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과 지옥. - (5) >
***
다음 날 새벽.
사무실의 불이 켜지고 성윤이 들어왔다.
평소보다 이른 출근…….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데 두통이 느껴진다.
‘술을 많이 마셨나…….’
정치는 술과의 싸움인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서 매일 술술술…….
정치인 중에 배 나온 사람이 많은 이유다.
화면을 보며 뉴스를 훑어보는데 정우가 들어왔다.
“아침 안 드셨죠? 드세요.”
정우가 내려놓은 비닐봉지 안에는 숙취 해소 음료와 편의점 햄버거가 보였다.
“조합이 묘하다? 그냥 콜라를 사 오지.”
“깜빡했어요.”
성윤이 햄버거를 뜯어 입에 물었다.
정우는 사무실 구석에 있는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간다.
“바로 시작할까요?”
“어.”
“한동일보에서 시작할 거예요.”
“한정이 기자가 주축이지?”
“네.”
“위험하지 않겠어?”
오늘 유원희 의원의 비리를 터뜨릴 계획이다.
정우는 그 비리가 언제, 어떻게 터지고 이어질지 브리핑하는 중이다.
“그 기사를 인터넷 언론사와 찌라시 업체가 넘겨받을 거예요. 그리고 11시에…… 한정이 기자가 유원희 의원 손주의 병역 비리를…….”
유원희 의원은 수십 년간 국회에 머물던 괴물이다.
그의 욕심에 가슴을 치며 피눈물을 흘리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벼랑 끝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존재한다.
그의 위선에 속아 투표한 국민이 있다.
오늘 그 괴물의 목에 칼을 쑤셔 넣을 거다.
도제성 의원의 지지율이 떨어질 것은 덤이다.
한참을 듣던 성윤이 손뼉을 짝 쳤다.
“좋아. 그렇게 해.”
정우가 보드 마카를 내려두며 손을 툭툭 털어 낸다.
“사냥 시작이네요.”
***
잠시 후, 오전 10시 유원희 의원의 사무실.
유원희 의원은 딸과 전화하고 있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딸은 부동산 재벌이다.
국회의원인 아버지에게 소스를 받아 여기저기 투자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투자 실패란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거지새끼들이나 하는 거니까.
그녀는 언제나 수십억의 이윤을 남겨 먹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억대 연봉을 받으며 한 단체의 대표로 근무 중이다.
그 역시 유원희 의원의 도움을 받아 낙하산으로 들어갔다.
참…… 쉽게 사는 가족이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유원희 의원이 흔들리면 그녀의 가족 역시 힘들어질 거다.
남편은 직장을 잃을 것이고 그녀의 재산은 추궁당할지도 모른다.
불안했다.
그래서 계속 묻고 있다.
“그래, 괜찮아. 걱정하지 말라니까.”
유원희 의원은 성윤과 손을 잡았다.
즉, 박무혁 의원의 도움을 받아 박영훈 부회장을 견제할 수 있다.
하지만 철없는 딸은 여전히 불안한가 보다.
-정말요?
몇 번이나 되묻고 있다.
그때마다 유원희 의원은 친절하게…….
“그래, 정말 괜찮아.”
통화가 종료된 것은 한참 후였다.
유원희 의원은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뒀다.
입에서 가벼운 한숨이 흐른다.
‘된 거야.’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조용히 있다가 은퇴하면 된다.
그리고 남은 인생은 즐기면서 살 거다.
그의 시선이 주름진 손으로 향했다.
조금은 아쉽다.
‘이 손으로 다 쥐고 있었는데…… 권력도 돈도 세상도…….’
이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오래 살 수 있다.
‘이제 쉴 때도 됐어. 가지고 있던 힘으로 이 나라를 위해 평생 힘썼잖아? 이제 후배들에게 맡기고 여행이나 다녀야겠어.’
유원희 의원은 자신이 대한민국을 위해 봉사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고 기억했다.
진심이었다.
그 순간, 문이 거칠게 열리며 보좌관이 달려 들어왔다.
“의, 의원님!”
심상치 않은 상황에 유원희의 표정이 사납게 변한다.
“왜! 또 무슨 일이야!”
“그, 그게…….”
보좌관이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아나운서가 다급히 입을 연다.
-유원희 의원의 손녀가 부정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관계자는 유원희 의원 측이 대필 기자를 고용해서…….
보좌관은 유원희 의원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손녀 문제다.
길길이 날뛰고 욕을 토해 낼 게 분명한데…….
‘어?’
그런데, 유원희 의원의 표정이 다르다.
유원희 의원이 픽 웃고 있다.
‘웃어?’
유원희 의원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저었다.
손녀의 입시 문제를 공격하리란 것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흔적을 박박 지운 지 오래다.
그의 입에서 위협적인 목소리가 내뱉어진다.
