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45화 (245/300)

< 결과. - (2) >

***

오랜만에 세상이 조용했다.

시끄러웠던 유세 차량은 물론이고 피켓을 들고 돌아다니던 봉사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투표일…….

길에는 집을 나선 유권자들만 보였다.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 뒷짐 지고 서 있는 노인 그리고 청년까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신당의 당사…….

이른 투표를 마친 박무혁 의원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지난 며칠 간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무척 피곤해 보인다.

하지만 눈을 감고 편하게 쉬기는 어렵다.

오늘 가장 긴장된 사람 중 하나가 박무혁 의원이기 때문이다.

당선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언제나 반전의 드라마는 존재하니까…….

뒷목을 꾹꾹 누르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티 테이블로 향했다.

피곤해서 커피를 마실 생각이다.

봉지 커피를 손에 드는데 문이 열리고 성윤이 들어왔다.

“일찍 나오셨네요?”

박무혁 의원이 물을 붓고 스푼을 휘저으며 무심히 입을 연다.

“누구 뽑았어?”

“뽑을 사람이 없어서 기호 1번 도제성 뽑았어요. 의원님은요?”

“나도, 마땅히 뽑을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기호 2번 서용우.”

가벼운 농담이다.

박무혁 의원이 컵을 가지고 테이블로 이동했다.

“마셔. 국회의원으로서 타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커피야.”

다음은 대통령이 되어 타 주겠다는 말이다.

성윤이 슬쩍 웃었다.

“그러면 영광일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조용히 찻잔을 입에 댔다.

하지만 대화는 없다.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회고조차 입을 열지 않는다.

평소와 같은 모습…….

박무혁 의원은 신문을 성윤은 휴대폰을 보고 있다.

SNS에는 투표 인증에 대한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어쩌고…….

총선, 지방 그리고 재보궐까지, 몇 번이나 선거를 경험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선은 또 다른 느낌이다.

아무래도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잠시 후, 사무실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투표를 마친 그들의 얼굴에는 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대며 여론을 살피지만 여간해서 긴장은 풀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공대출 의원이 성윤을 향했다.

“이 의원, 우리 이길 수 있겠지? 젊은 사람이니까 우리보다 잘 알 수 있잖아?”

결과 예상과 젊은 사람이라는 게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당연히 이길 겁니다.”

“몇 퍼센트 차로 승리할 것 같아?”

“네? 거기까지는…….”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한 보좌관이 손뼉을 짝 친다.

“맞다. 이 의원님 보좌관! 지금까지 다 맞혔다고 하지 않았어요?”

정우는 선거 때마다 돈 내기를 해서 땄다.

지금껏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무패 기록을 이어 가는 중이다.

자신은 정당한 토토라고 말하지만 액수를 생각하면 불법에 가까운…….

의원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다 맞힌다고?”

“오차 범위 내에서 다 맞힌다는 소문이에요.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요.”

“하긴……. 그 인상을 보면 예사롭지 않아.”

“이 의원! 박 보좌관 어디에 있어?”

불안할 때는 확신에 가까운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게 단순한 허세라도 위안이 되니까.

그리고 사람들의 외침에 그가 등장했다.

선거판의 AI, 박정우.

어떤 일을 처리하다 왔는지 손에는 서류를 들고서…….

“찾으셨어요?”

정우는 어떤 상황인지, 왜 자신을 불렀는지 몰랐다.

그래서 물었는데…… 뜬금없이 질문이 쏟아진다.

“누가 이길 것 같아? 아니지, 몇 퍼센트 차로 이길 것 같아?”

“당선 확정은 몇 시에 뜰까?”

“대답 좀 해 봐!”

눈을 깜빡이던 정우는 사람들이 왜 자신을 찾았는지 알았다.

씨익 웃으며…….

“궁금하면 500원!”

“에이, 진짜! 언제적 개그야!”

적당한 흥분과 긴장감…….

신당의 분위기는 밝다.

***

민국당의 선거 캠프의 분위기는 신당과 달리 우울하다.

복도를 배회하는 당직자들도 모두 어두운 표정이다.

벽에 어깨를 기대 전화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우울했고 멀리서는 머리를 쥐어뜯는 당직자도 보였다.

선거에서의 패배는 이런 거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패배지만 이들에게 기정사실화되어 있으니까.

도제성 의원 역시 마찬가지…….

옥상에 서서 담배만 피우는 중이다.

‘어쩌면…….’ 하는 기대가 있지만 투표율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대로는 67~69%의 대의 투표율을 예상한다.

도제성 의원에게 실망한 지지자들이 투표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하…….’

