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49화 (249/300)

< 회초리를 휘둘러야. - (1) >

박무혁 의원이 와인잔을 들어 올린다.

“술이나 마시지.”

잠시 후, 와인이 데굴데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가볍게 마시자고 한 게 벌써 몇 병째인지 모르겠다.

또 한 병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성윤이 물었다.

“그런데, 박영훈 부회장이 장부를 저것만 가지고 있었을 까요?”

궁금했던 거다.

상인은 돈을 기록하는 게 당연한 것.

게다가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이 그렇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인의 멱살을 잡고 청문회에 앉힌다.

그리고 다다다다, 기관총처럼 쏘아붙인다.

마음에 안 들면 교도소에 처넣어서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고.

그래서 기업인들은 장부를 적고 있다.

‘나 혼자는 안 죽어! 내 멱살을 잡으면 다 같이 물에 빠져 뒈지는 거야! 너희는 계약직이지만 난 영원히 재벌이야!’라며 몸부림치듯.

아이러니하게 정치인은 또 그런 으름장에 꼬리를 내리기도 한다.

박무혁 의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찾아봤지. 그런데, 아직은 안 보여.”

아버지 박 회장에게 물어보면 그 장부가 어디에 숨겨졌는지 쉽게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박영훈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아버지 박 회장은 박무혁 의원의 인사조차 받지 않는다고 한다.

박무혁 의원이 빈 와인 병을 바라보며 말한다.

“한 병 더?”

“오늘 많이 마신 것 같은데요.”

“이 의원, 며칠 후면 나랑 자유롭게 술 마시기 어렵다는 것 몰라? 내 술잔이 비싸질 거야.”

“그럼, 딱 한 병만 더…….”

그 뒤로 세 병이 더 바닥을 드러냈다.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장한수 실장이 운전을 하고 그 뒤에 성윤이 앉았다.

성윤은 뇌물 장부가 든 가방을 보며 픽 웃었다.

박무혁 의원의 마음이 전해진다.

-군주론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힘을 가져라……?’

이 장부가 있으면 신당 의원들의 목에 개목걸이를 채울 수 있다.

게다가 곧 스무 명의 검사로 만들어진 칼도 손에 들어올 거다.

마지막으로 꿈에서 봤던 미래가 있다.

점점 힘이 세지는 게 느껴진다.

정말 당 대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조심해야한다.

권력이 모이면 썩는 것은 진리…….

똑같은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

며칠 후, 성윤은 박무혁 의원이 산 빌딩의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운전은 장한수 실장이 했고 성윤의 옆에는 김재형 검사가 앉아 있다.

김재형 검사가 멍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여기가 어디죠?”

“아지트요.”

“네? 아지트?”

아직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지하 주차장의 가장 마지막 층에서 내렸다.

“여기는 제 연락을 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어요. 저쪽에 있는 엘리베이터 역시 마찬가지고요. 앞으로는 여기서 봤으면 좋겠어요. 여의도에서도 서초구에서도 멀지 않으니까요.”

김재형 검사가 황당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돈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빌딩의 지하 주차장 한 층을 통째로 쓸 줄은 몰랐으니까.

새삼 자신이 받는 월급이 원망스러웠다.

그 마음을 들은 성윤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 것은 아닙니다. 주인의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요.”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곧바로 텅 빈 공간이 나온다.

100평은 훌쩍 넘어 보이는데 온통 시멘트…….

김재형 검사가 픽 웃는다.

“냉장고하고 테이블 그리고 의자 네 개가 전부네요. 이 큰 공간에…….”

박무혁 의원의 취향이다.

스몰 라이프라나 뭐라나…….

“그런데, 저건 뭐예요?”

김재형 검사가 가리킨 곳에 못 보던 것이 생겼다.

분홍색 캐노피가 달린 공주 침대…….

‘어?’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박무혁 의원이 말했었다.

“가끔 여자랑 같이 와도 돼.”

“침대가 없는데요.”

“하나 사 줄까?”

분명 그런 대화를 나눈 것 같은데, 정말로 진짜 산 모양이다.

‘아이고…….’

장한수 실장은 공주 침대가 신기했는지 무섭게 생긴 얼굴로 공주 침대에 앉아 보기도 한다.

뭐, 어쨌든…….

이곳에 온 것은 김재형 검사에게 위치를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는 여기서 보죠.”

김재형 검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겠습니다.”

서초동이나 여의도의 한정식집보다 이곳이 적들의 눈을 피하기에 더 수월하다.

적어도 주차장에 자동차가 노출되는 일은 없으니까.

성윤이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래서 검사는 몇 분 정도 찾아냈죠?”

지난번, 김재형 검사에게 비주류 검사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기한은 한 달.

그 시간이 다 됐다.

“말씀하셨던 대로 스무 명.”

