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37화 (237/300)

< 과거의 매듭. - (3) >

***

올림픽 공원이 보이는 일식집의 주차장.

차가 멈춰 섰고 성윤과 정우가 내렸다.

얼굴을 알아본 직원이 다급히 다가와 허리를 굽힌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윤이 직원의 안내를 받아 이동할 때 정우는 카운터로 향한다.

대기하고 있던 사장이 눈을 깜빡인다.

“필요하신 거라도…….”

정우가 품에서 봉투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미리 계산할게요. 그리고 오늘 CCTV가 점검 중이었으면 하는데요.”

사장의 시선이 슬쩍 봉투로 향한다.

두께만 봐도 알 수 있다.

식사비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 있다.

그가 황급히 봉투를 감추며 입을 연다.

“보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가게가 입 무겁기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오늘 예약된 손님 중에 기자나 공직자가 있나요?”

“없습니다.”

정우가 시선을 틀어 구석에 있는 방을 향했다.

성윤이 들어간 방이다.

저곳에는 성윤과 중앙 지검장 그리고 김재형 검사가 있다.

그리고 오늘은 박무혁 의원의 지시를 받고 JH 미디어를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

JH 미디어는 케이블 채널 9개를 소유한 거대 기업.

영화, 드라마,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계열에서는 공룡과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대정 그룹과 사돈 지간이라는 것!

돌다리도 두들겨 본다는 말처럼 조심은 하고 또 해도 모자라다.

정우는 낮은 한숨을 내뱉은 후에 방을 향해 걸었다.

앞에 도착하자 성윤이 신발을 벗고 있다.

“확인했어?”

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성윤이 미닫이문을 열었다.

중앙 지검 검사장과 김재형 검사가 보인다.

성윤의 얼굴을 확인한 두 사람이 재빨리 일어선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오셨습니까?”

성윤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멀리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서초구는 보는 눈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지금 대선이지 않습니까? 시기가 민감한데 저희가 고생해야죠. 하하하.”

검사장은 크게 웃는다.

그는 최근 기분이 좋다.

박무혁 의원이 지지율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했던 약속…….

박무혁 의원이 대통령에 오르면 검사장은 검찰총장까지 바라볼 수 있다.

“어서 앉으세요.”

가벼운 인사말을 마치고 성윤이 자리에 앉았다.

검사장이 술병을 손에 쥔다.

“이게 눈으로 만든 술이라고 합니다. 꽤 고급이라고 하는데…….”

검사장은 성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성윤이 실세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안재열 전 대통령과 박무혁 의원의 만남, 그 사건을 주도한 것이 성윤!

그리고 그 일은 지금껏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성윤이 끌어 주면 총장보다 더 위를 바라볼 수도 있어!’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비벼 대는 것은 인간사의 정석이다.

그래야 법밥을 먹는 사람들의 피라미드, 그 최상층에 오를 수 있으니까.

“한잔 드십시오.”

검사장이 허허허, 웃으며 술병을 기울였다.

그런데 성윤이 손을 젓는다.

“아뇨, 괜찮습니다. 술은 대선이 끝나고 축하주로 마셨으면 합니다. 그때는 비싼 술이 아니라 소주라도 기쁘게 마실 것 같습니다.”

때아닌 거절에 검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단순히 친분에 의한 자리로 알고 이곳에 나왔으니까.

“네? 술을 안 마신다니요?”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검사장은 힐끗 성윤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성윤의 표정이 무겁다.

검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술병을 내려 둔다.

“말씀하십시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JH 미디어를 털어 주셨으면 합니다.”

“J, JH 미디어?”

“네.”

검사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다시 묻는다.

“JH 미디어를요?”

“네, 지금 당장.”

성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지만 검사장은 한발 뒤로 빼려 한다.

딱 봐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야!’

분산투자의 정석은 박무혁 의원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경우도 생각하는 거다.

“의원님, 박무혁 의원님과 상의된 겁니까? JH 미디어라면 사돈지간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그리고요?”

“덩치 큰 곳을 건들려면 법원의 조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판사들도 몸을 사려요. 법 위에 민심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는 중이거든요. 무슨 재판만 했다 하면 판사의 이름이 인터넷에 오르내리잖아요. 그리고 또 부끄럽지만 대정에서 용돈 받는 판사도 있거든요. 게다가 JH 미디어의 덩치를 생각하면 영장 없이 수사하기는…….”

검사장은 변명을 위한 변명을 이어 갔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난 그거 못 해요!’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다.

하지만 검사장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조용히 있던 정우가 입을 열었다.

“검사장님께서 그런 우려를 하실까 봐…… 이곳에 오기 전에 영장 전담 판사님들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검사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간다.

“연, 연락요? 그 사람들이 뭐라고 그랬죠?”

