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42화 (242/300)

< 쑈. - (1) >

***

박무혁 의원이 통째로 산 건물…….

성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던 박무혁 의원이 와인잔을 들어 올린다.

“어서 와. 길었던 하루야.”

성윤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혔다.

“고생하셨습니다.”

“앉아.”

맞은편에 앉았다.

박무혁 의원의 속마음이 들려온다.

지금껏 그의 속마음은 전혀 들리지 않든가, 내뱉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적나라하게 들려온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는데, 속은 말이 아니다.

“한잔하지?”

박무혁 의원이 와인병을 기울여 빈 잔을 채운다.

성윤이 와인잔을 쥐며 입을 연다.

“오늘 박정우 보좌관도 고생했는데, 이쪽으로 부를까요?”

“박 보좌관? 아, 좋지. 어서 오라고 해.”

정우도 오늘 큰일을 했다.

이지현의 오빠를 회유해서 방송에 내보냈으니까.

그 덕에 여론은 박영훈 부회장에게 틀어졌다.

가난한 사람을 청부 살인한 재벌……. 그런 거지 같은 이야기에 국민은 분노했고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벗어날 수 없을 거다.

성윤이 정우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다시 박무혁 의원을 향했다.

“그리고 정우가 이상한 말을 잘하거든요.”

“이상한 말?”

“평소에 들으면 짜증 나는데, 가끔 들으면…… 똑같이 짜증 납니다. 하하하.”

“그게 무슨 소리야?”

“들어 보세요. 기분이 좀 풀리셨으면 해요.”

잠시 후, 정우가 들어왔다.

세 사람은 모여 앉아 오늘 하루의 일을 격려하며 주거니 받거니 와인을 마셨다.

박무혁 의원이 정우의 잔을 채우며 말한다.

“미국 간다며?”

“네. 내일 바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잘 데리고 와. 몸조심하고.”

“네.”

정우가 왔어도 분위기는 여전히 우울하다.

와인만 한 병, 두 병 바닥을 뒹군다.

성윤이 정우의 어깨를 툭 쳤다.

“아재 개그 한번 해 봐.”

정우의 눈이 반짝인다.

하지만 곧 눈치를 보면서…….

“……해도 돼요?”

“어.”

오늘은 박무혁 의원이 박영훈 부회장을 보내 버린 날이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았어도 두 사람은 형제다.

기분이 유쾌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정우도 눈치가 있다.

“괜히 했다가 두들겨 맞는 것은 아니죠?”

박무혁 의원이 슬쩍 웃는다.

“내가 아재 개그 같은 것 듣고 사람을 때릴 것 같은가? 괜찮아. 해 봐.”

“그럼, 간단하게……. 새우랑 고래랑 싸움을 했어요. 누가 이겼을까요?”

박무혁 의원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이런 쓸데없는 문제의 정답을 알아내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새우랑 고래랑? 이렇게 물어보면 새우가 이겼겠지만…… 이긴 이유는 새우가 대왕 새우라서? 아니면 넌센스인가?”

정우가 씨익 웃는다.

“새우는 깡이 있고 고래는 밥이라서요.”

“……!”

조금은 웃길 줄 알았는데 역시나다.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멈추라고 말하려 했는데, 정우의 입은 발동이 걸렸다.

“그럼, 박무혁 의원님! 저를 미국에 보내기 싫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소리야? 자네를 미국에 보내기 싫다니?”

“문제입니다. 그냥 문제.”

“미국에 보내기 싫으면 비행기 표를 취소하면…….”

“아니죠. 보내기 싫으면, 가위나 주먹을 내면 됩니다. 하하하하하.”

박무혁 의원이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 알았어. 아재 개그 때문에 사람을 때릴 수 있을 것 같아.”

***

강원도에서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첫눈은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다.

1위, 박무혁, 40.1%.

박무혁 의원의 지지율이 40%를 넘어섰다.

2위는 도제성 29%.

3위는 서용우 27%.

신당은 난리가 났다.

“와!”

그리고 구호를 외친다.

“이대로! 이대로! 이대로!”

대한당과 민국당은 인상만 구기고 있다.

“젠장! 어떻게 된 게!”

분명 대선 정국인데,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박무혁 의원과 박영훈 부회장을 향해 있다.

정치면의 기사를 찾아 읽어도 마찬가지다.

대선이면 적어도 수천 개의 댓글이 난장판처럼 싸우고 지지고 볶아야 하는데…….

“댓, 댓글이 300~400개가 전부입니다!”

말 그대로 대선은 흥행이 실패하고 있었다.

“투표율이 60%대 후반으로 예측됩니다!”

