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39화 (239/300)

< 과거의 매듭. - (5) >

김용준이 몰래 찍은 영상이다.

그런데 휴대폰을 숨겼는지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목소리만 들려온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백, 백억?

-세탁기 여러 번 돌렸으니까 출처는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껏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계약금도 따로 준비했습니다. 사과 상자에 신사임당으로 가득.

화면이 바뀌었다.

헐벗은 여자들이 복도를 걸어가는 게 보인다.

여자들의 목적지는 박영훈 부회장과 검찰총장이 있는 방이다.

문을 열고 호텔 방으로 들어간다.

박영훈 부회장과 검찰총장이 있는 방이다.

그 뒤의 내용은 영상에 없었다.

하지만 뻔하다.

화면이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지하 주차장…….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검찰총장의 차에 과일 상자를 옮기고 있다.

영상이 끝났다.

국회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적막한 가운데 의원들의 머릿속은 충격으로 물들어 있다.

“저, 저게 무슨…….”

돈을 받은 대가로 뒤를 봐준다.

관행일 뿐이다.

너도 받았고 나도 받았으니까.

아니, 애초에 대기업의 후원을 받고 이 자리에 앉은 사람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힘든 것은 오직 국민이니까.

이들의 상류 생활은 쉬쉬하면 할수록 윤택해졌으니까!

그것을 지금 성윤이 끄집어 올렸다.

‘젠장!’

이 일이 세상에 퍼지고 알려지면, 그래서 국민이 눈을 뜨고 관심을 갖게 되면…….

앞으로 용돈 받기가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럼, 세비만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고작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으로…….

‘그걸로 어떻게 살아!’

모두 밥그릇을 뺏긴 개의 눈빛으로 성윤을 노려본다.

총이 있었으면 당장 방아쇠를 당겼을 것 같은 분위기…….

국회는 살벌해지고 있었다.

성윤이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정리하겠습니다. 박영훈 부회장은 검찰총장에게 100억 이상의 돈을 뇌물로 줬습니다. 보신 것처럼 검찰총장은 받았죠. 그리고…… 검찰총장이 지난해에 했던 연설문을 잠깐 읽어 보겠습니다.”

성윤이 품에서 종이를 꺼내 펼쳤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다.

“검찰총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약 및 성매매를 근절해라. 유착된 경찰과 검사에 대해서 경고와 용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발언을 했던 검찰총장이 성 접대를 받았습니다.”

성윤은 고개를 들어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국회의원들의 불붙은 눈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대놓고 욕은 안 한다.

그럼, 뇌물 받은 검찰총장을 옹호하는 꼴이 되니까.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더러웠다.

-넌 돈이 많으니까 용돈이 끊겨도 상관없다는 거지?

-이기적인 새끼야! 가난한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살라고!

그들은 짐승이다.

당장 떨어지는 이득에 목매고 있다.

한심하다.

성윤은 화를 꾹 참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먼저, 밤낮없이 일하는 많은 검사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의 총장이 있는 검찰은 믿기 힘들 것 같습니다. 특검을 발의했으면 합니다.”

성윤은 의원들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발언이 끝나면 박수를 보내든가 아니면 욕을 하든가…….

하지만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싸늘하게 성윤을 노려볼 뿐이다.

***

본회의가 끝났다.

문이 ‘쾅!’ 하고 열렸고 각 당의 의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의 표정은 좋지 않다.

“이래서 어린 새끼랑은 같이 일하면 안 되는 거야!”

“정의의 사도야? 큰 그림을 볼 줄 몰라!”

“이러다 경제가 엎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서민들은 어떻게 살라고!”

“검찰도 부담스러운데 대정 그룹까지 들쑤시자고?”

“검찰도 그냥 검찰이 아니야! 현역 검찰총장이야!”

말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단지 용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씩씩거리는 거다.

그들은 신당의 의원들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생각이 있으면 말려야지!”

“그걸 보고만 있어!”

신당의 의원들도 마냥 당하지 않는다.

“그럼, 범죄를 알았는데 눈감나? 당신들 그렇게 썩었어!”

“뭐 썩어? 이 미친 새끼야, 내가 너 뒷돈 받은 거 알아!”

“뒷돈을 받아? 내가? 언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턱을 내밀고 싸움을 건다.

기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카메라를 준비했다.

하지만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제성 의원의 비서실장 최학인이 민국당 의원들 앞에 섰기 때문이다.

민국당 의원들은 최학인이 신당을 박살 내며 사이다를 줄 것을 기대했다.

그의 잔머리와 말발은 대단하니까.

