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52화 (252/300)

< 양날의 검. - (1) >

추대를 하면 깔끔하고 편하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대선이 끝난 후 첫 전당대회다.

단순히 당의 고위직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당의 힘을 보여 주는 축제로 만들어야 한다.

대한당이고 민국당이고 함부로 까불지 못 하도록…….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선거로 갔으면 합니다. 축제 자리에 당 대표 선거가 빠지면 아쉽잖아요.”

게다가 선거로 뽑히는 게 미래를 위해서 더 괜찮다.

비록 독자 출마지만 당원이 만든 당 대표가 힘이 있는 법이다.

***

강화도…….

좁은 숲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면 작은 저수지가 보인다.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민물 낚시터다.

오는 길이 험해서 그런지 손님은 거의 없다.

텅 빈 좌대와 풀벌레 소리만 들린다.

그런데 그곳에 민국당 최학인 대표가 보인다.

그가 조용히 앉아 찌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발소리가 자박자박 들렸다.

그러자 그는 옆을 보지도 않고 입을 연다.

“오셨습니까?”

최학인 대표의 옆에 한 남자가 앉는다.

이름은 전재익…….

대한당 당 대표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이다.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낚싯대를 설치하며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당 대표는 뻔하고……. 원내가 누굽니까?”

오늘은 신당의 전당대회가 있던 날이다.

당 대표는 독자 출마한 성윤이 당연했지만 원내 대표는 달랐다.

치열한 경쟁 속에 누가 승리했는지 궁금했다.

“원내는 오민근 의원입니다. 아시죠? 민국당 출신이니까.”

최학인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자 전재익 의원이 낄낄거리며 말을 잇는다.

“오민근……. 제가 알기로 대표님 앞에서 손바닥 꽤나 비볐던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 손바닥으로 민국당의 멱살을 잡겠네요.”

비웃는 목소리다.

최학인 대표는 얼굴을 구겼다.

“오민근이 우리 멱살만 잡을까요? 대한당의 목은 안심할 수 있습니까? 안심하지 마세요. 놈들의 칼은 우리 코앞에 와 있습니다. 언제 목이 잘릴지 모르는 겁니다.”

섬뜩한 목소리에 전재익 의원의 표정이 굳어진다.

최학인 대표가 담배를 입에 물며 전재익 의원에게 시선을 틀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만히 있다가 멱살을 잡히고 병신처럼 처맞을 겁니까?”

전재익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병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한당과 민국당…… 평소에는 원수처럼 싸우지만 지금은 아니죠. 신당을 치울 때까지는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당은 크게 두 개의로 나뉘었다.

신당과 손을 잡자는 계파와 독자 노선을 가자는 계파…….

그들의 주장을 들어 보면 ‘정계 개편’부터 ‘협치’ 등 대단한 무엇인가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별것 없다.

신당의 손을 잡아야 권력을 쥐는 계파 그리고 독자 노선으로 가야 권력을 쥐는 계파로 분리된 거다.

그냥 밥그릇 싸움일 뿐이다.

최학인 대표가 입을 연다.

“일단은 대한당 전당대회에서 의원님이 승리해야 합니다. 의원님이 당 대표가 되어야 신당의 견제도 가능한 거죠.”

신당을 없애고 대한당과 민국당이 모든 것을 해 먹자는 뜻.

극단적 여소 야대는 지금도 그리고 역사 속에서도 존재했다.

야당이 여당을 짓밟으면 민심은 차차 여당을 떠났다.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전재익 의원이 담배를 입에 문다.

“대표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최학인 대표가 껄껄 웃는다.

“그래,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주진만을 부숴 주세요.”

“……!”

주진만, 대한당의 대표적인 술꾼이자 전 원내 대표다.

성윤과 친분이 대단하며 많은 의원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를 따르는 의원들이 친신당파라는 거다.

“주진만만 없애면 그쪽 계파는 와해될 겁니다.”

친신당파에는 대선 후보였던 서용우 전 총리도 존재한다.

하지만 서용우 전 총리는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잠시 정계에서 빠진 상태…….

“주진만……. 좋습니다. 어떻게 없애 드릴까요?”

“잘하시는 것 많잖아요? 아직 박무혁 대통령이 모든 공직을 휘어잡은 것이 아니니까 불만 있는 놈을 지정해서 빨대를 꽂은 후…….”

최학인 대표가 빙긋이 웃는다.

“공직이라, 떠오르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네요.”

