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43화 (243/300)

< 쑈. - (2) >

최학인이 주먹을 꾹 쥐었다.

도제성 의원이 이만큼 대답했다면 거의 다 온 것이다.

강하게 밀어붙인 후 두어 발 양보할 시간…….

최학인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손잡는 시늉만 하시면 됩니다.”

도제성 의원이 감았던 눈을 떴다.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무슨 소리지?”

***

며칠 후, 청와대.

한상국 대통령은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다.

‘26%…… 3위?’

서용우 전 총리의 지지율이다.

대한당을 등에 업고도 3위라니…….

말 그대로 개망신.

이런 폭망은 대한당의 깃발을 세운 이후 처음이다.

‘더 큰 문제는…….’

존재감이 없다.

박무혁과 도제성의 이름에 가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간다면 반드시 패배한다.

한상국 대통령이 분노를 씹어 뱉었다.

“멍청한 놈!”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용우 전 총리를 응원했다.

대한당이 정권을 이어야 평안한 인생을 즐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답이 없다.

‘서용우가 낙선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치욕적인 모습으로 검찰에서 구치소 그리고 교도소까지 드나들지 모른다.

‘안 돼!’

한상국 대통령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그렇게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비서실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서용우 후보가 이겨 낼 수 있을까요?”

한상국 대통령이 고개를 저었다.

“서용우는 리더가 아니라 참모야. 내 결정을 도왔을 뿐, 직접 결정 내린 적이 없어. 혹독한 겨울도 뜨거운 여름도 경험해 본 적이 없지. 그런데, 이 겨울을 버티고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놈이?”

“…….”

“지금쯤 깨달았을 거야, 가장 안전한 곳은 바로 내가 마련한 새장이라는 것을…….”

한상국 대통령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말을 이었다.

“역전을 하려면…… 내 손을 잡아야 하는데, 이 멍청한 놈이…….”

한상국은 대통령이다.

뒷방 늙은이라 해도 그를 지지하는 콘크리트 세력이 존재한다.

서용우 전 총리가 한상국은 대통령의 손을 잡으면 지지율이 뛰어오를 게 분명하다.

그런데 서용우 전 총리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

“비리 몇 개 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쯧쯧…….”

서용우 전 총리가 한상국 대통령을 찾아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상국 대통령은 서용우 전 총리에게 치명적인 비리를 들고 오라고 지시했다.

그래야 서용우 전 총리의 멱살을 쥘 수 있으니까.

죽을 때까지 권력을 놓치 않으려는 추악함이다.

혀를 끌끌 차던 한상국은 대통령이 고개를 틀어 비서실장에게 향했다.

“서용우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 그런데, 안 되겠어. 이러다가 선거가 끝나 버릴 것 같아.”

“어떻게 할까요?”

“글쎄…….”

한상국 대통령이 턱을 쓸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비서실장은 손을 품에 넣는다.

만져지는 휴대폰…….

그는 익숙하게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

삼성동 코엑스.

서용우 전 총리는 취업 박람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붙어 주세요. 제가 신호를 드리면 후보님이 선창으로 ‘파이팅!’ 하시고요. 나머지 분들이 따라 하시면 됩니다!”

서용우 전 총리의 주변으로 청년들이 섰다.

이들은 취업 준비생이 아니라 대한당의 청년 당원들이다.

하지만 기사에는 ‘취업 박람회에 참석한 청년들과 서용우 후보’라는 타이틀이 적힐 거다.

서용우 전 총리가 ‘청년들의 취업 문제에 관심이 많다.’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쇼니까.

물론 서용우 전 총리만 쇼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당도 똑같다.

카메라를 보던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 괜찮은데요?”

화면에 잡힌 사람은 서용우 전 총리를 비롯해 단 열 명.

하지만 각도를 잘 잡아서 그런지 꽤 많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서용우 전 총리가 주먹을 쥐며 외쳤다.

“파이팅!”

열 명의 청년 당원들이 따라 외친다.

“파이팅!”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가 또 외친다.

“하나 더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파이팅!”

셔터가 눌렸다.

액정을 확인한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고생하셨습니다. 사진은 걱정 없어요. 바로 올려도 되겠어요. 하하하.”

사진 촬영이 끝났다.

서용우 전 총리의 옆으로 비서실장이 다가왔다.

“방명록 작성하시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 됩니다.”

“다음은 어디지?”

