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30화 (230/300)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1) >

성윤의 눈동자가 싸늘해진다.

“기대하겠습니다.”

짧은 통화가 끝났다.

성윤은 휴대폰을 내려 둔 후 창가로 걸어갔다.

‘두고 보자’는 말을 하는 사람 치고 무서운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도제성 의원은 다르다.

그는 대통령에 오를 여력이 있다.

역사가 뒤틀어지지 않았다면 이기적인 지지율을 등에 업고 거침없이 승리했을 거다.

그런 사람이 두 주먹 불끈 쥐고 반격을 시작하면…….

‘반격하겠다고?’

성윤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흘렀다.

이번 추석을 통해 지지율이 좁혀진 것,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도제성 의원의 목소리에 뜨거웠던 가슴은 한순간에 차가워졌다.

‘아직 역전한 게 아니야. 지지율은 9% 넘게 차이가 나.’

고맙게도 도제성 의원의 목소리는 성윤의 생각을 이성적으로 바꿔 놓았다.

성윤의 시선이 창밖으로 옮겨졌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대한민국은 오히려 뜨거워지고 있다.

대선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하는 소리가 있다.

“누구 뽑을 거냐?”

이렇게 묻고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를 홍보한다.

그리고 상대 후보를 깎아내린다.

“박무혁을 왜 뽑아? 그 새끼는 자기 회사 밀어주려고 대통령이 되려는 거야! 우리나라를 위하는 게 아니야!”

“서용우? 그놈은 그냥 한상국 아바타 도제성은 거품이지.”

“그럼, 누굴 뽑아?”

“차악을 뽑아야 하거든? 그러니까…….”

곧 검증이라는 이름의 네거티브와 더러운 소설이 세상을 채울 거다.

싸우고 또 싸우고 헐뜯고 비방하고 병역 면제와 비리 그리고 색깔론까지…….

성윤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번 대선은 시끄러울 거야.’

성윤의 시선이 책상으로 향했다.

대정 그룹 박영훈 부회장에 대한 서류가 보인다.

성윤이 책상으로 걸어가 서류를 손에 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겨 본다.

똥물이 가득하다.

배임과 횡령…….

그리고 검찰총장과 만났던 사진.

성윤의 눈빛이 시퍼렇게 빛났다.

‘일단은 변수부터 치워야지.’

서류를 쥔 손에 힘이 콱 들어간다.

정치인끼리의 싸움은 예측이 된다.

그들은 국민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벌은 다르다.

그들은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명분도 필요 없다.

오로지 이득…….

박영훈 부회장을 가만히 놔두면 엄청난 변수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

대정 그룹,

박영훈 부회장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건들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사직서가 보인다.

김용준 실장이 작성한 거다.

‘사직서? 지금?’

박영훈 부회장의 미간은 좁혀져 있다.

그의 시선이 테이블에 놓인 신문으로 향했다.

유원희 의원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보인다.

50억! 술 먹고 했던 장난으로 했던 헛소리, 국민께 사죄

박영훈 부회장의 시선이 이번엔 앞으로 향했다.

김용준 실장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죄송합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유원희 의원의 사건이 있어서……. 이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박영훈 부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매우 안타까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김 실장…… 벌써 인생을 즐기려고? 도대체 이유가 뭐야? 갑자기…….”

“이유요?”

“그래, 이유…….”

이유는 뻔하다.

곧 터질 사건에 휩쓸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성윤에게 건넨 USB가 ‘쾅!’ 하고 터지면 대정 그룹이 폭발할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진실을 말할 수는 없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때 그 여자…….”

“여자?”

“그…… 부회장님이 전화를 받았던…….”

지난번, 성윤에게 온 전화를 박영훈 부회장이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정혜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박영훈 부회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기억나. 그래, 그 여자는 왜?”

“그 여자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떠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을 떠나?”

“네…… 몇 년 정도는 외국을 돌면서 휴양이나 하려고 합니다.”

“직업 여성이라고 하지 않았어?”

김용준 실장이 씁쓸하게 웃는다.

“요즘 법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가볍게 스쳤던 여자의 한마디가 칼이 되어 허파를 쑤실 수 있는 세상이다.

“제가 대정의 고위직에 있으면 부회장님께도 누가 될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용준 실장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렀다.

박영훈 부회장은 한껏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인수인계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리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앞으로 일정에 어떤 차질도 없을 겁니다.”

박영훈 부회장은 더 묻지 않는다.

다른 이의 바지 벗은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아쉽군.”

“저도 아쉽습니다. 부회장님께서 회장에 오를 때…… 그때 제가 옆에서 보좌하고 싶었습니다.”

“나도, 자네가 내 옆에 있어 줬으면 했어.”

