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46화 (246/300)

< 살생부. - (1) >

***

여기저기 이뤄지는 송년회에 잔 부딪치는 소리가 거리를 울렸다.

어깨동무를 하고 거리를 쏘다니는 취객들, 그들은 지나간 날을 아쉬워한다.

청년은 아저씨가 되었고 아저씨는 꼰대가 되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년을 기대한다.

‘정권이 바뀌니 뭔가는 다르겠지.’ 하는 희망.

그놈이 그놈이지만 이번에는 ‘제발!’이라는 간절함…….

“어? 눈 온다!”

“진짜!”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이 쏟아진다.

그것도 펑펑…….

눈까지 내리며 날씨는 우중충해졌지만 세상은 밝다.

술 한잔 기울이기에는 최고의 날씨다.

눈이 쌓여 집에 갈 걱정은 잠시 미루고…….

“2차 가야지!”

거리는 시끌벅적했다.

그 시각, 서울 외곽의 대형 고깃집.

신당의 송년회 겸 대통령 당선 파티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고깃집의 주차 요원이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오는 차를 보며 허리를 굽실댄다.

“안녕하십니까!”

내린 사람은 신당의 국회의원과 보좌관 그리고 유리한 기사를 써 줬던 기자들이다.

그리고 잠시 후, 성윤과 정우도 막 도착했다.

어깨에 떨어지는 눈을 툭툭 털며 앞으로 걸어가는데 보는 사람마다 인사를 전한다.

“이 의원! 오늘 날씨가 좋지!”

눈이 펑펑 내려서 도로는 빙판길이 되었다.

그런데 날씨가 좋다니…….

뭐, 일단 활기차게 대답했다.

“어제 연설 봤어요. 멋지시던데요?”

“아, 그래? 이 의원이 그렇게 말하니까 좋네. 흐흐흐.”

성윤에 대한 의원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대화 한 번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살갑게 인사를 전한다.

다들 예상하는 게 있어서다.

‘이번 대선의 일등 공신은 이성윤이야.’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든 일등 공신이 그랬던 것처럼 성윤 역시 선택을 하게 될 거다.

청와대나 장관…… 어쩌면 당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전당대회에 나갈 수도 있다.

‘전당대회에 나가면 당연히 당 대표를 노리겠지?’

박무혁 의원이 청와대로 떠나면 신당은 무주공산이 된다.

신당의 왕좌는 새로운 주인을 기다릴 테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 시작될 거다.

그리고 승자는 여당의 주인이 된다.

‘이성윤은 당 대표에 도전할 충분한 자격이 있어.’

물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지도부에서 한자리는 차지할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다.

그래서 의원들은 성윤의 행동을 샅샅이 살피고 있다.

성윤의 선택에 따라 이들이 서야 할 라인도 급격하게 바뀔 테니까…….

“오셨어요?”

박무혁 의원의 보좌관이 성윤의 손을 꾹 잡았다.

보좌관 역시 청와대 비서실에 합류할 예정이다.

성윤도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고생하셨어요.”

“다 의원님 덕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보좌관의 눈빛에 진심이 가득하다.

성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성윤은 안으로 들어갔다.

계속 보좌관을 잡고 늘어질 수는 없다.

뒤에서도 사람들이 밀려오고 있으니까.

그런데 성윤에게는 진심 어린 인사를 했던 보좌관이 다음 사람에게는…….

“회식 끝나고 룸살롱 가시면 안 돼요. 지금 기자들이 우리만 주시하고 있는 것 알죠?”

“이 사람이……. 나도 눈치가 있어.”

보좌관은 의원들이 음주 후 사고 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신당의 인원수가 적은 만큼 누구라도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자리에 앉았다.

넓은 자리가 어느새 가득해졌다.

1층에서부터 3층까지…….

그리고 박무혁 의원이 사람들 앞에 섰다.

“눈길이라 아직 안 온 사람도 있지만 일단 시작하겠습니다. 짧게 말씀드리죠.”

박무혁 의원의 강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그러자 잡담을 나누느라 시끌거리던 공간이 조용해진다.

박무혁 의원이 말을 잇는다.

“제가 정치를 하며 느끼고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국민의 의지는 천명이라는 것! 앞으로 우리 당은 국민의 의지를 모시고 살았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잘못을 하면 언제든 꾸짖어 주십시오. 겸허히 듣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고민하고 또 하겠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잔을 들어 올렸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위하여!”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술을 마신다.

“마셔!”

“와하하하!”

소고기가 구워지고 잔이 돌았다.

맥주에 소주가 어지럽게 섞이며 여기저기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성윤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때 박무혁 의원이 성윤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잠깐 담배 한 대 피울까?”

