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초리를 휘둘러야. - (3) >
성윤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대통령 이취임식에 대한 기사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박무혁, 대통령 취임…….‘강한 대한민국 만들겠다.’
-박무혁 정부 출범
-막 오른 박무혁 대통령 시대
모든 언론이 박무혁 대통령을 집중하고 있다.
취임사에서부터 참석한 귀빈까지…….
심지어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중 여섯 개가 이취임식에 대한 내용이다.
인기 연예인의 음주 운전도 묻힐 정도로 오로지 박무혁, 박무혁…….
‘지금이면 조용히 끝낼 수 있겠어.’
성윤은 김동만 의원을 뽑아낼 생각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김동만 의원의 죄가 세상에 알려지면 신당의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래서 최대한 조용히 끝내려 하는 거다.
박무혁 대통령의 이름에 김동만 의원의 사건이 가려지도록…….
휴대폰을 귀에 댔다.
짧은 신호음이 지나고 박중석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박중석입니다.
며칠 전에 안산에서 만난 부장검사.
성윤을 도와 국회의 괴물들을 사냥할 사람이다.
“속전속결로 끝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짧은 통화가 종료됐다.
성윤은 고개를 들어 무대를 향했다.
인기 가수의 축하 공연이 시작되는 중이다.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 객석에서는 손뼉을 치고 환호를 내뱉는 등 난리도 아니다.
김동만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손을 위로 올리고 열심히 흔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가식…….
공연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기면 문화를 이해하는 국회의원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으니까.
성윤의 시선이 주변으로 이동했다.
멀리 김동만 의원의 보좌관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게 보인다.
그가 의자 사이를 비집으며 김동만 의원의 앞에 선다.
그리고 단내 나는 숨을 몰아쉬며 다급히 말을 잇는다.
“의, 의원님!”
김동만 의원의 눈이 콱 일그러졌다.
보좌관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입에서 튀어나올 말이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는 것을…….
“왜!”
보좌관이 김동만 의원의 귀에 대고 빠르게 속삭였다.
“첩,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한다고 합니다.”
김동만 의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수사? 누, 누구를?”
“경홍 건설, 정경택 사장입니다.”
경홍 건설은 김동만 의원의 지역구에 있는 업체다.
겉으로는 반듯한 건설 회사지만 자세히 보면 그저 깡패 집단.
문제는…….
“수사 이유는 뭐야?”
“뇌물입니다.”
“……!”
가슴이 철렁거렸다.
김동만 의원은 경홍 건설에서 받아먹은 돈이 있다.
‘이런 젠장!’
수사가 시작되면 어디까지 치고 들어올지 모른다.
아니, 애초에 김동만 의원을 타깃으로 잡은 수사일 수도 있다.
검찰이란 놈들은 외곽을 빙빙 돌다가 “수사 중에 우연히 의원님을 찾아냈네요.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라는 말을 좋아하니까…….
김동만 의원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까 한참 고민을 하다가 눈빛이 번쩍거렸다.
‘설마? 이성윤?’
이 모든 상황을 성윤이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선전포고까지 들었으니까.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피는데…… 멀리 성윤이 보인다.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입 모양으로 말한다.
‘잘 가요.’
김동만 의원의 얼굴이 완벽하게 구겨지기 시작했다.
“저, 저…… 개새끼가…….”
하지만 거기까지다.
성윤은 몸을 돌렸다.
김동만 의원이 지껄이는 욕설을 듣고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
신당 당사.
대통령 취임으로 소란스러워야 할 곳이다.
하지만 흡연장에 모인 보좌관들의 눈동자는 불안하다.
“김동만 의원이 참고인 조사를 받는다고?”
“깡패한테 뒷돈을 받았다는데?”
“그게 깡패 뒷돈 때문이겠어? 지금 계파 싸움 중이잖아?”
“그럼, 내부 총질?”
그때 옥상의 문이 벌컥 열리고 한 당직자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보좌관들의 시선이 당직자에게 모인다.
“얼굴이 왜 그래요? 또 뭐 있어요?”
“우, 우영기 의원도 검찰 조사를 받는대요.”
우영기 의원 역시 이번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던 사람이다.
외부 인력을 끌고 와서라도 당선되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우영기 의원이? 이유는?”
“뒷돈 받고 빌딩 용적률을 눈감아 줬대요.”
“……!”
찍소리도 못하고 한순간에 끝장나 버렸다.
“누구지? 누가 이런 식으로 당권을 장악하는 거지? 너무 독하잖아!”
