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33화 (233/300)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4) >

***

안재열 전 대통령이 탄 차는 곧장 신당의 당사로 향했다.

방송국과 언론사들의 차가 붙어 섰다.

동시에 아나운서가 떠들기 시작한다.

“민국당과 역사를 함께했던 안재열 전 대통령이 신당의 박무혁 의원을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 평생 가진 자들과 싸웠던 안재열 전 대통령이 박무혁 의원과 회담을 잡은……. 아, 안재열 전 대통령의 옆에 누군가 함께 앉아 있습니다!”

카메라는 안재열 전 대통령의 옆을 잡았다.

하지만 짙은 선팅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아나운서가 입을 연다.

“비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예상하기로 이뤄질 것 같지 않았던 안재열 전 대통령과 박무혁 의원의 회담을 성사시킨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자동차의 안에는 안재열 전 대통령의 옆에는 성윤이 앉아 있었다.

성윤이 타고 온 차가 있었지만 안재열 전 대통령이 굳이 함께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함께 가자고 제안했던 안재열 전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창밖을 보고 간간이 한숨을 내뱉으면서…….

결국, 서울에 진입하며 성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시선을 틀어 성윤을 향했다.

그가 성윤의 손을 가볍게 잡는다.

노인의 주름진 손이 떨리고 있다.

겁이 나는 것 같다.

그는 민국당 출신의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한없는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그 존경은 끝이다.

그들의 눈빛은 경멸로 바뀔 것이고 이마에는 배신자의 낙인이 찍힐 거다.

삿대질을 받고 욕을 먹고…….

그렇게 한평생 함께했던 사람들과 갈라서는 거다.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지만 그 전에 인간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나이에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설레고 있어.”

“네?”

“어쩌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첫걸음일 수도 있잖나? 진정한 협치와 통합,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두려움은 없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뒤돌아섰던 지지자들이 다시 응원해 줄 테니까.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시대라고 해. 음모, 선동, 날조, 가짜가 판을 치니까.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는 법이야. 옳다고 생각한 일에 겁을 낼 필요는 없어.”

어느새 신당의 앞에 도착했다.

기자들이 바글바글하다.

메이저 언론사부터 소규모 업체까지…….

대한민국 모든 언론사가 모두 모인 것만 같다.

순간…….

“박무혁 대표님 나오십니다!”

“비켜 주십시오!”

그 소리에 바다가 갈리는 것처럼 기자들의 좌우로 나뉘었다.

그들의 사이로 박무혁 의원이 나타났다.

시끌벅적했던 입구가 서늘할 정도로 조용해진다.

저벅, 저벅…… 박무혁 의원의 발소리만 들린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이 차 앞에 섰다.

정중히 허리를 굽힌다.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셔터가 눌렸다.

플래시가 번쩍인다.

말 그대로 난리다.

다시 자동차 안…….

안재열 전 대통령이 성윤의 등을 가볍게 쓸어 냈다.

“자네가 내 차 문을 열도록 해.”

“네?”

앞에는 비서실장이 따로 있다.

그런데 안재열 전 대통령은 성윤에게 나가라고 한다.

“내가 딛는 이 걸음이 새로운 시대로 나가는 첫걸음일지 모른다고 했어. 그럼, 새로운 시대의 문은 자네가 열어야 하지 않겠나?”

성윤은 거부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마음이 느껴진다.

권력 게임의 무대에서 존재감을 알리게 해 주는 거다.

지금껏 국민은 생각했다.

성윤이 열심히는 하지만 권력 게임에서는 떨어져 있다고…….

이유는 나이,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다르다.

박무혁 의원과 안재열 전 대통령의 회담을 만들어 낸 주체.

영향력 있는 정치인…….

모여 있는 언론이 입방아를 찧을 거다.

신당의 실세…… 어쩌고.

안재열 전 대통령이 선택한 왕자…… 저쩌고.

성윤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순간, 쉬지 않고 눌리던 셔터가 멈칫거린다.

기자들이 멍하니 성윤을 본다.

‘이성윤?’

국민과 달리 기자들은 성윤의 영향력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였어?’

여기까지는 몰랐다.

아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눈을 껌뻑거리며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다.

성윤은 그들을 지나 안재열 전 대통령이 앉은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차량의 문에 손을 대는데, 막 정신을 차린 기자가 카메라 기자의 뒤통수를 내리치며 소리를 지른다.

“이 멍청한 새끼야! 찍어야지! 뭐 하고 있어!”

“아, 네!”

그게 신호였다.