“공정한 판단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수사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도 했고요.”

검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판사 이 개새끼들!’

빠져나갈 구멍이 막혔다.

일이 잘못되면 모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그게 검사장이란 자리에 앉은 죄다.

‘젠장! 젠장! 젠장!’

성윤이 검사장을 바라봤다.

그 속마음이 그대로 들려오니까 참 우습다.

검사장, 그것도 중앙 지검 검사장…….

대한민국의 법을 쥐락펴락하는 사람 중 하나이며 거대 권력자.

그런데, JH 미디어를 두려워하며 몸을 사리려 한다.

성윤이 입을 열었다.

“판사님들도 도와준다고 하는데…… 당장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명목이 없지 않습니까?”

검사장은 마지막까지 명분을 찾으며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성윤이다.

“죄는 많습니다. 탈세도 있고…….”

동시에 정우가 가방에서 자료를 꺼내 테이블에 탁탁 올렸다.

탈세에 대한 것으로 박무혁 의원의 보좌관이 준비해 준 거다.

순식간에 테이블에 가득 쌓인 서류.

성윤이 손가락으로 서류를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그리고 JH 미디어의 손자, 손녀를 확인해 주세요. 그 사람들 재벌 놀이를 제대로 즐기느라 문제가 많아요. 룸살롱과 클럽, 호텔 방을 뒤지고 다니면 고스란히 드러날 겁니다.”

검사장의 입에서 다시 한숨이 내뱉어졌다.

그는 신당의 실세라 불리는 성윤과 비싼 일식집에서 고급술을 마시며 청사진을 그리려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는 일을 해야 한다.

밤새…….

“내일 아침까지 끝내 주세요.”

검사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

‘백, 백팔십오만 원?’

한 여성이 눈을 깜빡이며 메뉴판을 보고 있다.

와인 한 병의 가격이 185만 원.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걸로 줘.”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와인을 시키고 있다.

음식부터 술까지 약 300만 원.

남자가 여자의 와인잔에 와인을 채우며 빙긋이 웃는다.

그리고 어떤 말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은 며칠 전에 소개팅을 통해 만난 사이.

남자는 JH 미디어 회장의 손주다.

이름은 정이석.

“마셔 봐.”

“어? 네.”

여자는 눈치를 보며 와인잔에 입을 댔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

“어때?”

“맛있어요.”

“그래?”

정이석은 턱에 팔을 괴고 물끄러미 그녀가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왜요?”

“아, 먹는 것도 예뻐서.”

간지러운 말에 그녀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그런데, 그녀는 모른다.

지금 그녀가 식사하는 모습을 정이석은 몰래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중이다.

중간중간 친구들과의 단체 채팅 방에 올리면서…….

-난 이게 제일 신기해. 거지들이 밥 먹으면서 황홀해하는 거.

-그지 새끼들은 비싸다고 못 먹는 거잖아.

-야, 넌 한번 남겨 봐. 비싼 거 남기면 무슨 표정 지을지 존나 궁금하네.

-오늘은 저 여자가 신데렐라 꿈을 꾸며 너하고 포르노를 찍을 사람이냐?

-응. 어때?

-왁구 좋고!

이들에게는 삶의 자극과 행복이 없다.

버스를 타다가 경차를 사는 재미, 그러다가 준중형, 중형으로 넓혀 가는 즐거움.

그런 것은 지질한 인생일 뿐이다.

처음부터 인생의 초콜릿을 맛본 놈들에게는 더 큰 자극이 필요한 거다.

정이석이 여자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여기 VVIP실 조망이 정말 좋은데, 한번 볼래?”

“VVIP실요?”

“어, 한강 보면서 한잔 더 하자. 같은 와인으로…….”

그때…….

“정이석 씨?”

정이석이 고개를 틀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가 보인다.

“누구?”

“경찰입니다. 마약 공급에 대한 혐의로…….”

정이석이 낄낄낄 웃는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런 미친 새끼가!”

***

그 시각, 대정 호텔 레스토랑.

박무혁 의원이 박영훈 부회장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스테이크를 썰던 박무혁 의원이 시선을 들어 박영훈 부회장을 바라본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거야. 내가 반장 선거에 나간다고 하니까, 고등학생이었던 형이 도와줬었지? 어린애들은 웃겨야 당선될 수 있다고 하면서 기호 몇 번을 외치라고.”

“아, 기억나네.”

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웃는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이 박영훈 부회장의 와인잔을 채우며 말한다.

“고마워, 형. 이번에도 날 도와주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다.

하지만 박영훈 부회장은 잠시 눈살을 찌푸린다.

“도와줘?”

“그동안 고민 많이 했어. 재벌가의 셋째 아들이라는 주홍 글씨를 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슨 소리야?”