모두 입을 다문다.
당권을 향한 계파 싸움…….
보통은 네거티브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전당대회가 열리기도 전에 누군가가 검찰을 휘두르며 잔인하게 찍어 낸다.
이제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 보좌관들이 모시는 국회의원 중 누군가의 목이 잘릴지…….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만 보고 있다.
그리고…….
김종혁 의원의 사무실.
그는 자신이 박무혁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계파 싸움에서 성윤에게 깨지며 외톨이가 되었다.
지금은 아무도 그의 곁에 서지 않는다.
그의 방문이 열리고 비서관이 고개를 내밀었다.
“의원님? 이성윤 의원이 찾아왔습니다.”
김종혁 의원이 고개를 들었다.
“이, 이 의원이?”
“네.”
운명을 예상했는지 김종혁 의원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 그래……. 들어오라고 해.”
비서관이 몸을 돌렸다.
김종혁 의원이 한숨을 내뱉었다.
‘……내 차례인가? 하긴, 가만히 놔두는 게 병신이지…….’
정치판은 약육강식의 세계다.
상처 입고 힘없는 짐승은 뼈까지 으깨 먹는 게 법칙이다.
살려 달라고 간절히 외치는 적의 목숨을 살려 줬다가 뒤통수를 맞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리고 김종혁 의원은 이빨 빠진 호랑이다.
‘하…….’
그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김동만, 우영기 의원이 검찰의 조사를 받는다는 기사가 토막만 하게 올라와 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박살 낸 사람이 성윤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제는 나야.’
이제 길었던 정치인의 생활을 마칠 순간이다.
그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문으로 향했다.
문 앞에 성윤이 서 있다.
성윤이 김종혁 의원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굽힌다.
“서안시 동구 이성윤 의원입니다.”
극단적으로 예의를 갖춘다.
정치 생명을 거두러 온 것이다.
김종혁 의원이 억지로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당 대표에 출마한다고?”
“네.”
“나이가 서른하나? 둘? 어린 나이에 출세했어. 여당의 당 대표도 되고.”
여당의 당 대표…….
대통령과 인사권을 함께 고민할 사람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약 7천 개.
장, 차관과 실, 국장, 정부 부처 내 각급 공무원…….
대법원장, 대법관,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감사원장, 경찰 총장, 국세청장, 금융 위원장, 방송통신 위원장, 국립대 총장…….
이외에도 국민연금관리공단, 서울대병원, 한국은행 총재 등등등…….
그 많은 자리를 대통령과 함께 쥐락펴락할 수 있는 자리.
그만큼 막강한 힘.
김종혁 의원은 그 힘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바라지도 못한다.
“미리 말하지. 축하하네.”
김종혁 의원은 태연한 척 연기를 내뱉고 있다.
하지만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다.
이제 기자들 앞에 서서 치욕을 당해야 하니까.
‘한 말씀만 해 주세요!’라는 거지 같은 말을 들으며 검찰에 들어가야 한다.
‘존경하는 의원님’이라 불리는 명예는 끝났고 남은 것은 손가락질…….
영원히 숨어 살아야 할 거다.
그게 패배자의 숙명이다.
하지만 최대한 담담한 척 말을 이어 간다.
“그래, 내 목을 벨 칼은 뭐지? 말해 주게. 어떤 비리가 내 숨통을 끊을지…… 그것은 알고 싶어.”
“제가 당 대표가 되면 최고위가 되어 주십시오.”
“……!”
김종혁 의원의 행동이 바위처럼 멈췄다.
예상하지 못한 말.
들고 있던 담배에서 연기가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시간이 멈춘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가 눈동자만 움직여 성윤을 본다.
“최, 최고위? 지금 최고위를 해 달라고?”
“네.”
어떤 비리를 꺼내 들 줄 알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최고위라니…….
성윤이 다시 허리를 굽힌다.
“부탁드립니다.”
신당은 역사와 정통이 없다.
그런 곳에 성윤이라는 신흥 세력이 당 대표가 되면 결과는 뻔하다.
처음에는 굳건할지 몰라도 작은 충격만 전해져도 언제든 와해되고 흩어질 거다.
그런 결과를 막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방패가 필요하다.
괜찮은 브랜드 파워와 경력 그리고 신당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카리스마.
그 한 명이 김종혁 의원이고 또 한 명은 공대출 의원이다.
‘최고위?’
김종혁 의원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감옥 보다는 당사의 회의실이 편하니까.
