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32화 (232/300)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3) >

***

“어, 금방 들어갈게.”

정우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

성윤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휴대폰을 내려 뒀다.

그리고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정혜성이 보인다.

“어쩐 일이시죠?”

“……걱정돼서요.”

“걱정?”

“오늘 기사가 많이 나서……. 전화하고 싶었는데, 바쁘셔서 방해되잖아요. 그래서 분위기만 살짝 보고 가려 했어요.”

성윤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가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

왜 끌리는지 모르는 복잡함…….

역사는 바뀌고 있는데 사람의 마음은 왜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음부터는 전화하세요.”

“네?”

“위험하니까 찾아오지 말고.”

지금은 대선 시즌이다.

며칠 후면 각 후보와 지지자들은 미친 악마가 될 거다.

마귀가 무릎 꿇고 배우고 갈 정도로 잔인한 악마가…….

대선은 모든 게 허용되는 콜로세움.

왕좌는 가장 악마 같은 인간에게 허용되는 신성한 의자다.

그런데, 정혜성이 빤히 본다.

“전화하라고요?”

“네.”

“진짜요?”

“네, 이렇게 찾아오지 말고.”

“메시지도 괜찮아요?”

그녀의 깜빡이는 눈동자는 ‘정말?’이라고 묻고 있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혜성의 얼굴에 바보 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 말한다.

“메시지 보낼게요.”

정혜성은 로스쿨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중이다.

검사를 꿈꿀 정도로 성적도 좋다.

그런데…… 바보 같다.

잠시 후, 정혜성을 보내고 성윤은 사무실에 올라왔다.

서류를 만지던 정우가 고개를 든다.

“오셨어요?”

“어.”

“무슨 일 있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들려온 뜬금없는 질문…….

“아니, 왜?”

“누구 만나셨어요?”

“그냥, 왜?”

“표정이 안 좋아서요. 도제성 의원의 콘서트 문제도 잘 끝났잖아요. 지금은 사이다 마신 것처럼 시원해야 하는데, 내일 재판받는 사람처럼 심각해 보여서요.”

아, 정혜성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전 봤던 박무혁 의원의 표정 때문이다.

성윤이 박무혁 의원에게 물었었다.

-의원님도 연애를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질문에 모든 것을 다 가진 박무혁 의원이 자신의 과거를 부정했었다.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지만 함께 있으면 불행해지니까.

그 모습이 마치 지금의 성윤, 본인과 겹쳐지는 것 같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성윤이 상념을 떨치며 입을 열었다.

“됐어. 준비한 거나 말해 봐.”

물끄러미 성윤을 보던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다가와 서류를 내려 두며 말한다.

“역공할 거예요. 박무혁 의원님 보좌관에게 메일 보냈어요.”

도제성 의원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성윤의 반격이 남아 있다.

처맞았으면 꿈틀대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병신 취급당하는 게 이 바닥이니까…….

그럼, 뒤통수도 맞고 앞 통수도 맞고 짓밟히기도 할 거다.

성윤이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

“언제 시작할 거야?”

“내일 아침부터 언론사가 뿌릴 거고요 박무혁 의원님의 열성 지지자들이 커뮤니티 사이트의 분위기를 주도할 거예요. 이어서 SNS와 유튜브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할 테고…….”

정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류를 한 장 더 넘겼다.

계속해서 앞으로의 전략이 보인다.

지금은 신당과 대한당이 타도 민국당을 외치며 연합한 상태다.

각 당은 저격수를 배치했고 ‘민국당은 쓰레기예요!’라는 말로 분위기를 몰아간다.

그럼, 민국당 의원들은 반격을 위해 고개를 내밀 거다.

“씨발! 우리만 쓰레기야? 그나마 우리는 깨끗해!”

그 순간, 저격수의 방아쇠가 당겨진다.

헤드샷을 쏘기 위해…….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정우가 다시 서류를 건네받으며 슬쩍 웃는다.

“인생은 한 방이라고 하잖아요?”

“어.”

“2주 안에 박무혁 의원님이 역전할 것 같지 않아요? 이 한 방으로?”

“역전이 아니라 거리까지 벌려 놔야지. 쫓아오지 못하게.”

성윤에게는 또 하나의 카드가 있다.

바로 안재열 전 대통령이다.

성윤과 정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하고 있을 때 지이잉, 성윤의 휴대폰에 진동이 왔다.

그런데 확인하니까…….

‘어?’

정혜성이다.

-전 지금 도착했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성윤이 시계를 확인했다.

‘도착은 한참 전에 했을 것 같은데…….’

같은 시각, 정혜성의 집.

그녀가 쥐고 있던 휴대폰을 침대에 던진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널브러진다.

천장을 보며 중얼…….

“내가 뭐 하는 건지…….”

메시지 하나를 보내려고 수백 번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가 고쳤다가 말았다가…….