“주홍 글씨를 지울 지우개를 찾았어. 그 지우개는 형이 될 테고.”

박영훈 부회장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진다.

“무슨 소리냐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면 그냥 들어.”

박무혁 의원이 티슈로 입술을 닦으며 말을 잇는다.

“그래서 선물도 하나 준비했어. 요즘 형수하고 사이 안 좋지? 별거한 지 10년도 넘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JH 미디어를 쓸어버릴 거야.”

“뭐?”

박영훈 부회장에게 결혼은 비즈니스다.

그래서 이혼을 하지 않고 계속 사돈으로 남겨 두고 있는 것인데…….

“무슨 개소리야!”

박무혁 의원이 휴대폰을 내려 뒀다.

화면에 기사가 보인다.

JH 미디어 정 회장의 손주 정이석, 마약 공급책으로 긴급체포!

박무혁 의원이 조용히 웃었다.

박영훈 부회장의 목소리는 다급하다.

“너 왜 그래 새끼야! 갑자기 왜 이래!”

“시작이야. JH 미디어는 내가 사주했다는 것을 곧 알겠지. 그럼 형이랑도 깔끔하게 이혼할 수 있을 거야.”

“이 새끼가…….”

박영훈 부회장의 눈동자가 떨려 왔다.

두 사람이 우애 깊은 형제는 아니다.

하지만 대놓고 싸운 적은 없다.

아버지 박 회장이 버젓이 살아 있으니 눈치를 보며 형제인 ‘척’은 해야 했다.

그래야 상속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두 사람의 싸움은 말로 상처를 주고 소금을 뿌리는 정도로 끝냈는데…….

“이 새끼야, 이건 도를 넘었어. 전쟁을 하자고 덤비는 거야! 그리고 검찰? 미친 새끼. 검찰 정도는 나도 움직일 수 있어.”

박영훈 부회장이 빠르게 휴대폰을 꺼낸다.

검찰총장의 전화번호를 찾는데…….

앞에서 악마 같은 음성이 흘렀다.

“설마…… 검찰총장에게 전화하려는 거야?”

박무혁 의원이 자신의 휴대폰을 슥슥 만진다.

이어서 동영상이 보인다.

VVIP 룸으로 여자들이 들어가는 장면부터 검찰총장의 차량에 과일 박스가 담기는 것까지…….

영상이 진행되며 박영훈 부회장의 표정이 서서히 박살 나고 있었다.

“친한가 보네, 제철 과일도 선물해 주는 거 보면.”

이 동영상이 퍼지면…….

‘씨발!’

거지 같은 대중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날 거다.

그럼, 아버지 박 회장이 분노할 것이고…….

어쩌면 박영훈 부회장은 후계 자리에서 내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박무혁!”

박영훈 부회장의 호통이 쩌렁 울렸다.

반대로 박무혁 의원의 목소리는 조용하다.

“형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가만히 앉아서 지켜봐. 지금부터 지옥이 펼쳐질 테니까.”

박영훈 부회장이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일어섰다.

“이 문제가 터지면 대정이 흔들릴 거야! 그럼 아버지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다시 경영에 복귀하시겠지! 그러면 타깃은 네가 될 거야! 덮어, 이 새끼야! 그걸 원하는 거야?”

대정의 절대 권력, 박 회장…….

그와 등을 돌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가 얼음장같이 이어졌다.

“원하던 것은 아니야.”

“그런데, 왜!”

“그러게 왜 건드렸어? 난 대정과 상관없는 길을 가겠다고 분명히 전했던 것 같은데…….”

“건드려?”

“이지현.”

“……!”

박영훈 부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기억을 헤집는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러다가…….

“설마…… 옛날의 그 여자? 뭐야? 진짜 그 여자야?”

박영훈 부회장이 낄낄낄, 어이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씨발! 이 미친 새끼! 겨우? 그 일 때문에? 이 새끼야! 내가 널 도와준 거야. 그 여자가 네 새끼를 뱄어!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 살아 있었다면 네 재산이 반토막 났을 거야! 잘 들어. 사람의 목숨에는 값어치가 존재해. 평등하다는 것은 없이 사는 놈들의 정신 승리야! 우리는 숭고하고 고귀한 생명. 그 여자는 죽어도 어떤 상관도 없는 병신 같은 생명!”

더 들어 주기도 힘든 말이다.

박무혁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박영훈 부회장의 눈을 똑똑히 바라본다.

“납골당, 이지현의 유골함 아래에 자리 비었더라.”

“뭐?”

“보내 줄게. 살아서는 천국이었지만 죽어서는 그 병신 같은 생명 아래에서 밟히고 살 거야. 영원히.”

< 과거의 매듭.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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