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40화 (240/300)

< 과거의 매듭. - (6) >

박영훈 부회장이 휴대폰을 집어 던졌다.

애꿎은 휴대폰은 벽에 부딪치며 산산조각났다.

시뻘건 눈동자로 허공을 노려보던 박영훈 부회장이 미친 듯이 소리지르기 시작한다.

“박무혁!”

이제는 형제가 아니다.

산 채로 목을 꺾어도 모자라다.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박영훈 부회장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보였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윤범성 부회장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전경련을 대표해 박무혁 의원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그 순간, 대정 그룹에 대한 특검 소식이 세상을 채웠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러니까…… 전경련이 특검을 찬성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냐니까!”

선언을 철회할 수는 없다.

동네 조기 축구회도 아니고 전경련이라는 거대 단체가 이랬다 저랬다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니까…….

박영훈 부회장이 얼굴을 쓸어 만진다.

“당했어. 박무혁, 그 새끼한테!”

윤범성 부회장이 서성이기 시작한다.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박무혁 이 새끼! 아무리 그래도 제 형을 엿 먹여! 영훈아, 걱정하지 마. 내가 지금 대한당과 민국당 의원들을 불러서 밥 한 번 먹으면 해결되는 일이야! 그 사람들이 반대하면 특검은 이뤄지지 않아. 언론도 걱정하지 마. 입단속시키면 올라왔던 기사들 전부 내려갈 거야. 그리고 여배우 비디오 같은 거 한 번 돌리면 모두 잊어버릴 거야!”

윤범성 부회장의 걱정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박영훈 부회장이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고맙지만 해결 방법이 아니야.”

박무혁 의원이 칼을 빼 들었다.

시퍼런 칼날은 박영훈 부회장의 목을 노린다.

베고 찌르고 자르고……. 박무혁 의원은 박영훈 부회장의 숨통이 끊어지기 전까지 끝내지 않을 거다.

안타까운 눈으로 박영훈 부회장을 보던 윤범성 부회장이 입을 연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그럴게.”

“그리고…… 해결 방법이 아니라고 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우린 친구잖아. 일단 막을 수 있는 것은 막아 볼게.”

“고마워.”

윤범성 부회장은 박영훈 부회장의 등을 가볍게 쓸었다.

“바빠도 밥은 챙겨 먹고.”

그 말을 끝으로 윤범성 부회장은 몸을 돌렸다.

서둘러 복도로 나선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윤범성 부회장의 표정이 악랄하게 변했다.

‘아버지, 이거였군요.’

바삐 빠져나온 이유…….

광대가 씰룩이며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친구의 괴로움…….

그것도 피를 나눈 형제끼리의 싸움.

‘미치겠네……. 둘 중의 하나는 죽었으면 좋겠어. 장례식장에 가서 밥이나 먹게.’

결국 참고 참았던 웃음이 토해졌다.

“크핫핫핫핫!”

도와주기는커녕 망가지도록 노력할 거다.

열심히…….

윤범성 부회장은 돈, 명예, 권력……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다.

그래서 미친 듯이 지루했던 삶에 즐거움이 생겼다.

그것은 비슷했던 친구의 몰락이다.

‘뒈져, 이 새끼야!’

한편 박영훈 부회장은 우둑커니 서서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를 되새기는 중이었다.

‘뭐지?’

박무혁 의원은 지나치게 느긋했다.

평소보다 더!

마치 자극하려는 것처럼…….

그리고 상대를 자극하는 것은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눈을 흐리게 하니까!

‘또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냐!’

그때, 박영훈 부회장의 새로운 비서실장, 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부회장님, 검찰총장입니다.”

“총장?”

박영훈 부회장이 손을 뻗었다.

비서실장이 공손히 휴대폰을 건넨다.

휴대폰을 귀에 대며 입을 연다.

“박영훈입니다.”

검찰총장의 목소리가 다급히 들려온다.

-전화는 왜 안 받으십니까?

박영훈 부회장의 시선이 바닥에 나뒹구는 휴대폰으로 향했다.

벽에 맞고 깨지며 수명을 다했나 보다.

“고장 났네요.”

어이없는 대답에 검찰총장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하지만 곧 입을 열었다.

-지금은 발뺌하셔야 합니다. 영상에 목소리가 나왔지만 화면이 어두웠습니다. 누군지 특정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과일 상자가 트렁크로 옮겨졌지만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것도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박영훈 부회장의 손에 꾹 힘이 들어갔다.

살 수 있다.

검찰총장의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대한당과 민국당에서 도와주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흐지부지될 겁니다!

통화가 종료됐다.

박영훈 부회장은 휴대폰을 비서실장에게 건넨다.

‘됐어.’

하지만 박영훈 부회장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여전히 박무혁 의원의 도발이 걸리기 때문이다.

‘어떤 카드를 들고 있는 거지?’