성윤을 향해 플래시가 터진다.

그리고 딸칵, 안재열 전 대통령이 차에서 내렸다.

지금껏 허리를 굽히고 있는 박무혁 의원에게 다가간다.

가볍게 어깨를 토닥이며…….

“박무혁 대표, 그간 잘 있었나?”

박무혁 의원이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안재열 전 대통령과 힘있게 악수한다.

“대통령님, 건강하셨습니까?”

두 사람이 뜨겁게 악수하는 모습,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선 성윤…….

기자들의 렌즈에 담기고 있었다.

***

박무혁 의원의 사무실.

소파에 앉아 방을 둘러보던 안재열 전 대통령이 희미하게 웃는다.

“박 회장의 아들이라 요란하게 꾸몄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검소해.”

박무혁 의원의 사무실에는 책상과 소파 그리고 테이블이 전부다.

흔해 빠진 화초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책상과 소파의 가격이 수천만 원이라는 게 문제지만…….

뭐, 박무혁 의원의 재산을 생각하면 검소한 게 맞다.

박무혁 의원이 픽 웃는다.

“수백억을 가지고 월세 사는 놈도 있습니다.”

갑자기 대화의 타깃이 성윤에게 넘어왔다.

성윤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데 안재열 전 대통령이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박무혁 의원이 슬쩍 웃으며 물었다.

“대통령님은 그런 것 한 적 없나요?”

“있지, 하지만 선거 때 중고차를 타고 다닌 게 전부야. 원룸에 살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 이 의원, 그 재산 가지고 원룸 사는 것은 심하게 가식적이지 않나?”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잠을 자는 것이 전부다.

게다가 가끔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면 때아닌 감상에 젖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장점이 있다.

정말 조용하다는 것.

층간 소음도 없고 이웃 간의 불화도 없고…….

“딱히 이사할 생각도 없고, 그래서 살고 있는데…….”

변명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성윤은 열심히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박무혁 의원과 안재열 전 대통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크게 웃으며 성윤을 놀리고 있다.

성윤은 한숨을 내뱉으며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기자들은 박무혁 의원과 안재열 전 대통령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며 진지하고 신중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거라 생각할 거다.

하지만 실상은…….

“광어가 다 똑같은 광어 아닙니까?”

“에헤이, 내가 잡은 광어는 달라! 이 의원, 자네가 먹어 봤잖아. 이야기해 봐.”

잡담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성윤은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했다.

지금의 잡담은 지난 세월의 어색함을 씻어 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안재열 전 대통령과 박무혁 의원…….

같은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싸운 적은 없다.

하지만 타도 재벌을 외쳤던 안재열 전 대통령과 재벌의 아들인 박무혁 의원의 사이가 좋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렇게 한참의 대화가 이어졌고 안재열 전 대통령이 찻잔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은 장난기 많은 노인이 아니라 전 대통령 안재열의 자세로 앉아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뜻…….

“박 대표.”

“네, 대통령님.”

박무혁 의원도 장난기를 지우고 진지하게 안재열 전 대통령의 눈을 바라봤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묻는다.

“자네는 어떤 대통령이 되려고 그러나?”

대답 여하에 따라 신당의 합류가 최종 결정된다.

신중하게 답해야 하는데, 박무혁 의원은 서슴없이 입을 연다.

“국민을 사랑하는 대통령, 존경받는 대통령……. 그런데, 저는 어떤 대통령이 될지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

“단지 우리나라도 강대국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 대국이다.

군사력도 막강하다.

한류라는 이름의 문화적 돌풍도 만만치 않다.

지금 당장 유럽 한복판에 던져 두면 그 지역의 깡패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강대국이라 불리지 않는다.

영향력이 없으니까.

그리고 주변에 존재하는 국가들이 패권을 노리는 중국, 경제 대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이기 때문에…….

“그래서 도전하는 겁니다. 다른 것은 다 이성윤 의원에게 맡기고…… 저는 눈치 보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계획은 있고?”

부정적인 말이 이어지자 박무혁 의원이 씁쓸한 표정으로 안재열 대통령을 바라본다.

“대통령이 할 일은 불가능을 논하는 게 아니라 논리적이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안재열 전 대통령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말장난…….”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가능합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시선이 성윤에게 옮겨졌다.

“이런 망상을 내뱉는 놈이 대통령을 노린다고? 알고 있었나?”

박무혁 의원의 생각은 처음 들었다.

하지만 성윤이 박무혁 의원을 선택한 이유는 비슷하다.

미래의 외교는 짐승들의 싸움…….

