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50화 (250/300)

< 회초리를 휘둘러야. - (2) >

성윤의 등장에 의원들의 심장이 덜컥거렸다.

“이, 이성윤 의원?”

“자네가 여기를 왜?”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의원들을 둘러봤다.

그러자 그들의 더러운 속마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심한 인간들…….’

대통령 이취임식이 열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신당은 벌써부터 분열되고 있다.

너도나도 당 대표가 되려하고 원내를 장악하려 한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싸움의 첫 번째 타깃이 바로 성윤이다.

성윤만 쫓아내면 ‘나도 가능성이 있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젠장…….’

씁쓸했다.

대선을 위해 똘똘 뭉쳤던 게 고작 며칠 전인데…….

공통된 목적이 사라지자 열 명, 다섯 명, 세 명으로 편을 가르고 있다.

성윤의 시선이 힐끗 자신의 손으로 향했다.

박무혁 의원이 전해 준 대정의 비리 장부가 들려 있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은 말했다.

-그걸 회초리로 써. 그들의 입을 막아. 분열된 당을 하나로 만들어.

성윤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의원들이 당황했던 감정을 수습한다.

그러더니 섬뜩한 눈빛으로 성윤과 마주한다.

“이 의원,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성윤의 눈동자가 다시 의원들을 향했다.

“전당대회에 출마하려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본론.

의원들의 가슴에 ‘쿵!’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이 새끼가?’

성윤이 찾아와서 출사표를 던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윤은 공대출 의원의 계파고 이들은 다른 쪽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계파에 찾아와 대놓고 말할 정도면 자신이 있다는 것인데…….

‘뭐지? 무슨 카드를 들고 있는 거지?’

의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성윤이 말을 잇는다.

“아슬아슬한 승리는 원치 않습니다. 당이 분열되기를 바라지 않으니까요. 저는 완벽한 승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의원들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계산기를 두들긴다.

이걸 더하고 저걸 빼고 곱하고 나누고.

이득이 될까 손해가 될까…….

하지만 단순한 사칙연산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자 생각은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저 새끼가 우리 술자리에 왜 찾아온 거지?’

‘우리한테 출사표를 왜 던져? 자기 계파에 가야지.’

‘요즘 잘나간다고 우리를 무시하는 것 아니야?’

가뜩이나 험악했던 의원들의 인상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상을 뒤엎을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가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김동만 의원이 껄껄껄 웃는다.

그는 이 자리를 주최했고 성윤의 당 대표 도전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이다.

박무혁 의원이 주의하라고 경고한 인물이기도 하고…….

그가 술잔을 들며 입을 연다.

“이 의원…… 자네가 대선에서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은 알아. 그런데 자네는 아직 어려. 세상을 배우고 정치를 배울 나이야. 이끌어 나갈 나이가 아니야. 조금만 참아. 10년 후에는 자네 세상이 올 테니까.”

한참 어른이 타이르는 목소리…….

성윤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가 계속된다.

“그리고 자네 지분이 얼마나 되나? 공대출 의원님과 그 계파가 자네를 밀어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거기까지야. 그 이상으로 확장은 어려워. 몇 표 안 될 거야. 오히려 자네가 당을 분열시키고 있어. 그러니 포기해.”

김동만 의원은 말을 멈추고 성윤을 바라본다.

그런데 성윤은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그의 입에서 들려오는 말은 듣지도 않았다.

성윤은 그의 속마음을 듣고 있었다.

‘뭐지?’

김동만 의원의 속마음에서 민국당 최학인의 이름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

-최학인이 그랬어. 이성윤만 밟으면…….

성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아직 뭔지는 모르겠지만 김동만 의원과 최학인이 내통하는 것 같다.

아니면 김동만 의원이 최학인에게 조종당하고 있든지…….

‘알아봐야겠어.’

그때 김동만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기해! 아직은 정치를 더 배워!”

성윤의 시선이 생각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김동만 의원을 쏘아보며 묻는다.

“배워요?”

“그래.”

“누구에게? 여기 계신 의원님들께 배울까요? 뇌물 받는 법?”

이왕 회초리를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빙빙 간을 봐서는 안 된다.

강하게 휘둘러서 아프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한다.

매에는 장사가 없으니까.

“이 의원! 뇌물이라니! 사람을 어떻게 보고!”

김동만 의원의 목소리가 버럭, 터져 나왔다.

동시에 성윤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쾅! 쾅! 쾅!’ 하고 살벌하게 내리친다.

“그놈의 오리발!”

의원들의 입에서 마른침이 삼켜졌다.

