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34화 (234/300)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5) >

***

도제성 의원의 비서실장 최학인이 민국당 당사로 향하고 있었다.

창밖을 향한 그의 눈빛이 차갑다.

‘반드시 해내야 해…….’

도제성 의원의 지지율은 1위였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하지만 첫 끗발이 개 끗발이다.

선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지지율이 쭉쭉 빠지고 있다.

심지어 1위마저 빼앗겼다.

‘젠장…….’

선거에도 흐름이 있다.

한 번 미끄러지기 시작한 지지율을 다시 끌어 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두 내 탓이야……. 되돌려 놔야 해.’

그러려면 더러운 짓이라도 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성공할 수 없다.

창밖을 보던 최학인이 눈을 감는다.

‘반드시…….’

잠시 후, 당사에 도착했다.

도제성 의원의 사무실 문을 열자 서류를 확인하던 도제성 의원이 고개를 든다.

“연락도 없이…….”

최학인은 저벅저벅…… 도제성 의원의 앞에 섰다.

그러자 도제성 의원이 미간을 찌푸린다.

알코올 냄새가 진동해서다.

“얼마나 마신 거야?”

최학인은 말을 돌리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박영훈 부회장을 만나십시오.”

“뭐?”

“그게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길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박영훈 부회장도 의원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지금은 각 재벌들이 대권 주자 또는 참모를 만나 용돈을 쥐여 주고 여자를 붙여 주는 시기다.

그 목적은 하나.

“정권을 잡으면 우리 좀 잘 봐줘!”

특히 지금은 성종과 대정을 비롯한 굴지의 기업들이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시기.

지금껏 대한민국의 경제를 담당했던 회장들이 물러나고 그 자식들이 왕좌에 오르고 있다.

이번 대통령은 그들의 목숨을 손에 쥘 사람이다.

최대 65%에 이르는 상속세를 날카로운 칼처럼 휘두르면서…….

“박영훈 부회장에게 약속하십시오! 회장에 오르기까지 꼼수와 편법에 눈감아 주겠다! 국민연금을 움직여 주겠다! 그룹을 장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그러려면 협력해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대정의 주인이 바뀔 것이다, 내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

더러운 뒷거래가 최학인의 입에서 내뱉어지고 있었다.

도제성 의원이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최학인을 노려봤다.

“최학인…… 미쳤어?”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게 맨정신으로 할 소리야? 나보고 그놈의 뒤를 봐주라고? 거지 같은 대통령이 되라고!”

“의원님! 어차피 재벌들은 이념에 관심이 없습니다! 놈들은 오로지 돈! 자기들의 이득! 그것만 채워 주면 의원님의 옆에 설 겁니다!”

“헛소리 그만해!”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만!”

호통이 쩌렁 울렸다.

하지만 최학인은 물러서지 않는다.

주섬주섬 품을 뒤져 구겨진 신문을 꺼냈다.

그것을 책상에 놓고 펼치자 박무혁 의원과 안재열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이 보인다.

“박무혁이 안재열 대통령과 한솥밥을 먹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박무혁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

“이놈들은 총을 들고 쏴 갈기는데 우리는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하는 겁니까? 의원님이 생각하는 이상향도 이겨야 가능한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야당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야 하는 빌어먹을 야당!”

최학인의 눈동자가 매섭다.

하지만 도제성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술에 취했으면 집에 가서 잠이나 자!”

단호한 목소리다.

도제성 의원은 최학인을 취객 취급하며 쫓아내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최학인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박영훈 부회장을 만나십시오! 박무혁에게 던질 폭탄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한 번만 눈을 감으십시오! 한 번만 오물을 묻히십시오! 뜻을 펼치려 해도 이겨야 가능한 겁니다!”

도제성 의원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다시 한번 최학인의 피를 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원님!”

하지만 도제성 의원은 꼴 보기 싫다는 듯 창가로 걸어간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는 거야. 나중에는 박영훈이 가진 돈에 의존하게 되겠지. 그럼 대통령이 될 이유가 없어. 날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으면 정상적인 방법을 가져 와.”

“전쟁은 이긴 사람이 정의이고 정상입니다. 내일 저녁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

도제성 의원의 싸늘한 눈빛이 최학인을 향했다.

“소용없어.”

“다시 오겠습니다.”

최학인은 정중히 허리를 굽힌 후 도제성 의원의 방을 떠났다.

복도를 걷는 그의 눈이 시퍼렇게 빛난다.