투표율이 낮아지면 콘크리트 지지율을 지닌 당이 승리한다.

그리고 지금 가장 단단한 콘크리트는 신당의 지지자들이다.

대한당과 민국당은 대선의 들러리…….

“씨발! 당원 전체에게 지시해! SNS에 집중하고 여론전에 힘을 쏟으라고!”

“네!”

“후보님, 청주에 유세하러 가니까 그쪽 캠프에 연락하고 기자들을 보내! 기사 잘 쓰면 돈 좀 찔러주고!”

하지만 무리였다.

SNS를 이용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지만…….

-이지현 씨를 살해했던 범인이 지금 입국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검찰이 범인을 인계받아…….

사람들의 관심은 이지현에게 몰려 있었다.

게다가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그녀의 얼굴이 공개됐는데, 아름다운 미인…….

안타깝게도 외모지상주의에서 아름다운 사람은 더 주목받기 마련이다.

박영훈 부회장을 향한 분노가 더 들끓는다.

-검찰은 뭐 하는 거야! 당장 안 잡고!

-총장이랑 쎄쎄쎄 했는데, 잡겠어? 흐지부지 끝나는 거지.

-기다려 봐. 살인범 들어와서 자백하고 그다음에 구속영장을 신청하겠지. 절차라는 게 있는 거잖아.

-그놈의 절차! 오빠가 다 밝혔잖아? 그런데, 또 뭘?

분위기가 이러니 대한당과 민국당이 용을 써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어서 며칠 뒤…….

또 지지율이 발표됐다.

1위는 박무혁, 43.2%.

2위는 도제성, 28%.

3위는 서용우, 26%.

도제성 의원과 서용우 전 총리의 지지율은 점점 떨어지고 박무혁 의원의 지지율은 치솟는다.

이제 약 15%의 차.

대세론이 굳어지고 있다.

신당은 다시 환호성을 부른다.

“됐어!”

“신당에서 대통령 한번 만들어 보자!”

그렇다고 박무혁 의원의 선거 캠프가 만세만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도 비상이다.

모든 사람들이 전화를 붙들고 있다.

“김 기자, 우리 의원님을 조금만 더 극적으로 만들어 봐. 형제를 친 비정한 사람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람으로. 그래, 고마워.”

“정 기자님? 모바일 상품권 보냈는데, 받으셨어요? 다름이 아니라…….”

그 시각, 성윤은 복도를 걷고 있었다.

목적지는 박무혁 의원의 방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박무혁 의원은 읽던 서류를 덮었다.

성윤이 서류를 보며 물었다.

“토론 준비하시나 봐요?”

“오랜만에 공부하려니까 어려워. 그건 그렇고 바깥 분위기는 어때?”

“좋죠.”

“대한당과 민국당은?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잖아? 슬슬 네거티브가 들어올 것 같은데?”

“대한당과 민국당이 단일화를 할 것 같습니다.”

“단일화?”

성윤은 가볍게 말했지만 절대 가벼운 말이 아니다.

대한당과 민국당이 단일화라니…….

양 당은 피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원해도 각 당의 지지자들이 반대할 거다.

그러니까 천지가 개벽할 말.

박무혁 의원의 황당한 표정은 당연한 거다.

“그게 무슨?”

“대한당과 민국당은 관심을 끌려고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어요. 자극적이지만 지킬 수 없는 공약으로요. 그런데도 관심을 끌지 못했죠.”

“그럼, 남은 것이…….”

“지금 던질 주사위는 단일화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민국당의 브레인은 최학인 의원…….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요.”

박무혁 의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정말 단일화가 이뤄지면, 안재열 전 대통령이 신당에 합류한 것만큼의 충격이 선거판을 흔들 거다.

아니, 더 큰 충격이다.

전무후무할 정도로 미친 거니까…….

성윤이 말을 이었다.

“최학인 의원은 극적인 단일화를 원하겠지만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겁니다.”

대한당과 민국당이 단일화라는 카드를 꺼냈다는 것만으로 목적 달성이다.

국민의 관심을 모을 수 있고 반대로 신당에 대한 관심은 식을 테니까.

양 당이 손해 볼 것은 어떤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도 대한당과 민국당이 단일화라니…….”

박무혁 의원은 못 믿는 눈치다.

성윤이 허리를 굽혔다.

“지금은 대선입니다. 대한민국의 5년을 결정할 마지막 몇 주입니다. 이 시간은 어떤 반전 드라마가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그러니, 준비하셔야 합니다.”

대선의 마지막…….

지지를 했다가 철회했다가 단일화를 했다가 거부했다가…….