갑작스레 출사표를 던질 때부터 성윤의 손에 카드가 있다는 것을 예상했다.

‘그게 뇌물이었나?’

성윤이 의원들을 쏘아보며 말을 잇는다.

“대정 그룹 박영훈 부회장이 장부 하나를 남겼습니다! 이 장부에는 의원님들의 성함이 적혀 있습니다. 돈을 받고 여자를 끼고 노는 동영상까지…… 모두 들어 있습니다.”

“……!”

“제가 한번 읽어 봐도 되겠습니까?”

의원들의 얼굴에 바짝 긴장감이 올랐다.

눈동자는 흔들리고 볼 살이 꿈틀거린다.

당장이라도 장부를 빼앗아 박박 찢어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저 장부가 세상에 공개될 수도 있다.

그들은 다급한 눈동자로 눈치를 볼 뿐이다.

성윤이 조용히 말을 잇는다.

“내일부터 바삐 움직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역구에 내려가 기초 의원, 대의원 들을 만나 주세요. 그분들에게 누가 당 대표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

“그리고 전당대회에서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성윤이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하지만 의원들의 굳어진 얼굴은 펴지지 않는다.

그들의 속마음에서 욕설만 들려온다.

그래도 괜찮다.

밥그릇과 생존에 관해서만큼은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니까.

이들은 성윤의 말을 잘 들으면 저 장부가 공개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딱 한 사람 빼고…….

김동만 의원은 굴욕적인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

대통령 이취임식이 열리기 이틀 전…….

김동만 의원은 여의도 커피숍에 있었다.

그의 앞에는 벤처 의원이 보인다.

그러니까 국가 기금을 꼼수로 횡령했다가 성윤에게 목줄이 채워진 의원이다.

벤처 의원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쉽게 말해 주세요. 빙빙 돌려서는 못 알아먹으니까요.”

“좋습니다. 간단히 말하죠. 우리, 손을 잡지 않겠습니까?”

“손?”

김동만 의원이 마른 입술을 핥는다.

“전당대회에 나갈 생각입니다. 당 대표가 목표죠.”

“……!”

“의원님께 최고위를 약속하겠습니다. 여당의 최고위…….”

벤처 의원이 히죽 웃는다.

“여당의 최고위요?”

이번 전당대회에 성윤도 출마한다는 것을 벤처 의원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성윤은 한 번도 당직을 제안하거나 약속하지 않았다.

‘사람이 좀 말랑말랑해야 매력이 있는 법인데……. 이성윤 이놈은 살살거리는 맛이 없어.’

벤처 의원이 성윤을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찰 때, 김동만 의원이 계속 말한다.

“제가 당 대표가 되면 공대출 의원님 계파를 지휘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의원님 외에는 떠오르지가 않더라고요.”

김동만 의원은 벤처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온갖 사탕발림을 뱉어 내고 있었다.

지금 김동만 의원의 계파로서는 당선의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속셈을 뻔히 알지만 벤처 의원은 모른 척 고개를 끄덕인다.

“뭐, 결론은 제게 최고위를 준다는 거죠?”

“아, 네.”

“그런데, 상대가 이성윤인데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놈이 지금 우리 당의 실세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놈이 몹쓸 것을 손에 쥐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 참…….”

벤처 의원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김동만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이성윤 의원이 의원들의 비리를 손에 쥐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리?”

김동만 의원이 껄껄껄 웃는다.

“의원님의 목에도 개목걸이가 채워져 있습니까?”

“아뇨, 그런 소문이 있다는 거죠.”

벤처 의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김동만 의원이 또 크게 웃는다.

“하하하, 생각보다 간이 작으십니다. 나팔도 불어야 소리가 나는 겁니다. 입을 막아 버리면 어떤 소리도 나지 않죠. 나팔에 입을 가져다 대기 전에 단번에 숨통을 조이면 되는 겁니다.”

뭔가 계획이 있다는 뜻.

벤처 의원이 눈을 반짝이며 김동만 의원을 향해 몸을 끌어당겼다.

“방법은 있고요?”

“있습니다. 성공만 하면 의원님의 개목걸이도 풀 수 있겠네요.”

“난 개목걸이 없다니까……. 뭐, 계획이나 말해 보세요.”

초롱초롱한 벤처 의원의 눈을 보며 김동만 의원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연다.

“민국당 최학인 의원이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최학인이?”

김동만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성윤과 민국당이 싸움을 벌일 겁니다. 그러면…….”

잠시 후…….

