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29화 (229/300)

< 추석 민심. - (2) >

***

추석, 설날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명절 중 하나.

황금 연휴도 좋지만 그보다 마주 앉아 송편을 빚는 게 즐겁다.

그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부모님, 형제, 친척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꽃을 피운다.

정치인에게 추석은 조금 더 특별하다.

추석 밥상에서 나누는 대화가 곧 민심이다.

게다가 이번 추석 민심은 곧 대선으로 향한다.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통령 잘 뽑아야 한다니까! 그래야 유원희 같은 새끼가 안 나오지!”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뽑냐! 국민이 뽑지.”

“그러니까, 내 말은 적어도 민국당은 뽑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유원희 수사할 때 방해는 안 하겠지!”

“수사를 왜 방해해?”

“같은 민국당이면 도와주겠지. 안 그래?”

민국당 지지자들은 입을 삐죽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대한당과 신당의 지지자들만 신이 났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유원희의 이름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유원희가 어쩌고저쩌고…….

그 여파는 각 대선 후보가 시장을 돌며 민심을 확인할 때도 드러났다.

박무혁 의원이 시장을 돌면 그의 이름이 시끄럽게 들린다.

“박무혁! 박무혁! 박무혁!”

박무혁 의원이 떡볶이 가게에 얼굴을 내밀었다.

“떡볶이 한 그릇 주세요.”

주인이 그릇에 떡볶이를 담아 내민다.

붉은 빛이 꽤 맛있게 보인다.

박무혁 의원이 이쑤시개로 떡 하나를 집어 물며 물었다.

“시장에서 장사하면서 불편한 점 있나요?”

주인이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주차가 제일 큰 문제죠. 대형 마트는 주차장이 크게 있는데 우린 그런 게 없잖아요. 저쪽에 남는 공터 하나 있는데, 대통령 되면 주차장 하나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박무혁 의원이 기분 좋게 미소를 그렸다.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한민당의 대표로서 검토하고 추진하겠습니다.”

그 말에 주변 상인들이 다시 외친다.

“박무혁! 박무혁! 박무혁!”

사진을 찍고 악수를 하고 난리도 아니다.

그 시각, 도제성 의원도 시장을 돌고 있었다.

지난 설만 해도 엄청난 인기를 맛봤던 도제성 의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말 싸늘하다.

유원희 의원의 사건이 터진 게 어제…….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지역구를 50억에 팔겠다고 낄낄거린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시장 상인들은 냉랭한 눈으로 도제성 의원을 바라본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어! 민국당 너희는 다 똑같아!

“50억? 50원도 아깝다, 이놈들아!”

분명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나가다 가볍게 주먹을 쥐며…….

“도제성 의원님 파이팅!”

“지지해요!”

하지만 듣기 좋은 칭찬보다 가슴을 쑤시는 악담이 귀에 들어오는 법이다.

“유원희를 왜 제명 안 해! 나라도 팔아먹을 사람인데! 너희도 똑같아!”

“너희가 정권을 잡으면 안 봐도 뻔해!”

도제성 의원은 후보가 된 이후 처음으로 억지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그 모습은 포털에 뿌려지고 있었다.

도제성, 민심이 떠났나?

-유원희 의원이 만든 파국!

-사라지는 도제성 대세론!

민국당은 흔들리고 있다.

한편 성윤도 서안시에 있는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상인들에게 얼굴을 비추고 명절 인사를 건네기 위해서다.

“많이 파세요!”

인사하면 상인들은 반갑게 맞아 준다.

“대선에는 이 의원님이 나와야죠!”

“그러니까, 서안시처럼 대한민국을 만들면 딱 좋은데.”

이어서 여기저기 선물이 쏟아진다.

“의원님, 받으세요.”

“이것도.”

선물이라고 해 봤자 어묵과 치킨 한 마리, 족발…….

안 받겠다고 해도 끝까지 손에 쥐여 준다.

“계산해, 꼭.”

“옙.”

뒤따라오던 정우가 가게를 들어가 끝끝내 계산을 마치고 나서야 선물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음식 선물들은 그대로 보육원으로 향할 거다.

그렇게 시장을 돌며 인사를 끝냈다.

정우를 먼저 퇴근시키고 성윤은 커피숍으로 향했다.

“여기요.”

박영훈 부회장의 비서실장 김용준이 기다리고 있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뇨.”

간단한 인사가 오갔다.

그리고 김용준 실장이 품에서 USB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이겁니다.”

안에는 박영훈 부회장과 검찰총장이 만났던 영상이 들어 있다.

트렁크에 사과 박스가 실리는 것까지 전부.

성윤이 USB를 손에 쥐었다.

차가운 감촉, 저격 총에 들어가 박영훈 부회장의 머리를 박살 낼 탄알처럼 느껴진다.

“고생하셨습니다.”

