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회의원 이성윤-228화 (228/300)

< 추석 민심. - (1) >

살벌한 눈동자가 성윤을 노려본다.

하지만 성윤은 느긋하다.

천천히 일어서서 유원희 의원을 내려다본다.

“가난하고 착한 사람, 남을 돕고 힘들게 사는 사람, 그 사람들은 힘든데, 의원님은 천국에서 즐기며 살고 있었죠? 그런데, 어쩝니까? 지옥이 기다리고 있네요.”

“……!”

“지옥에서 빠져나올 생각 마세요. 그곳이 무덤이 될 테니까.”

유원희 의원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간다.

호흡은 거칠고 입술을 매말랐다.

하지만 어떤 말도 못한다.

그저 온몸을 파들파들 떨고 있을 뿐이다.

성윤은 조용히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보며 유원희 의원이 껄껄껄 웃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뚝, 웃음을 그치고 살벌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이 새끼야, 나 유원희야! 내가 호락호락 당할 것 같아! 죽여 버릴 거야! 이 개새끼야!”

문고리를 잡던 성윤이 걸음을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틀어 악귀로 변해 버린 유원희 의원을 노려본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해 보세요, ‘능력’ 있으면.”

***

박무혁 의원이 비밀스러운 미팅을 위해 통째로 사들인 건물.

성윤은 박무혁 의원을 만나고 있었다.

박무혁 의원이 황당한 표정으로 성윤을 본다.

“일부러 자극했다고?”

“네. 그래야 불씨가 꺼지지 않으니까요.”

“꺼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활활 타겠어.”

“추석까지 10% 이내……. 그게 목표입니다. 그럼, 나머지 기간 동안 해 볼 만하니까요.”

박무혁 의원이 가볍게 웃는다.

“지지율은 그렇다 쳐도 조심해. 유원희 의원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무서운 사람이지.”

잠시 권력의 날개가 꺾였지만 쌓아 온 경험을 무시하면 안 된다.

수십 년의 경험은 충분히 괴물이라 부를 수 있으니까.

방심하는 순간 목이 베일 수도 있다.

성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경호원을 붙여 주지.”

성윤이 난처한 표정을 짓자 박무혁 의원이 강하게 말한다.

“이건 당 대표로서 지시하는 거야. 유원희 의원이 조용해질 때까지는 번거롭고 불편해도 조심해야 해.”

거부할 명분이 없다.

성윤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박무혁 의원이 계속 말한다.

“유원희 의원의 옆에는 살인을 업으로 삼는 놈들이 있어. 살인을 저질러 놓고 자살이나 실종으로 위장하는 전문가지. 국회의원이라고 목숨이 여러 개 인 것은 아니니까 항상 조심해야 해.”

박무혁 의원은 몇 번이나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심으로 성윤을 아끼는 게 느껴진다.

그 이유가…….

“자네가 없으면 누가 날 대통령 시켜 주나?”

성윤이 슬쩍 웃었다.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테이블에서 일어나 와인 냉장고로 향한다.

“와인 어때? 한잔하면서 이야기할까?”

계속해서 일에 대한 대화를 이어 가야 한다.

가볍게 곁들이는 와인은 아이디어에 도움을 준다.

물론 술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처음엔 가볍게 한 병으로 끝내려 했다.

하지만 금세 빈 병이 굴러다녔다.

다시 와인이 채워진다.

성윤이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의원님도 연애를 해 본 적이 있습니까?”

박무혁 의원의 ‘여자’에 대한 힌트를 조금 더 얻고 싶었다.

그래서 박무혁 의원의 과거사를 꺼냈는데…….

“여자?”

“네.”

“자네, 여자 생겼나?”

그런데 오히려 박무혁 의원이 다다다 묻기 시작했다.

누구냐, 몇 살이냐, 집안은? 대학은? 부모님은 뭐 하시고? 사진 있으면 좀 보자…….

정말 바보 같은 이야긴데, 박무혁 의원의 질문을 들으며 머릿속에 딱 한 명이 스쳤다.

꿈속의 아내였던 정혜성…….

‘왜 떠오르는 거야?’

성윤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그냥 궁금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의원님은 여자 친구가 많으셨을 것 같아서요.”

“내가?”

“네.”

박무혁 의원은 키도 크고 잘생겼다.

게다가 재벌에 공부까지 잘 했다.

말 그대로 사기 캐릭터…….

박무혁 의원이 슬쩍 웃는다.

“많지는 않았어. 기억나는 것은 한 명……?”

“한 명이요?”

“그 이후로 만나지 않았어.”

그가 와인 잔을 손에 쥐며 말을 잇는다.

“부자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이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가난한 사람을 만나 봤지. 그런데, 재벌이라는 게 불편한 거였어.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고. 그 여자도 그게 싫었던 것 같아. 그 뒤로 생각했지.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야 하는구나…….”