‘거절할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도제성 의원의 머릿속에는 분명히 박혔을 거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박영훈 부회장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야.’

손에 오물을 묻히는 것.

도제성 의원의 말대로 시작이다.

박영훈 부회장의 손을 잡은 뒤에는 더 말도 안 되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오로지 ‘이기기 위해’ 하는 일…….

‘협치는 박무혁과 안재열만 하는 게 아니야. 우리도 할 수 있어…….’

최학인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지지율이 적힌 종이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3위, 서용우, 27%

‘대한당…….’

최학인은 대한당 서용우 후보와 단일화를 생각하고 있다.

물론 서로 다른 이념이다.

그래서 당장 손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대정 그룹 박영훈이 움직이면 명분을 만들 수 있어. 이번 대선은 이념 싸움이 아니야.’

최학인의 시선이 도제성 의원의 사무실을 향했다.

그의 눈이 번쩍인다.

‘의원님, 죄송합니다. 벼랑 끝으로 밀어 넣겠습니다. 하지만 그 보답은 클 겁니다. 의원님은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

그 시각.

의원 회관, 성윤의 사무실.

보좌진이 늦은 저녁 대신 간식을 먹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떡볶이와 튀김, 김밥과 순대가 푸짐하게 쌓여 있다.

휴대폰을 보던 정우가 기사를 읽는다.

“최연소 재선 의원,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깨에 있다!”

김현석 보좌관이 낄낄 대며 말을 받는다.

“난 그 기사보다 이게 더 좋던데. ‘박무혁의 황태자이자 안재열의 후계자! 차세대 리더 이성윤!’ 캬! 이러다가 한 10년 후에 정말 대통령에 오르는 것 아니에요? 역대 최연소로? 하하하하!”

“기자들에게 전부 모바일 선물 보내죠! 커피 세트로!”

성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골드 크로스가 성윤의 힘이었다느니, 차차기 대통령은 성윤이라느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오글거린다.

그런데 정치면만이 아니다.

“연예면에 이런 기사도 있어요. 가을에 함께 여행 가고 싶은 남자, 걸 그룹이 뽑은 1위! 이성윤!”

송주현 비서관의 말에 정우가 눈을 껌뻑인다.

“걸 그룹요?”

“네.”

“걔들이 우리 의원님과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고요?”

“네.”

정우가 배를 잡고 웃는다.

“으하하하하!”

모시는 의원이 잘나가면 사무실의 분위기도 좋다.

폭죽을 터뜨리고 꽹과리를 두들겨도 모자랄 정도다.

송주현 비서관이 휴대폰을 보며 말한다.

“댓글 하나 읽을게요! 이성윤 의원, 영화배우 해도 되겠다! 느와르 포스 짱!”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하지만 지나친 칭찬을 받으면 정말 민망하다.

성윤이 양손을 들었다.

“그만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손발이 오그라지다 못해 사라질 것 같아요.”

“왜요? 잘생겼다는데…….”

“잘생긴 것은 아는데요.”

“엥? 안다고요?”

황당한 표정으로 성윤을 보던 보좌진이 동시에 웃는다.

정우가 얄미울 정도로 적극적이다.

“솔직히 잘생긴 것은 아니죠!”

“네가 할 말은 아니야.”

안재열 전 대통령의 신당 입당…….

그 안내를 성윤이 맡았다.

그래서 그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고 언론에 뿌려졌다.

그 덕에 전 국민이 알게 됐다.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두 사람의 만남, 그것을 이뤄 낸 사람이 성윤이라는 것을…….

그리고 성윤의 주가는 폭등했다.

권력의 중심에 확 다가섰고 가볍게 던진 언행까지 주목받고 있다.

즉, 힘이 생긴 거다.

하지만 성윤은 이 힘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반짝 스타로 끝내지 않으려면 박무혁 의원을 청와대에 올려야 한다.

잠시 후, 성윤은 흡연장에 올랐다.

담배를 입에 무는 얼굴에는 장난스럽게 웃고 떠들던 표정이 남아 있지 않다.

예리한 눈빛만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눈은 어두운 미래를 노려보는 중이다.

지금 가장 위협적인 사람은 도제성 의원의 비서실장…….

‘최학인…….’

이번에 그는 크게 한 방 맞았다.

하지만 무너진 채로 있을 사람이 아니다.

성윤의 꿈속에서 그는 악마 같은 모사꾼이었으니까.

‘그래, 어떻게 반격할 거냐?’