“청주 성안길입니다.”

서용우 전 총리가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한다.

“점심은? 안 먹어?”

“가는 길에 있는 모든 휴게소를 들를 예정입니다. 계속 주전부리를 드시려면 빈속이 편하실 겁니다.”

그놈의 우동과 소떡소떡을 몇 개나 집어 먹어야 할지…….

서용우 전 총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어?”

그의 눈앞에 도제성 의원의 비서실장 최학인이 보였다.

“최학인 의원?”

그 말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최학인에게 모였다.

다들 놀란 눈이다.

그는 적이다.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

“여, 여기는 어쩐 일로?”

최학인이 서용우 전 총리에게 허리를 굽혔다.

“제가 식사를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휴게소 우동보다는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을 겁니다.”

서용우 전 총리가 물끄러미 최학인을 바라봤다.

함부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다.

이곳까지 찾아왔다면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다.

서용우 전 총리가 자신의 비서실장에게 시선을 옮겼다.

“밥은 서울에서 먹지. 휴게소는 한 곳만 들르자고.”

“알겠습니다.”

잠시 후, 서용우 전 총리와 최학인이 마주 앉았다.

근처의 한정식집이다.

노란 호박죽부터 떡갈비까지, 색색의 음식이 한상 차려졌지만 두 사람은 숟가락도 대지 않았다.

“그래, 어쩐 일입니까?”

서용우 전 총리의 질문이 시작이었다.

최학인이 휴대폰을 테이블에 올린다.

“들어 보시지요.”

화면을 터치하자 녹음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서용우의 주변을 털어.

서용우 전 총리의 미간이 확 일그러졌다.

하지만 음성은 계속 이어진다.

-가까운 사람이면 좋겠어. 아내나 자식! 스스로 개목걸이를 가져오기를 기다렸는데, 안 되겠어. 시간이 없어. 내가 직접 채워야겠어!

서용우 전 총리의 주먹이 바들바들 흔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다.

십수 년을 모셨던 사람…….

한상국 대통령이었다.

서용우 전 총리가 최학인을 노려본다.

“한상국 대통령이 내 뒷조사를 한다고요?”

“네.”

“알려 주는 이유가 뭡니까! 대통령을 치자고? 아니면, 짜증나니까 대한당 후보를 그만두라고!”

한상국 대통령은 서용우 전 총리의 뒤를 밟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내와 자식의 뒤까지 쫓는다고 한다.

기분이 나쁘다.

언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유가 뭐냐고요!”

그런데, 최학인이 고개를 저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후보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뭐요?”

최학인이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일개 국회의원인 제가…… 대통령의 음성을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

“그것도 같은 당 대선 후보의 가족을 털겠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입니다.”

서용우 전 총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청와대의 보안은 삼엄하다.

게다가 한상국 대통령은 의심병 말기 환자…….

측근을 제외하면 주변에서 시계도 찰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서용우 전 총리의 눈동자에 의문이 가득해졌다.

최학인이 빙긋이 웃는다.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한 일은 통화 중 녹음 버튼을 누른 것이 전부입니다.”

“비, 비서실장? 대통령의?”

비서실장은 한상국 대통령의 몰락을 예상했다.

살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생존 전략이다.

그래서…….

“침몰하는 배에서 내린 겁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항복 선언을 했어요. 자기는 살려 달라고…….”

여기까지 말한 최학인이 뜬금없이 낄낄 웃기 시작했다.

어이없는 것처럼…….

“그런데,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도 코가 석자예요. 지금 누굴 살려 주고 할 정신이 없어요.”

도제성 의원의 지지율은 28%다.

압도적으로 1위였던 게 불과 한 달 전인데 밀리고 밀려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서용우 후보님은 26%…….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고 언제나 그 자리…….”

최학인이 눈동자만 움직여 서용우 전 총리를 바라본다.

그러자 서용우 전 총리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자신도 모르게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컵을 탁,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이나 말하세요. 한상국 대통령의 공격이나 알려 주려고 찾아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질문이 들려오자 최학인이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본론요? 같이해 보지 않겠습니까?”

서용우 전 총리는 조용히 최학인의 얼굴을 살핀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 거다.

“뭘?”

“단일화. 민국당과 대한당이 손잡는 거죠.”

황당한 소리.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서용우 전 총리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무, 무슨 개소리를!”

동시에 최학인이 불을 뿜어내는 눈빛으로 서용우 전 총리를 향했다.