그런데, 그는 민국당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중요한 걸 놓치고 있어!”

“네?”

마른하늘에 날벼락…….

의원들이 눈을 껌뻑였다.

최학인의 벼락같은 호통 소리가 이어진다.

“생각을 하고 살아! 지금 중요한 게 뭐야! 또 야당으로 살고 싶어!”

야당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바로 대선…….

최학인이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이제 여론의 관심은 대선에 없을 거야!”

“……!”

“오로지 박무혁, 박영훈! 박무혁은 히어로, 박영훈은 악당! 게다가 숨겨진 가족의 비밀까지!”

최학인의 말에 민국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지나치던 대한당 의원들까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선은 여론이 몰리는 쪽이 승리한다.

그렇다는 것은…….

‘젠, 젠장!’

그들을 노려보며 최학인이 나직하니 입을 열었다.

“우린 끝이야. 이 새끼들아!”

***

그 시각, 전경련.

윤범성 부회장은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만지고 있었다.

“기자들은?”

비서가 대답한다.

“오십 명 정도 모였습니다.”

윤범성 부회장은 옷매무새를 더 정리한 뒤 몸을 돌렸다.

의자에 앉아 있는 박영훈 부회장이 보인다.

“무혁이가 만날 수 있는 언론은 없어. 하지만 우리는 기자가 오십 명이 와 있어.”

“나중에 갚을게. 빚을 지는 것은 싫어서.”

박영훈 부회장의 표정은 어제와 달리 조금은 편안해졌다.

대한민국에서 성종과 대정이 손잡으면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윤범성 부회장이 박영훈 부회장의 앞으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에 사진을 찍을 거야. 그때 자리 줄 테니까 한마디 해.”

“뭐라고 할까? 무혁이는 내 동생이지만 정말 괜찮은 놈이라고?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고? 대학 합격 선물로 슈퍼카를 선물받았으면서도 교통사고 한 번 안 냈다고?”

윤범성 부회장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뭐야? 슈퍼카를 타고도 교통사고 한 번 안 났어? 그게 가능해?”

“차는 있었는데 안 탔어. 지하철 타고 다녔어.”

“미친놈.”

두 사람은 낄낄 웃었다.

이제 윤범성 부회장은 단상에 오를 거다.

전경련 회원들을 뒤에 두고 기자들을 바라보며…….

“박무혁 의원을 지지하겠다.”

그럼, 박무혁 의원은 재벌이라는 낙인을 이마에 박고 대선에 나서야 한다.

박영훈 부회장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어. 무혁이는 이제 끝이야.”

재벌의 인생은 많은 사람이 부러워한다.

돈으로는 모든 것을 살 수 있고 귀신도 부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아버지 잘 만나 금수저 물고 태어난 대통령이 아니다.

농부의 아들, 서민의 아들, 가난한 사람의 인간 승리 같은 ‘콘텐츠’를 원한다.

험로를 걸어 깃발을 세운 자가 정상에 설 수 있는 거다.

박영훈 부회장이 윤범성 부회장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넥타이를 만지며 말한다.

“무혁이 끝내면 대통령은 도제성이 되려나? 고분고분해야 앞으로 5년도 편할 텐데…….”

윤범성 부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도제성 같은 경우는 돈을 안 받는다고 하던데?”

박영훈 부회장의 입에 비웃음이 가득하다.

“그거 개소리야. 많이 봤잖아? 문자 써 가며 고고한 척하던 정치인들이 던져 주는 돈에 굽실굽실……. 돈을 안 받는 것은 모자라다는 뜻이야. 더 달라는 거야.”

박영훈 부회장이 윤범성 부회장의 어깨를 가볍게 쓸며 말을 이었다.

“그럼 잘해.”

박무혁 의원을 끌어내리면 이들의 인생은 앞으로도 꽃길이다.

계속해서 잘 먹고 잘살 수 있다.

윤범성 부회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박영훈 부회장은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린다.

‘박무혁…… 넌 나를 이길 수 없어.’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자들이다.

하지만 재벌은 법 위에 있다.

박영훈 부회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힘의 차이를 보여 줄게.’

박영훈 부회장이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화면에 기자회견실이 보였다.

한 사람, 두 사람 자리하며 윤범성 부회장이 단상에 서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화면의 아래에 ‘전경련, 박무혁 의원 지지 선언할 듯’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좋아.’

박영훈 부회장이 흐뭇하게 웃는 그 순간…….

‘쾅!’ 하고 문이 다급히 열렸다.

박영훈 부회장의 새로운 비서실장이 다급히 들어온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박영훈 부회장의 앞에 섰다.