김재형 검사가 테이블에 서류 스무 장을 올려 뒀다.

검사들의 사진과 이력이 적혀 있다.

성윤은 한 장씩 넘겨 본다.

‘지방대 출신…….’

연수원에서 괜찮은 성적을 받았지만 중심에 들어오지 못하고 승진에서 멀어진 사람들.

김재형 검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실력은 충분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간판이 좋지 않아서 뒤로 밀린 케이스죠. 변호사를 개업해도 먹고살기 힘들 거예요.”

“정치적 성향은요?”

정치적 성향은 이들이 누구를 투표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윗사람이 이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저놈은 저쪽 편이야.”

윗선의 한마디에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게 승진 라인이 되기도 하니까.

김재형 검사가 턱을 매만졌다.

“저도 따로 알아봤는데, 워낙 비주류라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예요. 실제로 정치 쪽으로 별 관심 없는 것 같고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요.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전부를 만나는 것은 제가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에 부담스럽고……. 제 말을 전달해 줄 대표가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김재형 검사가 서류 한 장을 빼서 성윤에게 건넸다.

“부장검사입니다. 이름은 박중석. 능력은 물론 실적도 좋은데 대학이 후져서 차장은 꿈도 못 꾸고 그 나이에도 부장이죠. 아마 여기가 끝일 겁니다. 자기 스스로도 조만간 옷 벗고 나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의원님이 휘두를 칼자루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윤이 물끄러미 사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검사님이 추천하는 사람이면 믿을 수 있겠지요? 만났으면 합니다.”

***

그날 밤, 경기도 안산.

성윤과 김재형 검사는 낚지 철판구이집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안내되어 미닫이문을 열자 얼굴이 넙적한 한 남자가 보인다.

박중석 부장검사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성윤과 김재형 검사를 번갈아 본다.

“뭐야? 둘이 보는 것 아니었어? 옆에는 누구야?”

김재형 검사가 슬쩍 웃는다.

“모르세요?”

박중석 부장검사가 성윤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갑자기 눈이 커진다.

그가 서둘러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박중석입니다. 이런 곳에 오실 줄은 몰라서…….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성윤입니다.”

박중석 부장검사가 힐끗 김재형 검사를 보며 눈빛으로 원망한다.

‘둘이 술 마시자며!’

김재형 검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소주병이 놓였고 매운 맛이 냄새로 느껴진다.

한 잔씩 잔이 돌았을 때, 성윤이 입을 열었다.

“부장검사님, 승진이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라인을 탈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저를 부른 이유가 뭡니까?”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박중석 부장검사의 눈빛이 찌푸려진다.

자신 같은 잔챙이가 정치인과의 거래를 했을 때의 결과를 잘 알고 있으니까.

이용만 당하다 팽 당하는 인생.

박중석 부장이 김재형 검사를 바라봤다.

“네가 웬일로 서울 갔나 했더니…… 거래였어?”

김재형 검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성윤이 계속 말했다.

“제가 타깃을 정하면 흔들어 줬으면 합니다. 물론 죄가 없는 사람을 타깃으로 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박중석 검사가 끌끌끌 웃는다.

“도베르만 좋아하세요? 그런 사냥개가 되어 달라는 겁니까?”

“…….”

“하나 사 드릴까요?”

박중석 부장이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그러더니 가차없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죄송합니다. 가늘게 살다가 옷 벗고 떠나겠습니다. 나 같이 족보 없는 사냥개의 마지막은 끓는 물이에요. 저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습니다.”

독설을 내뱉은 박중석 부장이 김재형 검사를 쏘아봤다.

“김재형 검사, 서울 가더니 깍쟁이 됐어. 많이 변했네.”

박중석 부장은 찬 바람을 날리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수사를 하다가 내 죄를 찾으면 저도 잡아가세요.”

“……!”

박중석 부장의 몸이 멈칫거렸다.

“의원님을 잡으라고요?”

“네.”

“지금…… 장난치십니까?”

국회의원은 못 잡는다.

방탄 국회가 있으니까.

그런데 천연덕스럽게 자기를 잡아가라니…….

성윤이 낚지를 접시에 담으며 말한다.

“국회의원의 사냥개…… 하세요. 저는 검찰의 끄나풀이 되겠습니다.”

“뭐요?”

“난 죄가 있는 사람을 부장님께 건넬 것이고 부장님은 그 사람을 수사할 겁니다. 사냥개와 끄나풀…… 괜찮네요.”

박중석 부장은 성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다시 김재형 검사를 바라본다.

설명 좀 해 보라는 눈빛으로…….

김재형 검사가 입을 열었다.

“사냥감이 꽤 세요.”

“그러니까 그 사냥감이 뭔데!”

이번엔 성윤이 답했다.

“4년 계약직요.”

“……!”