“보좌관, 저 기사 쓴 놈, 제보한 놈, 모두 고소해. 명예훼손, 허위 사실 유포로…….”
“……허위 사실 유포요?”
진영일보와 함께한 일이기 때문에 보좌관은 잘 모른다.
유원희 의원이 다시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 허위 사실 유포!”
“네, 알겠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보좌관은 일단 몸을 돌렸다.
그때, 뉴스에서…….
-속보입니다. 유원희 의원의 손자로 알려진 박 모 씨가…….
유원희 의원의 눈이 확 커진다.
“손자?”
아나운서는 계속 말을 잇는다.
-장성의 자식을 과외 시키며 그 대가로 87일의 휴가와 외박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까지 복무 기간을 계산해 보면 4일에 한 번…….
유원희 의원의 얼굴이 살벌하게 변했다.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냐고! 당장 알아봐!”
“알, 알아보겠습니다!”
보좌관이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유원희 의원은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런 씨발…….”
한참 욕을 지껄이던 유원희 의원이 다급히 휴대폰을 손에 쥔다.
‘그래, 이성윤…….’
지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성윤밖에 없다.
그가 통화 버튼을 꾹 누른다.
***
일병이 휴가와 외박으로 87일을 사용했다는 것…….
네티즌들에게는 완벽한 먹잇감이었다.
난리가 났다.
-손자와 손녀? 손주가 그렇게 좋은가?
-할아버지 백이 무섭구나!
-과외병이라니! 들어본 적 있어? 포상 휴가 제대로잖아?
-일병이 87일?
-와, 진짜 유원희는 까도 까도 쓰레기다.
-민국당 이 새끼들은 정말…….
-이름 바꿔라, 면제당으로.
그리고 민국당은 비상이 걸렸다.
검은 차량이 속속 당사로 들어온다.
문이 벌컥벌컥 열리며 회의실의 자리가 채워진다.
모두 심각할 정도로 굳어진 표정이다.
“씨발, 지금 내 아들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어.”
“넌 아들이지? 난 내 이름이 왔다 갔다 하는 중이야.”
“에휴…….”
그때, 도제성 의원이 들어와 상석에 섰다.
동시에 의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원희 의원을 윤리위에 회부해야 합니다!”
불만을 가진 사람이 외쳤다.
곧 유원희 의원과 친분 있는 사람이 방어한다.
“염 의원!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원로를 윤리위에 세운다니!”
하지만 다시…….
“우리 지지율 떨어지는 것 안 보여요? 이대로 있다가 다 같이 뒈지자고?”
“그래도 안 되지! 원로를 버리면 우리 당 대의원들이 뭐라고 할 것 같나? 그럴 수는 없어!”
비례대표나 초선이 사고를 쳤으면 곧장 윤리위에 올려서 제명시키면 된다.
그런데 원로라니…….
이도 저도 할 수 없다.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며 공격과 방어가 왔다 갔다 하는 게 전부다.
순간, 문이 ‘쾅!’ 열렸다.
당직자가 들어왔다.
그런데 창백한 표정…….
날 선 회의를 이어 가던 의원들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왜! 또 무슨 일이야!”
“유, 유원희 의원님이…….”
“유원희 의원이 뭐!”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나왔습니다.”
도제성 의원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유원희 의원의 비리가 쏟아지는 중이다.
손주, 손녀, 아들, 딸 마지막으로 사위까지…….
‘이게 이성윤의 짓이라고?’
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놈이 날 타깃으로 삼으면?’
도제성 의원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막을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빠졌던 도제성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지지율부터 방어해야 해.’
도제성 의원이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원희 의원…… 어떻게 할까요?”
지금껏 윤리위원회 회부를 반대했던 의원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윤리위에 회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시발점이 됐다.
회의실이 의원들의 목소리로 시끌시끌해진다.
“그럼 윤리위는 결정 났고…… 물타기를 고민해야지?”
“연예인 스캔들 하나 터뜨릴까요?”
“그거 좋네요! 일단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뭐 없나?”
“마약 있잖아! 마약! 마약 한 애들 터뜨려!”
***
동네 할인 마트가 세일을 외치는 낡은 상가의 2층.
그곳이 유원희 의원의 사무실이었다.
유원희 의원은 손톱을 뜯으며 방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그때, 문이 다급히 열렸다.
고개를 틀어 보니 걱정스러운 표정의 성윤이 들어오고 있다.
“의원님!”
“이 의원!”
유원희 의원은 마음이 급하다.
손녀의 일에서부터 비자금 거기에 뇌물까지, 말 그대로 폭격을 받았다.
아직은 의혹과 혐의가 전부지만 시한부다.
검찰이 대중의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조사를 시작하면…….
‘안 돼!’
