈췄을 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복도로 나간 성윤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정우야, 주진만 의원님 주변에 사람 좀 붙여 둬. 가족도 마찬가지야. 나머지는 가서 이야기하자.”

-네. 바로 준비할게요.

성윤은 지하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올라오던 엘리베이터가 ‘띵’ 소리와 함께 멈춰 선다.

문이 스르륵 열리고…….

‘어?’

정장을 단정하게 입은 남자가 내린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만 내뱉으면서…….

성윤의 눈동자가 남자를 향해 움직인다.

꿈속에서 봤던 얼굴…….

‘누구지?’

곧바로 기억났다.

CAL이라는 비정규직 노조 단체의 장이다.

‘노조 단체가 여기는 왜?’

성윤의 눈이 찌푸려졌다.

CAL은 대한당과 거리가 먼 단체다.

욕하고 싸우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곳에 올 이유가 없다.

성윤은 남자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그의 속마음을 듣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잖아……. 그런 거잖아! 주진만 의원님께 전하는 것만으로 난 도리를 다한 거야. 그래, 다한 거야…….

성윤은 그 남자가 최학인이 만들어 낼 소용돌이의 한 축이라는 것을 예상했다.

성윤은 남자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저기요?”

남자가 뒤를 돌아본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성윤을 보지 못했던 그가 천천히 시선을 든다.

깜빡이던 눈이 순식간에 커진다.

“어? 이, 이성윤 의원?”

“CAL 대표님이죠?”

남자의 눈동자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저, 저를 아세요?”

“커피 한잔했으면 하는데…… 어때요?”

그리고 손님이 없어 한산한 커피숍.

성윤은 미지근하게 식어 버린 커피를 손에 들었다.

“대표님께서 주진만 의원님을 찾아온 이유…… 알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본론, 남자의 얼굴이 철렁거린다.

“네? 뭐, 뭘? 제가 왜…… 찾아왔는데요?”

“주진만 의원님의 일이잖아요. 곧 일어날 대규모 시위…….”

대규모 시위…… 성윤은 남자가 CAL의 대표라는 것을 생각해서 짚어 낸 거다.

그런데 맞혔나 보다.

남자의 속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야? 보안에 신경 쓰라고 하더니 밖으로 샌 거야?

그 속마음을 들으며 성윤이 말을 던졌다.

“여당 대표의 정보력을 얕보지 마세요. 어지간한 일은 다 알고 있으니까요.”

남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고 보니 성윤은 여당의 당 대표다.

일반인에 비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남자가 한숨을 푹 내뱉는다.

“그동안 주진만 의원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CAL은 비정규직 단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비주류 단체다.

여기저기서 이용만 당할 때, 주진만 의원이 물심양면 도움을 줬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가운 아스팔트에 서지 않도록…….

남자가 계속 말한다.

“지금껏 도움만 받았는데 위기가 왔다고 모른 척하면…… 짐승보다 못한 거잖아요. 그래서 몰래 찾아왔습니다.”

남자는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듣는 이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려는 거다.

그리고 다시 성윤을 본다.

‘믿을 수 있을까?’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

하지만 성윤은 주진만 의원과 가까운 사람이며 여당의 당 대표다.

이 난관을 뚫고 지나갈 힘이 있다.

“아시는 것처럼 시민 단체가 움직일 것 같습니다. 이름만 시민 단체고 정치판에 깊숙이 개입한 곳들이죠. 놈들은 다음 공천에서 떡고물이라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숫자는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예순 개 정도의 단체가 움직인다고 했으니까 적어도 3천 명…….”

성윤의 입술이 바짝 말라 갔다.

‘3천 명이라니…….’

쉽지 않은 숫자다.

그들이 하나가 되어 외치면 외면할 수 없는 목소리가 된다.

그 전에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장소는 국회 앞, 목적은 국회의원 규탄……. 물론 그 국회의원은 주진만 의원님입니다.”

최학인의 시나리오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프닝은 시민 단체가 맡을 거다.

아무 죄나 갖다 붙인 후 여론 몰이.

벌써부터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퇴진하라! 퇴진하라!”

이후에 언론사가 달려든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기사를 통해 분위기를 띄울 거다.

그럼 기다렸다는 듯 민국당 대변인이 입을 연다.