그곳에서 기가 꺾이지 않고 사나운 이빨을 드러낼 사람은 박무혁 의원뿐이다.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성윤의 말에 안재열 전 대통령이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온다.

“미친놈들…… 돌았어……. 아주 돌았어…….”

박무혁 의원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미쳤죠. 정상은 아니죠. ‘내 꿈은 대통령’이라는 말, 요즘은 초등학생도 내뱉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지금까지 꾸고 있는데 정상이겠습니까? 하하하하.”

그 웃음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

잠시 후, 당사의 1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그러자 입구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이 동시에 카메라를 손에 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륵 열린다.

나타난 사람은 기다리던 안재열 전 대통령이다.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대통령님! 박무혁 후보와 어떤 대화를 나눴습니까?”

“설마 신당에 합류하는 겁니까?”

“민국당은 이 일을 알고 있습니까?”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안재열 전 대통령은 묵묵히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의 앞으로 걸어갔다.

기자들의 질문이 쉴 새 없이 이어졌지만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다 자동차 앞에서 걸음을 뚝 멈춰 섰다.

그 시선이 기자들에게 옮겨진다.

기자들이 마른침을 삼킨다.

‘이제…….’

충격적인 ‘특종’을 쏟아 낼 시간이다.

기자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기다리던 안재열 전 대통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당에 당적을 두기로 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들으니까 벙쪘다.

기자들이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서 있다.

그들은 보며 안재열 전 대통령이 조용히 웃는다.

“해야 할 말은 다 한 것 같네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노인네는 이만 갑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차에 올라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기자들이 소리를 질렀다.

“대통령님! 한 말씀만 더 해 주십시오!”

“신당에 합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탄 차는 대답 없이 자리를 떠나갔다.

“대통령님!”

***

“씨발…….”

도제성 의원의 비서실장 최학인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안재열 이 미친 새끼…….”

입술은 뒤틀어졌고 눈은 시뻘겋다.

“씨바아알!”

화가 치솟았는지 테이블에 있는 것을 손으로 확 쓸어버렸다.

위에 있던 소주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고 구겨진 신문이 나뒹군다.

신문에 보이는 타이틀…….

박무혁 의원의 대역전 드라마

박무혁 대선 후보가 지지율에서 민국당 도제성 후보를 앞섰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합류하며 지지율이 급등, 도제성 후보의 지지율과 골드 크로스 된 것이다.

특히 박무혁 후보는 20대 지지율을 흡수하면서……(중략)……최근 3주 동안 무려 11.1%나 상승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순위가 뒤집혔다.

1위, 박무혁, 35.3%

2위, 도제성, 31%

3위, 서용우, 27%

신당의 의원들은 외친다.

“이대로! 이대로! 이대로!”

그들은 민국당 의원들을 농락했다.

그 자리에 대한당 의원들은 끼지도 못한다.

“젠장…….”

최학인은 이 모든 게 자신이 저지른 탓 같았다.

그놈의 정치 콘서트를 왜 했는지…….

도제성 의원은 기존 정치인과 똑같은 놈 취급을 받으며 욕이나 처먹고 있었다.

지지율은 뚝뚝 떨어졌고 조금 있으면 30%대도 깨질 것만 같다.

동시에 민국당 의원들도 흔들린다.

함께 대권을 노렸던 당 의원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탈출구를 찾아봤지만 없었다.

앞뒤가 꽉꽉 막혀 있는 것 같다.

“제엔자앙!”

그가 다시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이리저리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유리병이 벽에 맞으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진다.

바닥에 집어 던졌던 신문을 다시 손에 들었다.

손에 쥔 신문지를 북북 뜯어 버린다.

“씨발! 씨발! 씨발!”

그때…….

‘어?’

그의 시선이 찢어 갈기던 신문에서 멈췄다.

‘뭐지?’

뭔가 번뜩였다.

그가 찢고 있던 신문을 조심스레 펼쳐 본다.

박무혁 의원, 안재열 전 대통령과 함께 협치할 것

‘협치?’

최학인은 재빨리 지지율 표를 찾아 들었다.

그리고 신문과 교차해 읽기 시작했다.

“……방법이 있어.”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보좌관! 어디 있어, 이 새끼야! 빨리 나와!”

날카로운 목소리에 보좌관이 달려 나왔다.

음식을 먹고 있었는지 다급히 입을 닦고 있다.

“부, 부르셨습니까?”

“당사로 갈 준비 해!”

최학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할 수 있어! 대권은 우리 것이야!’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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