대선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과정…….

역사가 뒤틀리는 순간은 짧지만 죽고 죽이고, 더럽고 냄새나는 이야기가 수없이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의 행동을 예측해야 한다.

성윤의 머릿속에 안재열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놈은 도박을 즐기는 놈이야. 이번 도박이 실패했으니 다음에는 더 큰 것을 베팅할 거야. 그다음, 그다음에는 목숨을 걸 수도 있겠지.

성윤이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도박?’

성윤은 상대의 목적을 파악하고 그 과정을 예측한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고 하지만 그 길은 정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무모하게 주사위를 던지는 도박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모 아니면 도, 극단적인 스타일.

‘또는 예상할 수 없는 행동…….’

밤하늘만큼 깜깜한 미래, 서늘한 바람이 성윤의 머리를 타고 넘어갔다.

***

다음 날, 신당의 선거 캠프.

박무혁 의원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강원도 민심을 잡기 위해 유명 시장을 도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의 회의는 공대출 의원이 주관한다.

테이블에는 캠프의 간부들과 당직자들 그리고 성윤도 보였다.

당직자가 입을 연다.

“민주당 출신 의원 서른아홉 명이 오늘 오후 2시에 대정 호텔에서 박무혁 의원님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할 겁니다.”

서류를 넘기던 공대출 의원이 당직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민국당? 안재열 대통령님 계파지?”

“네.”

“호텔에 전화해서 깍듯이 모시라고 해. 그리고 지지 선언 끝난 후에 술자리 준비해 두고……. 혹시 모르니까 자고 갈 수 있는 룸도 잡아 둬.”

당직자가 수첩을 들고 지시 사항을 열심히 적는다.

“알겠습니다.”

“아, 정말 자고 갈 수 있는 룸이야. 혹시나 여자 부른다고 하면 기를 쓰고 말리라고 해. 지금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니까.”

공대출 의원의 말이 끝나자 반대편에 있던 당직자가 입을 연다.

“오후 3시에 전직 장성 스무 명도 지지 선언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감사 전화는 했고 이번 주말 전후로 해서 박무혁 의원님과 식사 약속을 잡을 겁니다.”

“거기 중심이 전성광 대장이지? 회 좋아한다고 들었으니까 일식집으로 잡아.”

“알겠습니다.”

일정이 착착 확인되며 회의가 끝났다.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인데…….

“이 의원?”

공대출 의원이 성윤을 불렀다.

“네, 의원님.”

앞으로 다가서자 공대출 의원이 성윤의 표정을 샅샅이 살핀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아.”

어제부터 오늘, 최학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떤 반격을 할지, 꼼수를 쓸지, 야비한 짓을 할지…….

네거티브를 한답시고 박무혁 의원의 뒤를 캐다가 과거의 여성을 찾아내는 것은 아닌지…….

‘그 여성이 튀어나오면 박무혁 의원이 갑자기 은퇴하는 것은 아니야? 꿈속에서처럼?’

이런 바보 같은 생각까지…….

상대가 도박을 좋아한다니까 예측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

그 덕에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다.

그런데…….

“자네 눈치를 보는 사람이 많아졌어. 세상 무너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 사기도 떨어지는 거야.”

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의원과 당직자 들이 힐끔힐끔 성윤의 표정을 살폈던 것이 생각난다.

평소에 반갑게 인사하던 사람들도 성윤의 표정을 보고 피하는 것 같다.

공대출 의원의 말대로 성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표정 관리하겠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 위치에 오르면 조심해야 할 게 많아지는 법이다.

혼자가 아니라 다수를 생각해야 한다.

공대출 의원이 성윤의 어깨를 가볍게 쓸었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스트레스 받는 일이 더 많이 생길 거야. 지금이 가장 행복할 때니까 지금은 즐겨.”

위로라고 한 말인 것 같은데, 앞으로 더 힘들어진다니…….

어쨌든, 성윤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조심하겠습니다.”

정중히 인사를 한 후 회의실을 벗어났다.

복도를 걷는데 휴대폰이 지이잉, 진동을 울린다.

발신 번호는 장한수 실장.

성윤은 다급히 휴대폰을 귀에 댔다.

수화기에서 장한수 실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찾은 것 같습니다.

장한수 실장에게 부탁했던 것이 있다.

박무혁 의원이 대학 때 만났던 여성을 찾아 달라고…….

성윤은 의문의 폭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찾은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그게…….

장한수 실장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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