머릿속이 바삐 돌아갔다.

이 상황에서 남은 것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개인 비리 또는…….

순간 박영훈 부회장의 눈이 번쩍였다.

‘살인 청부?’

박무혁 의원의 폭주는 이지현의 사망 소식이었다.

그녀의 복수를 위해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는 중이다.

하지만…….

‘아니야……. 공소시효가 지났어.’

수십 년 전의 사건이다.

당시 공소시효는 15년…….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이지현의 원혼도 하늘로 올라갔을 시간!

이 사건의 죗값은 저승에서나 받게 될 거다.

‘남은 것은 개인 비리밖에 없어.’

순간, 박영훈 부회장의 머릿속에 김용준이 스쳤다.

그는 한평생 박영훈 부회장의 옆에서 살아왔다.

더러운 꼴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

그리고 성윤에게 붙었던 박쥐.

‘김용준이 이성윤에게 정보를 넘겨줬나?’

가능성은 크다.

그리고 자세한 것은 김용준을 만나 보면 알 일이다.

그가 몸을 돌린다.

비서실장을 보며…….

“호텔로 가지.”

***

그 시각, 신당의 당사 입구.

당사로 들어가던 성윤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본회의에서 터뜨린 폭탄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모든 언론사에서 찾아온 것 같다.

“박영훈 부회장의 비리 폭로! 박무혁 의원과 얘기가 된 것이었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성윤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

가볍게 답했다.

사실이니까.

그런데, 기자들이 깜짝 놀란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이었어요? 박영훈 부회장과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은 들었지만 그래도 형제지간인데…….”

성윤이 슬쩍 웃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 그런 잣대를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되겠죠. 공정하고 공평하며 평등해야 하니까요. 박무혁 의원님은 자기 형제의 잘못도 눈감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엄격하죠.”

기자들이 슬며시 웃는다.

자신의 측근에게 더 엄격한 대통령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질문 하나 더 해도 될까요?”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하나만요.”

시간이 없어서 더 받기는 어렵다.

지금 또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기자들이 번쩍번쩍 손을 든다.

“거기 리얼 팩트 기자님, 질문해 주세요.”

그리고 성윤의 인터뷰는 곧장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랐다.

댓글이 주르륵 달린다.

-박무혁 존멋! 형도 안 봐줌.

-이성윤은 광전사다. 칼 꺼내면 다 죽음.

-광전사 멋있네. 이제 광전사라 부르자. ㅋㅋㅋ

-영상 보다가 화딱지 나서 댓글 남기러 왔다. 대통령되면 검찰부터 개혁해라!

-박무혁, 이성윤 조합이면 가능.

-둘 다 돈이 많아서 뇌물 안 받을 듯.

-박무혁한테 뇌물 가져가면 미친놈 인증?

-박무혁도 사람인데, 천억 가져가면 흔들리지 않을까?

-뇌피셜인데, 박무혁이 대통령 되면 나쁜 놈들 다 잡아 족칠 것 같아. 형까지 잡아넣으려는 거 보면 여간해서 안 봐줄 것 같은데.

-나쁜 놈들 부들부들 떨고 있겠네.

어디에도 도제성 의원이나 서용우 전 총리에 대한 내용은 없다.

오로지 박무혁, 박무혁…….

인터넷 세상만이 아니다.

회사원의 흡연장에도 박무혁 의원의 이름만 돌고 있다.

“전경련 회장님들이 박무혁을 찾아간다는데?”

“어?”

“이번에 박영훈 박살 내잖아. 다음 타깃이 자기들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지.”

“하긴 박무혁이면 뻔히 알겠네, 어떻게 돈 빼돌리고 세탁하는지.”

“알아서 기어야지.”

회사원들이 낄낄낄 웃었다.

고고한 척하는 회장님이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달려가는 모습이 상상돼서다.

“이번에 정말 박무혁이 되는 거 아냐?”

“가능성은 높지.”

“뽑을 거야?”

“지금은 그럴 것 같은데.”

박무혁 의원은 분위기를 탔다.

그의 이름이 한반도를 뒤덮는 중이다.

그리고 성윤은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바삐 걷고 있었다.

복도의 끝에는 박무혁 의원의 방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서자 비서가 꾸벅 고개를 숙인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녀가 문을 열려고 할 때, 성윤이 손을 저었다.

“잠시만요.”

품에서 휴대폰의 진동이 느껴진다.

김재형 검사다.

“네, 이성윤입니다.”

-지금 도착했어요.

성윤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일만 부탁해서 죄송합니다.”

-아, 괜찮아요. 사람 목숨을 살리는 일인데요. 그럼, 잠시 후에 뵐게요.

“네.”

성윤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

같은 시각…….

박영훈 부회장은 대정 호텔의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비서실장이 자동차의 문을 연다.