검찰총장이 구치소로 끌려가는 바람에 직무를 대리하는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있다.

그는 미래를 고민하며 언제 옷을 벗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 눈치만 보는 중이다.

최학인 대표가 말한다.

“차장검사…… 로펌에서 딱히 비싼 돈 주고 모셔 갈 사람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어디에 이력서를 넣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텐데, 내년 총선에서의 공천을 약속하고 일감을 던져 주면 개처럼 일할 겁니다.”

전재익 의원이 최학인 대표를 보며 슬쩍 웃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더니, 박무혁 덕에 대한당과 민국당이 진심으로 협치를 하게 생겼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요. 하하하하.”

최학인 대표도 미소 짓는다.

신당을 박살 낼 계획이 천천히 준비되고 있으니까.

대한당은 그 계획의 도구일 뿐이다.

그가 전재익 의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럼, 다음에는 당 대표로서 만납시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 때, 두 사람은 뜨거운 악수를 나눴다.

***

-주진만 의원을 고용노동부 장관에 세우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성윤은 박무혁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당 대표가 되었는데 박무혁 대통령은 축하 인사 하나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어쨌든…….

“고용노동부요?”

-그래, 환경노동위원회에 오래 있었고 비정규직에 대한 전문성이 꽤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지난번 대선 기간.

서용우 전 총리에게 대한당 의원을 장관 자리에 넣겠다고 약속했었다.

박무혁 대통령은 그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만나서 물어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다음 안건.

“안건요?”

안건이라면 청와대 비서실장과 대화해도 되는 것인데…….

-청와대에 언제 놀러 올 거야? 테이블 취향대로 준비했으니까 와서 한잔하고 가.

성윤은 통화를 종료했다.

몸을 돌리자 미닫이문이 보인다.

그리고 안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시끌시끌 들리고 있다.

“이 대표 어디 갔어! 내 술 받아야지!”

“술! 술! 술!”

이곳은 고깃집이다.

신당의 의원들이 모여 당선 축하 파티를 하고 있다.

당 대표뿐만 아니라 원내 대표, 최고위, 각 위원장 등등…….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의원님?”

성윤이 고개를 틀었다.

정우가 휴대폰을 들고 서 있다.

“메시지 하나 왔어요.”

“메시지?”

“보세요.”

정우가 휴대폰을 건넨다.

화면을 확인하는데…….

-민국당 최학인과 대한당 전재익이 강화도 낚시터에서 만났습니다.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최학인? 전재익?’

정우가 벽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연다.

“뭘까요? 정치적 음모를 꾸미는 것 같은데…….”

성윤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전재익은 대한당 당 대표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이다.

그런 그가 굳이 민국당 당 대표를 만날 이유는 단 하나.

민국당의 손을 이용해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전재익은 반신당파야.’

전재익 의원은 신당과 적대적인 관계에 서 있다.

‘그럼, 정적은 친신당파에 있을 거야.’

성윤의 머릿속에 친신당파의 얼굴과 이름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성윤과 정우가 눈을 마주친다.

“설마…….”

두 사람이 똑같이 떠올린 한 사람.

정우가 입을 연다.

“주진만 의원님?”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어떻게…… 연락해서 운이라도 띄워 둘까요?”

“아니, 잠깐…….”

지금 상황은 혼돈의 시대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거대 정당의 수장들이 모조리 물갈이됐다.

역사의 물결은 꿈틀대는데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미래라면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물꼬를 터야 한다.

“잠깐만 생각해 보고 움직이자.”

성윤의 말에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성윤은 정우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 후 미닫이문을 열었다.

시끄러운 목소리가 쏟아져 들려온다.

“뭐야? 주인공이 어딜 갔다 온 거야!”

성윤과 고위 당직자의 당선 파티니까…….

여기저기서 성윤의 팔을 잡아당긴다.

“이리 와! 한잔해야지!”

“어허! 여기야, 여기! 내 술을 안 받을 거야?”

검찰 조사를 받게 될 네 명의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모여 있다.

새로운 원내 대표와 고위 당직자도 역시…….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 가고 냉면과 된장국이 계속 놓인다.

맥주 컵과 냉면 그릇에 소주가 찰랑였다.

그렇게 한참 술이 오가는데, 공대출 의원이 손뼉을 짝 쳤다.

“주목!”

다들 취한 상태에서도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공대출 의원에게 집중한다.