박영훈 부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김용준 실장의 팔을 부드럽게 쓸었다.

“여자 문제가 있다니,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고……. 돌아오면 연락해. 그때 내 의자는 여기가 아니라 회장실에 있을 거야.”

김용준 실장은 박영훈 부회장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건강하십시오, 부회장님.”

두 사람은 아쉬움으로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회장실? 미친 새끼……. 넌 안 돼. 네 의자는 검찰에 있을 거야!’

‘여자? 욕심 많은 새끼가 거지같은 여자 문제로 도망간다고? 그걸 나한테 믿으라고? 넌 처음부터 믿을 수 없었어.’

두 사람이 뜨거운 눈길로 악수를 나눈다.

김용준 실장은 부회장실을 떠날 때까지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혔다.

“그럼, 연락드리겠습니다.”

박영훈 부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이 제일 중요해. 건강 챙겨.”

그는 김용준 실장이 나갈 때까지 아쉬움의 눈빛을 보였다.

눈빛만 보면 평생 서로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 같다.

그리고 탁, 문이 닫혔다.

동시에 박영훈 부회장의 눈빛은 한순간에 바뀐다.

사납고 잔인하게…….

그가 휴대폰을 귀에 댄다.

‘여자를 만났으면 향기가 남고 수상한 사람을 만났으면 냄새가 나지. 그런데, 넌 냄새가 나.’

휴대폰에서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부회장님.

“김용준의 뒤를 캐 봐. 휴대폰 통화 내역, 계좌 입출금, 그리고 법인차 블랙박스까지.”

-알겠습니다.

남자는 경호실이나 전략기획실 소속이 아니다.

박영훈 부회장의 뒤를 청소하고 다니는 팀이다.

박영훈 부회장이 휴대폰을 내려 뒀다.

김용준 실장이 나간 문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본다.

‘김 실장…… 제발 어떤 죄도 없었으면 좋겠어. 배신은 사형이야.’

같은 시각.

김용준 실장은 자신의 방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업무의 마무리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휴대폰을 동영상 모드로 해 두고 서류를 촬영하는 중이다.

‘다녀오면…… 박영훈은 저 자리에 없을 거야. 그럼,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마녀 자매……. 하지만 박무혁 의원이 밀어주고 우호 지분을 쌓으면…….’

김용준 실장의 머릿속에는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심경로 전략기획실장이다.

-커피 한잔 할 수 있나?

“이제 나는 커피 타 줄 사람이 없는데?”

-그건 걱정하지 마.

곧바로 문이 열리고 심경로 실장이 들어왔다.

그가 손에 쥔 캔 커피를 흔들어 보인다.

“마셔.”

“땡큐.”

“그만둔다고?”

“어.”

“이제 시작인가?”

“시작이지.”

두 사람의 캔 커피를 가볍게 부딪쳤다.

“고생해.”

두 사람은 대정 그룹에 어떤 파도가 몰려올지 알고 있다.

검찰총장과의 커넥션, 국민의 분노, 정치권의 공격…….

아무리 박영훈 부회장이라 해도 거대한 파도를 이겨 낼 수는 없다.

파도에 휩쓸릴 테고 비참하게 고개를 숙인 채 교도소에 처박힐 거다.

그리고 그 파도가 끝나면…….

“우리는 천국을 맛볼 거야.”

김용준 실장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김치국 마시지 말고, 자네가 할 일이 정말 중요해.”

김용준 실장은 총대를 메고 한국을 떠난다.

그동안 심경로 실장은 우호 세력을 확보할 거다.

그래야 마녀라 불리는 박시아, 박연희와 싸워 이길 수 있으니까.

이어서 가벼운 대화가 오갔다.

두 사람은 대정 그룹의 사원으로 입사해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싸운 적도 있고 만취해서 개가 된 적도 있고…….

그 모든 게 추억으로 쌓여 있다.

그래서 다시 만날 것을 알지만 아쉽다.

하지만 계속 있을 수는 없다.

갈 사람은 가야 한다.

“그럼, 나중에 봐.”

심경로 실장이 방을 나서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러다가 다시 김용준 실장을 향한다.

“맞다. 경호 팀에서 연락 왔어. 방금 걔들 들어왔대.”

“걔들? 누구?”

“박영훈 전용 청소부.”

심경로 실장은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하지만 김용준 실장은 담담하다.

“괜찮아. 내가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고스톱만 쳤던 것은 아니잖아? 부회장이 무슨 짓을 할지…… 전부 알고 있어.”

***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김용준 실장의 법인 차를 뒤지고 있었다.

핸들에 묻은 지문부터 블랙박스까지…….

이들 대장의 이름은 강영득.

그의 옆으로 한 남자가 섰다.