“얼굴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지이잉, 그녀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누워 있던 그녀가 발딱 일어난다.

‘답문 왔나?’

휴대폰을 쥐고 확인한다.

-네.

기대했는데, 답문은 딱 한 글자다.

하지만 그녀는 또 메시지를 적고 있다.

-의원님도 들어가셨어요?

썼다가.

‘이게 아닌데…….’

지웠다가…….

-이제 밤에 춥죠?

‘이것도 아닌데…….’

***

다음 날.

온라인상의 분위기는 어제와 180도 달라져 있었다.

어제가 성윤의 날이었다면 오늘은 도제성 의원이 욕을 먹는 날이다.

-정치 콘서트에서 도제성이 이성윤 깠던 것 맞지?

-주어가 없었으니까 아니라고 할걸?

-도제성은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이 네거티브를 하네.

-저게 네거티브냐? 그냥 선동이지.

-선동도 참……. 전 국민이 이성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알고 있는데…….

-이성윤이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는 관심 없던 거야. 일단 이성윤은 부자잖아. 부자니까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프레임으로 잡은 거지. 그럼, 속을 줄 알았나 봐.

도제성 의원의 가장 큰 지지자는 20대였다.

정치 머리가 굳어지는 3,40대 이상과 달리 그들은 유연하다.

그들은 도제성 의원이 기존의 정치에서 벗어나 20대를 대변해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존 정치와 똑같은 네거티브와 선동, 다르지 않은 행보…….

20대는 도제성 역시 다르지 않다며 징글징글하다는 말과 함께 등을 돌리고 있다.

그 시선이 닿는 곳은 성윤이 있는 신당이다.

도제성 의원을 지지했던 20대가 크게 이탈하고 있다.

그리고…….

성윤은 안재열 전 대통령을 만나고 있었다.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안재열 전 대통령의 집이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술잔을 입에 대며 묻는다.

“최학인이지?”

“네?”

“도제성의 브레인, 최학인 아니야?”

“아, 맞습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의 시선이 테이블로 향했다.

책과 신문이 지저분하게 쌓여 있다.

그중 오늘 자 신문의 타이틀이 보인다.

도제성 의원, 입으로는 새로운 정치, 행동은 선동과 네거티브

안재열 전 대통령이 혀를 끌끌 찬다.

“어제 이 의원을 공격했던 것은 최학인의 꼼수였을 거야.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가벼운 생각의 꼼수. 카운터를 맞을 줄을 꿈에도 몰랐을 거야.”

안재열 전 대통령은 정계에서 한발 물러난 사람이다.

그래서 관전하는 기분으로 대선을 지켜보고 있다.

팝콘에 콜라를 곁들여서…….

안재열 전 대통령의 시선이 성윤에게 옮겨졌다.

“그렇다고 이놈이 바보는 아니야. 오히려 위험하지. 이놈은 도박을 즐기는 놈이야. 이번 도박이 실패했으니 다음에는 더 큰 것을 베팅할 거야. 그다음, 그다음에는 목숨을 걸 수도 있겠지.”

잘 알고 있다.

꿈에서도 봤으니까…….

비록 성윤과 동시대에 있었던 인물은 아니지만 그의 극단적인 전술은 평범한 정치인의 상식을 언제나 뛰어넘었었다.

이번 정치 콘서트는 안재열 전 대통령의 말대로 ‘되면 좋고, 아님 말고.’였을 뿐…….

“잡을 수 있겠나?”

걱정으로 가득한 시선에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금 안재열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확신일 테니까.

그리고 자신도 있다.

성윤에게는 정우가 있으니까.

이번 역공부터 민국당을 향해 배치한 저격수까지, 모두 정우의 머리에서 나온 거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꿈속에서 봤던 악랄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번에 최학인을 상대하며 더 성장할 거야.’

성윤의 눈빛을 살피던 안재열 전 대통령이 크게 웃는다.

“자네 눈을 보면 최학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져. 하긴, 자네가 망가뜨린 이무기가 한둘인가? 이번에 유원희도 자네 짓이지? 하하하하.”

안재열 전 대통령은 한참을 웃는다.

성윤의 손을 통해 썩어 빠진 노인네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게 기분 좋아서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안재열 전 대통령이 뚝 웃음을 그쳤다.

그리고 성윤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그래, 최학인은 자네가 씹어 먹도록 하고…….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해 봐. 이 늙은이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는가?”

안재열 전 대통령은 성윤이 찾아온 모든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빙빙 돌리지 않고 최대한 진실하게 입을 열었다.

“신당에 들어와 주십시오.”

“때가 됐는가?”

“네.”

안재열 전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노인네,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 더 짧아지게 생겼어.”

민국당 지지자들은 안재열 전 대통령의 탈당까지는 욕하는 것으로 꾹 참았다.

하지만 신당에 입당한다면 정말 위험해질 수도 있다.

민국당에 대한 배신이니까…….