적어도 검찰총장이 유원희 의원의 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구형은 10년쯤 던질 테고, 그럼 아무리 낮게 잡아도 5년 형?
어쩌면 죽어서 나올 수도 있다.
그걸 알아서 그런지 그의 눈동자는 퀭하다.
성윤의 손을 잡고 소파로 끌어당긴다.
“박무혁은? 연락해 봤나?”
“네, 연락해 봤습니다. 검찰총장과 이야기해 본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는 거지!”
“네.”
유원희 의원의 얼굴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가 넥타이를 풀며 소파에 등을 기댄다.
잠시 천장을 보며 긴장으로 답답했던 한숨을 내뱉은 후 조용히 묻는다.
“자네, 국방위에 있지?”
“아, 네.”
“위원장이 윤병천이지?”
“맞습니다.”
국방위 위원장을 찾는 이유…….
군대에 있는 손주를 구할 생각이다.
“어차피 군인들은 계급이잖아. 윗대가리가 지시하면 숨기고 은폐할 거야. 그러니까 윤병천이 한마디만 해주면…….”
휴대폰을 손에 쥐고 윤병천 위원장의 전화번호를 찾는다.
하지만 받을 리가 없다.
통화 연결음만 이어진다.
유원희 의원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미친 새끼!”
유원희 의원은 그동안 멋진 노인의 모습을 연출했었다.
언제나 인자하고 여유로운, 그러면서 꼰대 같지 않은 이미지를 보고 박수를 보낸 20대 지지자도 꽤 된다.
하지만 지금 그는 욕쟁이 할아버지다.
“씨발! 씨발! 씨발!”
가면을 벗어던진 순수함.
이게 원래 모습인 거다.
“이 의원! 위원장에게 전화해 봐. 그래서 좀 바꿔 봐!”
“아, 네.”
성윤은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화면을 보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의, 의원님, 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왜! 뭐? 또 뭐!”
유원희 의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손녀가 남긴 SNS가 각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떡밥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 쓴 것은 아니다.
오래전, 자신의 친구들끼리 비밀스럽게 적었던 것…….
때아닌 유명세를 타며 세상에 공개되었다.
운동 잘하는 것도 재능, 그림 잘 그리는 것도 재능, 춤 잘 추는 것도 재능, 예쁜 것도 재능, 돈 많은 것도 재능, 권력 있는 것도 재능이에요. 얘들아, 부러우면 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난한 거고요. 그 시간에 공부하세요. 남 욕하지 마시고요. 깔깔깔깔.
유원희 의원이 눈을 감는다.
그의 호흡이 거칠다.
“이 의원…… 국방위 위원장에게 전화해 봐. 일단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겠어.”
“그런데 의원님.”
“응.”
“위원장이 나선다고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은데요.”
“무슨 말이야?”
“손자에 대한 것은 이미 다 털렸거든요. 전역한 예비군들도 있고…….”
유원희 의원이 가늘게 눈을 뜬다.
그리고 성윤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성윤은 웃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러고 있어?”
“네?”
“왜 그렇게 웃는 거야? 기분 나쁘게.”
“아, 궁금해서요.”
“뭐가?”
“10분 후에 또 기사 하나가 나갈 거예요. 그런데, 그 기사가 나가면 의원님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그 표정을 보고 싶어서 여기에 온 거거든요.”
“……!”
유원희 의원의 눈빛에는 의문만 있다.
지금 성윤이 왜 이런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성윤이 가방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동생이 식품 회사 대표님이네요. 그런데, 그 식품 회사를 인수할 때 원래 있던 사장이 자살했어요. 이유를 보니까 국세청에 검찰의 압수 수색, 대출 규제까지……. 그거 다 의원님이 했더라고요.”
“이, 이 의원,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수행 비서는 항상 여자를 두시죠? 이유야 뭐…….”
“이, 이성윤?”
성윤은 계속해서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모두 유원희 의원이 저지른 죄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서류를 ‘쾅!’ 하고 내리찍었다.
“지금까지 말한 의원님의 죄. 오늘부터 매일 언론에 올라갈 겁니다.”
“이, 이 의원,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반성하세요. 사죄하시고.”
차가운 목소리에 유원희 의원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린다.
그러다가…….
“설, 설마 날 농락한 거야? 내가 널 믿었는데…….”
성윤이 픽 웃었다.
“정치인에게 ‘믿는다’는 말을 듣다니……. 그것도 의원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까 웃기네요. 그리고 우리가 딱히 신뢰할 만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너 이 새끼가……!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국회의원이죠. 나와 똑같은 국회의원.”
“이 개새끼야!”
유원희 의원이 버럭 호통을 친다.
눈의 흰자위는 시뻘건 핏줄이 무서울 정도로 터져 있다.
< 천국과 지옥. - (5) > 끝