박중석 부장의 눈이 심하게 떨려 온다.

더 안 들어도 알 수 있다.

4년 계약직이면…… 국회의 괴물들.

“그, 그래서 끄나풀이라 한 겁니까?”

성윤이 빙긋이 웃으며 낚지가 담긴 접시를 건넨다.

“방탄 국회라고 하죠? 매운맛을 보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레시피는 제가 준비하죠. 요리는 부장님이 해 주세요.”

박중석 부장이 크게 웃더니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이야기나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밤이 깊어졌다.

술자리를 마치고 차에 앉았다.

박중석 부장은 성윤을 돕겠다고 했다.

이제 김재형 검사가 뽑은 열아홉 명의 다른 검사들을 만나러 다닐 거다.

“출발하겠습니다.”

장한수 실장이 액셀을 밟는다.

그때 전화가 걸려 왔다.

정우다.

-첩보가 들어왔거든요? 오늘 밤에 신당의 의원들이 곳곳에서 모이나 봐요.

“이유는?”

-전당대회죠.

모이는 장소와 인원이 정우의 입에서 줄줄줄 흘렀다.

전당대회가 열리면 당 대표로 가장 유력한 사람이 성윤이다.

그런데, 그것을 막으려는 의원들이 존재한다.

명분은 나이.

그 속마음은 권력을 손에 얻기 위해…….

성윤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전당대회 역시 네거티브로 시끄럽다.

게다가 이번 전당대회는 여당의 수장을 뽑는 것.

치열할 게 분명하다.

어쩌면 극명하게 계파가 드러나서 당이 분열될 수도 있다.

가뜩이나 몇 명 안 되는 소수 여당인데…….

휴대폰을 내려 둔 성윤이 얼굴을 쓸었다.

오늘 밤도 길게 생겼다.

“장한수 실장님, 여의도로 가죠.”

***

신당 의원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약 열 명, 마흔 명이 조금 넘는 신당에서는 이들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곳은 주최는 김동만 의원이다.

그는 성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서 박무혁 의원까지 찾아갔었다.

성윤의 전당대회 출마를 막아 달라고…….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취기가 돌자 각자의 본심이 드러나고 있다.

금테 안경을 낀 의원이 잔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대한당이나 민국당이 보면 신나서 비웃을 겁니다. 서른두 살짜리가 당 대표? 씨발…… 도대체 우리 당이 어디로 가려고……. 국민은 우리당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피를 토하는 듯한 감정적인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머리가 허연 의원이 담배를 끄며 한숨을 내뱉었다.

“이성윤보다 나이 많은 의원이 누군가?”

“이지현 의원이라고 서른다섯입니다.”

“비례지?”

“네.”

“비례보다도 어린 놈이 당 대표를 노리다니, 꼴이 우스워지겠어.”

성윤이 당 대표가 되면 이들은 성윤에게 지시를 받아야 한다.

예순 넘은 의원들이 서른두 살짜리에게…….

“서른둘이면 어지간한 비서보다도 어린 나이예요! 그런데, 이게 말이 되냐고요!”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구석에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김동만 의원이 입을 열었다.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이 말을 기다렸다.

누구 하나 총대를 멜 순간을…….

모두 숨을 죽이고 시선을 김동만 의원에게 향한다.

김동만 의원이 나름의 명분을 뱉어 낸다.

“이성윤에게 능력이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지도력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술에 취한 의원들이 테이블을 탕탕탕 두들긴다.

“인정할 수 없지! 지도력은 연륜에서 나오는 것인데!”

김동만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 후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퍼부었다.

“이성윤이 당 대표가 되면 우리 당은 흔들릴 겁니다. 우리는 신당 창당의 공신입니다. 그리고 역사가 짧은 당에서 기적적으로 대통령을 만들어 냈어요. 이제 뜻을 품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여당의 지도자가 이성윤이 되면…… 힘이 없어질 겁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대통령의 권력은 반쪽이 되고요!”

김동만 의원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의원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우리는 박무혁 당선자님만 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끝까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인기 위주의 이성윤이 아니라 진짜 지도력이 있는 사람을 당 대표로 뽑아야 합니다.”

“방법이 있겠습니까?”

김동만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의원님들이 도와주신다면 가능합니다.”

“어떤?”

“오래전, 이성윤이 연예인과 알고 지낸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으십니까? 그 스캔들을 이용해서 세상에 알리는 겁니다. 이성윤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애다, 아이돌 가수나 쫓아다닌다…… 이렇게요.”

의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전당대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순간 드르륵, 문이 열렸다.

의원들이 놀라서 바라보는데…….

“여기에 계셨네요.”

성윤이 서 있었다.

손에는 박무혁 의원에게 받은 뇌물 장부를 들고…….

< 회초리를 휘둘러야.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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