안재열 전 대통령이 술잔을 입에 댔다.

그리고 지그시 성윤을 바라본다.

“박무혁을 만나는 것은 비즈니스야. 오가는 거래와 계약서에 쓸 내용은 협의해야 할 대상이지. 그건 뒤로하고 지금 내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어. 내가 신당에 들어가는 이유……. 이 의원,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저는…….”

안재열 전 대통령이 손을 저었다.

“자네가 선거 캠프에서 허드렛일을 맡은 것은 알아. 그 의미도 알고 있고. 그런데, 대선 이후에도 조용히 있고 싶다는 헛소리는 하지 마. 내가 궁금한 것은 본심이니까.”

안재열 전 대통령의 손가락이 성윤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가 말을 잇는다.

“탐욕스러운 본심.”

안재열 전 대통령의 눈빛이 성윤을 관통하며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그런데, 성윤은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연다.

“일단은 당권을 잡고 싶습니다.”

내년이면 성윤의 나이는 서른둘이다.

그리고 만약에 박무혁 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신당은 여당이 된다.

서른둘에 여당의 당권을 잡는 것…….

정말 미친 거다.

하지만 안재열 전 대통령은 웃지 않는다.

그의 눈빛은 ‘여당의 대표가 네놈의 목표야? 고작?’이라 말하고 있다.

성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사랑받고 관대할 겁니다. 목표에 이르기까지는…….”

“목표?”

고개를 갸웃거리던 안재열 전 대통령이 갑자기 무릎을 치며 웃기 시작했다.

“으핫핫핫! 관대해? 사랑을 받아? 꿈도 커 이 사람아!”

안재열 전 대통령은 성윤이 한 말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가 자신의 측근들에게 자주 하던 말이다.

-사랑받고 관대한 것은 청와대에 들어갈 때까지야.

왕좌에 오른 사람이 관대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힘이 없는 왕은 경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성윤은 지금 안재열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최종 목표를 말하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청와대 안에 제 의자를 두고 싶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그 의자를 볼 수 있을까?”

안재열 전 대통령은 노인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하늘이 정한 순리다.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시대 역시 저무는 중이다.

성종 그룹과 대정 그룹 등 굴지의 재벌 회장, 언론사 회장 그리고 지지고 볶고 싸웠던 정치인들까지…….

그들이 만들어 낸 시대가 서쪽으로 넘어간다.

그 전에 성윤을 통해 저지른 죗값을 씻고 새로운 내일을 보고 싶은 것은 노인의 바람이다.

하지만 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알고 있으니까…….

그 시간은 성윤이 대통령 후보의 자격을 얻기 전이다.

“왜 대답을 안 해? 이 사람아! 정치인에게 공약의 의미를 모르는가?”

성윤이 고개를 숙였다.

“노력하겠습니다.”

안재열 전 대통령이 인자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래, 그 말이라도 고맙네. 그럼, 새 시대를 위해 움직여 볼까? 장 실장!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해야겠어. 차를 대기시켜! 이 의원, 자네는 박무혁에게 연락해. 안재열이 찾아가겠다고!”

***

민국당 선거 캠프.

도제성 의원은 간부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비서실장 최학인이 입을 연다.

“오늘 낮에 연예인의 불륜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미남 배우와 고혹적인 미모로 유명한 유부녀 배우의 불륜…….

이른 새벽 남자 배우의 집에서 나오는 여배우의 사진이 딱 찍혔다.

그 덕에 도제성 의원을 욕하던 커뮤니티 사이트의 떡밥이 바뀌었다.

“우리가 던진 건가?”

“네, 김 의원이 연예부 기자에게 돈 좀 썼습니다.”

도제성 의원이 한숨을 내뱉는다.

20대의 이탈을 겨우 막아 냈지만 아직은 언발에 오줌 누기다.

최학인이 슬쩍 눈치를 보며 입을 연다.

“이성윤을 다시 한번 건드렸으면 합니다.”

“이봐…… 실패했잖아.”

“흠집을 내고 상처를 쑤시면, 그래서 계속 물어뜯으면…… 사람들은 생각하겠죠. ‘이성윤이 진짜 나쁜 놈인가?’ 이성윤은 신당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번 달 안에 도덕적 흠집을 내야 승리할…….”

문이 벌컥 열렸다.

이제는 갑자기 문이 열리면 무섭다.

게다가 당직자의 파랗게 질려 있는 저 표정…….

“또 왜!”

“그, 그게…….”

당직자가 리모컨을 들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이 켜진다.

어두운 길을 달리는 차량…….

그리고 아래에 보이는 ‘속보’ 라는 글씨.

<속보>안재열 전 대통령, 박무혁 의원과 회담. 신당 입당 가능성 시사

도제성 의원과 함께 회의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저…… 저게…….”

그들의 귓속에 지지율이 떨어지는 소리가 ‘쾅쾅쾅’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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