김용준 실장의 운전기사를 취조한 남자다.

“뭐래?”

“김용준 실장이 직접 운전을 한 적이 많아서 잘 모른다고 합니다.”

“차에 여자를 태운 적은?”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

여기까지는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데…….

블랙박스를 확인한 남자가 입을 연다.

“특별한 것은 없어요.”

“특별한 게 없다니?”

“모범생이네요. 차에서 음악을 들은 게 전부예요. 집, 회사만 왔다 갔다…….”

강영득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여자 문제로 도망간다는 새끼가 집, 회사?’

이어서…….

“지문도 몇 개 없습니다. 일부러 지운 것 같은데…….”

강영득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인위적으로 지운 냄새가 악취에 가깝게 난다.

‘지웠어?’

미리 지웠다면 찾아내기 힘들다.

최대한 꾹꾹 숨겨 뒀을 테니까…….

잠시 생각에 빠졌던 강영득이 입을 열었다.

“법인 카드를 뒤져 봐. 어느 주차장을 이용했는지 확인해. CCTV를 확보해서 누구를 만났고 뭘 했는지 동선을 찾아!”

이들은 숨은 흔적을 찾아내는 데 전문가다.

최근의 흔적은 지울 수 있지만 모든 기록을 지울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3개월, 6개월 전이라면, 김용준 실장 본인의 기억 속에도 없을 테니까.

그 시작은 주차장…….

“기한은 3일! 놈이 도망가기 전에 잡아!”

남자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네!”

남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강영득은 휴대폰을 귀에 댄다.

그리고 전화는 사무실에 있던 박영훈 부회장에게 이어졌다.

-부회장님, 아무래도 냄새가 납니다.

박영훈 부회장의 눈빛에 살기가 차 올랐다.

자신의 비서실장이 목을 치려고 다가왔다는 것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과 같다.

그가 차갑게 입을 연다.

“김용준을 회유할 정도면…… 박무혁이야. 그쪽을 뒤져 봐.”

-알겠습니다.

박영훈 부회장이 휴대폰을 내려 뒀다.

그의 눈빛이 무시무시하다.

“박무혁…… 정말 죽어 봐야, 형이 무서운 줄 알겠니?”

***

10월로 접어들며 대선 싸움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치고 나온 것은 추석 기간 동안 가장 큰 손해를 본 민국당이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심하던 그들은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대학생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도제성, 대학로 찾아 연극 관람 후 정치 콘서트. ‘대학생 표심’ 공략

도제성 민국당 대선후보가 대학로를 찾아 연극을 관람했다. 이후 대학생들과 함께 청년 실업과 일자리 등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며 밝게 웃고 있다.

서안시, 사무실.

정효순 주임이 성윤의 앞에 섰다.

망설이는 표정으로 우물쭈물하고 있다.

“왜요?”

“……혹시 보셨어요? 도제성이 대학로 간 거.”

“아, 기사로는 봤어요.”

“그거 말고, 이거.”

그녀가 성윤의 앞에 태블릿 PC를 내려 뒀다.

동영상이 보인다.

“뭐예요?”

“보세요.”

정우도 다가와서 성윤의 뒤에 섰다.

두 사람은 태블릿 PC의 작은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화면 속에는 도제성 의원이 사이다 한 캔을 손에 쥐고 철퍼덕 앉아 있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 앞에는 대학생들…….

그 모습이 정말 소탈해 보이고 잘 어울린다.

그가 대학생들을 둘러보며 입을 연다.

-한 학생이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어요. 자신은 학점이 4점이 넘고 토익이 930에 스피킹이 7, 한국사 등 각종 자격증도 다 땄는데, 취업이 안 된다고 합니다. 도대체 취업을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냐고 물어보는데…….

대학생들이 똑같이 고민하는 거다.

요즘은 백 없고 돈 없으면 취업도 어렵다.

대학 간판에 학점, 자격증으로도 모자라 창업 경력도 스펙에 포함되는 시대다.

그런데, 어른들은 말한다.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하니까 그러지! 우리 때는 다 했어! 노력을 해야지!”

도제성 의원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적어도 자신은 학생들의 생각을 공감하고 있다는 표정이다.

그가 계속 말한다.

-꿈꾸는 사람이 노력을 하죠.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죠. 이게 정상적인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 뭔가 잘못되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재벌,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천국에서 살아요. 우리는 현실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데…….

도제성 의원의 발언은 박무혁 의원을 타깃으로 잡은 거다.

그런데, 이 정도 욕은 대수롭지도 않다.

앞으로 시작될 비난에 비하면…….

그리고 선전포고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약하다.

정효순 주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조금만 더 보세요.”

성윤의 시선이 화면으로 옮겨졌다.

도제성 의원이 입을 연다.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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