개처럼 배를 까뒤집었다며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 국민에게 손가락질받는 것보다 괜찮지.’
그리고 김종혁 의원은 자신의 신세를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빨 빠진 호랑이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비참하게 죽는 것보다 동물원에 들어가기를 선택했다.
“밥이나 한번 같이 먹지.”
“알겠습니다. 좋아하시는 게 있다면…….”
“선거 전에는 국밥을 먹는 거야.”
***
신당만 그런 게 아니다.
대통령 취임으로 여론이 몰려 있을 때, 대한당과 민국당도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잔인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한 사람, 두 사람……. 권력을 탐하던 사람들이 쥐죽은 듯 입을 닫았다.
입을 여는 사람은 검찰에 끌려가니까…….
가장 먼저 민국당의 주인이 결정 났다.
바로 최학인이다.
그는 이준대의 자본력을 등에 업고 당의 의원들을 회유하고 협박하며 당권을 손에 쥐었다.
“반드시 박무혁을 심판하고 우리 당이 민생의 대변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학인의 등장에 민국당의 지지자들은 빠르게 결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학인의 기분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의 1차 목표가 실패했으니까.
사무실에서 최고위들을 모아 놓고 심각하게 입을 열고 있다.
“이성윤이 김동만을 찍어 냈어요.”
“그거 깡패한테 돈 받은 거?”
최학인의 시선이 이준대에게 향했다.
“들은 것을 말해 봐.”
그러자 이준대가 입을 연다.
“제가 대한당에 적을 둔 적이 있어서 아는 당직자가 몇 있습니다. 검찰의 뒤에 이성윤이 있다는 소문입니다.”
의원들이 눈을 찌푸린다.
“그 나이에 벌써 검찰을 쥐고 흔든다고?”
“그럼, 건들기 불편해지는데…….”
칼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은 부담된다.
그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신당을 타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가장 혼돈 속에 있는 것은 대한당이다.
민국당은 타도 신당을 외치고 있지만 이들은 다르다.
신당에 붙어야 한다는 계파와 싸워야 한다는 측이 나뉘었다.
“박무혁 대통령이 대한당 출신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생각을 잘 이해할 겁니다! 협치를 하겠다고 했으니까 우리도 괜찮은 것은 인정하면서…….”
주진만 의원과 그 계파는 신당과 손잡고 ‘으쌰으쌰’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헛소리! 정당의 목적은 정권 창출입니다! 지금은 야당이 되었으니 여당을 밟아야 기대할 수 있어요! 싸워야죠! 또 신당에 질질 끌려다닐 겁니까! 신당 믿다가 뒤통수를 몇 번이나 맞은 거야!”
쌍욕을 하며 싸우는 중이다.
그리고 신당…….
비대위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전당대회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중이다.
“출마자가…….”
당 대표 출마자는 단 한 명.
바로 성윤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벤처 의원이 손을 살짝 들었다.
“우리도 민국당처럼 추대할까요?”
“추대요?”
“어차피 이 의원이 될 게 뻔한데, 우리끼리 협의해서 추대하면 되는 거지. 나머지 원내 대표나 최고위는 경선으로 가고.”
“……!”
“괜히 대한당처럼하면 싸움만 날 수 있어요. 특히 우리는 대한당 출신, 민국당 출신으로 나뉘어 있으니까 더 우려해야 해요. 그리고 공대출 의원님하고 김종혁 의원님도 이 의원을 지지하잖아요?”
추대…….
자칫 개인의 당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분명 불만을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입을 열지 못한다.
괜히 궁시렁댔다가 회초리를 맞을 수도 있으니까.
‘젠장, 그 돈을 왜 받아서…….’
강남의 아파트에 투자를 하려고 돈 몇 푼 받은 게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그 장부가 성윤의 손에 들어갈 것이라고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고.
물론 그 몇 푼은 몇 억이지만…… 억울하기만 하다.
성윤은 그렇게 죄를 지은 의원들에게 두려움의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벤처 의원이 말을 잇는다.
“왜 대답들이 없으세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때…….
회의실의 문이 끼익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한다.
성윤이 들어온다.
비대위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 성윤은 거침없이 상석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워낙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성윤은 신당의 실세에서 권력자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성윤이 자리에 앉자 한 의원이 입을 열었다.
“이 의원, 자네를 추대를 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성윤의 시선이 그에게 틀어졌다.
“추대요?”
< 회초리를 휘둘러야. -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