“주진만 의원에 대한 특검을 발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나리오의 엔딩을 장식하는 것은 검찰이다.

그들은 완벽한 증거를 찾아냈다며 호들갑을 떨어 댈 거다.

“구속영장을 청구하겠습니다!”

물론 결론은 없다.

법원에 가도 무혐의…….

전형적인 마녀사냥일 뿐이다.

하지만 효과는 충분하다.

국회의원은 남들의 눈치를 보는 사람, 사건이 터지면 주진만 의원의 곁에 있던 의원들은 등을 돌릴 테고 연락조차 받지 않을 거다.

같이 있다가 함께 지옥으로 떨어질 수는 없으니까.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게 그렇다.

무리에서 버림받은 늙은 사자는 하이에나 떼에게 찢겨 죽는다.

말을 마친 남자가 입을 연다.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남자가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성윤의 대답에 조금은 안심이 되나 보다.

그가 한숨을 내뱉는다.

“그럼 전 주진만 의원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이 일에 대한 말씀은 드려야 하니까요.”

“그러세요. 그런데 하나만 부탁드리죠.”

“부탁이요?”

“저를 만났다는 것, 주진만 의원님께는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

의원회관의 흡연실.

먼저 와 있던 정우를 향해 성윤이 다가갔다.

옆에 서서 담배를 입에 무는데 정우가 입을 연다.

“주진만 의원님이 거절했나요?”

“어. 예상했잖아? 그건 그렇고…….”

성윤은 방금 만난 노조 단체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최학인 대표의 시나리오.

시민 단체와 민국당 그리고 검찰의 마녀사냥.

이야기를 듣던 정우의 눈이 번뜩인다.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성윤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선동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세상을 두고 볼 수는 없잖아? 일단 검찰에서 민국당의 동아줄을 잡은 사람이 누군지 찾아.”

“네.”

“정부에 불만이 많은 사람, 곧 옷을 벗을 사람, 재보궐에서 민국당의 공천을 받을 사람. 찾다 보면 한 명이 나타날 거야.”

그놈이 주진만 의원의 목을 그어 낼 칼이다.

성윤이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최학인 대표가 착각하고 있어.”

검찰이라는 칼.

지금 그 주인은 신당이다.

“남의 칼을 쥐고 흔들면 다친다는 것을 알려 줘야지.”

***

며칠 후.

주진만 의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곁으로 보좌관이 선다.

“의원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의원님의 퇴진을 요구하는 전화가 계속해서 걸려 옵니다.”

주진만 의원이 한숨을 내뱉는다.

“전화?”

시민 단체, 그중에서도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곳.

그들은 전화를 걸어 욕을 지껄여 대는 중이다.

-퇴진해!

일단 시동을 거는 거다.

의원이 목소리를 외면했다며 거리로 뛰쳐나오려고…….

처음엔 얌전하지만 차차 폭력적으로 변할 거다.

그리고 그 뒤는 뻔하다.

여론이 움직이면 언론 그리고 검찰이 손을 잡고 칼질을 해 댈 거다.

그럼 주진만 의원은 치욕스럽게 은퇴하게 된다.

‘젠장.’

주진만 의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뒤에 민국당이 있다고?’

며칠 전, CAL의 대표가 찾아와 이야기해 줬다.

민국당의 지시…….

‘그런데 왜 나를?’

주진만 의원은 원내 대표가 아니다.

당직을 벗고 나서는 조용히 지내는 중이다.

내부의 권력 다툼보다는 민생을 생각하며 정치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는 상임위나 본회의에 참석하는 게 전부인데…….

고민해 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주진만 의원이 끔, 신음을 내뱉었다.

그냥 당할 수는 없다.

“보좌관, 시민 단체가 움직이면 그다음은 기자들이 셔터를 눌러 대겠지?”

“네.”

“그럼 그 전에 언론사를 막으면 되겠군. 언론사 사장단에 연락해, 식사나 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누구지?”

“대법관이었던 김양정입니다.”

언론이 불을 지피면 검찰이 죽창을 휘두르며 나타날 거다.

검찰의 행동에 족쇄를 채워야 한다.

“김양정 대법관에게는 꽃다발을 보내. 안에는 청문회에서 우리당 의원들이 할 질문지를 넣고. 그럼 알아서 판단할 거야.”

“알겠습니다.”