그러자 공대출 의원이 “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시간이 늦었으니까 이제 슬슬 정리하죠. 오늘은 룸살롱 가지 말고 집으로 곧장 들어가세요.”

의원들의 얼굴에서 아쉬운 티가 확 치솟았다.

“늦기는요! 아직 12시도 안 넘었어요!”

“공 의원님! 약해지셨습니다. 예전에는 새벽 5시에 들어가야 남자라고 하던 분이잖아요!”

공대출 의원이 손을 저었다.

“아침부터 온종일 전당대회를 하느라 다들 지쳤어요. 그리고 당 대표, 원내 대표의 취임 첫날인데 술 먹다가 사고 나면 그건 개망신이에요. 주변에 기자들 깔린 것 알죠?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합시다. 마지막으로 당 대표와 원내 대표의 말을 듣고 끝내겠습니다.”

공대출 의원은 칼날같이 회식을 끝냈다.

그리고 새롭게 뽑힌 원내 대표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눈짓한다.

원내 대표가 일어섰다.

그의 입에서 앞으로 원내를 잘 이끌어 가겠다는 말이 전해진다.

교과서적인 이야기…….

술 취한 의원들의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위하여!”

신임 원내 대표가 건배를 제의한 후 자리에 앉았다.

다음은 성윤의 차례다.

일어서서 입을 열려고 하는데 벤처 의원이 낄낄거린다.

“이 대표, 모범 답안은 아까 취임사에서 다 들었으니까 속에 있는 말을 시원하게 해 봐.”

“속에 있는 말요?”

“그래, 우리 당의 당 대표잖아. 그 속을 알고 싶어. 앞으로 착한 정당이 되겠다는 교과서적인 대답 말고 속에 있는 욕망. 흐흐흐.”

욕망이라는 단어에 의원들이 웃기 시작했다.

“이 대표, 결혼할 나이잖아? 비례대표에 여배우를 집어넣는 것은 어때? 예쁜 애 많던데.”

“노인네가 못 하는 말이 없어! 여배우보다는 걸 그룹이지!”

“그것도 괜찮네. 하하하.”

시덥잖은 농담이 공간을 울렸다.

성윤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의원들이 웃음소리를 낮추고 눈을 반짝인다.

성윤의 진짜 비전이 듣고 싶은 거다.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느릿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내년 총선에서 과반을 따내겠습니다.”

“과, 과반!”

의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오십 명도 안 되는 정당이다.

여당이라 인사권만 있을 뿐, 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미미하다.

대한당과 민국당의 키 플레이어 역할을 하는 게 전부…….

게다가 전문가들은 총선에서 도로 대한당, 민국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한다.

앞으로 1년, 야당은 온 힘을 다해 여당의 숨통을 조일 테니까…….

국민은 힘없는 여당에 실망하고 등을 돌릴 수 있다.

그런데 100석 목표도 아니고 과반이라니!

의원들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윤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위하여!”

***

“찾아오지 말라니까.”

“이거…… 경주에서 올라온 전통주입니다.”

“에잉, 이왕 사 올 거면 소주나 사 오지.”

성윤은 주진만 의원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주진만 의원은 툴툴대면서도 책상에 놓인 경주의 전통주를 이리저리 살핀다.

그러더니 빙긋이 웃으며 시선을 성윤에게 옮긴다.

“소주나 사던 애송이가 이제는 여당의 당 대표라니…….”

어리게만 보였던 자식이 다 컸다는 눈빛이다.

대견한지 조용히 미소만 그리던 주진만 의원이 전통주를 들어 구석에 치워 두며 입을 열었다.

“그래, 여당의 대표가 이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인가? 친정 상황이 궁금해서 찾아오지는 않았을 테고.”

“대선 때 서용우 전 총리와 약속한 게 있습니다.”

주진만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고 있어. 그런데, 진짜 지킬 생각인가?”

알고 있으면 대화하기 편하다.

“네.”

주진만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소를 바꿔야겠어.”

그리고 그는 성윤을 소파로 안내한다.

방금까지는 친분으로 이야기를 나눴다면 지금부터는 공적인 대화가 시작될 거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성윤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그중에 장관에 대한 일입니다.”

“대통령이 지목하나? 아니면 우리가 추천하나?”

“지목입니다.”

“누구지?”

“의원님요.”

주진만 의원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누구? 나?”

“네.”

주진만 의원이 한참을 웃는다.

그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지목해 준 것은 고맙지만…… 거절하겠네.”

< 양날의 검.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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