“언제 터뜨릴 겁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얼마나 나가 있어야 할까요?”

“글쎄요.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 정도?”

“1년…….”

김용준 실장의 표정이 어둡다.

성윤이 최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동안 고생하셨으니까 잠시 머리 식힌다는 생각으로 한 바퀴 돌고 오세요. 그럼, 다 끝나 있을 겁니다.”

영상이 공개되면 박영훈 부회장은 그를 의심할 게 분명하다.

그럼, 김용준 실장은 죽음이라는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건이 터지기 전에 대정을 그만둘 계획이다.

김용준 실장이 억지로 웃는다.

“괜히 긴장되네요.”

“잘될 겁니다.”

“성공하겠지요?”

“네. 돌아오시면 실장님이 회장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김용준 실장의 목표는 대정 그룹의 회장이다.

오로지 그 목표를 위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불나방이라 욕해도 월급쟁이의 끝을 보고 싶은 게 그의 욕심이다.

“그런데…….”

“말씀하세요.”

“박시아와 박연희는 가만히 있을까요?”

박시아와 박연희…….

박무혁 의원의 여자 형제들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욕심 많은 마귀이며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성윤이 빙긋이 웃었다.

“머리채 잡고 싸우겠죠. 서로 회장 자리에 오르겠다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조급해 말고 느긋하게 구경하다 보면 스스로 무너질 테니까요.”

성윤의 느긋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뭔가 계획이 있는 것 같다.

김용준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죠.”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고 커피숍을 떠났다.

***

“추석이 끝나면 김용준 실장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합니다.”

성윤은 부모님 집에 가기 전, 박무혁 의원을 찾았다.

막 시장을 돌고 온 박무혁 의원의 얼굴은 조금 피곤해 보인다.

“그래?”

“인수인계 없이 그만둘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내가 가진 꼬리표를 뗄 시간인가?”

“네.”

박무혁 의원이 가진 꼬리표.

바로 친재벌…….

그의 성향이 친재벌과는 거리가 멀지만 태생이 재벌이라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꼬리표가 붙어 있는 것은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핫도그가 뭔 줄도 몰랐잖아?”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적이 있을까?”

“가난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서민을 이해할 수 있지?”

“진짜 우리를 개돼지로 생각하는 거 아냐?”

“문제는 대기업 위주로 정책을 펼칠 거라는 거야. 가족, 친척, 친구가 다 대기업이잖아.”

“중소기업은?”

“좆 된 거지.”

“양극화가 심해지겠네.”

가장 큰 약점이다.

재벌이라는 꼬리표가 커지면 커질수록 지지율이 올라갈 수 있는 한계 역시 명확하다.

성윤이 박무혁 의원의 앞에 USB를 내려 뒀다.

“검찰총장과 박영훈 부회장의 영상이 담겨 있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USB를 손에 들고 빙그르 돌린다.

“미사일 버튼…….”

검찰과 대정 그룹이 발칵 뒤집힐 거다.

그가 돌리던 USB를 멈춘 후 날카로운 시선으로 성윤을 향한다.

“시기는 내가 정하면 되는 건가?”

“네.”

박무혁 의원과 박영훈 부회장은 형제다.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성윤이 더 나설 수는 없었다.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시기는 조금 생각해 보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박무혁 의원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형제를 저격하는 순간에도 망설일 것 같지는 않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부모님 집?”

“네.”

“욕하지 마.”

“네?”

갑자기 욕하지 말라니…….

뜬금없는 말에 물끄러미 보는데 박무혁 의원이 빙긋이 웃는다.

“집에 가 보면 알 거야. 우리는 추석에도 가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 얼굴을 봐야 하는 직업이잖아.”

박무혁 의원의 말뜻을 알게 된 것은 부모님 집에 도착해서다.

1층에 주차된 고급 차량…….

처음엔 뭔가 싶었다.

그런데, 성윤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다.

서안시 어떤 공장의 사장부터 단체장, 그리고 승진을 기다리는 공무원까지.

가뜩이나 좁은 집이 더 비좁게 느껴졌다.

계속 찾아오는 손님들로 부모님과는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인사를 가장한 청부가 계속 이어진다.

성윤에게도 권력이 있다는 걸 그들이 알았기 때문이다.

권력은 똥니까.

악취를 풍기면 똥파리가 맴돈다.

“이제야 한숨 놓겠네.”

어머니가 어깨를 꾹꾹 누른다.

밤이 되어서야 가족만 남게 되었다.

난데없이 찾아온 손님들 덕에 집에는 설거지 거리가 한 가득이다.

“제가 할게요.”

성윤이 팔을 걷어붙였다.

“아이고, 의원님은 편히 쉬세요.”

어머니가 장난스레 웃으며 성윤의 등을 떠민다.

거실에서는 아버지가 손을 흔든다.