한숨을 내뱉는 도제성 의원의 옆으로 최학인이 섰다.

도제성 의원이 어두웠던 표정을 지우며 슬며시 웃었다.

“왔어?”

최학인이 천천히 허리를 굽힌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 제가 모자란 탓입니다!”

설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다.

도제성 의원이 눈동자만 움직여 최학인을 향한다.

“고생했어.”

“죄송합니다, 후보님…….”

최학인이 굽혔던 허리를 폈다.

사납게 생긴 인상인데, 울먹거리는 게 곧 눈물을 흘릴 것 같다.

도제성 의원이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지난번에…… 왜 자네 이름을 팔지 말라고 했는지 알아?”

서용우 전 총리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다.

불구속 수사를 받던 오항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도제성 의원을 욕하고 일어섰다.

그 덕에 도제성 의원의 지지율은 날개 부러진 새처럼 폭락하기 시작했다.

27%, 26%, 25%…….

그때 최학인이 도제성 의원에게 제안했었다.

-제가 다 뒤집어쓰겠습니다! 제가 신당의 사주를 받은 스파이였다고…… 어떻게든 우기면……!

말도 안 되는 전략이었지만 그만큼 급했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도제성 의원이 담뱃재를 털며 말한다.

“혹했던 것도 사실이야. ‘혹시나…….’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어. 하지만…….”

도제성 의원이 조용히 웃는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난 박무혁을 이길 수 없었어. 이미 분위기가 기울었으니까.”

“의원님…….”

“난 이제 지쳤어. 다음은 자네에게 부탁할게. 내가 이루지 못한 뜻, 자네가 펼쳐 줬으면 해.”

“의원님! 아직입니다! 신당은 의원석이 적습니다! 우리가 제1야당으로서 발목을 잡으면 레임덕은 금방 찾아올 테고, 다음 총선에서 우리가 압도하면……!”

도제성 의원이 최학인의 손을 꽉 잡았다.

“앞으로 5년 후? 최 의원…… 난 나이가 많아.”

최학인이 물끄러미 도제성 의원을 바라봤다.

그제야 흰머리와 주름이 보인다.

시골 총각같이 생기 넘치던 모습은 어느새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5년 후를 기대하기엔…….

최학인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못하고 재차 입을 열었다.

“혹시 모릅니다. 투표함은 뒤집어 봐야 아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도제성 의원이 희미하게 웃는다.

“나도 ‘어쩌면’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만 들어가자고.”

도제성 의원이 최학인의 등을 토닥인 후 몸을 돌렸다.

계단을 향해 걸어간다.

작아진 어깨…….

최학인이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허리를 굽혔다.

‘계속해서 의원님의 뜻을 이어 가겠습니다. 오늘의 참담함은 반드시 복수하겠습니다!’

최학인의 머릿속에 한정식집 2층에서 봤던 성윤의 그림자가 스쳤다.

이 사태의 원흉!

씹어 죽여도 속이 편하지 않을 거다.

기필코…….

‘이성윤!’

최학인의 눈이 불을 뿜었다.

***

다시 신당의 당사.

개표 시간이 다가오며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자리했다.

그리고 5시 50분.

카메라는 박무혁 의원을 중심으로 잡았다.

이제 곧 시작될 개표 방송에서 박무혁 의원의 얼굴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서다.

이윽고 텔레비전의 화면에는 카운트다운이 이뤄진다.

60을 시작으로 59, 58, 54…….

-3! 2! 1!

사회자가 앞으로 나섰다.

-출구 조사 결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서울 지역 예측 결과입니다.

우글우글 모여 앉아 출구 조사를 지켜보던 신당의 관계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마른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이어가고…….

-출구 조사 결과 박무혁 후보가 47.6%로 1위!

비록 출구 조사 결과지만 “와!” 하는 소리가 터졌다.

얼싸안고 방방 뛰고 난리도 아니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은 기뻐하지 않는다.

주변의 환호를 들으면서도 평소의 무심한 표정으로 모니터만 응시하고 있다.

머릿속이 복잡할 거다.

아버지 박 회장과의 관계, 박영훈 부회장에 대한 처리까지.

끝이 아니다.

성종의 윤범성 부회장이나 윤 회장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계속해서 박무혁 의원의 힘을 꺾기 위해 난리를 칠 테니까.

성윤 역시 웃지 않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기뻐하기보다는 머릿속에 가득한 오만가지 생각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그중에 머릿속을 가장 많이 차지한 생각은…….

‘역사가 틀어지고 있어.’