벤처 의원은 뒷짐을 지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이성윤을 징계위원회에 집어넣고…… 아무것도 못 할 때 여론전을 펼쳐서 끌어내린다고? 당적이 없어진 이성윤이 갈 곳은 없지. 무소속이야. 무소속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언론은 없을 테고…….’

그의 입가에 실실 미소가 걸린다.

‘이성윤은 끝나는 거지.’

계단을 모두 오른 벤처 의원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한정식집이다.

대기하고 있던 종업원이 다급히 허리를 굽힌다.

“오셨습니까?”

“먼저 와 있지?”

“네.”

종업원이 벤처 의원을 안내했다.

가장 구석에 있는 방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성윤이 몸을 일으켜 허리를 굽힌다.

벤처 의원이 맞은편에 앉으며 빙긋이 웃는다.

“정보가 있는데…….”

“정보요?”

“자네가 밥값을 낸다면 입을 열지. 비싼 걸 시킬 테니까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거야. 어때? 늙은이 밥 한 번 사 주고 재밌는 이야기 한번 들어 볼 텐가?”

성윤이 슬쩍 미소 지었다.

“제일 비싼 것으로 시키죠.”

***

대통령 이취임식이 열렸다.

이날 박무혁 대통령은 경제라는 단어를 스무 번, 출산율을 열네 번, 소득 격차를 열세 번 사용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지 않은 아버지와 강대국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강조했다.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확실시한 거다.

외국 귀빈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전 대통령, 미국의 상하원 의원과 사절단, 일본의 전 총리 두 명, 중국의 고위 간부 마지막으로 세계 굴지의 기업 간부들이 참석하며 인맥을 과시했다.

박무혁 대통령의 마지막 말이 힘차게 울렸다.

“당당한 대한민국! 강한 대한민국을 꿈꾸겠습니다!”

박무혁 대통령이 번쩍 손을 들었다.

엄청난 함성이 쏟아진다.

“박무혁! 박무혁!”

귀가 찢어질 정도의 외침이다.

이렇게 박무혁 대통령의 시대가 시작됐다.

하지만 모두가 즐거운 것은 아니다.

민국당의 최학인은 굳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박무혁…….’

저 자리에 도제성 의원이 서 있어야 했는데, 웃고 있는 박무혁을 보고 있자 짜증이 확 솟구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죽여도 속이 편하지 않을 것 같다.

‘길어야 3년…….’

그 안에 박무혁을 침몰시킬 거다.

‘아니, 1년!’

민국당의 머릿수로 정권을 괴롭힐 거다.

여당은 마흔 명이 조금 넘는 극소수 정당…….

마음껏 흔들 수 있다.

반대, 반대 또 반대 그러고도 반대, 무조건 반대!

‘그러면 민심이 떠날 거야.’

박무혁 정권의 허니문은 몇 달 되지 않을 거다.

곧 힘없는 여당이 바닥을 드러낼 거니까.

국민은 힘없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민심은 정권을 외면할 것이고…….

‘다음 총선에서 박살 낼 수 있어.’

최학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서슬 퍼런 눈빛이 박무혁 대통령을 노려보고 있다.

지금 박무혁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지만…….

‘역대 최악의 정권으로 만들어 주지.’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지 뼈저리게 느껴 봐라.’

최학인의 눈에 분노가 가득하다.

그가 냉랭하게 몸을 돌린다.

주변에서는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박무혁! 박무혁!”

최학인의 살벌한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박무혁을 외치는 이 목소리가 곧 비명으로 변할 것을 생각하면 즐거워 미칠 것 같아서다.

‘신당의 몰락! 첫 번째는 가장 위협되는 이성윤! 김동만을 이용해서 찢어 버려야 해.’

그가 찬 바람을 남긴 채 이취임식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성윤은 그런 최학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당신 생각은 모두 알고 있어.’

며칠 전, 성윤은 벤처 의원을 만났다.

그는 성윤에게 김동만 의원의 쓰레기 같은 전략을 전했다.

밥값을 내는 조건으로…….

벤처 의원 역시 성윤과 함께 하며 많이 변하고 있었다.

권력보다는 민생으로 시선을 옮기는 중이다.

성윤의 눈동자가 김동만 의원에게 향한다.

앞에 앉아 좋다고 손뼉 치고 있다.

그런데 성윤에게는 그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짐승이다.

권력이라는 고깃덩이 앞에 송곳니를 드러낸 사나운 육식동물…….

짐승은 사냥해야 제 맛이다.

D-day는 오늘.

대통령 이취임식으로 모든 시선이 옮겨졌을 때, 김동만 의원의 이름이 단신으로 올라갈 거다.

< 회초리를 휘둘러야. - (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