그리고 준비했던 말을 쏟아 낸다.

“맞습니다! 평소라면 개소리죠! 하지만 지금은 명분이 있습니다! 박무혁의 재벌 정권을 막아서겠다는 명분! 이대로 있으면 민국당과 대한당의 미래는 뻔합니다! 대한민국을 끌어 왔던 양 당은 역사의 아래로 사라질 겁니다. 후보님도 아시잖습니까?”

“이봐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죠! 뭐라도 해 봐야죠! 근본도 없는 신당에 밀려 사라지면 개도 비웃을 겁니다!”

“최학인 의원! 아무리 그래도!”

두 사람의 언성이 점점 커졌다.

서로를 노려보는 눈동자가 서늘하다.

그 순간, 최학인이 슬쩍 웃는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한다.

“후보님……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단일화를 하는 것처럼…… 토론도 하고 손도 잡고…… 국민의 관심을 우리에게 모으는 거죠. 한 이 주일 정도 강하게 몰아친 후 각자 갈 길을 가면 됩니다. 손해 보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 겁니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그러니까…….”

그 순간,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렸다.

서용우 전 총리와 최학인이 하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틀어 문으로 향한다.

나올 음식은 다 나왔는데…….

서용우 전 총리의 눈이 커졌다.

“나머지는 내가 말씀드리지.”

도제성 의원이 서 있었다.

***

성윤은 신당의 옥상에 서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연기를 내뱉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네, 이성윤입니다.”

장한수 실장이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지금은 서용우 전 총리의 뒤를 쫓고 있었다.

-서용우 후보와 최학인 의원이 만났습니다.

성윤의 눈이 반짝였다.

드디어 시작됐다.

“감사합니다. 철수해 주세요.”

성윤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자 옆에 선 정우가 묻는다.

“쇼가 시작된 거예요?”

“아마.”

정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서용우 총리가 손을 잡을까요? 잡으면 바보 같은데…….”

아무리 쇼로 끝날 일이라 해도 민국당에 유리한 일이다.

민국당은 명분이 있으니까…….

그들은 처음부터 재벌 개혁을 들고나왔다.

그래서 대한당과 손잡아도 ‘박무혁 의원을 척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어요!’라는 할 말이 있다.

하지만 대한당은 아니다.

그들의 공약에 재벌 개혁이라는 단어와 문장은 없다.

“그리고 양 당의 이념이 극단적으로 달라요. 지지자들이 가진 갈등의 골을 생각해 보면 단일화라는 말이 나오는 동시에 마이너스일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한상국, 안재열이라는 구심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 새끼들 변했어!’라는 말을 들으며 지지율이 쭉쭉 빠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극단적인 의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소란을 피울 거예요. 그게 부담스럽다고 중간에 그만두면 더 시끄러워질 거고요.”

어떻게 보면 최악의 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하지만 성윤의 눈에는 최학인의 생각이 빤히 보였다.

“최학인은 그걸 알기 때문에 주사위를 던진 거야.”

소란스럽고 시끄러울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불평불만 또는 기대…….

그렇게 사람들이 집중하면 도제성 의원은 강한 목소리로 외칠 거다.

“변화할 겁니다! 통합할 겁니다! 좌, 우 통합 진정한 협치! 재벌 권력을 타파하겠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승리의 가능성은 0%…….

하지만 주사위를 던지면 확률은 올라간다.

성윤이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박영훈 부회장의 살인 청부를 덮을 만한 자극적인 이슈가 없잖아. 대한당이나 민국당이나 선거운동 전에 손뼉 칠 일이 필요했을 거야. 이 판떼기에서는 존재감 없이 착한 놈보다 욕을 먹어도 튀는 놈이 이기는 곳이니까.”

성윤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꽁초를 꾹꾹 비벼 껐다.

그리고 시선을 틀어 정우를 향한다.

“그런데 나는 사실…… 양 당이 손잡기를 기다렸어.”

“네?”

“앞으로 일주일…….”

일주일이 지나면 3주간의 대선 운동이 시작된다.

“힘의 차이를 보여 주기에 딱 좋은 것 같아. 대한민국을 양분하는 거대 양 당…… 대한당과 민국당이 손을 잡고 난리를 쳐도 우리에게 짓밟힌다면?”

성윤의 말에 정우의 눈에 힘이 콱 들어갔다.

< 쑈.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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