꿈속의 미래에서 대통령은 도제성이었다.

박무혁 의원은 다음 대선의 도전자였지만 처참하게 실패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박무혁이 도제성을 꺾고 대통령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은 하늘이 내려 준다고 했는데…….’

성윤의 머릿속에 뜬금없이 장난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늘도 이길 수 있는 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앞으로 나타날 수많은 적과 박살 낼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 이준대까지, 걱정할 게 하나도 없을 거다.

그 순간…….

-송파구에서 첫 개표 결과가 나왔습니다. 도제성 후보가 56표, 박무혁 후보가 21표를 얻어서 일단은 도제성 후보가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표차는 35표차입니다. 이어서…… 경북 경주입니다. 도제성 후보가 92% 득표를 했고 박무혁 후보가 8%, 아직 오백스물아홉 표만 나온 겁니다. 다른 의원은 아직 득표가 없습니다.

밀리고 있다.

아홉 개 선거구가 발표됐지만 계속…….

‘어라?’

다른 사람들은 여유롭다.

지금의 수치는 크게 의미 없으니까.

하지만 성윤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하늘이 정해 주는 것…….

성윤이 개입했다고 해도 쉽게 뒤바꾸기는 어려운 일이다.

‘설마…….’

입술은 바짝 말랐고 심장은 강하게 요동친다.

계속 화면을 보고 있어도 아직 뒤집히지 않는다.

1위는 도제성 의원, 박무혁 의원은 2위…….

‘아니겠지?’

선거운동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겨 놓고 시작한 선거다.

그 결과로 출구 조사도 완승.

하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투표함이 뒤집히면 결과도 바뀔 수 있으니까…….

‘마지막에 대한당 지지자들이 돌아섰나? 대한당으로?’

아랫입술에 피가 밸 것 같았다.

‘설마, 설마, 설마!’

그때…….

박무혁 의원의 표가 확 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1위.

표차가 크게 벌어진다.

동시에 함성 소리가 “와아아아아!” 하고 거세게 터졌다.

“박무혁! 대통령! 박무혁! 대통령!”

무심히 있던 박무혁 의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손을 들어 만세 자세를 취한다.

그러자 다시 함성 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울렸다.

“와아아아아!”

***

“정말로 간 떨어질 뻔했어.”

성윤은 정우와 함께 옥상의 흡연장에 있었다.

박무혁 의원의 이마에 ‘당선 유력’이라는 글자가 박힌 이후다.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입으로는 담배 연기를 내뱉는데 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네? 간이 떨어지다니요?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데요?”

“처음에 밀렸잖아.”

“밀려요? 처음에?”

“어.”

개표가 발표되고 박무혁 의원이 밀렸던 것은 처음 3분이 전부였다.

이후로는 쭉 앞서 나가는 중이다.

그러니 정우에게는 밀린 기억이 없다.

성윤은 어깨를 으쓱한 후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제 여당…….’

앞으로 복잡한 일이 일어날 게 분명하다.

신당의 약점은 인원수가 적다는 거다.

여당이지만 과반수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거기에 대한당과 신당 출신의 인원이 섞여 있어 단합이 약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 때문에 타 당에서 몇 명만 영입해 입당시키면 언제든 계파 싸움을 걸 수 있다.

성윤은 식은 커피를 입에 댔다.

‘쉽지 않겠어.’

그때 정우가 씩 웃으며 휴대폰을 보인다.

“내려가야겠는데요?”

5분 안에 ‘당선 확실’이 뜰 것이란 메시지였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이 꽃다발을 목에 걸고 카메라 앞에 섰다.

“국민 앞에서는 언제나 고개 숙이겠습니다. 하지만 국민을 대표했을 때는 굽실 거리지 않겠습니다. 제 무릎은 국민을 위해서라면 값싸지만 국민을 대표하면 그 무엇보다 비싸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박무혁 의원은 짧은 당선 소감에서 ‘국민’이라는 말을 네 번 사용하며 강조했다.

‘대표’라는 말을 두 번 사용하며 강대국가의 외교에서 눈치 보지 않겠다는 뜻을 돌려 전했다.

새로운 대통령 박무혁이다.

그리고 모든 말을 마친 그가 옆에 선 성윤의 손을 꽉 잡는다.

성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다.

앞으로 숫자가 적은 여당을 이끌어 가며 정권을 도우려면 가시밭길이 펼쳐질 테니까.

이어서 성윤과 맞잡은 손을 번쩍 들었다.

카메라는 성윤의 얼굴을 확 끌어당기며 클로즈업했고 뒤에서는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아!”

< 결과.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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