“사랑하셨습니까?”

박무혁 의원이 픽 웃는다.

“그런 간지러운 말은 몰라.”

박무혁 의원은 쓸쓸한 표정으로 와인을 입에 댔다.

성윤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고…….

박무혁 의원의 속마음이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순간 그의 속마음을 엿본 것 같다.

‘마치…….’

성윤이 정혜성을 생각하는 마음과 비슷하다.

박무혁 의원 역시 과거의 자신과 여인을 부정하고 있다.

함께 있으면 불행해지니까.

잠시 침묵이 자리했다.

박무혁 의원이 와인을 들이켠 후 입을 열었다.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자네 여자 친구 이야기나 해 봐.”

“진짜 없습니다.”

박무혁 의원이 황당한 표정으로 성윤을 본다.

“뭐야? 정말 없는 거야?”

“……네.”

의심스러운 눈으로 성윤을 보던 박무혁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참 재미없는 친구야.”

“죄송합니다.”

“서울 시장 딸은 어때? 자네와 같은 또래 같은데?”

서울 시장 딸이면…….

정혜성이다.

“아뇨! 아직 여자는 관심 없어서……!”

박무혁 의원이 손을 저었다.

“소리까지 지를 필요는 없잖아? 됐어. 그럼, 다시 유원희 의원에 대한 이야기나 하지. 검찰총장이 유원희 의원을 벼르고 있는 거지?”

“네.”

며칠 전까지는 신당과 대한당이 검찰총장을 견제했다.

하지만 신당과 대한당이 발을 빼며 검찰총장은 마음 놓고 칼춤을 출 수 있게 됐다.

박무혁 의원이 담배를 입에 물며 묻는다.

“총장에게 넌지시 이야기할까? 슬슬 기자회견 한번 하라고?”

***

-조상섭 검찰총장은 유원희 의원 등 고위직의 비리에 대해 성역 없이 수사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유원희 의원이 분노했다.

그는 성윤의 바람대로 더 날뛰기 시작했다.

“안 되겠어! 기자회견을 준비해! 당장!”

보좌관은 허리를 굽힌다.

“네.”

그리고 성종 호텔 기자회견장.

카메라와 기자 들이 바글거렸다.

최근 언론의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한 유원희 의원의 기자회견이다.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텔레비전에는 일찌감치 ‘10시, 유원희 의원 기자회견’이라는 자막이 떠 있을 정도였다.

“유원희 의원이 무슨 이야기한데? 들었어?”

“의혹에 대해 해명하겠다고 했잖아. 손자랑 뇌물, 뭐 그런 거.”

“손자가 군 생활에서 꿀 빤 게 의혹은 아니잖아? 손녀면 몰라도.”

“들어 보면 알겠지.”

순간,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싹 사라졌다.

유원희 의원이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단상에 올라오고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인다.

셔터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유원희 의원이 마이크를 가볍게 건든 후 입과 높이를 맞췄다.

그가 모인 기자들을 둘러보며 입을 연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유원희입니다. 지금껏 언론에서 저에 대해 악의적인 루머를 퍼뜨려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유원희 의원은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화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연다.

“제가 정치를 한 게 40년에 가깝습니다! 여기 계신 기자님들, 제가 정치를 했을 때 태어나지 않은 분도 있었어요! 지금껏 명예롭게 생각했고 한 점 부끄럼 없이 국민을 위해 일했습니다. 그런데…… 뭐요? 제가 뇌물을 받았고 비자금을 만들었다고요?”

급기야 유원희 의원이 기자들을 향해 삿대질을 시작했다.

“당신들의 펜대가 사람 하나 죽이는 것 몰라! 내가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인생을 쓰레기로 만들어 놓고 있어!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그리고 그 장면은 민국당 회의실에서도 보고 있었다.

도제성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은 팔짱을 낀 채 화면에 집중한다.

유원희 의원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지금까지는 방관했지만 앞으로 악의적인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기필코…….

한 의원이 빙긋이 웃으며 손뼉을 짝짝짝 친다.

“유원희 의원님이 머리 좀 쓰셨어요.”

화면에 보이는 유원희 의원은 한평생 국민을 위해 살아온 청렴결백한 위인의 표상처럼 여겨진다.

기자들을 기레기로 만들며 자신은 억울하고 불쌍한 남자로 표장했다.

다른 의원이 당직자를 바라봤다.

“당직자, 댓글을 확인해 봐. 분위기 좀 보게.”

댓글이 민심을 전부 반영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분위기는 파악할 수 있다.

당직자가 스크린에 댓글을 올린다.

-유원희는 결백하다고!

-선동은 하나의 진실과 아흔아홉 개의 거짓으로 만들어지는 거임. 군대 뻘짓만 진짜, 나머지는 가짜.

-유원희 의원 멋져요! 파이팅!

