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36화 (236/300)

< 과거의 매듭. - (2) >

“살려 달라고요? 내가 왜?”

“우, 우리 관계가 있잖아요! 그동안 우리가……!”

“거래였습니다, 우리 관계.”

성윤의 말에 김용준의 얼굴이 와들와들 떨린다.

“의, 의원님?”

“새로운 거래를 제시하세요. 그럼, 살려 줄 수도 있죠.”

김용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어떻게든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무너지는 하늘에서 구멍을 찾는 중이다.

그러다가…….

“있어요! 있어! 새로운 거래!”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커피 한잔할까요?”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커피숍.

성윤은 김용준과 마주 앉았다.

김용준이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만지작거리며 힘겹게 입을 연다.

“그, 그런데 살려 주실 수 있습니까?”

“그건 거래 조건을 들어 보고 말씀드리죠. 그런데, 이지현 씨와 그 아들…… 실장님이 죽인 겁니까?”

김용준이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니라니까요!”

김용준이 주변의 눈치를 본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조용히 입을 연다.

“이지현은…… 박영훈 부회장의 여자였습니다.”

“……!”

성윤은 마시던 커피를 뱉어 낼 뻔했다.

이건 뭔 개 같은 막장인지…….

“네? 박무혁 의원님과 사귀었던 사이라고 들었는데…….”

“박무혁 의원은 몰랐죠.”

박영훈 부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박무혁 의원을 견제했다.

그는 특별했으니까…….

다른 자식들은 학벌 세탁을 위해 유학을 떠났지만 박무혁 의원은 당당하게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 걸어 들어가기도 했고.

“박 회장님은 박무혁 의원님을 예뻐했습니다. 다른 자식들이 돈이나 까먹고 있을 때, 투자회사를 만들어 수백 배의 이득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그게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입니다. 어릴 때부터 난사람이었죠.”

박영훈 부회장은 박무혁 의원이 남몰래 불리던 재산 그리고 회장을 향한 욕심까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여자를 보내 감시했습니다. 그 여자가 이지현입니다. 배신할 줄은 몰랐을 겁니다. 이지현이 자기 여자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사람 마음은 모르는 거다.

그녀는 박무혁 의원의 인간적인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고 사랑에 빠졌다.

“박영훈 부회장은 이지현에게 아이가 생긴 걸 보고 계획이 어긋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배신자로 낙인하고 처리한 겁니다.”

아이가 태어나 박 회장이 알게 되면 복잡해진다.

박 회장은 아들의 핏줄이라면 끔찍이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 전에 깔끔히 처리한 거다.

“처음엔 아들…… 다음엔 이지현…….”

성윤은 한숨을 내뱉었다.

박무혁 의원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실장님이 죽였습니까?”

“아뇨! 저는 아니라니까요!”

김용준이 펄쩍 놀라 손을 흔든다.

“그럼?”

“그런 일은 전문적으로 하는 놈들이 있어요. 당시 저는 돈 배달을 했을 뿐이에요.”

“돈 배달?”

“살인범에게 주는 돈이요. 만약 걸리면 제가 청부한 것으로 해서 모든 책임을 지고 감옥에 다녀오는 역할이었죠. 신입 사원이었으니까요.”

성윤이 김용준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물었다.

“범인은?”

“외국에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죠.”

“찾을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만약을 위해 항상 추적하고 있었어요.”

여기까지 대답한 김용준 실장이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가슴이 답답한 것 같다.

외국으로 도망갈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걸릴 줄은 몰랐으니까.

커피를 단번에 마신 그가 잔을 탁 내려 두며 말한다.

“이제…… 제 목숨을 살려 주실 때입니다. 그럼, 그 범인의 주소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범인을 찾고 싶으면 김용준을 살려야 한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거래하죠. 일단 박영훈 부회장을 찾아가세요. 뺨 몇 대 맞을 각오는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말하세요, 내가 실장님의 횡령 사실을 알고 협박했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찾아가라고요? 부회장을?”

“네.”

김용준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간다.

“부회장을 찾아가라니요! 그러다가 저 죽을 수도 있어요! 그놈들이 찾아와서……!”

“그 전에 박영훈 부회장이 박살 날 겁니다, 아마도.”

“조금 더 확실한 말을 해 주세요! 제발!”

최학인에게 자료를 넘기려 했던 놈이 이제는 살려 달라 떼를 쓰고 있다.

저울질을 해 놓고 이제 성윤에게 붙는 거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은 필요하다.