“아, 네.”

성윤이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모든 국회의원들의 시선이 성윤과 박무혁 의원을 향한다.

잡담을 하면서도 눈동자로는 두 사람을 좇고 있다.

‘선택의 시간인가?’

성윤은 일등 공신으로서 박무혁 의원이 전하는 하사품을 선택하게 될 거다.

그리고 밖…….

아직도 눈이 쏟아진다.

조금 과장하면 주먹만한 눈덩이가 먼지처럼 내리는 것 같다.

박무혁 의원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 해.”

“손가락질받지 않는 대통령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원하는 겁니다.”

“불가능한 것을 약속할 수는 없어.”

“그럼, 딱히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담배 연기가 가로등을 타고 흐늘거리는 것을 지켜보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이 조용히 입을 연다.

“청와대 수석, 원하는 장관…… 뭐든 말해 봐. 자네는 어느 자리든 앉을 자격이 있어.”

“전 당을 지키겠습니다.”

성윤은 이번에도 단호했다.

박무혁 의원이 안타까운 눈으로 성윤을 바라본다.

도와준 성윤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의원…….”

“제가 공신이 되면 두 가지 덫에 빠질 겁니다.”

하나는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이다.

박무혁 의원은 혼자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게 아니다.

의원들은 뒤로해도 박무혁 의원을 향해 지지 선언을 했던 수많은 단체들이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씩 던져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등을 돌리고 시위를 벌일 거다.

“제가 공신에 오르지 않으면 의원님은 할 말이 생깁니다. ‘난 이성윤도 챙기지 않았다.’라는 말……. 그럼, 빚을 갚지 않아도 될 명분이 생기는 거죠. 그리고 아시잖아요? 한상국 대통령이 어떤지…….”

한상국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져 허우적댈 때, 대한당은 그를 버렸다.

“당이 등을 돌리면 대통령은 손톱, 발톱 뽑힌 호랑이랑 다름이 없습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의 미래는 뻔하다.

각 당의 국회의원이 죽창을 들고 달려들 거다.

가죽을 벗겨 전리품으로 삼기 위해…….

“뒤에서 서포트하겠습니다.”

성윤의 진심이 느껴졌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고맙군. 그런데 자네가 아니어도 당을 지켜 줄 사람은 많아.”

박무혁 의원에게는 성윤만 있는 게 아니다.

오른팔이라 착각하는 김종혁 의원이 있다.

그 외에도 조용히 지내며 박무혁 의원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당은 그들에게 맡겨. 그리고 자네는 내가 깔아 준 아스팔트를 걸어. 원한다면 레드 카펫까지 놓아주지. 그 길의 끝에는…….”

성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 길의 끝에는 다선 의원이 있겠죠.”

성윤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돌덩이를 치우고 풀을 베면서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에서 내려가 의원님이 깔아 준 도로를 걸으라고요?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을 볼 수도 있는데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험로를 걸어 정상으로 향하겠습니다. 그럼, 꼭대기에서 ‘야호!’ 한 번 외칠 수는 있겠죠.”

성윤의 말이 끝났다.

박무혁 의원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아스팔트를 걸으면 다선 의원은 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이름의 꽃은 험로에서 피어나는 법이다.

박무혁 의원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한당이라는 엘리트 코스에서 벗어나 신당을 창당했다.

소수 정당이라는 약점을 이겨 내고 서울 시장, 경기도 지사를 만들어 내며 정치력을 어필했다.

“내가 자라나는 새싹을 꺾을 뻔했어. 미안하군.”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윤이 고개를 숙이자 박무혁 의원이 껄껄껄 웃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겨울밤…… 작은 별이 몇 개 보인다.

“그럼, 당 대표에 출마할 생각인가?”

“네.”

“소수 여당 당 대표라……. 당선되도 걱정이겠어. 야당 대표들을 막기 쉽지 않을 텐데…….”

두 사람이 미래를 우려하고 있을 때, 회식 장소는 난리가 났다.

짧은 시간인데 빈 병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많은 사람들이 만취…….

성윤이 들어가자 여기저기 불러댄다.

“이성윤 의원, 이리 와! 내 술 한잔 받아야지! 으하하하!”

그런데…….

소주 잔이 아니라 어디서 냉면 그릇을 구해 왔다.

소주가 콸콸콸 채워진다.

“……이거 마시면 죽을 것 같은데요.”

“괜찮아. 이런 날 죽어야지!”

진심인지 농담인지…….

이어서 맥주까지 콸콸…….

무조건 거부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떠들썩하던 공간이 순간 적막해졌다.

김종혁 의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박무혁 의원의 오른팔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성윤에게 이빨을 뽑힌 후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불편하다.