권력을 좇는 인간의 모든 추악함이 다 쏟아져 나오는 시기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관한 것은 전권을 위임하지. 자네가 알아서 해.”

박무혁 의원은 성윤을 부드럽게 바라본다.

그는 성윤을 한없이 믿고 있다.

***

그리고 그날 밤.

도제성 의원의 비서실장 최학인은 무거운 눈빛으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옷깃 스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걷던 그가 문 앞에 섰다.

최학인 의원의 사무실이다.

그런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고개를 틀어 비서를 본다.

무서운 목소리로…….

“아무도 들이지 마.”

“알겠습니다.”

“자네도 저쪽 복도의 끝에 있어.”

지금부터 시작될 도제성 의원과의 대화, 그 누구도 알아서 안 된다.

문을 지키고 선 비서조차도…….

최학인의 결의에 찬 눈빛에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해해 줘서 고마워.”

최학인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도제성 의원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오늘 전라북도를 돌며 각 전통 시장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토론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쩐 일이야?”

지난번, 최학인은 도제성 의원에게 대정의 박영훈 부회장을 만날 것을 부탁했었다.

그 이후로 도제성 의원이 최학인을 대하는 게 데면데면하다.

최학인은 도제성 의원의 눈빛을 살핀다.

정치인은 박수와 환호를 받고 산다.

그런데, 최근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며 눈동자에 힘이 빠졌다.

표정은 심란하고 복잡해 보인다.

“간언드릴 게 있어 왔습니다.”

“간언?”

최학인이 품에서 명함을 꺼내 책상에 올렸다.

도제성 의원의 눈이 커진다.

서용우 전 총리의 명함이다.

연락처가 적혀 있는…….

“이게 뭐지?”

최학인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린다.

“박무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난번에는 박영훈이더니, 이번에는 대한당?”

도제성 의원이 어금니를 씹으며 최학인을 노려봤다.

하지만 최학인도 밀리지 않는다.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의원님답지 않으십니다!”

“뭐라?”

“이대로 있으면 이 나라가 박무혁에게 넘어갑니다! 재벌 출신이 뭘 알겠습니까? 그놈이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는 오로지 대정을 위해서입니다! 그럼, 국민의 삶은 뻔합니다. 자영업자는 망하고! 중소기업의 기술은 모조리 빼앗기고! 그런 사람의 사리사욕을 보고만 계실 겁니까?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고 대한당이랑 손잡으라고!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죽은 선배가 있고 후배가 있어! 그리고 내 친구가 흘린 핏물이 지금도 꿈에 나타나! 그 원혼이 내 귀에 외치고 있어! 그런데, 뭐? 대한당과 손을 잡아?”

도제성 의원의 벌겋게 변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숨소리마저 거칠다.

지지율이 떨어지며 멘탈이 흔들리는 이유도 있다.

이럴 때 찾아와 자극하는 최학인이 정말 못마땅했다.

도제성 의원이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킨다.

“나가!”

그 소리에 최학인은 차가운 눈으로 도제성 의원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냉소적으로 입을 연다.

“그럼, 계속해서 국회의원으로 계세요.”

“……!”

도제성 의원의 눈썹이 꿈틀댔다.

하지만 최학인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결국, 대선은 박무혁의 승리가 되겠죠. 의원님의 미래는 뻔합니다. 지금과 똑같이 국회의원입니다.”

“최학인!”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선거에 아름다운 패배는 없습니다! 뜻도 승자만이 펼칠 수 있는 겁니다! 제 목적은 의원님이 대통령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바로 서니까요!”

피를 토하는 목소리는 메말라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잠시 어떤 말도 없었다.

최학인이 책상에 놓인 서용우 전 총리의 명함을 도제성 의원의 앞으로 밀어 둔다.

“연락하십시오.”

최학인이 두어 발 뒤로 물러선 후 고개를 숙였다.

“의원님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전 악마와도 손잡을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의원님이 대통령이 되면, 저는 다음 총선에 나서지 않겠습니다. 청와대나 장관, 어떤 직도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조용히 세상에 묻혀 살며 멀리서 응원만 하겠습니다. 저는 어떤 사심도 없습니다.”

“……!”

“의원님, 부디 청와대로 가십시오.”

도제성 의원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명분이 없어.”

최학인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명분은 충분합니다. 이념으로 싸우던 양 당이 거대 재벌에 맞서 손잡은 겁니다.”

도제성 의원도 알고 있다.

승리를 위해선 큰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날카로운 최학인의 눈을 피해 도제성 의원이 괴로운 표정으로 눈을 감는다.

“생각해 보지.”

< 쑈.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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