성윤은 최대한 인간적인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박영훈 부회장은 실장님을 죽이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우리 쪽 정보를 얻기 위해 이중 스파이로 쓰려 하겠죠. 그러니까 가서 뺨이나 맞고 오세요.”

***

쩍!

김용준의 모가지가 홱 돌아갔다.

다시 쩍! 쩍! 쩍!

김용준의 뺨은 피가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뺨 맞는 소리가 문 밖에서도 들릴 정도다.

그 덕에 부회장실이 있는 층은 살얼음판이다.

복도를 오가는 비서들은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살금살금 걷는다.

눈치만 보면서…….

그리고 다시 쩌억!

김용준은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부, 부회장님…….”

박영훈 부회장이 소매 단추를 풀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어나.”

김용준이 비틀비틀 일어났다.

손을 곱게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다시 ‘쩍!’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어. 그냥 죽어, 이 새끼야!”

박영훈 부회장은 책상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 김용준의 머리를 내려찍기 시작했다.

퍽퍽퍽, 잔인한 소리가 들리더니 바닥에 뻘건 핏물이 뚝뚝 흐른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더니!”

“이, 이성윤이 협박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협박? 고작 협박당했다고 나를 배신해?”

“이, 이중 스파이를 하겠습니다!”

“영화 봤냐? 이중 스파이? 이런 미친 새끼가!”

김용준은 다시 넘어졌다.

박영훈 부회장은 폭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를 짓밟고 손에 잡힌 물건은 다 집어 던진다.

“죽어! 이 개새끼야!”

한참 후, 김용준은 여전히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퉁퉁 부은 얼굴이 그대로 보인다.

그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얼굴로 파르르 떨고 있다.

박영훈 부회장이 김용준의 코에 휴지를 쑤셔 넣고 불어 터진 입에는 담배를 물린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할 수 있겠어?”

“네?”

“이중 스파이…… 박무혁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겠냐고.”

김용준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어긋나면 진짜 죽을 수도 있어!’

김용준이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박영훈 부회장에게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박영훈 부회장은 필요한 사람은 죽이지 않으니까!

“할, 할 수 있습니다! 뭐든!”

“그래?”

박영훈 부회장이 빙긋이 웃으며 김용준에게 물려 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회색 연기가 공간을 채운다.

박영훈 부회장이 그의 등을 쓸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집에는 가지 마. 얼굴 흉측하니까. 붓기 빠질 때까지 여기 있어.”

김용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영훈 부회장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들어오라고 해.”

동시에 문이 활짝 열렸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들어온다.

김용준이 멍한 눈으로 여자와 박영훈 부회장을 번갈아 봤다.

박영훈 부회장이 소파에 앉아 담배를 물며 말한다.

“호텔 예약해 뒀으니까 일주일 정도 같이 지내. 그 뒤로도 자네 개인 비서로 써. 괜찮은 여자니까, 앞으로 자네가 해야 할 일을 이것저것 도울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박무혁의 뒤를 캐려면 돈이 필요하겠지?”

박영훈 부회장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김용준의 앞으로 던졌다.

한도가 월 1억짜리 카드다.

“감, 감사합니다.”

김용준은 퉁퉁 부은 얼굴로 꾸벅 허리를 굽힌다.

정말 감사한 것 같은 애절한 표정으로…….

하지만 의례적인 인사다.

그는 옆에 선 섹시한 여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사람, 그리고 여차하면 자신의 목을 그어 버릴 살인마…….

그리고 악녀가 다가와 김용준의 가슴을 쓸어 만진다.

그 모습을 보며 박영훈 부회장이 조용히 말한다.

“박무혁의 뒤를 캐도록 해. 자네가 할 일은 이번 대선에서 박무혁의 이름을 지워 버리는 거야. 성공하면 자네는 계속해서 천국에 살 거야. 돈, 아름다운 여자……. 하지만 실패하면 죽는 거야. 알지?”

“알, 알고 있습니다.”

***

“왜 그래? 뭐 하는 거야? 얼굴은 뚱해서.”

신당의 선거 캠프였다.

강원도 순회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박무혁 의원이 턱을 괸 채로 물끄러미 성윤을 보고 있다.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심각한 거야?”

“조금요.”

박무혁 의원이 다시 성윤의 표정을 살핀다.

“많이 심각한가 보네? 좋아, 해 봐.”

“어느 정도의 충격이 있으면 의원직을 사퇴하실 건가요?”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박무혁 의원이 눈살을 찌푸린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여쭤보는 겁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어?”