“부, 부회장님…….”

“왜!”

“신, 신당에서 특검을 제의했다고 합니다.”

“뭐? 특검?”

비서실장이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보였다.

기사의 제목이 보인다.

대정 자동차 노조 수사를 지휘하던 검찰총장이 알고 보니 ‘뒷돈’ 받고 있었다

은퇴 후 법률 자문 대가로 100억을 받은 검찰총장

성매매는 금지! 하지만 성 접대는 OK!

검찰과 대정 그룹의 유착, 추악한 민낯!

박영훈 부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언, 언론은 막았잖아! 어떤 새끼들 밥값을 못해!”

비서실장이 안절부절못하며 대답한다.

“그, 그게 국회 방송에서 본회의를 생방송으로 촬영하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뭐? 생방송?”

“오늘 국회가 열리는 날이라…….”

비서실장의 횡설수설 목소리를 들으며 박영훈 부회장은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직 멍하다.

이게 뭔가 싶다.

박무혁 의원도 대정 그룹에 상당한 지분이 있다.

대정이 흔들리면 재산이 꺾이는 것이 당연한데…….

‘뭐지? 뭐지? 뭐지?’

박무혁 의원의 행동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어서…….

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별거 중인 아내다.

통화 버튼을 꾹 누르자…….

-당신, 이게 무슨 일이야!

비명처럼 울리는 살벌한 목소리다.

-우리 집! 어제는 이석이가 마약 공급책으로 끌려가고! 오늘은 압수 수색한다고 하잖아!

그제야 박영훈 부회장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피가 베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콱 씹었다.

어젯밤, 박무혁 의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선물도 하나 준비했어. 요즘 형수하고 사이 안 좋지? 별거한 지 10년도 넘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JH 미디어를 쓸어버릴 거야.

JH 미디어가 동네 담배 가게도 아니고 며칠은 걸릴 줄 알았다.

원래 검찰이라는 놈들은 겁이 많아 그런지 타깃을 정해 놓고도 외곽부터 살살 긁어 대는 게 전부니까.

그런데…….

‘개새끼……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무서운 눈빛으로 변해 갈 때 휴대폰에서는 아내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박무혁이 그랬다는데, 너희 집안이 잘났다 이거지? 그래, 해 봐. 우리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싸우고 싶지 않으면 당장 저 거지 같은 새끼들 돌려보내!

JH 미디어는 대정에 비하면 코딱지 같은 곳이다.

하지만 케이블방송 채널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비록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방송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들과 싸우면 꽤 질척거리는 진흙탕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야.”

-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어 줄까?”

-……!

“소리 지르지 말고 닥치고 있어.”

그는 대정 그룹의 왕자다.

고작 JH 미디어 따위에게 협박을 들으면 안 된다.

박영훈 부회장은 통화 종료 버튼을 콱 눌렀다.

모든 게 엉망이 되고 있다.

쏟아지는 사건 속에 뭐가 뭔지 정리도 잘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게 박무혁 의원 때문이다.

‘박무혁…….’

그의 시선에 텔레비전 화면이 들어왔다.

윤범성 부회장이 단상에 올랐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안 돼!”

박영훈 부회장이 서둘러 휴대폰을 손에 쥔다.

“막아야 해!”

윤범성 부회장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박무혁 의원을 지지하겠다고 해맑게 외칠 거다.

“받아! 빨리!”

통화 연결음이 끝나고 윤범성 부회장의 비서실장이 전화를 받는다.

-네, 윤범성 부회장님의 비서실장…….

“나야, 당장 범성이 말려! 지지 선언하지 말라고 해!”

-네?

비서실장의 당황한 목소리…….

하지만 늦었다.

텔레비전에서 윤범성 부회장의 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희는 박무혁 의원을 지지하겠습니다!

박영훈 부회장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괴로운 욕설이 내뱉어진다.

“씨발!”

이번 일로 박무혁 의원은 많은 것을 얻었다.

전경련의 지지 선언.

형제의 잘못도 눈감지 않겠다는 정의로움.

박영훈 부회장은 이용만 당하는 중이다.

“젠장!”

그때…….

지이이이잉.

박영훈 부회장의 휴대폰이 또 울린다.

박무혁 의원이다.

박영훈 부회장이 일그러진 얼굴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가 느긋하게 들려온다.

-지지해 줘서 고마워.

반대로 박영훈 부회장의 목소리는 피를 토하고 있다.

“이 새끼야! 죽여 버릴 거야!”

< 과거의 매듭. -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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