한때 권력을 가졌던 자의 말로를 지켜보는 것도 그 앞에서 웃고 떠드는 것도…….

보좌관들이 슬금슬금 인사를 한다.

“오, 오셨어요?”

그 외에는 모두 숨을 죽였다.

그런데 성윤은 물끄러미 김종혁 의원을 바라봤다.

김종혁 의원의 옆을 쫓아다녀야 할 이준대가 보이지 않아서다.

이준대는 박쥐처럼 이곳저곳을 붙어 다닌다.

최근에는 박영훈 부회장의 옆에 섰었다.

하지만 지금 박영훈 부회장은 구치소에 처박힌 상황.

‘다시 김종혁 의원의 옆에 찰싹 붙었다고 들었는데…….’

성윤은 이준대의 옆에 참 많은 사람들을 박아 뒀다.

흥신소에서부터 그의 여자인 레이첼까지…….

‘그런데, 왜 같이 안 온 거지?’

성윤은 잠시 꿈속의 미래를 떠올렸다.

당시 이준대는 대한당에 입당해 있었다.

아직 국회의원은 아니었지만 활발하게 미디어에 노출하며 신흥 강자의 이미지를 착착 쌓는 중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떤 것도 못하고 있다.

성윤이 그가 하는 모든 것을 막아 버리고 있으니까.

성윤이 술잔을 들고 김종혁 의원의 옆으로 향했다.

“길이 미끄럽죠?”

김종혁 의원이 슬쩍 성윤을 본다.

아무도 곁에 오지 않는데, 처음 다가온 게 성윤이라니…….

“어? 어.”

떨떠름하게 대답한다.

성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잔에 술병을 기울였다.

“이번 대선…… 고생하셨습니다.”

김종혁 의원이 힐끗 성윤을 본다.

그리고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어.”

두 사람이 술잔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다른 의원들도 멈췄던 잡담을 시작한다.

다시 시끌벅적…….

성윤이 김종혁 의원에게 물었다.

“이준대 대표는요?”

“이준대?”

“안 보여서요.”

김종혁 의원이 인상을 콱 찌푸렸다.

“그 새끼…… 기회주의자 새끼!”

***

그 시각, 여의도의 일식집.

어두운 조명이 일렁이는 곳…….

긴 테이블에 민국당의 지도부가 앉아 있었다.

최고위원을 비롯해 대변인까지 열여덟 명.

그리고 상석에는 최학인이 보인다.

원내 대표가 최학인을 살피며 묻는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최학인은 품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배지로 향한다.

“이게…… 뭡니까?”

“도제성 의원님의 배지입니다.”

“……!”

배지를 떼어 냈다는 것은…….

지도부는 눈을 감았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고 있다.

최학인이 말한다.

“이게 모두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대한당과 신당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당의 연합에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지난번, 서용우 전 총리의 폭로…….

그 일로 도제성 의원의 이미지는 망가졌다.

“하지만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겁니다. 도제성 의원님이 어떤 분인지! 언제나 정도를 걸었던 분입니다!”

최학인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았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커진다.

“최 의원님! 뭐 하시는 겁니까! 일어나세요!”

최학인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민국당의 당 대표를 맡고 싶습니다! 그래서 도제성 의원님의 뜻을 이어 가고 싶습니다! 죽어 버린 명예를 살려 드리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원내 대표가 입을 연다.

“최 의원……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신당은 이제 허니문 기간이에요. 저쪽 인원수가 적다고 해도 막 여당이 된 기세를 꺾기는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돈이 말랐어요.”

정치도 돈 싸움이다.

돈이 있어야 밥이라도 한 그릇 먹는다.

신당이야 돈 많기로 유명한 박무혁과 성윤이 있으니 끼니 걱정은 없고, 대한당은 부자 정당이라는 소리를 심심하면 듣는 곳이다.

그런데 민국당은…….

“돈이 없어요. 한동안은 입 닫고 지갑 채우는 데 열중해야 합니다. 지금 당 대표가 되는 것은 총알받이가 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잠시 기다렸다가 때를…….”

“돈만 있으면 되는 겁니까?”

“……!”

최학인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누가 봐도 선하게 생긴 인상의 남자…….

지도부들이 남자를 보며 눈을 깜빡인다.

“누구입니까?”

최학인이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투자 사업을 하는 이준대 대표입니다. 신당의 김종혁 의원의 사탕발림을 듣고 한국에 들어왔다가 속았다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많은 돈을 벌었고 우리 당을 후원할 겁니다.”

“후, 후원?”

후원이라는 말은 언제나 달콤하다.

이준대가 지도부의 눈빛을 받으며 허리를 굽혔다.

“이준대입니다.”

< 살생부.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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