“일단 대답부터 듣고 싶습니다.”

박무혁 의원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성윤이 헛소리를 찍찍 뱉는 사람은 아니니까.

“솔직히?”

“네.”

잠시 생각에 빠졌던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연다.

“글쎄…… 여간해서는 사퇴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성윤이라는 재밌는 것을 찾아내서.”

“제가 장난감도 아니고…… 재미있다니요?”

박무혁 의원이 슬쩍 웃는다.

“나는 내가 만들 세상을 기대하고 있어. 그런데 그보다 더 기대하는 게 있어. 나를 이어받아 자네가 만들 세상.”

“…….”

“자네는 지금보다 더 큰 세상의 대통령이 되어 있을 거야. 그게 궁금해. 기대되고. 그래서 정치는 그다음에 그만둘 생각이야.”

성윤은 잠시 숨을 멈췄다.

그리고 결의를 토해 내는 것처럼 말한다.

“그럼, 그때까지는 반드시 그 자리에 계셔 주셨으면 합니다.”

박무혁 의원의 표정이 묘하다.

성윤이 빙빙 말을 돌리는 게 점점 더 불안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대체 무슨 폭탄선언을 하려고?”

“같이 가시겠습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도착해서 해 드리겠습니다.”

박무혁 의원은 말없이 성윤을 바라본다.

***

잠시 후, 도착한 곳은 납골당이었다.

성윤과 정우 그리고 박무혁 의원과 그 보좌관이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어떤 사람도 입을 열지 않는다.

굳이 듣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다.

이곳은 납골당, 바로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정우와 보좌관을 뒤로하고 성윤과 박무혁 의원이 납골당으로 향했다.

두 사람만 걷게 되자 드디어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연다.

심각한 목소리로…….

“누구지?”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그를 안내한다.

그리고 성윤이 한 장소에서 걸음을 멈춰 섰다.

‘이지현’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박무혁 의원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이 의원?”

그 순간, 성윤이 입을 연다.

“죄송합니다. 대한당이나 민국당에서 알게 되는 것보다 먼저 알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수십 년 전의 일.

이제는 추억으로도 희미해진 과거의 인연이다.

입었던 옷은 물론 그녀의 얼굴도 억지로 그려 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괴로운 과거를 끄집어내면 충격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사고로 위장된 교통사고였습니다.”

성윤의 말이 끝났다.

박무혁 의원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서운 눈으로 앞을 주시하다가 눈을 감아 버린다.

그리고 한참 후 , 박무혁 의원의 시선이 성윤에게 향했다.

“잠깐 혼자 있을 수 있겠나?”

성윤은 고개를 숙인 후 몸을 돌렸다.

납골당에는 박무혁 의원 혼자만 남았다.

그가 유골함을 본다.

‘……그래서 내 곁을 떠난 거였나? 박영훈과 관련이 있어서?’

옛 기억이 떠올랐다.

이별을 속삭이던 마지막 목소리가 기억됐다.

재벌과 일반인의 차이 때문에 헤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얼마나 괴로웠을까? 혼자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말하지 그랬어……. 아들이라니…… 내 아들이라니……. 네가 낳은 내 아들이라니!’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 번호는 박영훈이었다.

박무혁 의원이 휴대폰을 귀에 댄다.

“어, 형.”

-얼굴 본 지 오래됐지? 오늘 시간 어때? 밥이나 같이 먹었으면 하는데.

박무혁 의원의 얼굴은 악귀 같다.

하지만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다.

“그래, 먹자. 밥.”

박무혁 의원이 통화를 종료했다.

그가 몸을 돌린다.

차갑고 얼음장 같은 눈빛…….

밖으로 나가자 성윤과 정우 그리고 보좌관이 박무혁 의원의 옆으로 다가섰다.

박무혁 의원이 입을 연다.

“보좌관, 이지현의 아래에 자리 비었던데 그 자리 예약해 둬. 들어갈 사람 있으니까.”

“네.”

박무혁 의원의 시선이 성윤에게 옮겨졌다.

“그리고 이 의원, 박영훈에게 선물 몇 개 주고 싶어. 일단 박영훈의 처가가 JH 미디어야. 세무조사 들어가게 준비 좀 해 줘.”

“네.”

“박영훈의 뿌리는 내가 뽑지. 그 손으로 쥘 수 있는 것은 교도소의 숟가락밖에 없을 거야.”

< 과거의 매듭. -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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