-대한당과 한민당 떨거지들이 문제임. 대선에서 누가 이기나 보자.

-기자들이 펜대로 살인하는 거지. 얼마나 성질나면 저럴까 싶다.

댓글 분위기도 좋다.

도제성 의원이 입을 연다.

“연예인 스캔들…… 예정했던 대로 진행하세요. 다만 유원희 의원님에 대한 징계는 유보하도록 하죠. 그리고 검찰총장에게 연락하세요. 퇴임 후 편안히 있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국회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추석까지 이제 3일 남았습니다. 오늘은 연예인 음주 운전, 내일은 결혼 발표, 마지막 날에는…….”

사건이 터지고 터지고 또 터지면…….

유원희 의원의 일은 뒤로 밀리고 또 밀린다.

그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유원희 의원은 잊힌다.

기억에 남아도 딱 하나만 남게 될 거다.

‘유원희 의원은 억울했어. 당한 거야.’

물론 뭐가 억울했는지는 남지 않을 거고…….

도제성 의원이 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포털 사이트 댓글부터 시작해서 분위기를 바꾸세요. ‘유원희 의원의 일은 대한당과 한민당의 정치적 음모였다. 그들이 착한 노인네를 괴롭혔다.’ 지금부터 시작하세요.”

민국당 의원들이 웃기 시작했다.

“착한 노인네를 괴롭힌 것, 아예 만평으로 낼까요?”

“그거 괜찮겠네. 유원희 의원님은 불쌍하게 대한당과 한민당은 악당처럼.”

이런저런 전략이 나오고 있다.

도제성 의원은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제 3일…….’

성윤과의 약속이 3일 남았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다.

뒤에서 도운 적은 있어도 민국당이 직접 나선 적은 없다.

‘추석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움직여야지.’

그때는 성윤과의 계약이 끝난다.

그럼, 민국당의 깃발을 들고 유원희 의원의 뒤에 설 수 있다.

‘유원희 의원이 잘 버텨만 준다면 분위기가 바뀔 거야.’

얼마 전 도제성 의원의 40%대 지지율이 39.8%로 떨어졌다.

앞자리수가 바뀌었다는 것은 큰 문제…….

하지만 걱정되지 않는다.

지금 분위기를 보면 다시 치고 올라갈 수 있으니까.

도제성 의원이 큰 소리로 말한다.

“시작하세요!”

그리고 민국당이 준비한 연예인 스캔들이 연이어 터지기 시작했다.

-‘간선도로’를 부른 인기 가수가 사업가 A 씨와 결혼을 한다는 소식입니다.

-개그맨 안새희 씨가 오늘 낮 음주운전으로 체포됐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혈중알코올농도…….

-모델 출신 배우 유고희 씨가 매춘을 한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크고 작은 연예인 뉴스가 3일 동안 쏟아져 나왔다.

민국당 의원들이 갖고 있던 것과 경찰과 기자들이 꽁꽁 싸매고 있던 스캔들이 계속해서 터진다.

단 3일이었지만 유원희 의원의 이름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유원희 이름 안 나오는 거 봤어? 이거 다 음모야! 음모!”

물타기는 완벽히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민국당 의원들이 모였다.

추석 연휴 전날, 민족의 대이동이라 불리며 차가 꽉꽉 막혀 있을 때다.

도제성 의원이 그들의 앞에 서서 말한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이번 추석 민심은 경제가 화두일 겁니다. 지역구 돌면서…….”

‘쾅!’ 소리와 함께 무서울 정도로 강하게 문이 열렸다.

모든 의원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들어온 당직자를 바라본다.

“무슨 일이야?”

“유, 유투브에 이상한 게 올라왔습니다.”

“이상한 거? 뭐?”

당직자가 태블릿 PC를 건넸다.

“이건 뭐야?”

유원희 의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 잘 찍고 있나? 그럼, 계약서 작성하겠네.

만취 상태의 목소리…….

그가 A4 용지에 슥슥 계약서를 쓰고 있다.

나 유원희는 돈 50억 그리고 안전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해당 지역구를 넘기겠음.

뭐가 즐거운지 낄낄낄거린다.

-50억 비싼가? 좀 깎아 줄까? 으핫핫핫핫!

그러더니 친필도 모자라서 엄지손가락으로 꾹…….

지역구를 돈 받고 넘기겠다는 미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도제성 의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런 미친 인간이!”

의원들은 곧바로 댓글을 확인했다.

처참하다.

-술 먹고 한 장난이래. ㅋㅋㅋ

-술 마시면 지역구도 팔아먹나?

-얼마나 지역을 무시했으면 ㅋㅋㅋ

-에라이, 이런 것한테 나라를 맡긴다고.

-민국당 의원들 다 이런 것 아냐? 그러니까 돈을 주고 판다는 게 아니라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것.

-몰랐어? 우리 개돼지인 것?

< 추석 민심. -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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