“아들, 이리 와. 한잔하게.”

작은 상에 맥주와 육포가 놓였다.

아버지가 성윤의 잔을 채운다.

“네가 국회의원이라는 게 처음으로 실감나네.”

“그러네요.”

“오늘 찾아왔던 놈들이 따로 찾아올 수도 있을까?”

“아마도요.”

“뭐 받으면 안 되는 거지?”

“네.”

성윤이 뇌물을 안 받으면 타깃을 변경해서 가족과 친척으로 넘어갈 거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향해 말한다.

“들었지? 앞으로 시장에서 100원도 깎지 마. 공짜는 아무것도 받지 마.”

아버지는 수십 번 강조했다.

어머니가 인상을 찌푸린다.

“안 받아요, 안 받아!”

아버지의 시선이 세진이에게 향했다.

“세진이도 아무것도 받지 마.”

“친구가 지우개 주는 것도요?”

“응, 받지 마. 학교 앞에서 주는 전단지도 받지 마!”

성윤이 슬쩍 웃으며 세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세진이는 괜찮아. 친구랑 전단지는 받아도 돼.”

“그쵸? 할아버지는 맨날 이상한 말만 해요.”

“내가 언제!”

아버지가 발끈한다.

“맨날!”

세진이도 밀리지 않는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걸 보며 성윤은 한참 웃었다.

그리고 맥주병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도제성 의원을 보던 아버지가 묻는다.

“나도 박무혁 찍어야 하냐?”

“아뇨, 그건 아버지가 알아서 하셔야죠.”

“넌 박무혁의 어떤 점을 지지하는 거야? 다르잖아, 이념도 목표도…….”

아버지는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성윤에 대해서는 잘 안다.

***

늦은 밤, 성윤은 건물 옥상에 올랐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자 달이 크게 보인다.

아버지가 했던 말이 다시 들려온다.

-넌 박무혁의 어떤 점을 지지하는 거야? 다르잖아, 이념도 목표도…….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르지. 이념도 목표도…….’

박무혁 의원을 지지하는 이유…….

첫째, 빚이 없다.

빚이 많으면 청와대는 빚쟁이로 득실거릴 거다.

선거 때 도와준 사람.

후원해 준 사람과 지지해 준 단체까지…….

그들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

그럼, ‘보은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능력 위주가 아니라 공신 위주로 인사를 꾸리고 빚을 갚다가 5년이 휙 지나가 버릴 거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난세다.

무너진 경제, 자국의 이득만 생각하는 강대국…….

빚만 갚다가는 거지꼴이 된다.

박무혁 의원의 성격이 필요하다.

‘그리고…….’

박무혁 의원의 당선은 성윤의 권력이 더 커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당이라는 이름의 신당이 손에 들어오면…….

성윤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나도 최고의 자리에 올라 봐야지.’

꿈속에서는 비참하게 죽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끝까지 올라가서 뜻을 펼쳐 보고 싶다.

***

“의원님, 지지율 나왔어요.”

정우가 사무실에 들어와 책상 앞에 섰다.

묘하게 웃고 있다.

“왜 그렇게 불길하게 웃어?”

“한번 보세요.”

가볍게 내려 둔 서류.

뒤집으면 지지율이 보일 거다.

추석이 끝나고 나온 첫 번째 지지율…….

성윤의 목표는 도제성 의원의 지지율을 10% 내로 따라잡는 거였다.

“실패야?”

“보시라니까요.”

성윤이 탁, 서류를 뒤집었다.

1위, 도제성, 36.4%.

도제성 의원의 지지율이 3%나 급락했다.

말 그대로 충격.

꿈속에서는 도제바람이라 부를 정도로 난리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유원희라는 빌런의 등장으로 민심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박무혁 의원은?’

성윤의 시선이 다급히 아래로 내려갔다.

여전히 3위.

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3위, 박무혁, 27%.

9.4%의 차.

드디어 10% 내에 들어섰다.

도제성 의원의 꼬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됐어!”

동시에 지이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기자들이다.

-의원님 축하해요!

박무혁 의원의 선거 캠프에서 성윤은 주요 보직이 아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대장은 이성윤이지.’

그 덕에 10% 내 진입을 축하하는 전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정우도 전화를 받느라 바쁘다.

-겨울이 되기 전에 역전하는 것 아니에요?

-이러면 단일화도 필요 없겠는데?

-기세가 대단해요, 하하하.

하지만 시작부터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은 아마추어다.

성윤은 기쁨을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답한다.

“감사합니다.”

성윤이 휴대폰을 내려 뒀다.

또 휴대폰이 울린다.

“네, 이성윤입니다.”

-도제성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냉랭하게 이어진다.

-추석이 끝났네요. 이제 반격하겠습니다.

선전포고가 시작됐다.

< 추석 민심. - (2)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