이제 시민 단체의 입만 틀어막으면 된다.

“놈들이 원하는 게 뭐야?”

보좌관은 대답을 못 한다.

지금껏 시민 단체가 요구한 말은 오로지 ‘퇴진’이었으니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우물쭈물하자 주진만 의원의 호통이 내리쳤다.

“원하는 게 있으니까 퇴진하라는 거잖아! 그것부터 파악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보좌관은 허리를 굽힌 후 서둘러 방을 떠났다.

그런데 곧바로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잠깐 사이에 사색이 된 보좌관이 고개를 들이민다.

“의, 의원님…… 전재익 의원이 찾아왔습니다.”

“전재익이?”

잠시 후, 테이블에는 오렌지 주스가 담긴 컵만 존재했다.

그리고 주진만 의원과 전재익 의원이 냉랭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같은 당이지만 서로는 너무도 다르다.

주진만 의원은 극단적인 성향의 전재익 의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전재익 의원이다.

“당권을 잡고 싶습니다. 지지해 주십시오.”

“알아서 해. 난 권력 싸움에서 빠졌어. 누구도 지지하지 않을 걸세. 중립으로 있을 거야.”

전재익 의원의 입꼬리가 비틀어진다.

“중립? 중립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덤빌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이 있거나…… 적을 만들지 않는 게 살아남는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바보죠. 의원님, 중립보다는 한쪽을 선택하는 게 나은 법입니다.”

“적어도 자네를 선택하지는 않을 거야.”

전재익 의원이 피식 웃는다.

“권력 싸움에서 빠지고 되도 않는 중립을 선택하시더니, 감을 잃었나 봅니다.”

“……!”

전재익 의원의 눈빛이 섬뜩했다.

주진만 의원은 그제야 자신을 향한 총구, 그 총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주진만 의원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전재익 의원은 낄낄낄 웃기 시작한다.

“법무부 장관, 언론사 사장…… 마음껏 연락해 보세요. 지금 그 사람들은 의원님께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주진만 의원이 버럭 화를 냈다.

“같은 당 의원을 처리하려고 민국당과 손을 잡아!”

“의원님을 처리하기 위해 손을 잡은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면!”

“지금 이 나라가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돈 많은 재벌놈이 대통령 놀이를 하고 있고. 배신을 때렸던 놈들이 여당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신자들은 자기들끼리도 이념이 안 맞습니다. 지금이야 축제 기간이니까 다 같이 얼싸안고 노래를 부르지만 곧 알게 될 겁니다.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게 되겠죠. 그럼 이 나라는 어디로 갈까요? 뻔히 보입니다. 나락이죠.”

전재익 의원이 가슴을 툭툭 두들기며 느릿하니 말을 잇는다.

“제가 배지를 단 이유는 국익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 잘되게 해 달라고 국민이 뽑아 주셨습니다. 분열되는 국가를 하나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국민의 뜻이니까요. 그리고 그 방법은 신당을 치우는 겁니다. 그러려면 민국당이 아니라 진보당과도 손잡을 수 있습니다.”

전재익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차갑게 주진만 의원을 쏘아본다.

“의원님의 계파 말고는 모두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의원님도 줄 서세요, 내 쪽으로. 그럼 명예로운 은퇴를 보장하겠습니다.”

주진만 의원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가 무대를 벗어난 동안 전재익 의원이 당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진만 의원은 전재익 의원의 처분을 기다리는 중이다.

‘명예는 보장하겠다고?’

정치인의 비참한 퇴진.

가족도 똑같이 손가락질을 받는다.

누구누구의 아내, 누구누구의 자식.

나라를 망쳐 먹은 놈의 가족이네 어쩌네…….

평생을 쫓아다닐 낙인이다.

그 낙인이 싫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존재할 정도다.

전재익 의원의 말이 이어진다.

“설마…… 여당의 이성윤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그렇다면 그것도 우스운 거네요. 이성윤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을 겁니다. 대한당과 민국당이 손잡으면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까요. 이성윤은 우리 앞에 무릎 꿇고 싹싹 빌다가 쫓겨날 겁니다.”

그것도 사실이다.

국회의원은 쪽수 싸움이니까.

아무리 난리를 쳐도 쪽수에서 밀리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주진만 의원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국회의원 이성윤

< 양날의 검. - (2) (소 제목 수정했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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