박영훈 부회장이 차에서 내리며 비서실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곳에 온 이유는 김용준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런데 김용준의 옆에는 여자가 있다.

그 여자는 살인까지 저지르는 청소부.

‘어쩌면 오늘 김용준을 죽여야 할 수도 있어. 그런데, 이놈을 믿을 수 있을까?’

지금의 비서실장은 함께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김용준도 뒤통수를 쳤는데…….

‘믿을 수 없어.’

박영훈 부회장이 입을 연다.

“기다리고 있어.”

“네.”

박영훈 부회장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손몬을 틀어 시간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뱉는다.

‘김용준을 만나고 아버지를 찾아가야겠어.’

아버지는 박무혁 의원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자니까.

박 회장이 움직이면 모든 게 끝날 거다.

‘이 나이에 따귀 몇 대 맞을 수도 있겠어.’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박영훈 부회장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일단은 김용준을 만날 시간이다.

물어볼 게 많다.

‘확실한 것은 CCTV 영상을 넘겨준 게 김용준이라는 거야.’

검찰총장과의 만남, 그 영상을 폭로한 죄.

태워 죽여도 시원하지 않을 거다.

박영훈 부회장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개새끼…… 그렇게 잘해 줬는데!’

박영훈 부회장이 문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른다.

“문 열어.”

문이 열리며 작은 틈으로 여성이 보인다.

그런데, 그 표정이 처참하다.

뭔가 잘못됐다는 뜻.

박영훈 부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무슨 일 있어?”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으셔서…….”

그녀가 휴대폰의 화면을 보였다.

박영훈 부회장에게 서른 번이 넘게 전화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무슨 일인데!”

“검, 검찰이 와서 김용준을 잡아갔습니다.”

“뭐? 검찰이?”

“횡령을 했다고…….”

“씨발!”

박영훈 부회장이 그녀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말대로 아무도 없다.

횡하다.

‘검찰이? 검찰이 왜!’

무슨 이유인지 모른다.

하지만 본능이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온몸에 소름이 쭉 돋는 중이다.

“전화, 전화 줘 봐!”

휴대폰을 집어 던진 게 후회된다.

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건넸다.

박영훈 부회장은 다급히 회사의 번호를 눌렀다.

“나야, 이 새끼야! 당장 전략기획실 심경로 실장 바꿔!”

심경로 실장이 전화를 받자…….

“김용준이 잡혀갔어!”

-네? 김용준 실장이요?

“그래! 그러니까 검찰에서 우리 돈 받은 새끼들에게 모두 연락해! 그래, 검찰총장까지! 그리고 어떻게든 김용준을 빼내라고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렇지 않으면 다 같이 죽을 거라고 전해!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해야지!”

통화가 종료됐다.

박영훈 부회장은 이를 꽉 다문다.

‘아, 아버지…….’

아버지, 박 회장을 찾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지옥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

“비켜!”

박영훈 부회장은 여자를 밀치며 방을 벗어났다.

***

성윤은 박무혁 의원의 사무실에 있었다.

휴대폰을 귀에 대고 전화 중이다.

“네, 심경로 실장님.”

대정 그룹 전략기획 실장 심경로였다.

그는 검찰에 연락하기 전 성윤에게 먼저 전화를 걸고 있다.

그 역시 성윤의 편이니까.

-박영훈 부회장은 김용준 실장을 빼내려고 무슨 짓이든 할 겁니다. 어서 다른 방법을 찾지 않으면…….

그런데 성윤은 침착하다.

“걱정하지 마세요. 한상국 대통령이 나서도 김용준 실장을 빼낼 수는 없으니까요.”

-방, 방법이 있습니까?

“검찰에 없는데 어떻게 검찰에서 빼낼 수 있겠어요?”

-네? 그게 무슨……?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성윤이 휴대폰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심각한 표정의 박무혁 의원이 보인다.

이곳은 박무혁 의원이 보안을 위해 통째로 사 버린 빌딩이다.

하루 동안 국회에서 당사 그리고 이 건물까지…….

몇 번을 오가는지 모르겠다.

컵을 들어 목을 축일 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김재형 검사와 김용준이 내리고 있다.

김용준은 눈을 껌뻑인다.

검찰에게 횡령죄로 잡혔는데, 뜬금없이 박무혁과 웃고 있는 성윤이 보인다.

“이, 이게 뭐죠? 여기는 또 어디고……?”

성윤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김용준의 팔을 쥐고 있던 김재형 검사가 손을 놓는다.

갑자기 자유의 몸이 된 김용준은 여전히 멍하다.

성윤이 그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약속 지켰습니다. 살려 줬으니까 살인범의 주소를 알려 주세요.”

“네?”

“살인범을 잡아야죠. 해외로 도망가 있었으니 공소시효가 살아 있거든요.”

< 과거의 매듭. -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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